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어떤 고민도 예술적으로 상담해드리는 ‘예술적 상담소’
페이스북 탭으로 별도 공간을 마련해 고민 상담을 위한 만반의 채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올려주신 고민에 대한 예술적 대책을 찾아 답변을 달아드리니 페이스북 탭에 자주 방문해주세요!
다른 사람의 고민에 댓글을 달 수도 있답니다.
채택된 질문은 [문화+서울]에 게재되며, 소정의 상품을 발송해드립니다.
정리된 삶을 살고 싶습니다
저는 여섯 평 남짓한 원룸에서 룸메이트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급하게 이직하며 급하게 구한 방입니다. 철야가 잦은 일을 하고 있기에 집이야 뭐, 누울 공간만 있으면 된다며 아무렇게나 가구를 들여놓았고, 정리 한 번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복작거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고 퇴근한 어느 날 방 안에 들어서며 문득 ‘도대체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 안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거든요. 쓰러지기 직전의 행거에는여자 두 명의 옷이 미친 듯 걸려 있고, 무계획적으로 사재기한 가구들은 맥락 없이 방치돼 있어요.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어 깜깜한 새벽에 뜬금없이 대청소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답이 없더라고요. 일단 방 안의 절반을 차지하는 침대 때문에 방 안 구조를 바꾸는게 도저히 불가능했어요. 원룸에 킹사이즈 침대를 들여놓은 저와 룸메이트의 무개념을 원망해봤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지요. 여전히 제가 끔찍하게 아끼는 장난감과 책들은 그 문제의 킹사이즈 침대 밑에 처박혀 있고, 빨래라도 한 날에는 건조대를 펼쳐야 해서 앉을 공간이 ‘하나도 없는’ 작은 방에서 살고 있습니다. 룸메이트에게 ‘무소유’를 설파하며 뭔가 버리자고, 우리도 정리된 삶을 좀 살아보자고 애원했지만 예쁜 저의 룸메이트는 그날 요거트 만드는 기계를 사왔습니다.^^
누구나 ‘집’이라는 공간에 부여하는 의미가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큰 방, 근사한 집을 갖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그저 정리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 ‘나’라는 사람이 드러나는 공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요. 이 작은 공간에 변화를 줄 수는 없을까요?
무소유보다는 ‘계획적인 소유’를
안녕하세요. 저는 공간 설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입니다. 독자 분의 고민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좀 뻔한 소리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바쁜 일상에서도 어느 정도는 자기공간을 스스로 계획하며 사는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는 공간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를 생각해봅시다. 공간은 좁은데 2인용 침대가 필요하다면 킹사이즈가 아닌 2층 침대를 생각해볼 수도 있고, 침대 프레임을 제거하고 매트리스만 사용하면서 넓은 공간이 필요할 때 벽에 기대 세워놓을 수 있는 방법도 있습니다. 혹은 아침 저녁으로 이불을 펴고 접는 번거로움을 감수할 수도 있겠죠. 이렇게 침대 하나에 대한 고민만 하더라도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찾을 수 있고, 이것은 곧 거주자의 사는 방식과 연결됩니다. 무소유의 태도로 물건을 무조건 버리는 것이 아니라 계획적으로 소유하며, 가성비가 좋은 공간을 만들어가는 겁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근사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닌 그저 정리된 공간을 만드는 것도 삶과 밀접하게 연관된 일이다 보니 누군가가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계획하며 사는 것이 어쩌면 사람에게 평생 필요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점점 더 많이 하게 됩니다. 마치 스마트폰을 내 일상과 동기화하는 것처럼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넣고, 배경화면을 바꾸고,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앱들을 정리하다 보면, 같은 기종이라도 각각의 스마트폰이 다른 물건이 되어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공간을 채울 때 고정관념은 버려도 좋습니다
좁지만 밀도 높은 공간을 설계하는 것은 복잡한 퍼즐을 푸는 것처럼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럴 땐 약간의 상상력이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룸메이트가 있다고 하셨으니, 방 안의 모든 물건도 룸메이트라고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어떤 물건은 방바닥에서 살고, 어떤 물건은 벽에 붙어서살고, 어떤 물건은 천장에 걸려서 산다고 말이죠. 킹사이즈 침대 밑에서 살고 있는 장난감과 책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보시고 그들에게 새 보금자리를 만들어주세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바닥을 딛고 살아야 하지만 물건은 사람보다 훨씬 더 3차원적인 공간에서 살 수 있습니다. 방 안에서 구석구석 빈 공간을 찾아보세요. 모두가 방바닥에 놓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빨래는 원래 줄에 너는 것이니, 방 한쪽 벽에서 다른 벽 사이에 줄만 몇 개 걸 수 있다면, 빨래 건조대는 처분하셔도 되지 않을까요. 번듯한 붙박이장이 아니라 옷이 마구 걸려 있는 행거라도 맘에 드는 천으로 커튼을 쳐주면 옷들의 공간이 생깁니다. 그리고 빈 공간에 새로운 ‘바닥’을 만들면 물건이 살자리가 생길 수 있겠죠.
이렇게 동화 같은 비유를 드는 것은 공간을 설계할 때 고정관념을 갖지 마시라는 뜻입니다. 바닥 중 어떤 것은 선반이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것은 책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결국엔 모두 수평한 바닥이라고 생각하면, 천장 또한 그 위에 공간이 있는 하나의 수평한 바닥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일하면서 천장 일부를 철거해 천장 속을 자주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수납하는 공간으로 만들거나, 침대만 한 크기의 평상을 만들어서 아래는 수납공간으로, 위에는 얇은 매트 등을 깔아서 침대처럼 사용하게 만든 적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공간에 있는 요소를 각각 살피다 보면, 조명도 천장 한가운데 형광등을 다는 것만이 아니라 여러 모양의 물건처럼 구석구석 놓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리 안 되는 부분은 조명을 어둡게 하고 깨끗한 곳은 밝게 하면, 정리 안 된 부분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을 덜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못살겠다 바꿔보자’ 싶을 때 작은 것부터 실천하세요
이렇게 나를 포함한 물건을 정해진 공간에 배치하는 것, 그리고 그것들의 움직임까지 어느 정도는 예상하면서 최적의 공존법을 찾아보는 것. 이것을 공간 설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니 어려워 보이지만 그냥 ‘물건을 놓는 것’이에요. 장기판에 말을 두는 것처럼요. 오히려 어려운 것은 내 생활방식의 변화를 존중하고 실천하는 일이지요. 저도 정작 제 공간은 아무렇게나 방치하며 살고 있어서 이게 제일 어렵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정말 ‘못살겠다 바꿔보자’라는 구호가 절로 외쳐질 때, 작은 것부터 실천하려고 노력 중이죠. 일이 잘 안될 때, 애인이랑 싸워서 심사가 복잡할 때, 미뤘던 ‘노가다’를 하면 정신수양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바뀌는 공간에 맞추어 변해가는 생활에 뿌듯함도 느낄 수 있습니다. 모쪼록 건투를 빌며, 관심 갖는 만큼 원하는 공간을 만들 수 있고, 공간이 변하면 생활도 변한다는 걸 느끼며 사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다음 이사 때는 미리 공간을 계획하고 방을 찾아 나서는 것도 추천합니다.
- 답변 김원일
- 마포구에서 공간을 만드는 공방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다.
헌 집 고치기, 작은 공간 개조하기, 저렴한 비용으로 만들기, 조립식 공간, 가구 같은 공간 등에 관심을 두고, 다양한 공간 작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