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도시문화포럼(Asia Cities Culture Forum, 이하 ACCF)은 2017년 서울에서 처음 개최됐다. 2018년에는 9월5일부터 7일까지 서울을 비롯해 도쿄, 홍콩, 방콕, 타이베이, 청두 등 아시아 6개 도시의 도시계획가, 문화정책전문가들이 모여 서울의 문화집적 현장을 돌아보고 네트워킹 행사, 공개 세미나에 참여했다.
올해 ACCF의 주제는 ‘문화의 집적: 문화도시의 과제’(Clustering the Culture: What would be the magnet?)였다. 도시공간은 단순히 하드웨어 시설물 위에 사람들이 모인 집합체가 아니라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소통하며 성장하는 유기체로 이해되고 있다. 공개 세미나에서는 아시아 도시들이 처해 있는 다양한 사례들을 공유하고, 도시의 공간이 매력적인 정체성을 얻고 이를 지속할 수 있는 조건으로서 독특한 문화의 집적과 사람들 사이의 연결 현상에 집중하여 토론을 진행했다. 아시아 각 도시에서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며 공통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해결책을 함께 논의한 공개 정책 세미나 현장을 담았다.
- 일시
- 2018년 9월 6일(목) 오후 2시~6시 30분
- 장소
- 성수동 바이산
모종린
세션 1. 기조강연
서현
세션 2. 기조강연
도시공간에서의 문화집적의 현상과 조건들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는 우리 미래 세대에게 새로운 기회를 준다. 맨해튼, 긴자, 파리, 시애틀은 울트라 모던 도시로 사람들은 자동차로 편리하게 이동한다. 반면 브루클린, 기치조지, 베를린, 포틀랜드는 포스트 모던 도시로 걷고 싶은, 소상공인들이 있는 창조도시이다. 지금까지는 서울이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로컬을 지향하는 시대이다. 미래 세대는 매력적이고 독립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실현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도시를 선택한다. 지난 10년 사이 골목상권의 성장률은 매우 높다. 이제 매력적인 골목상권이 없으면 관광객을 유치하기 힘들다.
라이프스타일이 변하면서 젊은이들은 도심에 살고 싶어 한다. 실리콘밸리 근로자들도 샌프란시스코에 살기를 원한다. 매력적인 도시문화는 골목상권에서 나온다. 뜬 상권마다 ‘첫 가게’가 있다. 창의적인 기업가가 임대료가 저렴한 지역에 들어가면 다른 가게가 따라 들어가 골목상권이 형성된다. 라이프스타일 소비자는 취향공동체를 형성하는 소비 형태로 진화했다. 1970년대 이후 탈 물질주의가 확산되면서 라이프스타일의 도시 포틀랜드는 젊은이들의 성지가 되었다.
골목상권의 업종으로는 독립서점, 게스트하우스, 갤러리 등이 있다. 골목상권은 문화콘텐츠로 차별화된다. 장소 기반의 경제는 골목산업을 중심에 두고 문화산업과 창조산업을 유치한다. 지역의 라이프스타일을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는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미래 도시는 걷고 싶어야 하고,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 거리가 많아야 한다. 생활권을 중심으로 교육, 주거시설을 구축하고 개선해야 한다. 라이프스타일에서 도시의 미래를 찾아야 한다.
