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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혹은 대담

10월호

청년과 예술과 도시 청년 세대가 바라본 ‘서울의 오늘’
88만원 세대, 오포 세대, 달관 세대 등 현재 청년 세대를 일컫는 말은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배경은 청년들이 기존 질서에 안착하지 않고 다양한 가치관으로 사회를 바라보게 하는 역할도 했다. 새로운 상상력으로 무장한 청년들의 등장은 ‘메가시티 서울’의 도시 문화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사회적 예술가’ ‘문화적 도시기획가’를 꿈꾸는 서울문화재단 지역문화 전문인력 양성과정 수강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관련이미지

사회 |
백승우서울문화재단 공공예술센터 팀장
대담 |
양광조꿈이룸학교
신세례글로벌예술문화교육연구소
이성휘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강나경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예술후원센터
장소 |
서울문화재단 회의실

푸를 청(靑)에 해 년(年). 청년이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축약해놓은 단어죠. 그런데 지금은 암담하고 불안정함을 의미하는 단어가 된 것 같아, 청년들의 고민을 살펴보고 그중 문화예술 활동을 준비하는 분들께서는 청년들의 상상력을 통해 서울이라는 도시를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지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서울문화재단 도시게릴라프로젝트로 진행하고 있는 ‘마음약방 자판기’ 2호점도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한 마음 처방이 담길 예정인데요. 청년 단체를 대상으로 워크숍을 진행해 사업 설명도 하고 간단한 아이디어를 받아 청년들이 어떤 증상을 앓고 있는지 의견을 모았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청년이 갖고 있는 고민과 꿈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각자 소개 부탁드릴게요.

백승우 서울문화재단 공공예술센터 팀장백승우 서울문화재단 공공예술센터 팀장

양광조
저는 영등포에 있는 청소년 예술학교 꿈이룸학교 사무국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꿈이룸학교는 청소년들에게 문화예술 활동을 통한 예술교육을 하기 위해 작년 말 시작한 학교이고, 저는 그 과정에서 예술의 영역에 대해 고민하게 됐죠. 지금은 영등포 지역에서 지역민과 지역 상인을 만나며 무언가를 해보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강나경
저는 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한 뒤 직장생활을 6년여간 하고 있습니다. 현재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근무하고 있고요. 상대적으로 경직된 업무를 하다보니 주변의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할 시간이 적었는데 이번에 서울문화재단의 지역문화 전문인력 양성과정을 수강하며 제가 살고 있는 서울의 문제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성휘
저는 지금 청년정책네트워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청년정책 네트워크는 청년들을 만나 함께 청년공동체를 만듭니다. 청년들이 문제의 소재로만 다뤄져왔는데 청년들이 문제의 주체로 일어서 나의 문제에 대해 함께 풀어보려 합니다. 그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공적자원의 재분배라는 키워드가 생겼어요. 공적 자원이 제대로 쓰였다면 문제가 대두되지 않았을 것이란 차원에서 청년 정책을 들여다보고, 어떤 자원이 있고 그 자원이 제대로 된 곳에 쓰이고 있는지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
신세례
저는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교육대학원에서 교육학을 공부한 후 초등학교 교사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교사가 되고자해 그 꿈을 이뤘지만, 큰 교육 시스템 안에서 아이들에게 일방적인 교육만 하게 되고 어느덧 피상적인 교사의 삶을 사는 저를 발견해 그만두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뒤 서울문화재단의 좋은 사업들에 참여하면서 시행 초기에 문화예술교육사를 취득한 저와 같은 청년 5명이 할 일을 역동적으로 찾아보고자 작년부터 비영리 법인단체인 글로벌예술문화교육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디자인 강사로 활동하고 있고요. 또한 세월초등학교 디자인교육을 4년 동안 함께하면서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역동적인 일, 주민들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게 해결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슴 깊이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또 다른 마을에 내가 교육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지점에 있습니다.

