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이 일정 기간을 정해두고 전체 프로그램을 미리 공개하는 시즌제는 극장과 관객 모두에게 유용하다. 극장의 입장에서는 사전 예매를 통해 안정적 고객 확보가 가능하며, 관객으로서는 폭넓은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고 합리적인 예술 소비가 가능하다. 이미 시즌제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는 주요 공공극장들은 저마다의 실정과 정체성을 반영한 시즌제를 만들어가고 있다.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공공극장의 시즌제가 현재 어떻게 운영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 사회 |
- 장지영_ 국민일보 문화부 차장
- 토론 |
- 이양희_ 국립극장 공연기획팀장
- 오정화_ 세종문화회관 홍보마케팅팀장
- 우연_ 남산예술센터 극장장
- 일시 |
- 2017년 2월 10일 오후 4:30~6:30
- 장소 |
- 서울연극센터 2층 아카데미룸
최근 남산예술센터를 마지막으로 서울에 있는 주요 공공극장들이 모두 시즌 프로그램을 발표했습니다. 특히 작년 말과 올해 초 탄핵정국이 계속되고 있는데요. 예술가들이 광화문에 임시 공공극장 ‘블랙텐트’까지 친 상황에서, 과연 공공극장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한 번쯤은 생각해보셨을 것 같습니다. 국립극장은 외국처럼 2016-2017시즌이고, 세종문화회관은 3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이고, 남산예술센터는 3월부터 연말까지로 기간이 조금씩 다른데요. 각각 시즌의 특징과 그동안 시즌을 해오면서 추구하는 방향이 다를 것 같아요. 국립극장은 최근 가장 활발하게 시즌제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이양희 국립극장의 시즌제는 2012년 안호상 극장장님이 부임하면서 국립극장이 가지고 있는 객관적 조건을 바탕으로 극장을 어떻게 활성화시키고 관객들을 찾아오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국립극장은 전통공연예술을 하는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 3개 전속단체가 있고,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서는 해오름, 달오름, KB하늘, 별오름이라는 대·중·소 4개의 극장이 있습니다. 다른 극장과 달리 자체적으로 무대장치제작이 가능한 인력과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어서, 제작극장으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8월 말에 시작해서 다음해 7월 초까지 약 10개월간 이어지는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시즌 프로그램은 3개 전속단체 작품들을 중심으로 국립극장 마당놀이, NT Live와 같은 국립극장 기획·제작공연들, 그리고 국립예술단체(국립발레단, 국립오페라단, 국립합창단, 국립극단 등)들의 우수공연들로 구성합니다.
2012년 9월 첫 시즌을 시작해서 현재 다섯 번째 시즌인 2016-2017 시즌을 진행 중인데, 시즌이 거듭될수록 국립극장 전속단체의 작품들이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레퍼토리 시즌제를 통해 국립극장의 부활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극장의 브랜드 가치와 정체성이 재정립됐고, 내용적으로도 전속단체의 제작 역량이나 극장의 기획 역량, 운영 노하우 등이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시즌 관객 수나 유료 점유율 등 양적 상승은 물론 충성 관객들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최근 <향연> 같은 경우, 전통춤으로 4회를 매진시키면서 제일 핫한 극장이 된 것 같아요. 세종문화회관도 오랫동안 침체되어 있었다가 공연계를 잘 아는 이승엽 사장님이 오고 나서 외부의 기대가 큽니다. 작년 시즌제를 시작으로 관객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게 사실인 것 같아요.
오정화 공연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콘텐츠이기 때문에, 양적인 팽창보다는 질적 수준을 높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2016년에 시즌제를 도입한 것은 공연장의 연간 프로그램을 미리 보여줄 수 있는 안정적인 제작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였거든요. 특히 저희는 전속예술단체가 9개1로 많다 보니 예술단들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사전에 준비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했어요. 패키지를 만들어서 고객들이 미리 구매할 수 있게끔 마케팅을 했고요.