성수동에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업하고, 경험과 재능을 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이들을 ‘체인지 메이커’라 부른다. 루트임팩트는 체인지 메이커를 돕는 체인지 메이커이다. 성수동에서 코워킹 스페이스와 셰어하우스를 운영하고 체인지 메이커들의 성장을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2014년부터 성수동 지역에 ‘성수 소셜벤처 밸리’라는 체인지 메이커 클러스터가 조성되었고, 현재 걸어서 10~20분 거리에 250여 개의 조직이 포진해 있다. 다양한 소셜벤처들과 이들의 성장을 돕는 중간지원 기관이 있다. 서울 주요 지역 중에서 적정한 부동산 가격에 지하철 접근성이 좋고, 서울숲, 한강과 같은 자연환경이 있고, 지역재생의 가능성이 있는 성수동에 뿌리를 내렸다. 5개의 회사가 앵커 조직이 되어 함께 노력했다. 인근에 4개의 코워킹 스페이스를 조성해 체인지 메이커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커뮤니티는 구성원들이 경제적 스트레스를 견뎌낼 수 있는 완충재이자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교류하는 성장의 원천이다. 흩어져 있던 조직들이 모이면서 그 자체가 플랫폼이 됐다. 지역과의 교류가 증가하면서 협업도 이뤄지고 있다. 성동구청은 소셜벤처 활성화를 위해 다각도로 지원한다. 고용노동부와 중소벤처기업부는 소셜벤처의 거점 지역으로 ‘성수 소셜벤처 밸리’를 지정했다. 인근에 있는 한양대는 사회 혁신 인재 양성을 위해 체인지 메이커 캠퍼스를 운영한다. 앞으로 성수 소셜벤처 밸리에 형성된 체인지 메이커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생태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콜롬비아 메데인(Medelln)시의 모라비아는 인구 밀도가 높고, 공공건물과 공간이 없는 빈민가였다. 프로젝트의 목표는 지역 환경과 사회적 관계를 개선하고 범죄를 줄이는 것이었다. 먼저 공연장, 연습실, 전시공간, 야외광장을 갖춘 문화시설 CDCM(Centro de Desarrollo Cultural Moravia)을 만들었다. 지자체는 초기에만 참여하고 손을 뗐다. 긍정적인 변화는 만남의 장소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면은 156가구가 CDCM 부지 확보를 위해 이주했다는 점이다. 초기부터 지역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참여했고 문화적 네트워크도 유지되고 있다. 정부에서 많이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연하게 활동할 수 있었다.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은 본래 발전소 건물이었으며 50년 동안 비어 있었다. 일대에는 빈곤층이 살고 있었다. 지역재생을 위해 지역사회와 3개의 주체들이 활동했다. 정부와 민간 기업에서 제공한 기금은 다리와 보행로를 만들고 공공 인프라를 개선하는 데 쓰였다. 지역주민을 교육하여 미술관 일자리를 제공하고 관람객이 모이면서 경제적인 효과도 커졌다. 부정적인 면은 인구가 2배 증가하고 임대료가 인상되면서 생활비가 증가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문화적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위한 성공적인 협력 체계를 구축해 정부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종합해보면 초기 단계의 정부 참여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후에는 문화공간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창조적인 장소들이 발전하고 지속되기 위해서는 정부, 기업, 지역 공동체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다.
타이베이의 MOCA(Museum of Contemporary Art, Taipei) 건물은 1921년에 지어져 일본 식민지시대에는 초등학교로, 1945년부터 1994년까지는 시청사로 사용되었다. 1996년 타이베이 도시유산으로 지정되고 역사적인 건물 활용 정책에 따라 현대미술관으로 개조되었다. 2001년 미술관을 개관하면서 현대미술에 대중들을 어떻게 끌어들일지 고민했다. 미술관 인근 공원에 공공미술 작품을 설치해 지역 환경을 변화시켰다. 2009년부터 2015년까지 미술관과 지하철을 연결하는 지하도에도 그라피티와 공공미술 작품을 설치하고 3곳의 전시공간과 상점을 열었다. 타이베이 도시철도는 2017년 지하도에 46개 스토어가 입점한 300m의 책거리를 조성했다. 큰 거울이 설치된 5개의 지하도 광장에는 젊은이들이 모여 춤을 추고 공연을 한다.
지역사회 연계 활동도 지속하고 있다. 예술가들이 교사와 협력해 인근 3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예술가와 주민이 참여하고 협업하는 축제는 2012년부터 개최하고 있다. 공공공간에서 예술작품을 전시하고 공연, 워크숍, 체험 행사를 진행한다. 공공미술과 예술가와 지역사회 간의 협력, 행사 개최 등을 통해 MOCA는 타이베이 구시가에 예술을 알리고 정체성을 구축했으며 문화공동체를 형성했다.
서촌이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는 약 8년 전으로 대림미술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때와 일치한다. 대림미술관은 서촌의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다. 전시마다 길게 줄을 서고, 주말에는 더 많은 이들이 찾는다. 처음부터 관람객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2002년 통의동으로 이사하면서 어떻게 하면 관람객이 찾아오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2010년 <Inside Paul Smith>전을 계기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전시를 진행하기로 결정하고 ‘일상이 예술이 되는 미술관’을 지향점으로 잡았다.
2002년 6,000명이었던 관람객은 2017년 47만 명으로 증가했다. 관람객들은 ‘서촌’을 같이 검색한다. 동네 상점에서는 “전시가 없으면 매출이 반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미술관이 서촌 지역에 사람을 보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미술관을 통해 처음 서촌을 찾는 사람도 상당수다. 대림미술관은 지역과 공존하는 문화기관으로서 책임을 갖고 활동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지역주민들과 가까워지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왜 항상 입장 줄이 긴지 궁금해하는 주민들을 위해 월요일에 문을 열기도 했다. 주민들이 서촌의 가치를 발견하고 미술관에 자긍심을 갖게 했다. 서촌이 매력적이지 않다면 관람객들이 가지 않을 것이다. 방문객 대상으로 서촌의 진면목을 알리는 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지역의 예술가를 미술관으로 초청해 관객과 만나게 했다. 지금까지 대림미술관은 서촌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자석이자 지역구성원과 관람객을 잇는 가교 역할을 수행해왔다.