오늘 다양한 분들을 모시려고 노력했습니다. 청년이라고 해서 꼭 취업 문제로만 고민하는 건 아니고, 취업 후 조직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고민이나 결혼을 하고 출산이나 육아에 대한 고민을 하는 청년도 있으니까요.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청년이 어둡게 비치는 현시대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청년’이라 하면 88만원세대, 오포 세대, 달관 세대 등 부정적인 말이 많은데 주변 친구들의 얘기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강나경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예술후원센터강나경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예술후원센터

강나경
언론을 통해 청년실업, 88만원 세대와 같은 얘기를 듣다보면 마음이 무겁고 서글픈 생각이 많이 들어요. 저 역시 대학교 때 순수미술을 전공하다보니 앞으로 뭘 먹고살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주변 친구들을 보면 작가 생활을 할지, 또는 다른 직업군으로 가야 할지한 번 더 고민하는 시기가 찾아오는 것 같아요. 제 경우는 학창 시절부터 예술행정에 관심이 많아 공공기관 관련 아르바이트를 찾아 하다가 공공기관 청년인턴제를 통해 직장을 구했어요. 관련 업계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직장에 다니면서도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인지를 계속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어떤 형태로든 우리 또래가 사회생활을 시작한다는 건 새로운 고민과 의무의 연속인 것 같아요. 우리 사회는 청년에게 너무 많은 의무를 지우는 것 같아요. ‘현실은 이렇지만 넌 열심히 해야한다’는 의무감을 준달까요.
신세례
전 반대 케이스인 것 같아요. 대다수 사람들의 워너비였던 초등학교 교사가 됐기 때문에 2년까지는 자나 깨나, 어디서든 온통 수업 생각뿐이었고, 기존의 교육 프로그램과는 다른 교육 프로그램을 실행하면서 학생들이 행복해하는 반응을 볼 때 너무 보람됐었지요. 그런데 2년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어느덧 더 이상의 좋은 프로그램 개발은 이상향일 뿐, 현재 교육 시스템 안에서는 실행이 불가능하기에 무의미하단 사실을 깨닫고, 의욕을 상실해갔습니다. 이러려고 교사가 된 건 아니라는 생각에 주변에서 많은 만류가 있었음에도 과감한 결정을 했죠.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어요. 꿈과 직업과 재능이 만나는 방법은 결국 스스로 내재된 동기부여인 것 같아요. 그래서 우울한 이야기뿐인 이 시대에도 정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깊이 있는 담론을 갖고 있는지, 근거 있는 활동들이 얼마나 뒷받침되고 있는지 청년들에게 되묻고 싶어요. 지금 제가 하는 일을 명확히 정의하긴 어렵지만 단 하루도 생산적이지 않은 날이 없을 만큼 활동적으로 살고 있거든요. 교사였다면 일상의 형식에 얽매여 적당히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청년들이 시대를 너무 비관적으로 바라보진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양광조
저는 삼포 세대, 오포 세대의 중심에 있었던 것 같아요. 경영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훨씬 더 심했는데, 전공과 멀어지게 된 개인적인 계기가 있어요. 바로 옆에서 바라보면 친구들은 항상 취업과 관련된 게시판을 보고 있거나 공채 시즌이 되면 우울해하고, 취업한 선배들이 명함을들고 오면 취업을 하지 못한 선배들은 밖으로 나가고 그랬어요. 그래서 꼭 취업을 해야 하는가란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지금 하는 일은 사실계획에 없었던 것 같아요. 졸업하면서 청년 사업을 준비하다 어떤 분을 만났고, 그분을 통해 일을 하고, 또 누가 불러서 일하게 되고, 그런 식으로 여기까지 왔어요. 그래서 큰 고민은 없었지만 주위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불안감은 컸죠. 그런데 그렇게 고민하던 친구들이 2~3년 전쯤에는 모두 취업했는데 지금 시점에서는 다들 다시 불안해하더라고요. 취업했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 계속 갖고 있어야 하는 문제라는 걸 느껴요. 그런 면에서는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어요. 삼포, 오포 세대의 내용을 보면 돈이 정말 중요한 키워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가 문화예술인것 같아요.
이성휘
제가 올해 23세인데요. 2학년 1학기 내내 졸업 뒤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1학기 동안 학교를 안 갔는데, 공연기획을 전공하면서 계속 기획서를 찍어내고 교수님 밑에서 일하는 게 뒤치다꺼리를 하는 것 같은 거예요. 지금 당장 친구들과 무엇을하고 싶어도 친구들은 이 대학교를 얼른 졸업하고 취직해야 한다는 생각만 있으니 방향이 고정돼 있고요. 그래서 2학년 때 대학교를 그만두고, 대안교육을 받고 싶어 파티(PaTI,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에 입학했죠. 이제 친구들이 졸업할 나이가 됐는데, 전공과 관련된 일을 계속할 것인지, 이 일이 자신에게 맡는 일인지 고민하기 시작하는 걸 보며 이런 고민을 일찍 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의 4천만 원에 달하는 빚을 지고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야 가치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오포 세대라 하는데 결혼, 출산, 주택,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할 새도 없이 당장 내 밥벌이에 대한 고민만으로 벅차다는 게 정말 안타깝습니다.

