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도시의 역사와 함께해온 역사문화유산이자 삶의 공간인 골목길을 일·삶·놀이가 어우러진 곳으로 만드는 소규모 골목길 재생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형 골목길 재생사업’은 일정 구역을 정해 ‘면’ 단위로 재생하는 기존 도시 재생사업과 달리 골목길을 따라 1km 이내 현장에서 추진하는 밀착형 소규모 방식의 ‘선’ 단위 재생사업이다. ‘서울형 골목길 재생사업’의 본격적인 시행에 앞서 서울시는 전문가, 시민과 함께 골목길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는 심포지엄을 열었다. 서울의 골목길을 어떻게 보전하고 가치를 살려나갈지 건축·도시계획·마을 전문가와 현장 활동가, 시민이 함께 공유하고 논의하는 자리였다. 다양한 논의의 장을 통해 골목길 재생의 필요성을 알리고 향후 골목길 재생사업을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하는 데 필요한 기틀을 마련하고자 했다.
- 발제 |
- 유현준 건축가(홍익대 건축학부 부교수)
- 강희은 서울시 도시재생본부 재생정책과장
- 민현석 서울연구원 도시공간연구실 연구위원
- 토론 |
- 좌장 김기호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명예교수
- 신승수 디자인그룹오즈 건축사사무소장
- 김규원 한겨레 기자
- 김충호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 장남종 서울연구원 연구위원
- 김은희 도시연대 정책연구센터장
- 이창식 서울소방재난본부 대응전략팀장
- 일시 |
- 2018년 3월 14일(수) 오후 2시~5시
- 장소 |
- 서울시청본관 3층 대회의실
발제1골목길의 변화 및 재생의 필요성
유현준
건축가(홍익대 건축학부 부교수)
골목길의 사전적 정의는 ‘큰 길에서 들어가 동네 안을 이리저리 통하는 좁은 길’이다. 과거 골목길은 사람이 정주하는 공간이었다. 빈 공간에서 놀고 머리도 자르고 숙제도 했다. 자동차가 많아지고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골목길은 자동차 중심의 공간이 되었다. 사람이 차지하던 골목길은 자동차가 서 있는 주차장이 되었다. 골목길은 사람이 걸어 다니기에는 넓지만 차가 다니기에는 좁다. 사람은 시속 4km로 걷지만 자동차는 더 빨리 달린다.예전의 골목길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속도가 느리고 사람이 주인이고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도시에는 교통, 주차, 주택, 인구, 전봇대 등 많은 문제가 있다.한 번에 손쉽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재개발이다. 지금까지는 재개발 중심으로 발전해왔지만, 휴먼 스케일(human scale)과는 동떨어진 개발이었다. 골목은 사람이 다니면서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사람 중심의 모듈러 길이다. 평균 37m, 33초마다 갈림길이 나오고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사람들은 자신의 속도에 맞는 다양한 체험이 있고 휴먼 스케일에 가장 가까운 골목길을 편안하게 느낀다. 휴먼 스케일의 외부공간으로는 마당과 골목길이 있는데 마당은 거의 없어지고 골목길만 조금 남아 있다. 소통이 사라진 21세기 서울에서, 골목길을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만들고 재개발 대신 사람 중심의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골목길은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갯벌과도 같다. 오랫동안 사람의 생활을 통해 만들어진 골목길을 유지하고 보존해야 한다. 골목길 보존을 순진하게 생각해선 안 된다. 과거 골목길이 활성화된 이유는 농경사회에 뿌리를 두었기 때문이다. 1960~70년대 풍경을 상상하면 안 되고, 이 시대에 맞는 골목길의 형태와 용도를 찾아내야 골목길 유지의 당위성을 확보할 수 있다
발제2서울의 골목길 재생정책 추진 방향
강희은
서울시 도시재생본부 재생정책과장
골목길 재생은 우리가 살아온 아름다운 추억, 정을 보존하고 공유하는 데 의미가 있다. 골목길은 도시의 거실이자 만남의 장소이고, 축제가 열리는 곳이자 도시가 자라나는 실핏줄이다. 1975년 건축법 개정 이후 골목길은 성장을 멈추고 쇠퇴하고 있다. 자동차가 통행할 수 없는 4m 미만 골목길은 재건축이 어려워지면서 낙후되기 시작했다. 4층 이하 저층 주거지는 서울 전체 주거지 면적의 38.2%를 차지한다. 424개 동을 조사한 결과 4m 미만 보행자 도로는 286개 동에 분포해 있고 이 중 40%가 도심권에 있다.
