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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상담소

4월호

별자리 운세도 신통치 않을 때예술적으로 상담해드립니다
“똑똑똑… 여기가 ‘예술적 상담소’ 맞나요?”
여러분의 어떤 고민도 예술적으로 상담해드리는 ‘예술적 상담소’.
온라인으로 별도 공간을 마련해 고민 상담을 위한 만반의 채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올려주신 고민에 대한 예술적 대책을 찾아 답변을 달아드리니
서울문화재단 홈페이지(sfac.or.kr) - 열린광장 혹은 페이스북 탭에서 예술적 상담소를 찾아주세요!
다른 사람의 고민에 댓글을 달 수도 있답니다.
채택된 질문은 [문화+서울]에 게재되며, 소정의 상품을 발송해드립니다.

이원재

지지부진한 삶의 돌파구는 없을까요?

아침 라디오 방송에서 올해 나이 스물일곱이라는 청취자가 “회사에서 진급도 하고 학업도 마치고 제 인생이 피려나 봐요”라고 보낸 사연이 소개됐습니다. 부럽더군요. 30대 중반인 제 처지에선 나이도 그렇거니와 ‘내 인생이 앞으로 나가본 건 언제였지?’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저도 직장인입니다. 밤샘과 야근이 많아서 언젠가부터 ‘일-잠-일-잠’으로 생활이 단순화됐고 여가가 사라졌죠. 건강, 미모, 연애 이런 말은 사어(死語) 같고 이대로 순직할 것 같아 두렵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전혀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사실 나이가 발목을 잡아요. 지금까지 모아둔 돈도 별로 없는 상태에서 결혼이나 부모님 부양 등 앞으로 책임질 상황이 늘어날 텐데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일을 시작하는 게 옳은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이렇게 변화 없이 쳇바퀴 돌 듯 사는 것도 앞이 안 보이긴 마찬가지입니다. 걸어도 걸어도 제자리인 삶의 돌파구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이원재

회사가 가시밭길이라면, 바깥은 중력 없는 안드로메다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모든 직장인의 로망이겠죠. 저도 예전에 호기롭게 회사를 그만둔 적이 있습니다. ‘남의 일을 소처럼 말처럼 하는 이 노력과 열정으로 내 일을 한다면 분명 성공할 것이다!’ 라는, 돌이켜보면 어이없는 자신감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현실은 당연히 그렇게 굴러가지 않았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야 누가 궁둥이를 걷어차지 않으면 꿈쩍도 못하는 사람이 바로 저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게다가 정말로 원한다고 생각했던 일은 실제로 해보니 재미도 없고 재능도 없고 전망도 불투명해 보였습니다.
저는 곧 회사 생활을 그리워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달이 나오는 월급과 매일 아침 갈 곳과 할 일이 있다는 현실이 주는 안도감과 안정감, 칭찬과 보상, 자판기 앞에서의 수다, 심지어는 마감과 회식까지도요. 회사를 다니지 않는 인생은 계속해서 내가 나를 북돋워야 하고 내가 나를 채찍질해야 하고 내가 나를 이끌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어려운 일이었죠. 그러면서도 손에 쥐는 돈은 한숨이 나올 정도였어요.
흔한 멘토 스타일로 말한다면, 독자님의 인생 돌파구를 가로막는 벽들은 스스로 갖다 붙인 핑계에 불과하다고 지적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니까 이기적으로 살라고, 인생은 한 번뿐이니 눈 딱 감고 도전해보라고 부추길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면서도 애프터서비스는 없다고 살짝 덧붙일 거예요.

이원재

인생은 쉽게 흥하지 않아요 물론 쉽게 끝나지도 않죠

하지만 저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회사가 주는 물질적, 심리적 보상을 쉽게 뿌리칠 수 있었더라면 독자님이 지금처럼 고민할 이유도 없을 거예요. 사실 그게 욕먹을 일은 아니잖습니까? 그래서 전 이렇게 말해드리렵니다. 일에는 너무 큰 기대를 걸지마세요.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일, 내가 좋아하는 일도 일이 되면 괴로워져요. 지금 이 일만 아니면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겠지만, 사실은 이 일이야말로 내가 가장 잘하고 또 좋아하는 일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런 것을 각오하고서라도 회사가 아닌 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찾고 싶다면,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회사에 다닐 때는 새벽같이 지하철을 타고 무표정한 얼굴로 출근했습니다. 하루 종일 쫓기듯이 일하다가 하늘 한 번 못 쳐다보고 회사를 빠져나오면 한밤중이었습니다. 계절이 오는지 가는지도 몰랐어요. 일에 치여 가족에게 짜증을 내기 일쑤였고, 소처럼 일하는 나를 위한 보상이라며 가게에서 싸구려 물건이라도 마구 쓸어담았어요. 지금은 해가 지기 전에 일을 마치고 가족과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할 수 있습니다. 진이 빠지도록 일하지 않으니 쇼핑 중독도 사라졌습니다. 회사 다닐 때 밖에서 먹던 산해진미보다 집에서 먹는 소박한 식사가 훨씬 만족스럽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다 성공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면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좋아하기 때문에 계속해 나갈 수 있습니다. 나의 일을 한다는, 이 시간이 모두 내 것이라는, 내 인생을 내가 만들어간다는 작은 만족감에 불안한 미래와 적은 소득도 감내할 힘이 생깁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것이 회사 밖의 인생이지만, 사실 인생은 원래 그런 것 아니겠냐며 마음을 다잡기도 합니다.

회사를 박차고 나가기 전에, 이불을 박차고 나가봅시다

피천득의 수필집 <인연>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나의 생활을 구성하는 모든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다. 고운 얼굴을 욕망 없이 바라다보며, 남의 공적을 부러움 없이 찬양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러 사람을 좋아하며 아무도 미워하지 아니 하며, 몇몇 사람을 끔찍이 사랑하며 살고 싶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을 하고 어디에 있건,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그 안에서 작은 행복을 찾을 줄 아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만 있다면 어떻게든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현실적인 조언을 드리자면 마음이 복잡할수록 몸을 많이 움직이세요. 좋아하는 길을 산책하거나 운동장을 가볍게 달리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꼼짝도 못하고 앉아 일하면, 머리는 혹사했지만 몸에는 여전히 에너지가 남아 있는 불균형 상태 때문에 진이 빠지는 느낌이 들지요. 이 상태가 계속되면 번아웃 신드롬이라는 것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저는 머리를 너무 많이 써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는 날에는 억지로라도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산책이라도 합니다. 아직 남아 있는 몸의 에너지가 다 빠 져나갈 때까지요.
이토록 복잡한 세상이지만 사는 건 단순할수록 좋은 것 같아요. ‘건강한 신체, 건강한 정신!’이라는 단순한 구호 아래 살아보는 건 어떨까요. 걷는다고 고민이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걷는 것부터가 시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문화+서울

답변 한수희
매거진 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지금은 프리랜서로 일하며 매거진 에 칼럼을 기고한다. 몇 년 동안 여행 경비로 모아둔 돈을 헐어 작은 북카페 ‘책과 빵’을 열었다. 오늘도 카페에서 성실히 빵을 굽고, 공장장처럼 글을 쓴다. 지은 책으로는 <당신의 연애는 틀리지 않았다>(공저), <우울할 때 반짝 리스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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