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어떤 고민도 예술적으로 상담해드리는 ‘예술적 상담소’.
온라인으로 별도 공간을 마련해 고민 상담을 위한 만반의 채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올려주신 고민에 대한 예술적 대책을 찾아 답변을 달아드립니다.
서울문화재단 홈페이지(sfac.or.kr) - 열린광장 혹은 페이스북 탭에서 예술적 상담소를 찾아주세요!
다른 사람의 고민에 댓글을 달 수도 있답니다.
채택된 질문은 [문화+서울]에 게재되며, [문화+서울]을 1년 동안 보내드립니다.
수년 동안 글을 썼지만 퇴고에서 자꾸 막히는데요. 퇴고의 노하우를 알려주세요.
개인적으로 제가 품고 있는 고민은 바로 퇴고에 관한 고민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사회 문제 중에서도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자살을 소재로 여러 문제를 함께 다루는 자살놀이를 3년 넘게 블로그에 연재했으며, 문학동네 카페에는 4년 넘게 연재했습니다. 이를 통해 작가가 되어야 한다는 확고한 생각을 품게 된 것은 좋은데 퇴고를 앞두고 고민이 커지고 있습니다. 자꾸 퇴고에서 막히는 경우가 생기거든요. 퇴고와 관련한 노하우를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퇴고는 최고로 창의적인 작업이다
퇴고의 과정은 크게 두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원고를 수정하기 전과 후입니다. 사실 전 단계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퇴고는 퇴고하지 않고 버릴 원고를 결정하는 일입니다. 단순히 원고를 쉽게 포기하는 일이 아닙니다. 예전에 자신이 최선을 다해 썼던 원고를 버릴 수 있음으로써 그만큼 자신의 달라진 눈높이를 가늠할 수 있고 작가로서 자신에게 냉정할 수 있습니다. 즉 그만큼 발전했거나 최소한 정체되어 있지 않고 변화 또는 진화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스스로의 감각을 점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퇴고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니 퇴고를 시작하며 가장 처음에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이 원고를 퇴고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퇴고의 시작이자 궁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원고를 수정하기로 결정했다면, 최대한 오랜 기간에 걸쳐 하는 것이 좋습니다. 오래 묵힐수록 퇴고할 점을 더욱 명확히 판단할 수 있습니다. 매일 특정 시간에 규칙적으로 마감일까지 퇴고하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가장 집중력이 극대화되는 시간을 투자한다면 그만큼 성과가 좋습니다. 퇴고는 글쓰기의 전 과정에서 가장 창의적인 작업이므로 초고를 쓰는 것보다 오히려 높은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제 경우는 가능하면 아침 시간에 중요한 퇴고를 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잠에서 깬 지 약 2시간쯤 후에 퇴고를 합니다. 그 시간에 만약 회사에 있다 해도, 원고지 20매 내외의 양이라면 30분 정도,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커피 한 잔 마시는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글의 구조를 더 튼튼하고 탄력 있게 바꾸는 등의 중요한 공사(?)의 경우 대개 짧은 시간 최대한 집중해서 과감하게 결행해야 합니다.
그 이상 퇴고 시간이 길어진다면, 대개 문장을 가다듬는 단계의 퇴고일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그 또한 꼭 필요합니다. 다만 문장을 다듬는 퇴고는 비교적 틈틈이 언제든 가능한 작업입니다. 물론 자신의 컨디션이 가장 좋은 시간이 늦은 밤이라면 그 어떤 제약도 없을 것입니다. 저도 20대 때는 원고마감일이면 밤늦도록 퇴고를 하고 한두 시간 눈 붙이고 출근했으니까요. 요컨대 자신이 가장 집중할 수 있는 몸과 정신의 상태를 잘 확인하여 그 시간에 퇴고할 것을 권합니다.
진단이 중요하다
퇴고를 위해 초고를 펼쳤다면, 당연히 처음부터 끝까지 일단 정독을 해야 합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글쓴이로서 읽기보다는 독자로서 읽어보려고 노력한다면 조금 더 도움이 됩니다. 물론 정독을 하며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해당 부분에 괄호를 열어 즉각 메모를 합니다. 그렇게 정독이 끝난 후 지체 없이 바로 첫 문장부터 과감하게 수정합니다. 이때 초고 원본은 따로 보관해두고, 복사본에 작업을 한다면 ‘과감한 수정’에 거침이 없어집니다. 간혹 신나게 퇴고를 하다가, 길을 잃은 듯 너무 멀리 왔다 싶을 때 원점으로 돌아갈 원본이 필요하니까요. 그러나 제 경험으로는 다시 초고 원본을 찾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퇴고라는 건, 하면 할수록 조금이라도 글이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오늘 하루 동안 퇴고를 시작해서 완료해야 하는 경우라면 잠시라도 휴식을 갖고 다시 퇴고하길 권합니다. 약 10분 동안 깜박이는 커서만 보고 있었다면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는 편이 좋습니다. 대략 변비 예방법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규칙적으로 책상에 앉는 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앉아만 있다고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퇴고에는 진단이 중요합니다. 퇴고가 필요한 2가지 경우는, 원고가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이 써져서 군더더기가 있다고 생각될 때, 또는 원하는 만큼 최선의 상태로 다 못 쓴 것 같을 때입니다. 당연히 전자가 후자의 경우보다 퇴고하기 더 수월합니다. 사실 어떤 경우든 퇴고가 가능하려면, 자신이 이 글을 통해 독자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고, 또 현재 자신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냉철하게 자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내면이라는 나침반이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지 수시로 확인해야 글을 쓰고 퇴고하는 일에 방향키를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지금 자신의 역량 내에서 최선의 퇴고가 가능하며, 부족한 부분은 이후에라도 보완할 수 있습니다. 운명과 힘을 겨루면 운명이 나를, 내가 운명을 적어도 후회는 없는 길로 서로 이끌듯, 쓰는 일 중에서도 퇴고는 마지막 순간까지 작가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힘겨루기입니다. 일단 시작했으면 쉽게 물러서서는 곤란합니다. 끈질겨야 합니다.
경험이 쌓일수록 성장한다
덧붙이자면, 퇴고의 성공률에 대한 목표는 높게 잡아 5할 정도면 이상적입니다. 사실 3할만 성공해도 훌륭합니다. 눈치챘겠지만 야구 타율과 비슷합니다. 퇴고를 거듭 시도해도 막힌다는 것은 이미 현재 자신의 내면이 감각하는 영역을 너무 많이 벗어난 원고이므로, 과감히 버리거나 혹시 모를 후일을 기약하며 퇴고를 유예할 수 있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퇴고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지난 원고에 실망하여 좌절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실망한 만큼 자신이 현재 더 발전했다고 생각해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마음에 찰 만큼 도무지 퇴고가 되지 않더라도 낙담할 일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건대, 예전에 자신이 밤 새워 썼고 또 큰 만족감을 줬던 글을 지금은 ‘아니다’라고 떨쳐내는 순간, 이미 그만큼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작가로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정작 이 글은 마감에 쫓겨 제대로 퇴고하지 못한 점 양해 바랍니다.
- 답변 김중일_ 시인. 200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국경꽃집>, <아무튼 씨 미안해요>, <내가 살아갈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