올해는 전체적인 프레임은 어느 정도 안정되었으니 마케팅을 좀 더 하고 우수 콘텐츠를 보여주는 것으로 목표를 잡았습니다. 작년에는 패키지 종류가 22종으로 많았는데, 올해는 13종으로 줄여서 한정 판매하고 가격도 내렸어요. 창작 작품도 제작진을 미리 섭외해 기획의도를 담을 수 있게 준비했습니다.
우연 극장장님은 남산예술센터에 오셔서 방향성을 잡은 부분과 지난 1년간의 성과, 시즌 프로그램을 짜는 과정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우연 남산예술센터는 단관극장이고 전속단체나 상주단체가 없기 때문에 제작극장이라는 정체성을 띠고 있지만, 현장에 있는 연극단체와 공동 제작하는 시스템입니다. 자체제작을 할 때는 극장에 선택권이 있지만 남산예술센터의 경우 현장 연극인들과 공동의 선택을 하는 구조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 시스템이 다른 공공극장과는 다른 중요한 특성인데요. 저는 작품에 대한 권리적 측면이나 미학적 선택에 있어서 합의나 공동의 생각을 담을 수 있다는 걸 긍정적인 점으로 봤어요. 즉 10개 프로그램이면 10개 단체와 협업을 한다고 보면 되는데, 전속단체와 일하는 것과 다르게 현장 체감도가 훨씬 큰 극장인 셈이죠. 작년에 현장 연극인들이 갖고 있던 문제의식이나 결핍이 남산예술센터로 가장 많이 쏠렸던 이유는, 바로 이런 공동제작 시스템 때문이에요.
저희는 시즌제를 거창하게 내세우는 것은 아니지만, 1년 동안 제작되는 작품들을 연초에 발표해서 한 극장이 지닌 시즌 프로그램의 큰 방향성을 보여주고자 하고 있고요. 현장 민간극단들과의 공동제작시스템을 잘 수용하는 것이 이 극장의 미션 같아요. 그것이 2016년, 2017년 시즌 프로그램에 반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레퍼토리 시즌제를 통해 국립극장의 부활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극장의 브랜드 가치와 정체성이 재정립됐습니다.”
이양희 국립극장 공연기획팀장
극장의 정체성, 공공극장의 미션에 대한 생각을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국립극장은 전통을 기반으로 한 컨템퍼러리 극장인데요. 특히 무용 같은 경우는 무용계와의 갈등 내지 서로 동의하지 않는 지점도 있을 것 같아요.
이양희 국립극장의 가장 큰 미션은 전통에 기반을 둔 동시대적 예술을 생산해내는 것입니다. 국립극장 산하에 있던 전속단체들 중 상대적으로 자생력이 있는 국립극단, 국립발레단, 국립오페라단 등 5개 예술단체들은 순차적으로 재단법인으로 독립을 했고, 현재는 공적인 지원이 필요한 전통공연예술을 하는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만 남아 있는 상황이에요. 국립극장은 이 전통이 박제된 것이 아니라 지금의 관객들과 만나면서 동시대의 공연예술로 생명력을 가지고 발전해나가도록 하는 것을 미션으로 삼고 있습니다. 시즌제를 도입하면서 각 단체별로 제작방향을 설정했는데요. 국립창극단은 다양한 장르의 국내외 연출자들과의 작업을 통해 판소리 다섯 바탕과 유실된 판소리 일곱 바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서양고전, 영화 등을 창극화하면서 창극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국립무용단은 전통무용을 기반으로 동시대 한국무용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작업을 지속해오고 있고,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우수 국악창작곡 개발을 통한 다양한 연주 레퍼토리 확보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전속단체별 제작방향은 지금도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사실 국립극장의 방향성에 대해 모두로부터 동의를 얻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극장과 공연의 가장 큰 힘은 결국 관객이라고 생각해요. 공연을 가장 정확하고 냉정하게 보는 분들이거든요. 전통의 동시대화에 대한 찬반양론이 있겠지만 결국 극장의 기본은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고, 이를 지금 사회와 관객들이 어떻게 수용하느냐에 따라 그 폭발력이 달라지겠지요.
