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어떤 고민도 예술적으로 상담해드리는 ‘예술적 상담소’.
온라인으로 별도 공간을 마련해 고민 상담을 위한 만반의 채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올려주신 고민에 대한 예술적 대책을 찾아 답변을 달아드리니
서울문화재단 홈페이지(sfac.or.kr) - 열린광장 혹은 페이스북 탭에서 예술적 상담소를 찾아주세요!
다른 사람의 고민에 댓글을 달 수도 있답니다.
채택된 질문은 [문화+서울]에 게재되며, 소정의 상품을 발송해드립니다.
문화의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가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누구나 살아가면서 행복에 대한 고민을 하지만, 고민하는 모든 사람이 행복한 건 아니겠지요? 하고 싶은 것을 행하지 못하는 인생 불구자로 살아가기보다는 예술이라는 재활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꿈꿔봅니다. 울적함으로 채워진 마음을 비우고 가슴 뛰는 행복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살고 싶습니다. 더 이상 문화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로 살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희망이라는 디딤돌을 놓아 남의 현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주고 싶은 욕심도 가져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주일에 한 번이나 길게는 6개월 정도 하는 프로그램 아닌, 예술가로 살고 싶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자신을 독려하며, 희망의 동아줄을 찾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진정으로 시민을 예술가로 키워낼 수 있는 그런 상담자나 프로그램은 없을까요? 1만 시간의 법칙을 남은 인생에 적용해 클래스 올덴버그 같은, 50대에 디자인 스튜디오를 시작한 알레산드로 멘디니처럼 살고 싶은데 도움을 받을 수 없을까요?
마음먹었다면, 벌써 시작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시를 쓰는 민구입니다. 예술적 상담소에서 만난 다양한 질문 가운데 유독 눈길을 끄는 질문에 답을 드리게 되어 기뻐요. 이미 예술가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결심하셨네요. 앞으로의 삶은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살고 싶지 않다는 말에서 뼈가 느껴집니다.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지 모르지만 벌써 시작한 거나 다름없으세요. 그러니 한시름 놓고 천천히 제 얘기를 경청하셔도 좋을 거예요.
제 경우에는 처음 예술을 하기로 결심한 순간이 굉장히 강렬했습니다. 마른 하늘을 보며 걷다가 벼락을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돌이켜보면 그때 생긴 그을림이 전혀 아물지 않은 채로 남아 있어요. 무엇을 해야 할지, 그리고 그것이 결정되면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고민하기에 앞서 가장 큰 난관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자기 의심’이에요. ‘내가 예술을 해도 될까?’ ‘이미 늦은 건 아닐까?’ ‘이렇게 하면 주변 사람들이 말리거나 비웃지 않을까?’ 그런 의심을 내려놓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을 거예요. 하지만 섭섭해하지 마세요. 그만큼 자기 자리에서 본분을 다하셨으니 스스로 ‘잘했다’고 다독여 주셔도 좋아요. 이 또한 앞으로 새로운 삶을 밀고 나가는 데에 좋은 시너지를 내리라 의심치 않습니다.
끌리는 곳으로 한 걸음씩, 집요하게
고민을 보내주신 독자께서 어떤 분야를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셨다면 더 자세한 답을 드렸을 거예요. 하지만 다행인 건 어떤 분야에 상관없이 예술은 서로 ‘공생’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어요. 제 경우에는 고등학교 때부터 막연하게 시를 썼고 현재도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꼭 문학과 관련해서만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요. 오히려 문학인으로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려 문학을 더 경계하고 무심해하는 편입니다. 더 명확하게 말씀드리면 제가 희망하는 분야에만 몰입하도록 다른 예술이, 그리고 예술가들이 저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거죠. 그들은 좋은 창작물로 하여금 서로를 자극하고 때론 질투하게 해요. 언뜻 보면 싸움이 날 것 같지만 서로에게 더 좋은 에너지를 주고 각자의 분야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거죠.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얘기냐 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실제 많은 예술가가 자기 무대에서 활동하며 정작 창작물에 관한 힌트나 영감을 얻어오는 부분은 따로 있어요. 비밀을 하나 알려드리면 다음과 같아요. ‘주변이거나, 전혀 엉뚱한 곳에서.’ 거기서 창작물을 완성할 피와 살을 얻어 와요. 마치 알레산드로 멘디니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영감을 얻거나 경기도 이천의 가마 제작소에서 청자의 아름다움에 반해 힌트를 얻은 것처럼 말예요. 그가 고안한 와인오프너 ‘안나 G’를 생각해보세요. 무용가인 아내의 몸동작과 기지개를 켜는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하잖아요.
주변을 둘러보다가 자신을 끌어당기는 곳으로 처음에는 한 걸음씩, 끝내 집요하게 걸어가는 것. 그리고 누가 뭐라 말하든 내가 좋은 걸 하고야 말겠다는 자신감. 그것은 이론이나 실습을 체계적으로 배울 어떤 아카데미를 다니는 경험보다 더 중요합니다.
필요한 것은 자신감과 약간의 시간
자신에 관한 걱정과 의심을 덜어내면 삶(이란 말은 거창하지만)은, 젓가락처럼 둘로 자연스럽게 나뉘게 돼요. 하나는 지금까지 자기가 걸어온 기록.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제 막 시작한 예술가로서의 삶. 공교롭게도 둘은 따로 둘 수가 없어요. 한 짝이 바닥에 떨어지면 주워야 해요. 둘 다 있어야만 자기가 원하는 걸 잡을 수가 있거든요. 저는 예술가의 삶이 어떤지 단언할 수 없어요. 하지만 분명한 건 예술을 할 때 우리는 늘 ‘익명’이 된다는 거예요. 잠시 끼었던 도로의 안개처럼 이름이 곧 사라진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호명하는 이가 없으니 눈치 볼 필요가 없고 그에 따른 압박도 별로 없죠. 독자들이 자기 작품에 관해 뭐라고 말하든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도 생기고요. 제가 이런 말씀을 아무렇지 않게 드릴 수 있는 건 시를 쓰는 저나 앞으로 새로운 공간에서 무언가를 창조해낼 독자님이나 모두 같은 ‘한 살’이기 때문이에요. 예술가도 늙어요. 하지만 나이 들어가는 예술가의 작품은 늘 새로운 것, 남들이 금방 지나쳐서 소외된 상태로 영영 한 살에 머물러 있는 것들을 향해 있어요. 서울문화재단에는 연희문학창작촌, 남산창작센터, 서울무용센터 등 다양한 예술창작공간과 시민문화공간이 있어요. 문화교류를 위해 항상 열려 있는 공간이니 시간을 내세요. 아마 제가 해드린 얘기보다 더욱 생생한 조언이 될 거예요. 저는 질문자께서 이번 기회를 통해 이전의 삶보다 좀 더 자신감 있는 익명이 되기를 바라요. 이름이 없으니 이제 질문자께 어떤 이름을 붙여도 될 거예요. 문화 생산자로 살기로 결심하셨다니 앞으로 어떤 이름을 가지실지 저도 무척 기대됩니다. 부드럽고 유연한 조각이 되시기를. 주저하지 마세요.
- 답변 민구
- 시인.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EBS 라디오 <시콘서트> 고정 게스트로 활약한 바 있으며 현재 학술전문출판사에서 비주얼을 담당하고 있다. 시집 <배가 산으로 간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