박탈감 같은 건 없는지 궁금해요. 특히 예술을 전공하는 분들은 현실과의 접점에서 고민이 더 많을 것 같은데요, 생계를 위해서는 일정한 급여가 필요하지만 예술계는 그러기 힘든 경우가 많으니까요.

이성휘
공연기획 전공자의 경우 대기업이나 큰 기획사에 들어간 친구들은 바빠도 금전적 여유는 있는데, 지방으로 간 친구들은 일단 박봉으로 시작해야 하고 공연이 계속 있어 모임에 나오지 못하더라고요. 그 친구들을 따로 만나 얘기해보면 창피하기도 하대요. 그중에는 대기업에 들어간 친구보다 성적이 좋았던 친구도 있고, 아예 취업 못한 친구는 돈이 없어서 모임에 못 나오겠다고도 하고요. 그런 박탈감이 생기죠.
강나경
예술 전공자는 중학교 때, 늦게는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까지 집안의 지원을 받아 학교를 다니는데 취업과 관련된 수업은 별로 없다보니 졸업할 때가 되면 고민을 많이 하게 돼요. 그때쯤 그림 실력과 수상 경력으로 판가름이 나기도 하고요.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아지고, 전공과는 다른 직업도 많이 갖게 되죠. 저처럼 행정가나 기획가가 되기도 하고, 보험설계사가 되거나 게임회사에 들어가기도 하고요. 전공을 살리지 못했다는 박탈감도 있기 때문에 모임에서 소외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예술 전공자들은 졸업할 때가 되면 한 번쯤 다 이런 고민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이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로 좀 더 좁혀 청년 문제의 원인을 살펴봅시다. 제도교육과 현실과의 괴리, 저성장시대의 고용창출이 어려운 경제구조,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방향감 상실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있는데 청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좀 더 고민해야 할 지점은 무엇일까요.박탈감 같은 건 없는지 궁금해요. 특히 예술을 전공하는 분들은 현실과의 접점에서 고민이 더 많을 것 같은데요, 생계를 위해서는 일정한 급여가 필요하지만 예술계는 그러기 힘든 경우가 많으니까요.

양광조 꿈이룸학교양광조 꿈이룸학교

강나경
언론에서는 경기침체나 노동시장의 문제를 많이 지적하는데 그런 원인도 크지만 한편으로는 학교의 교육체계라든지,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할 수 있는지 고민하지 못하는 게 원인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양광조
덧붙이자면 대학생이 될 때까지 스스로 어떤 선택을 해본 적이있는가, 결정권이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있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그동안 공부 외에 내가 무엇을 잘하고, 어떤 면에서 뛰어나고,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는지 얘기한 사람이 있었나 생각해보면 저 역시도 없었거든요. 그렇게 만든 교육적인 환경도 중요하다 생각해요.

언론에서 발표하는 OECD 국가 중 몇 위라는 지표가 사회집단에 ‘너희가 어느 지점에 와 있다’는 걸 상기시키는 일종의 압박이라는 느낌도 드는데, 저는 그걸 ‘남들은 100년 동안 건설한 걸 50년 동안 건설했기 때문에 생긴 문제가 아닌가’ 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무한경쟁에 몰리면서 받은 정서적 상처와 흠집을 치유하는 수단의 첫 번째가 문화예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분이 문화예술에 대해 관심을 갖고 문화기획자나 활동가로서의 꿈을 꾸겠지요. 국가에서는 예술의 필요성을 얘기할 때 ‘창의성, 감수성을 개발해 이 시대에 맞게 나라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하지만 나라 발전보다는 개인의 치유나 더 건강하고 따뜻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문화예술이 필요한 것 같은데, 문화가 어떤 영역의 일을 할 수 있을지 이야기 나누어보면 좋겠습니다.