세종문화회관은 산하단체가 많은데 공연 횟수는 국립극장에 비해 많지 않거든요. 최근에는 생활예술 쪽에 강하고 전속단체의 홈그라운드 역할은 약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정화 세종문화회관은 ‘시민의 문화향수 기회 확대’를 존재 이유로 시작했고요. 공연 쪽 전문 CEO가 오시면서 시민이 자랑할 수 있는 예술명소로 만드는 것을 극장의 정체성으로 보고 있어요. 다양한 장르가 있기 때문에 공연장별로 특화된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요. 저희는 서울시 산하 출연기관이다보니 ‘관객’보다는 ‘시민’이라는 말을 많이 쓰거든요. 이전에는 생활예술을 많이 부각했다면, 작년에 시즌제를 도입하면서 예술의 전문성으로 강조점이 바뀌고 있는 추세입니다. ‘프로듀서 세종’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자체 공연의 비중도 점점 늘어나고 있고요.
이양희 저희도 시즌제를 도입하기 전에는 대관이 중심이었고, 전속단체 작품은 1년에 2~3편 정도였어요. 지금은 극장이 전속단체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공연 편수와 횟수가 모두 늘어났습니다. 시즌제를 도입하고 제작극장으로 변모하면서 시스템을 바꾼 거죠. 시즌제에 맞는 제작시스템을 만들고 작품 편수를 늘리기까지는 극장과 전속단체가 서로를 설득하고 동의를 거치는 힘들고 지난한 과정이 필요합니다.
오정화 시즌제를 도입해서 전속단체들이 거기에 따라올 수 있게끔 만들어갔어요. 예술단체와의 공생과 진화의 과정으로 시즌제를 도입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우연 해외 극장은 상주하거나 전속해 있는 단체와 한 몸으로 운영되는 구조잖아요. 우리나라는 이상하게 몸으로 극단과 단체를 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영은 따로 움직이는 듯한 독특한 역사였죠. 지금처럼 점점 융화되어 인적 인프라와 하드웨어가 같이 돌아가는 시스템이 된 것은 긍정적인 변화예요.
장지영 우리나라는 공공극장부터 생긴 게 아니라 공공단체부터 생겼어요. 국립극단이 먼저 생기고 나중에 국립극장이 생겼지만 그 공간도 국립극단 혼자 쓰는 게 아니었어요. 서양은 처음부터 극장 중심의 시스템이 발전한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민간, 극단 위주로 하다 보니 아직 극장 시스템이 자리 잡지 못한 부분이 있죠.
이양희 저희는 전통기반이라는 것을 빼면 성격이 완전히 다른 3개 단체의 제작공연을 중심으로 시즌을 운영하는 것이니, 해외에서 봤을 때도 독특한 시스템일 거예요.
장지영 한국은 공공예술단체 단원들이 공무원처럼 계약되어 있잖아요. 예술 장르마다 예술가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나이가 따로 있거든요. 파리 오페라 발레(Ope`ra national de Paris)는 정년이 42세예요. 이후에는 연금을 받을 수 있는데, 한국은 공공극장이라는 안정된 직장을 잃어버린 이후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니 공공예술단체가 화석화된 부분이 있지요.
이양희 단원 분들도 새로 기관장이 오실 때마다 다양한 과정을 겪으면서 상처를 많이 받아왔고, 때문에 기본적인 불신감이 있을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저희도 시즌제 도입 이후 작품 일정이나
제작방식 등을 두고 계속 부딪쳐왔는데, 지금은 단원들과 극장 간에 신뢰감이 생긴 것 자체가 큰 성과 중 하나예요. 시즌제 도입 초반만 해도 다양한 불만을 제기하셨고 작품수가 많다고 힘들어하셨어요. 그런데 이제는 한 시즌에 메인 공연만 6~7개 작품이 되는데도,
괜찮다고 더해도 된다고 하실 정도로 많이 변화가 되었어요.
