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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 식물과 함께하고 싶은데 제가… 마이너스의 손입니다
집에서 독립해 나온 지 2년. 혼자 사는 생활에 적응하고 나니 이제야 비로소 집이 좀 허전하고 삭막하다는 걸 느낍니다. 인테리어엔 소질이 없고, 한 가지 추천받은 게 식물 가꾸기예요. 작은 공간은 식물이나 꽃이 있으면 분위기가 확 달라지더라고요. 보기 위해서만은 아니고 집에 생명체가 함께 숨 쉴 수 있게 가꿔보고 싶은데… 제가 ‘마이너스의 손’입니다. 손에 들어오면 뭐든 오래가지 못하더라고요.ㅜㅜ 뭔가 키워보고 싶어도 또 죽게 할까봐 시작을 못 하겠어요. 마이너스의 손인 제가 식물을 키우는 게 옳지 않은 일은 아닐까요? 혹시 괜찮다면 선인장도 못 살게 하는 초보가 도전해볼 만한 식물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식물과 함께하는 삶이란
#활력 #사재기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안녕하세요. 저는 ‘아마추어 식물 가꾸머’ 김윤하입니다. 답변을하기 전에 제발이 저려 고백부터 하자면 저는 사실 식물에 관한 전문적 지식을 가진 사람이 아닐뿐더러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낼 수 있는 치유의 손을 가진 사람도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그 누구
못지않게 아주 많은 식물을 떠나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제 경험이 더욱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 고민에 답변드리게 되었습니다.
먼저, 집에 식물을 들여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을 매우
축하드립니다. 저는 공간을 꾸미는 사람으로서 누군가 집을
가장 빠르고 저렴하게 꾸밀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 혹은
공간을 완성하는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묻는다면 주저없이 ‘식물’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저 역시 식물 가꾸기에 처음 발을 들이게 된 계기가 ‘집을 예쁘게 꾸미고 싶다’에서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좋은 가구나 비싼 인테리어 소품을 구입하기가 여의치 않았고, 그렇게 찾아낸 방법이 식물이었지요. 식물은 확실히 공간에 활력을 주고 분위기를 바꾸며 나아가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안정감을 줍니다. 저는 그것에 매료되어 식물의 수를 늘려갔고, 나중에는 꽃집을 지나치지 못하고 중독처럼 식물을 사재기해 집 안을 온통 식물로 채웠습니다. 저도 책임감이라는 것이 있는 사람인지라 집에 들인 식물을 그냥 방치할 수만은 없었고 그렇게 반강제적으로 식물 가꾸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그러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 보니 먹고 난 과일 씨앗으로 싹을 틔우고 길가에 나뭇가지를 서리해 꺾꽂이로 뿌리를 내리는 것까지, 갖가지 방법으로
식물을 가꾸기에 몰두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이처럼 첫 이유가 어찌 되었든, 집에 식물을 들이기 시작했다면 반은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식물을 만나보며 조금씩 알아가보세요
#마치 연애처럼 #인간관계가 그렇듯
마이너스 손이라 무엇이든 오래가지 못하고, 식물 역시 금방
죽어버릴까 걱정이라고 하셨죠?
물론, 식물을 데리고 왔다면 어떻게든 오래 함께할 수 있게 책임감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식물이 죽어버리는 것에 너무 겁먹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모든 일에는 처음이 있고, 그 일에 익숙해지거나 실력을 갖추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앞서 말씀드렸듯 저는 아주 많은
식물을 키웠고 아주 많은 식물을 죽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저는 제가 잘 키울 수 있는, 혹은 우리 집의 환경과 잘 맞는 식물의 종류가 무엇인지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마치 인간관계처럼
나와 합이 잘 맞는 식물이 분명히 있습니다. 연애도 많이 해본
사람이 잘하듯 식물 역시 일단 관계를 맺어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러다 보면 나중에는 마치 오래된 애인처럼 조금
방치해두어도, 애정을 마구 쏟지 않아도 무던히 내 곁을 지키는 식물이 있을 것입니다.
