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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6년 만나온 친구들이 불편합니다
안녕하세요. 20대 중반의 평범한 남성입니다. 저는 요즘 친구들과의 관계가 무척 고민입니다. 15~16년을 함께 커온 친구들이 불편해졌습니다. 그렇다고 만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함께 웃고 떠드는 모습이 어쩐지 무섭기도해 저 자신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속상하기도 합니다.
1년 전, 방송인이자 평론가인 김모 씨가 한 잡지를 통해 IS보다 페미니스트가 무섭다는 식으로 적은 칼럼을 보았습니다. 이후 온라인 여러 곳에서 김모 씨의 칼럼에 대한 규탄과 더불어 페미니스트 선언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전까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았지만 잘 알지는 못했는데,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더듬더듬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페미니즘은 ‘여성’이 하나의 성으로서 여성해방을 궁극적 목표로 둔 인권운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성별에 차별을 둘 수가 있나 하는 고민으로부터 페미니즘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여의사, 여교사, 여고, 여직원, 여류작가 등 남성에겐 붙지 않는, 직급이나 신분 같은 ‘여성’이라는 단어가 남성이 아닌 여성에겐 적용되고, 심지어 뉴스에선 여성 피해자를 두고 ‘○○녀’라고 이름 붙이며 기사를 씁니다. 또 직장내에선 성희롱 발언을 듣고 성추행을 당해도 참아야 하며 애인과 헤어질 땐 폭력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생물학적 성이 아닌 ‘여성’은 이 세상에서 무슨 존재일까, 이런 차별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쉽진 않지만, 요새는 의식적으로 다른 모든 차별적 언행을 자제하려 하고 있습니다. 저도 요샛말로 ‘한남충’입니다. 부정할 수 없습니다. 지난 20여 년간, 농담이라며 성차별적 발언을 아무 생각 없이 내뱉고 ‘김치녀’라는 단어와 ‘성형 미인’들을 보며 웃고 비아냥거린 적도 있습니다. 제가 요즘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해서, 여성혐오자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진 않습니다. 적어도 한국에서 사는 남성은 본인을 가리켜 ‘여성혐오자가 아니다’라는 발언을 쉽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지도, 젠더 감수성에 대한 공감 능력 부재와 결여도 저와 남성 대부분의 잘못이기 때문입니다. 제 친구들 또한 저와 같은 한남충입니다. 김치녀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사용하고 지나가는 여성의 외모를 두고 아무런죄의식 없이 평가합니다. 요즘은 이런 장면을 마주하는 시간이 불편합니다. 그렇다고 진지하게 이런 말을 하자니, 유난떤다는 말을 듣거나 친구들이 저를 낯설게 느낄까 걱정입니다. 그렇다고 계속 만나다간 제가 너무 지칠 것 같습니다. 적절하게 조율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젠더 감수성이 필요한 현재 한국 사회
20대 중반의 평범한 남성 분이 이런 고민 사연을 보내주시다니 한국 페미니즘이 정말 많이 발전했구나, 하는 희망까지 느낀다면 ‘오버’로 보일까요. 그렇지만 정말 그런 마음이 든답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한남충’이라는 반성의 태도를 스스로 가질 수 있는, 어떤 계기 없이 ‘뭔가 판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자각을 스스로 하는 한국 남성은 정말 드물다고 생각하거든요.
페미니즘은 무게를 좀 덜고 보면 여성이라는 이유로, 말씀하신 대로 ‘○○녀’로 불리거나 무조건 외모나 특정 인성 등이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등, 남성에게 적용되지 않는 기준과 차별에 대해 여성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겠죠. 하지만 ‘된장녀’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한 게 벌써 10여년 전이니 한국 여성혐오의 역사는 꽤나 깁니다. 여성가족부에 대한 이유 없는 편견과 오해도 많죠. 오히려 남성 역차별의 시대라는 주장도 나오지만 그러기엔 아직 우리 사회가 여성이 살아가기에는 힘겨운 시대인 것 같습니다. 여성이라는 성은, 타인의 호의를 무시했다는 이유만으로 육체적 위협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입니다. 좋아해주지 않는다고 순댓국 뚝배기로 얻어맞았다거나, 염산으로 테러를 당했다거나, 토막살인을 당해 가방에 넣어지고 뉴스에서조차 ‘가방녀’라고 표현된 사건들이 모두 2016년 초에 한국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은 끔찍합니다. 한국여성의전화 통계에 따르면 3일에 한 번씩 여성이 범죄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불신의 원인은 사회구조에 먼저 있겠죠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보통 한국 남자들은 굉장히 화를 냅니다. 나는 절대로 그런 남자가 아니라는 거죠. 어느 해외 블로거의 포스팅을 한국의 트위터리안이 번역해 올린 글을 봤는데, 경찰이라는 직업군이 다른 직업 종사자보다 인간에 대한 피곤함을 많이 느끼고 신뢰도가 떨어지는 경향이 크다고 합니다. 통계로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었는데, 경찰이 상대하는 각종 범죄자는 그 사회 인구의 5%에 불과한 이들이라고 해요. 하지만 경찰 입장에서는 주로 상대하는 인간의 90%가 그 5%의 범죄자이니 인간에 대해 피로를 느끼지 않을 수 없겠죠. 위에 언급한 각종 범죄자나 그에 가까운 행동을 하는 남성은 전체 남성 인구의 4%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피해 여성 입장에서는 살면서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남자의 거의 전부인 경험을 하게 되므로, 남성 전반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통계 수치에는 함께 생각해볼 만한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유교 문화와 가부장제가 유효한 한국에서 지난 30~40년간 심각한 수준의 남아 선호 및 여아 감별 낙태가 행해지면서, 지금의 20대 남성의 경우 남녀 130:100까지 성비 불균형이 일어나 결혼은 물론 직장을 갖는 것에서 젊은 세대의 남녀는 더욱 심한 경쟁을 하게 되겠죠. 그들이 사회구조를 지적하고 그것을 개혁하기 위한 행동을 하는 것보다 눈앞에서 보다 편하게 성취와 소비를 즐기는 것처럼 보이는 여성을 혐오하고 경멸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 훨씬 쉬운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를 되찾고 이해하려면
‘내가 얼마나 여성을 좋아하는데 여혐이라니’라든지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나 여성을 떠받는 것이 아니냐’ 라는 생각 역시 아마 친구분들처럼 평범한 한국 남성들이 자주 하기 쉬운 오해입니다. 이 오해를 풀 수 있을 때 여성이 더욱 남성을 신뢰하고 사랑할 수 있다고 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결국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남성을 여성이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로 접근하면 어떨까요? 우에노 치즈코의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라는 책과, 성소수자인 영화감독 토드 헤인즈의 최근작 <캐롤>을 권하고 싶습니다. 후자의 경우, 자연스럽게 주류의 입장에 놓이는 이성애자 남성이 철저히 소외되는 느낌을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 유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 답변 김현진
- 칼럼니스트. 와신상담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