남산예술센터는 전속단체가 없긴 하지만 민간단체와 공동으로 작업하는 과정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우연 남산은 연극사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극장이잖아요. 1962년부터 계속 있던 극장(드라마센터)이고, 2009년 개관 당시 젊은 현장 연극인들이 제작할 수 있는 극장으로서 미션을 띠는 것이 중요했어요. 저희는 동시대 창작 연극을 발굴하고 개발하는 것, ‘창작 초연 중심의 제작극장’이 제일 중요한 모토인데요. 제작시스템의 경우 초연은 위험률이 굉장히 높단 말이에요. 공공극장에서도 위험률이 높은 것은 안 하고 싶은 경우가 많죠. 중요한 것은 그것이 공공성이라고 생각해요. 위험을 같이 감수하려고 할 때 반드시 상업적 수익, 환원되는 부가가치만을 계산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민간극단 중에 중요한 동시대 주제를 발굴하는 극단들과 공동으로 협력해서 제작한다는 것은 초연의 위험을 극장이 함께 감수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것 같아요. 전속단체를 갖고 운영시스템을 만드는 것과 민간단체와의 협업으로 제작극장을 운영하는 것 사이에는 극장이라는 공공 자산을 어떻게 공유하고 분배할 것인가에 대한 시각 차이가 존재하는 것 같아요.
이제 극장 하드웨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는데요. 국립극장은 해오름극장 리모델링 기간 동안의 계획을 이야기해주시면 좋겠고요. 세종은 올해 말 소극장 블랙박스 오픈을 기대하고 있어요. 남산예술센터의 경우 지금 의미 있는 극장이긴 한데 관객 입장에선 편의시설도 그렇고 아쉬움이 많은 상황이에요.
이양희 해오름극장 리모델링은 올해 12월부터 들어가는데요. 내부
철거작업이 진행되는 2018년 1월부터 6월까지는 달오름극장도 사용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시즌제가 잘 안착된 상황에서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크게 3가지로 방향을 잡고 있어요. 우선은 새로운 관객을 만날 수 있는 극장으로 적극 진출해서 각 단체별 대표 레퍼토리 공연을 선보이려고 합니다. 신작의 경우 지역 거점 극장들과 제작·마케팅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는 공동제작 형태를 시도해보려고 하고요, 지방과 해외투어를 대폭 늘리는 방향으로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메인 극장을 2년 정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시즌 프로그램 구성이나 공연 일정을 정하는 데 제약이 많아져서 2017-2018 시즌과 2018-2019 시즌을 동시에 구성하고 있어요. 현재 서울은 2018년에 전속단체별로 한 작품씩 공연하는 것으로, 예술의전당만 대관을 확정한 상황이고 나머지는 이야기 중입니다.
오정화 블랙박스는 12월 오픈 예정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시즌제를 준비하면서 TF를 구성했던 것처럼 블랙박스도 개관 전 공연과 같은 단계를 거쳐 리뷰를 하고 정체성을 만들어가려고 해요. 대극장은 규모가 커서 장르적 제한이 있고 M씨어터도 관객과 밀착할 수 있는 공연에는 한계가 있거든요. 블랙박스는 300석 규모니 좀 더 동시대적인 작품들과 연극, 무용 등을 선보일 수 있는 실험극장 형태로 만들겠다는 취지입니다. 세종에 소속된 예술단도 작은 규모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게 되었고 소규모의 민간 예술단도 접근성이 좋은 곳에서 공연을 하면서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게 될 겁니다.
우연 남산예술센터는 서울시와 서울예대 동랑예술원과 맺은 임대계약이 계속 연장되다 보니 극장 자체에 정체성과 운영 논리들이 생겨나고 있는데요. 민간 부동산이라서 5년, 10년 계속 갈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장기적인 플랜을 세우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에요. 극장은 공공재이기 때문에 연극인이나 관객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 시점이 된 것 같아요. 단지 계약자간의 문제만 될 수 없는 상황인 거죠. 제작극장으로 지속되어야 한다는 연극계 의견도 있고요. 저희는 위탁을 받은 상황이기 때문에 계약 주체인 서울시와 동랑예술원에서 남산예술센터의 변화나 공공재로서 확대된 역할을 같이 인지해주면서 긍정적인 협의를 해주길 바라는 정도가 될 것 같아요.