그럼 이제 식물을 죽이는 것에 조금 용기를 가지셨다면, 식물을 사러 가볼까요. 동네 꽃집이든 식물 트럭이든 양재 꽃시장이든 어디든 좋습니다. 잘 죽지 않고, 쉽게 키울 수 있는 식물의
종류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은 제쳐두고, 식물은 애인과 달리
내 입맛대로 고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당시 내눈에 가장 예쁜 식물을 고릅니다. 그리고 사장님께 여쭤봅니다. 이름이 뭔지, 물은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 햇빛은 어떻게,
통풍은 어떻게 등등. 꽃집 사장님 대부분은 여느 전문가 못지않은 노하우를 가지고 있기에 친절히 답해주십니다. 그리고 그
정보의 대부분은 집으로 오는 길에 까맣게 잊어버리게 되지만,
괜찮습니다. 인터넷이 있으니까요. 그렇게 인터넷 정보도 찾아가며, 물을 이만큼 주기도 했다가 햇빛을 이렇게저렇게 쐬어주기도 하면서 처음 사귄 친구나 갓 연애를 시작한 애인을 조금씩 알아가듯 나의 식물을 천천히 알아가는 재미를 느껴보면
좋겠습니다.
화초가 어려워 보인다면 꽃부터 시작해봅시다
#꽃을 안은 나의 멋짐은 덤
하지만 아직도 식물을 키우고 죽이는 것에 겁이 나 선뜻 저지르기가 망설여진다면, 흙에 뿌리를 내린 화초가 아닌, 꽃을 사서 꽂아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일단, 꽃은 언젠가는 무조건 시들어버린다는 전제하에 화초보다 부담이 적습니다. 반면 꽃이 주는 에너지는 아주 강력합니다. 내 취향대로 골라 온 꽃 한 단을 무심히 꽃병에 꽂아 곁에 두기만 해도 기분이 한결 좋아지고,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착각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 모든 꽃 쇼핑의 장점 중에서도 제가 꼽는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꽃시장에서 한아름 꽃을 사 안고 돌아오는 나의 멋짐이 덤으로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저는 겨울 동안 식물을 들이기가 여의치 않을 때나 일을 열심히 하고 난 후, 혹은 괜히 울적할 때면 꽃을 양팔 가득 사 안고 돌아와 집 안 곳곳에 꽂아둡니다. 그러면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2주 정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짧은 호흡으로도 얻을 수 있는 목표가 때로는 더욱 길고 꾸준히 해나갈 수 있게 동기를 부여해주기도 하니까요.
나의 식물을 만나고 나의 방법을 만드는 것부터
#적당한 물과 햇빛
독자께서 식물 가꾸기를 조금이라도 가볍고 쉽게 받아들이시길 바라는 마음에 생명을 가까이 두는 기쁨보다는 인테리어로서의 효과, 쇼핑의 즐거움 등에 더 집중한 답변을 드려 과연 시원한 답이 되었을까 걱정되기도 하지만, 결국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일단 시작하셨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식물을 잘 가꾸는 방법에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완벽한 팁은 없습니다. 사람은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면 건강하고 행복하듯 모든 식물 역시 적당한 물과 적당한 햇빛이면 충분합니다. 그보다는 먼저 식물을 만나고 나만의 방법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질문자님께서도 정신을 차려 보니 먹고 난 과일의 씨앗을 불리고 싹을 틔우고 흙에 옮겨 심고 있더라 하는 소식을 듣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쪼록 저의 미천한 경험들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 용기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답변 김윤하
- 길종상가의 구성원으로 ‘다있다’를 운영하며, 글을 쓰고 식물을 가꾸고 조명과 물건을 만들며 공간을 꾸민다. 할 수 있는 것을 다하고 잘하는 일을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