신세례
2011년 서울문화재단에서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한 적이 있어요. 그때 미국 컬럼비아 사범대학 교수 한센(David Hansen)이 한 얘기 중 인상 깊었던 게 ‘창의성이란 민주주의의 시민의식이 아니겠는가’라는 정의였어요. 창의성을 뭔가 새로운 것, 없던 것을 있는 걸로 만드는 것, 혹은 다른 사람의 눈에 좋게 보이는 무언가라고만 생각하는 ‘발상적 창의성’에만 국한하는데 이분이 말한 정의는 굉장히 신선했어요. 역사와 사람, 자원과 문화, 자연과 인간 등 여러 가지가 어우러져 시민의식을 만들고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창의성이라는 거예요. 줄을 잘 서는 것이나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것도 창의성이 될 수 있고요.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것이 창의성이 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저는 당연한 줄 알았던 것들이 다시 본래의 것으로 돌아가는 것이 문화이고, 우리가 공존할 수 있는 방향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즉 ‘내가 시민이 되어가는 과정이 창의성이구나’란 생각을 했습니다. 교육이 제가 잘할 수 있는 부분이다보니 제가 ‘사회적 창의성’이라 명명한 것을 위해 아이들과 ‘과정을 잘 만들어가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지역 문화에서도 있는 것을 그 모습 그대로, 제일 자연스럽게 잘 지켜나가는 게 포인트인것 같더라고요. 그대로 지켜나가는 과정은 그 어떤 것보다 창의적인 과정일 수 있고, 문화란 결국 그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시적인 성과만 내고, 과정 없이 결과만 추구하다보면 결국 한국의 공동체나 문화는 없어질 것 같아요. 어떤 기사를 보니 80년 뒤쯤에는 우리가 공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고 하더군요.
이성휘
청정넷 활동이 마무리되고, 결과 공연을 준비하면서 저희가 초점을 맞췄던 부분이 ‘모두가 말할 수 있도록 하자’라는 거였어요. 청년들은 삭제되는 경험이 너무 큰 거예요. 자신의 말이나 들인 시간이 타인의 판단에 의해 묻히는 경험이 너무 많아서 거기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보니, 저희는 계속 듣고 있었음에도 ‘안 듣고 있다’는 민원이 많이 제기됐어요. 경쟁 안에서 1등만 있는 게임을 계속 하다보니 1등이 아니면 삭제되는 경험을 많이 했고 그게 큰 트라우마가 된 거죠. 그 트라우마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표현하는 데 자유로워지는 프로그램을 하고 싶어요. 내가 표현했을 때 누군가로부터 판단을 받길 기다리거나 눈치보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 말이죠.
신세례
문화예술의 큰 장점이 정답이 없다는 거잖아요. 미술의 경우 잘 그리지 않아도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이다. 이건 어떤 생각이니?’ 물어볼 수 있고 음악도 그냥 두드리고 소리를 듣고 활발하게 표현하는 것, 말이나 글의 형태로 정돈되지 않아도, 모나고 다듬어지지 않아도 가능한 게 문화예술인 것 같아요. 또 그것이 함께 어우러지는 힘이란 굉장히 큰 시너지를 낼 수 있고요.
강나경
두 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예술을 통한 창의력 신장이 사회문제를 해결하거나 이슈화하는 데 중요한 소통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마음약방이 치유의 기능을 갖는 것도 문화예술을 통해 사람들이 삶의 일부분에 도움을 받고, 경험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파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문화예술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다른 것들과 결합되면 해결책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세례 글로벌예술문화교육연구소신세례 글로벌예술문화교육연구소

양광조
저는 수단으로서의 예술교육이 사람들에게 가장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한번은 초등학생 친구들과 캠프에 갔는데, 처음 보는 사이라 어색하지만 종이컵이나 펜을 주고 그리는 과정에서 첫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거예요. 음악을 듣다가 서로 친해지듯, 접점을 만들어주는 스파크로서의 문화예술 또는 문화예술교육의 기능이 있는 것 같아요. 학문이나 취미 등 사람을 모이게 하는 여러 가지 툴이 있겠지만 문화예술도 그런 작은 툴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신세례
우리나라의 문화예술이란 게 사실 국가 주도의 공적 자금에 의해 이뤄지는 일이 많기 때문에 결국 문화예술도 질적·양적 성장과 효과성을 강조하는 측면이 보여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될 때가 많아요. 효과나 성과를 가시화하기 위해 오히려 문화예술사업이 역으로 생기기도 하는데, 문화예술에서 성과나 효과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지, 결과로서 눈에 보이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성과에 집중하다보면 그럴듯해 보일 수는 있지만 핵심이나 진짜 감동은 없겠죠.