“이전에는 생활예술을 많이 부각했다면, 작년에 시즌제를 도입하면서 예술의 전문성으로 강조점이 바뀌고 있는 추세입니다. 자체 공연의 비중도 점점 늘어나고 있고요.”
오정화 세종문화회관 홍보마케팅팀장
지난 시즌 극장의 성과와 함께 올 시즌의 특징과 내세울 점도 얘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양희 시즌제는 결국 극장이 공연을 관객에게 선보이는 방식의 하나인데, 관객과 아주 긴 약속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관객은 연출자, 출연자, 안무자, 작품 내용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고 이에 대한 기대와 신뢰로 하나의 공연을 선택하는데요, 시즌제는 그것을 넘어서 극장 자체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10개월간의 공연 프로그램을 미리 사달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 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수준 높은 공연콘텐츠는 물론이고, 기획제작, 홍보, 무대, 하우스 운영, 티켓 등 극장의 모든 부분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어야 하는데요. 사실 시즌제 도입 초반엔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이미 티켓 오픈을 하고 예매가 한창 진행 중인데 예상치 못한 변수로 예매 관객들에게 좌석변경 요청을 한다든가 하는… 극장 전체적으로 노하우가 쌓이면서 이제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는 않습니다.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즌이 이제는 관객들과의 긴 약속을 지키고, 또 기대해달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수준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레퍼토리 시즌을 통해 선보였던 국립창극단과 국립무용단의 작품들이 해외 주요 극장과 축제에 본격적인 진출을 시작한 것도 지난 시즌의 성과입니다.
장지영 시즌제를 한다는 것은 패키지 프로그램을 판매한다는 거잖아요. 프랑스 같은 해외의 경우 패키지 티켓이 80%까지 나가니까 신규 관객이 못 들어오는 거예요. 한 작품의 공연기간을 늘리고 패키지 비율을 최대한 낮추는 것이 요즘 잘 나가는 극장들의 목표더라고요.
이양희 예전에 독일 어느 극장의 대표가 어떤 상황에도 무조건 매진시킬 수 있는 레퍼토리를 10개만 보유하면 시즌제를 연중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했어요. 국립극장 객석 규모를 고려하면 이런 레퍼토리를 30개 정도 보유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는데요. 이런 안정적인 레퍼토리는 관객 입장에서 다시 보고 싶을 정도의 신작이 일단 나오고 재공연을 거치면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가는 과정을 통해 생산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레퍼토리 작품들 간의 다양성과 차별화도 필요하고요.
“정치와 예술을 분리시켜서 생각할 수 없고, 현대 사회가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사회에 민감한 촉수를 갖고 있는 극장이 있어야만 예술이 시대를 움직이는 동력이 될 수 있어요.”
우연 남산예술센터 극장장
2016-2017시즌 하반기 공연 중에서 기대하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이양희 가장 기대하는 신작은 고선웅 연출의 창극 <흥보씨>예요. 놀보와 흥보의 출생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누구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흥부전>의 허를 찌르는 작품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를 넘어서는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오정화 저희가 기대하는 작품은 헨릭 입센의 <왕위주장자들> 한국 초연입니다. 김광보 연출, 고연옥 각색으로 연습 중인데 3월 말부터 공연을 시작합니다. 이미 시작된 대선 정국과 겹쳐서 사회적인 이슈와도 맞물릴 것 같아 화제가 되리라 예상합니다.