사회를 맡은 고려대 건축학과 다니엘 오 교수는 문화도시에서 집적 요인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졌다. 다수의 토론자들은 ‘사람’이라고 답했다. 허재형 대표는 “무언가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이면 집적이 된다”고 했다. 한정희 실장은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콘텐츠가 오직 그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루시 민요 컨설턴트는 사람뿐 아니라 문화유산, 창의적 유통문화, 환경, 앵커 문화시설, 교육시설 등이 복합적으로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다음으로 정부의 역할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루시 민요 컨설턴트는 정부가 가장 중요한 이해당사자는 아니며 “콜롬비아의 경우 문화시설 건립에 일부 세금이 투입되었지만 정부는 더 이상 투자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반면 지앙 멩 팡 부부장은 문화와 예술을 촉진하는 데 정부의 역할이 크다고 했다. “10년 전 타이베이 시민들은 문화예술 향유를 어려워했지만 정부가 여러 프로그램을 도입해 변화를 이루어냈다. 이제 지역주민들은 유료 관객이 되었고 예술가들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지역 내 무료 이벤트는 여전히 제공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아시아 도시에서도 화두였다. 허재형 대표는 “성수동은 대기업과 프랜차이즈 매장이 들어오는 속도가 다른 곳보다 느리다. 크리에이터들이 빠른 속도로 모여서 활동을 시작한 덕분이다. 성동구청도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건물주와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루시 민요 컨설턴트는 “런던 정부에서 연구한 결과 높은 임대료 때문에 소규모 라이브 공연장의 절반이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런던 시장은 새로 이사 온 주민은 인근 공연장에서 소음을 유발해도 불평해서는 안 된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는 사례를 소개했다. 한정희 실장은 “8년 전에도 얘기를 나누고 지역문화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며 지역상인과 유대했음에도 서촌은 젠트리피케이션의 중심에 있다”며 정부가 좀 더 일찍 개입하고 지역주민이 적극적으로 움직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표현했다.
문화가 집적된 도시 장소성 만들기를 위한 정책의 과제들
문화(文化)는 ‘컬처’(culture)를 일본에서 번역한 말이다. 한 단어에 ‘일상적 생활양식’과 ‘음미해야 할 가치’라는 두 가지 의미가 중첩되어 있다. ‘문화’가 ‘일상적 생활양식’에서 ‘향유할 대상의 차별적 가치’라는 의미를 갖기 시작한 시기는 18세기 후반이다. 귀족과 평민의 생활양식은 서로 달랐다. 에티켓은 궁정에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이 갖춰야 할 행동양식을 의미한다. 18세기 유럽의 변화를 주도한 부르주아지는 ‘컬처’를 에티켓처럼 배우고 음미해야 하는 차별화된 생활양식으로 받아들였다. 자신들의 가치관에 따라 시각과 청각으로 감상하는 대상을 7개로 구분해 ‘예술’(fine arts)이라 칭하고 ‘컬처’는 예술을 음미하는 작업으로 정의했다. 부르주아지는 문화적 생활을 담아낼 박물관, 콘서트홀 같은 공간을 만들고 예술을 이해하려면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부르주아지 사회에서는 문화 향유의 원칙을 만들어 개개인에 강요했다.
20세기 이후 전 세계가 공유하고 있는 가치인 ‘민주주의’는 차별이 배제되고 제도적 교육의 전제가 불필요한 문화를 요구한다. ‘컬처’와 ‘팝 컬처’라는 이분법은 21세기에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음미해야 할 가치를 지칭하는 ‘문화’는 이미 용도가 폐기되었다. 영화와 사진을 보고 셀카를 찍는 시대이다. 문화는 기관의 담장을 넘어 거리로 나와 일상적 도시공간에 담겨야 한다.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공공공간에서 문화의 가치가 모두에게 공유된다.
일본 도쿄문화자원지구(Tokyo Cultural Resource District, 이하 TCRD)는 도쿄 동북부 야네센, 우에노, 아키하바라, 진보초, 유시마 등의 지역을 칭한다. TCRD에는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문화자원이 집중되어 있다. 1964년 도쿄올림픽과 경제 성장기에 대규모 재개발 대상지에서 제외되면서 그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 1868년 당시 에도는 이미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메이지 유신 후 주로 도쿄 남서부를 통해 서구 문물이 들어오면서 동북부 지역에는 상대적으로 에도 문화가 강하게 남아 있다.