지역문화 전문인력 양성과정 강의를 같이 들으면서 기억에 남는 말이 있습니다. 현장의 언어와 행정의 언어가 다른데 이를 번역하는 것이 문화기획자의 역할 중 하나라는 것인데 실제로 많이 느끼실 거예요. 특히 공공기금이 배분되는 정책결정과정에 공무원들이 참여할 수밖에 없고 공무원 분들은 본인의 실적, 승진 등을 위해 결과물 위주로 갈 수밖에 없는데 공적 기금이 대한민국의 문화예술계를 움직이는 큰 축인 상황에서 이것이 정말 필요한 부분인지, 또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가는 게 맞을지 말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양광조
저는 정부 자금을 집행하는 곳에도 있었고, 지원을 받는 입장에도 있었는데 정책에 대한 정부 자금은 집행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아직까지는 투입돼야 하는 시점이라 생각해요. 얼마 전 뉴스레터를 보니 미국의 킥스타터에서는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민간의 펀딩이 8300억 원 정도라고 해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펀딩규모는 굿펀딩, 텀블벅 등 다 해봤자 얼마나 될까 싶어요. 정부보조금의 집행은 환경조성기금이란 생각이 들어요. 문턱을 낮추기 위한 기금이요. 결과물을 생성해야 하고, 재단에서도 작년 대비 얼마나 개선됐는지 알 수 있는 지표를 만들어야 정부 자금에 대한 투명성 등이 공신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신세례
서울문화재단을 비롯해 공공자금 집행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곳들을 보면 양적인 것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명확히 들어요. 그래서 기쁘고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기관에서 지나치게 공모 사업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 답답해요. 가장 공정한 방법이라 생각하시겠지만, 많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음에도 공모를 진행하면 그 사업을 실행할 수 있는 기관은 몇 안 되거든요. 공모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다양한 기획이 수렴될 수 없게 하는 것 같아요. 참여를 유도하고 좋은 것들을 선별하기 위해서 공공기관에서 대안을 모색해주었으면 좋겠어요.
강나경
예전부터 고민이 많았던 부분이에요. 일부 예술단체에서는 공모 사업에만 매달리게 되고, 그러다보면 자생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는데 공공기금을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크라우드펀딩 또는 기업연계사업을 통해 자본을 끌어들이는 방법도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문화기획의 초기 단계에서 예산 투입을 통해 확산을 지원하는 건 좋다고 봅니다. 대신 양적 팽창이 아니라 질적 성장이 일어날 수있는 지속적인 방안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하겠죠.

문화예술이 정서적인 치유, 감수성 개발의 기능을 하기도 하지만 지금은 도시재생 등 문화예술을 도구화하는 추세입니다. 과연 이런 것들이 해결책이 될까요?