저희는 아직 시즌제의 걸음마 단계고요. 작년에는 48개의 공연을 선보였고 22종의 패키지를 판매하면서 가장 많은 작품과 다양한 장르를 소개했습니다. 사전 프로그래밍을 했기 때문에 우수 콘텐츠와 제작진을 선점할 수 있었어요. 시즌제 단원으로 레퍼토리에 맞는 단원을 운영할 수 있었던 게 작년 시즌의 성과라 생각하고요. 2016년은 세종문화회관 시즌의 틀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면, 2017년은 그 틀에 좀 더 좋은 내용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번 시즌에는 2017년 3월부터 57개 공연을 선보이는 것으로 정리했어요. 폭넓은 스펙트럼은 자랑이자 어려움이기도 합니다. 저희는 대극장이 3,022석이기 때문에 패키지로 채우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작년 판매 매수 대비, 올해 300% 정도 판매율이 올라갔습니다.
남산예술센터 같은 경우 홍보마케팅은 크게 신경 안 쓴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우연 2016년에는 엄청나게 긴장했어요. 지금은 예술 검열이 표면화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알 수 없는 공포 분위기가 조장되는 와중에 우리 프로그램에는 세월호, 청문회도 있고 지원에서 배제되었던<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도 있었어요. 이런 작업을 한다는 것이 의미 있다고 믿으면서도 이 프로그램들을 보여줄 때 어떤 반응이 나올지 걱정도 상당히 많았어요. 그런데 의외로 사랑을 많이 받았죠. 특별한 홍보마케팅 노력은 없었는데, 관객이 많았어요. 일단 화제가 되었고 논쟁적인 이슈들이었기 때문에 문화예술계의 관심이 컸고 관객들도 극장에 많이들 찾아오게 된 거죠. 게다가 연말에 와서는 정말 드라마틱하게 세상이 바뀌었단 말이에요. 그랬을 때 극장 식구들과 협업 극단들이 갖는 감동은 엄청난 거예요. 저도 공연계에서 일을 많이 해온 사람이지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니’를 경험했거든요. 그런 면에서 사실 많은 것을 배웠어요. ‘용감하게 무언가를 해야 할 때 반드시 해야 되겠구나’하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래서 같이했던 극단과도 대단히 많이 각별해진 거죠. 협업의 차원과는 다르게 정서적으로도 극단과 난국을 같이 이겨가면서 잘해보자는 분위기가 되었거든요. 결국 제작환경이 위태롭거나 위험을 감수하려고 하면 할수록 작품이 잘 나오는 것 같아요.
작년의 경험은 제 인생에서도 너무 중요했어요. 극장 스태프들의 성장에 있어서도 중요했고, 같이했던 극단들과도 지금 만나면 이상하게 감동적이에요. 어떤 난국을 함께 헤쳐 나온 사이라는 각별한 느낌이 있는 거죠. ‘연극을 이래서 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다들 경험하게 됐어요. 사실 2017년에도 이 기조를 이어가는 것이 극장의 색깔 형성에 중요하고 그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다 보니 연령층이 더 낮아졌고 조금 걱정되긴 하죠. 올해도 성소수자, 세월호, 예술 검열, 국가란 무엇인가, 심지어 박정희까지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는 작품들이 많은데요. 정치와 예술을 분리시켜서 생각할 수 없고, 현대사회가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사회에 민감한 촉수를 갖고 있는 극장이 있어야만 예술이 시대를 움직이는 동력이 될 수 있어요. 그런 역할을 하는 극장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올해도 시끄럽겠죠. 또 다른 정치적, 사회적 변화에 따라 극장이 사랑받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은 각오하고 프로그래밍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양희 사실 3개 극장의 하드웨어적인 조건이 매우 달라요. 남산예술센터는 객석 규모와 극장의 구조에 특화된 시즌제를 잘 운영하고 계신 것 같고요. 국립극장은 한 시즌에만 운영하는 객석이 16만∼17만 석 정도기 때문에 그것에 맞춰서 시즌제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극장마다 기본적인 조건에 차이가 있어서, 각 극장의 특성에 맞춰 시즌이 운영된다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극장의 상황과 환경에 맞는 시즌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1 서울시오페라단, 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 서울시극단, 서울시무용단,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서울시청소년국악단,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단, 서울시합창단, 서울시뮤지컬단
- 정리 전민정_ 객원 편집위원
- 사진 최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