TCRD는 도쿄 동북부 에도 시대 문화와 메이지 유신 이후의 예술과 문화를 하나로 연결하고 창조지구로 개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크게는 전통문화자원 활용 프로그램, 도시환경 개선 프로그램, 지역 프로그램, 도쿄 비엔날레를 진행한다. 도쿄 비엔날레는 올림픽에 맞춰 2020년에 시작한다. 지역 문화자원을 활용해 총 1만여 개의 행사가 열릴 것이다. 20명의 초청 디렉터가 참여하며 전시 타이틀은 ‘왜 도쿄 비엔날레인가’이다.
도쿄의 문화예술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고 융합되어 있다. 도쿄의 21세기 잠재력은 대규모의 표준화된 개발이 아니라 중소 규모의 혁신과 느린 교통망, 각 지역의 문화 다양성을 극대화하는 것에 있다.
방콕시는 문화유산지구의 역사유적지 유지·관리를 위한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시행한다. 한 예가 크룽 라타나코신(Krung Rattanakosin) 구역이다.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방콕시 도시종합계획으로 시작돼 마스터플랜을 만들었다. 이후 도시 설계 지침을 만들어 법과 규정을 개선하고 시민 참여를 통해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크룽 라타나코신을 4개 구역으로 구분하고 조례를 통해 유산을 보호한다. 여기에는 건물의 건설, 개조, 사용, 변경 금지 구역들이 명시되어 있다. 프로젝트에는 지자체 예산이 배정되며 2종의 문화유산기금도 사용한다.
도시재생 프로젝트 사례로는 마핫타이 우팃 브릿지(Mahatthai대담Uthit Bridge)의 3D 스캔과 블록 캐스팅이 있다. 오래전 지어진 다리를 건물주와 합의해 재건했다. ‘방콕 자이언트 스윙(Giant Swing) 복원 프로젝트’는 대형 그네를 2006년 새로운 목재로 복원한 것이다. 나가라피롬 공원(Nagaraphirom Park)은 시정부에서 관리하는데, 땅 주인, 건물주와 협력해 유적지를 보존하고 문화유산을 복원했다. 황폐화됐던 옹 앙 운하(The Ong Ang Canal)는 경관 디자인을 통해 활기 넘치는 운하로 변모했다. 이외에도 탈라드 노이(Talad Noi) 환경 개선 프로젝트, ‘방콕 도시 3D GIS 및 2D 지도 제작’ 등이 진행되었다.
‘Oi!’는 2013년 개관 이래 전통적인 미술관과는 차별화된 공공미술 기관의 새로운 모델을 선보이고자 노력해왔다. Oi!는 1908년 지어진 유서 깊은 빌딩에 자리 잡고 있다. 지역주민들과 협업하고 신진 작가를 육성하며 도시재생 플랫폼 역할을 한다. Oi!는 하향식 프로세스보다는 지역 커뮤니티 중심의 접근 방식을 택했다.
‘Social Gastronomy’는 남은 음식과 제철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친환경 식사를 장려하는 프로젝트이다. ‘In-Situ!’는 서로 다른 그룹과 아티스트들이 80일 동안 Oi! 현장에서 지내면서 작업에 참여했다. ‘Image Bite’는 지역주민들이 식사를 하면서 TV를 보는 습관에서 착안해 8개의 지역 레스토랑 TV에서 미술작품을 상영했다. ‘Doing Nothing Garden’은 놀이, 먹기, 운동, 창작, 시연 등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구역을 만들어 12개월간 진행했다. 이들 프로젝트에는 지역사회, 예술가, 일반 대중이 참여해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일상생활에 상상력을 불어넣었다.