이성휘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이성휘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강나경
지난 번 강의 때 성북문화재단 김종휘 대표님이 와서 성북문화재단이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해주셨는데, 저는 성북구 미아리고개에서 태어나 결혼할 때까지 계속 거기에서 살았어요. 제가 자랄 때까지만 해도 미아리예술극장이 방치돼 있고, 지나갈 때 뛰어가야 하는 무서운 곳이었는데 성북문화재단에서 현재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결혼하고 그 지역을 떠나왔지만 그 지역이 재생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 아직 그곳에 사는 부모님은 ‘저곳에서 공연을 보겠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런 부분은 문화를 통한 도시재생의 긍정적인 예인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떤 도시는 개발측면이 강하고, 어떤 도시는 익선동처럼 보존의 측면이 강한데 이를 어떻게 중간에서 맞출지, 저도 지역문화 전문인력 양성과정을 들으면서 많이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누군가는 도시기획자로서 이런 부분을 조율하고, 이야기를 듣고 사업을 결정할 텐데 그 안에서 우리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이 있을지, 지금도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양광조
얼마 전 영등포 마을 축제를 했는데 학교 바로 앞에 있는 주민들이 저희 홍보부스에 오셔서는 왜 축제가 있다고 말해주지 않느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너무 기분이 좋은 거예요. 사실 극장에 대해 주민, 특히 옛날 어르신들은 날 잡아 가야 하는 곳이란 개념이 있어요. 또 영등포의 지역적 특성이 서울을 압축해놓은 듯한 자치구예요. 목동은 부유층이 사는 동네고, 문래는 공동화된 부도심 같은 느낌, 신길 쪽은 낙후돼 있고, 여의도는 금융가인 것처럼 굉장히 입체적인 곳이에요. 처음에는 저희가 뭣도 모르고 문화소외계층으로 접근했는데, 이게 문화예술의 전파와 유사하게 폭력적이고 옛날 방식의 지역 접근 방식이란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보편적인 ‘주민’이란 키워드로 접근하려 하고 있어요. 재생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닌 것 같아요. 이를테면 옛날에 있던 학교가 온전하게 남아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거예요. 옛날에 있던 곳에 뭔가 움직이고 있는 게 재생인 거예요. 무서워서 뛰어다니던 곳이 마을 극장으로 변모하고요. 인식도 많이 바뀌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성휘
저는 같은 맥락에서 문화예술이 도시재생에서 제대로 기능적인 역할을 한 적은 없다고 봐요. 저는 도시재생이 공동체를 복원하는 데서 시작돼야 하고, 문화예술이 공동체를 복원하는 도구로서 사용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만 자생적인 예술 형태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여기 계신 분들의 공통분모는 지역문화 전문인력 양성과정인데,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차원에서 이 교육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을 말씀해주세요. 이를 기반으로 서울이라는 주제를 갖고 어떤 문화기획을 하고 싶은지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양광조
제가 지금 당산동에 사는데, 당산동에 성수동과 홍대에서 넘어온 예술가들이 많이 있어요. 지하층은 거의 연습실이라 생각하면 되는데 이분들을 엮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거점 형태의 연습실 사람들을 만나 그 연습실 하나하나가 존으로 매핑돼 마을 축제 공간이 되는걸 생각해본적이 있어요.
강나경
전문인력 양성과정 수업은 서울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공간에서 매회 번갈아가며 이루어지고 있어요. 얼마 전 성북예술창작센터에서 수업을 들었는데 어렸을 때는 그곳이 보건소여서 예방접종 주사를 맞으러 갔었거든요. 회사에 다니면서는 강의를 들으러 갔는데 그때는 레지던시 공간이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갔을 때는 치유센터로 바뀌어 있더라고요. 연구 초반이니까 사업 세팅이 매끄러워 보이진 않았는데, 서울시가 사회적 현안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어떻게 하면 문화예술과 접목해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일 수 있을지 고민하는 모범적인 시범사업 케이스를 많이 봤어요. 그걸 보면서 저 역시 사회문제에 좀 더 예민하게 반응해서 그걸 어떻게 하면 정책이나 사업적으로 풀어낼 수 있을지 고민해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신세례
문화예술교육가, 문화활동가, 문화기획가, 마을활동가, 지역사회전문가 등 저희한테 어떤 명칭을 붙여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럴수록 정확한 개념 정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개념이 난무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아직도 문화인이라 하면 판소리를 하는 사람이라 여기는 게 현주소라서 제가 무슨일을 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 시민을 만나는 데서 필요하다고 보고, 그런 것들이 액션으로 보여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활동대상이 초등학생이기 때문에 초등학생 아이들은 모두 만나보고 싶어요. 학생들과 계속 접해서 제가 고민하는 지점들, 담론들을 이어서 고민해줄 수 있는 문화적인 것들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제가 갖고 있는 열정을 계속 전달하는 문화인이 되고 싶습니다.
이성휘
저는 학교를 만드는 것에 중심을 두고 있어요. 신림동에서 태어나 스무 살 때까지 그곳에서 자랐는데 동네의 반을 갈라서 한 곳이 재개발됐거든요. 재개발이 되고도 계속 할머니와 살고 있고, 나머지 다른 곳에서 20년 중 7년을 보냈는데 그곳에 학교를 만들고 싶은 거예요. 예술이나 문화기획을 하는 사람들이 마을에 들어갔을 때 어떤 태도와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지 항상 고민이 많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제가 좋았던 강의는 정릉 예술마을 만들기 사례 발표였어요. 밥 한끼 하는 걸로 떠들썩하지 않고 조용하게 접근한 방식이었는데 물꼬를 틀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어요. 사실 제가 자란 지역도 1인 가구가 많고, 반면 그곳에 오래 산 사람도 많아서 그런 상상력을 많이 얻을 수 있었고요. 수업들으면서 계속 눈치보지 않고, 남의 판단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고민을 하시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 현실은 어렵지만 이를 풀어내는 과정이 아닐까 해요. 그래서 예술이고 청년인 것 같습니다. 도시는 결국 공동체적 사회가 될 수 있고, 문화예술은 이를 잇는 매개체나 소통의 도구가 될 수 있을 것 같고요. 오늘 소중한 시간 내 참여하고 좋은 이야기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문화+서울

정리 이정연, 이아림, 신나라
사진 김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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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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