문화의 집적 요인은 창조적인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요인은 창조적인 사람, 특정한 장소, 시장(market)과 후원자, 네트워크, 개방성, 지역의 고유성이다. 창조지구는 발생, 성장, 성숙을 지나 쇠퇴하거나 진화하는 4단계를 거친다. 서울은 전 세계 대도시 중 가장 밀도가 높고 다른 도시들보다 부동산이나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심각하다. 이제는 어떤 장소가 자연발생적으로 생기고 크리에이터들은 정부가 할 수 없는 역할을 자발적으로 하고 있다. 서울은 이미 역사와 자원을 충분히 갖추고 있지만 제도적인 뒷받침이 아쉽다. 성장 단계에 정책이 개입하는 것보다 장소가 쇠퇴하거나 전이될 때 개입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서울에는 지구단위제도가 있다. 이미 장소들의 용도가 뒤섞이고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지만 과거의 개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지역과 장소를 종합적인 관점에서 계획해야 한다. 그리고 작업공간을 넘어 크리에이터들의 주거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주거와 창작, 유통, 향유가 한 장소에서 생태계로 뿌리내려야 한다. 서울의 다양성 속에서 한 장소가 지켜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서울은 4단계별 정책적 개입을 필요로 한 다. 단계마다 크리에이터들이 궁극적으로 정착할 수 있고, 생태계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
서울시에서 안국동 풍문여고 자리에 공예박물관을 만들고 있다. 이 부지는 500년의 역사가 생생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세종대왕이 아끼던 대군을 위해 집을 지었고 이후 학교가 생겼다. 가로막고 있던 학교가 나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공동화된 도심의 재생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대량생산의 시대에도 명맥을 유지해온 공예는 최근 가치를 새롭게 인정받고 있다. 모든 것을 아우르는 사람의 가치를 재생할 필요가 있다. 기술이 발달한 세상에서 기관 홀로 도시의 문화를 매핑할 수 없다. 우리가 문화를 통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매핑해봐야 한다. 그것은 집에 돌아가서도 행복한 것이다. 이제는 10년 전과 다른 매핑 기법이 필요하다. 박물관과 같은 문화기관이 하나의 스폿으로만 존재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문화정책은 지금까지 많은 오류를 범해왔다. 기관의 역할을 하나의 목적에 맞춰 기획했기 때문이다. 범위를 넓혀서 보이지 않는 것, 비정형적인 것까지 기획해야 한다. 서울시가 시민들의 행복에 기여하는 도시가 되었으면 한다.
종합 토론은 문화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김정화 총감독은 강에 비유했다. “강에는 단 한 번도 같은 물이 흐르지않는다. 문화는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과 같다.” 이어 박은실 교수는 “문화는 동시대가 공유하는 라이프스타일이다. 중요한 건 ‘동시대적’이다. 우리가 어떤 것을 지향하고, 어떤 삶의 태도를 가지는지가 문화이다. 지켜야 하는 문화의 가치는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정의를 내렸다.
아이비 린 큐레이터는 시간, 사람, 역사, 미래, 생각 사이에 문화가 있다고 답했다. 완라오라위 타나칸야 도시계획가는 “문화는 어떤 것도 될 수 있다. 강력한 문화를 위해서는 창조적인 예술가와 예술을 향유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중국 청두에서 온 시 송(Xi Song) 일대일로 세계도시문화센터 디렉터는 문화를 배에 비유해 “문화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준다. 위대한 도시는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을 아우른다”고 답했다. 미츠히로 요시모토 디렉터는 “문화는 공기와 같다. 삶에 필수적이지만 중요성을 간과하고 존재를 잊는다”고 표현했다. 마지막으로 서현 교수는 ‘walking together’라 적고 “도시 구성원들이 서로 살펴가면서 함께 걸어가는 즐겁고 행복한 느낌이 문화적 공동체 의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다니엘 오 교수는 “문화에 대해서는 경계를 긋거나 배제하지 않고 개방적인 논의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취지를 부연했다.
이어 문화를 어떻게 육성하고 발전시켜나갈지에 대한 토론이 계속됐다. 완라오라위 타나칸야 도시계획가는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 교육하고 모이는 장소가 있어야 하고 재능을 발휘하고 예술적 실천을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 송 디렉터는 “문화는 한 사람이 조정해서는 안 된다. 정책 입안가와 정부는 최대한 자유를 주어야 한다. 유형의 공간뿐 아니라 무형의 환경 제공도 중요하다”며 자생성을 강조했다. 미츠히로 요시모토 디렉터는 “문화와 예술이 얼마큼 필요하고 문화가 얼마나 사회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계속 말해야 한다”고 답해 공감을 얻었다. 아이비 린 큐레이터는 “문화는 심각한 사회적인 문제를 부드럽게 해결하는 힘이 있다”고 말하고 “Oi!는 큐레이터들이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한다. 창의적인 활동을 위해서는 지침이 많으면 안 된다. 큐레이터와 아티스트들을 제약한다”고 설명했다. 다니엘 오 교수는 “물리적인 환경은 문화를 향유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이제 물리적인 환경을 만드는 세계와 정책을 만드는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어야 할 때”라는 의견을 밝히며 세미나를 마무리했다.
- 정리 전민정 객원 편집위원
- 사진 서울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