y서울시의 정책 방향은 사람과 역사문화, 정 중심으로 골목길의 가치를 높이고 골목길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도록 골목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서울형 골목길은 ‘너비 4m 미만의 자동차가 다니지 못하는 길로서 대지에 접한 보행로’를 의미한다. 골목길 재생은 소규모 선(1km 내외) 단위, 주민 중심이 원칙이다. 민관이 역할을 분담하고 서울시와 25개 자치구, 골목에 살고 있는 주민, 전문가가 협업하는 체계로 사업을 진행한다. 올해 1월부터 용산구(후암동 두텁바위로40길)와 성북구(성북동 선잠로2가길) 2개소를 선정해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성북구는 노인들이 많이 살고 경사가 가파르며 정주환경이 열악하다. 1인 가구 37%, 65세 이상 인구 24%로 서울시 평균보다 높다. 후암동은 협곡처럼 좁고 독특하며, 경로당 활용도가 낮고 진입로에 4채의 폐가가 있어 방치된 느낌이다. 1인 가구가 63%로 압도적으로 많다. 시범사업을 통해 공통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골목길 현황 지도를 제작해 골목길의 유형과 특색을 파악할 계획이다. 원활한 사업을 위해 골목길 지원 조례 제정을 검토 중이며, 법령 개정과 제도 개선 방안도 마련해 중앙 정부에 건의하려고 한다. 골목길이 역사와 문화와 추억을 담은 매력 있고 활력 넘치는 정주공간으로 회복되면 주변에 상권이 형성되고 일자리도 창출될 것이다
발제3국내외 골목길 보전정책 사례
민현석
서울연구원 도시공간연구실 연구위원
국내외 사례에서 골목길 보전 방법의 시사점을 도출해보았다. 골목길의 성격에 따라 지역의 고유성이 남아 있는 역사지구의 골목길, 물리적 정비에 한 계가 있는 골목길, 문화적 향수가 강한 골목길, 도시시설물로서의 공공적 가치를 찾아낸 골목길 등 4가지 접근 방식으로 사례를 구분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알트 작센하우젠(Alt Sachsenhausen)은 문화유산의 보존을 통해 골목길의 역사적 가치를 공유했다. 중세에 만들어진 공공성 있는 목조 건축물과 골목길의 특성을 보전하기 위해 법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지역의 문화유산을 24시간 개방해 지역 주민들에게 문화적 혜택을 제공했다. 부산의 대표적인 노후 주거지였던 초량 이바구길은 도시재생이 어려운 지역이었지만 스토리텔링을 통해 공공성을 확보했다. 지역 노인을 ‘이 바구길 할매·할배’라는 해설가로 고용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 주민을 위한 커뮤니티 시설을 마련했다. 일본 오사카 호젠지 요코초는 에도시대 만들어진 폭 2.7m의 먹자골목으로, 소설에 등장하고 영화화되면서 유명해졌다. 화재로 훼손되었지만 시민들이 힘을 모아 부흥위원회를 결성해 복원했다. 미국 LA 아발론(Avalon) 녹색 골목길 사업은 골목길을 생태적으로 활용하고 커뮤니티를 재생한 사례이다. 골목길 청소, 나무 심기 등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행사를 통해 골목길의 가치를 공유했다. 라틴계가 다수 거주해 스페인어로 사업을 진행했고, 지역 공립학교 학생을 활용한 골목길 유지 관리 체계를 만들었다.
골목길의 보전은 공공성의 보전이다. 공공성을 확보하는 과정은 보전의 당위성을 찾는 과정이기에 중요하다. 지역 선정 작업을 정교하게 하면 그 과정 자체에서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다. 서울시에서 사업을 수행할 때도 공공성 확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김기호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명예교수
제도 중심의 골목길 활성화 방안
주제 발제 후 김기호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명예교수를 좌장으로 건축가, 언론인, 시민단체, 도시계획, 소방 등 각 분야의 전문가가 함께하는 정책 토론이 진행됐다.
먼저 김은희 도시연대 정책연구센터장은 골목길에 대한 새로운 접근은 반가운 일이지만, 골목길에 사는 주민들의 일상적인 삶을 우선적으로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에서 하고 있는 수많은 사업과 골목길 재생 활성화 사업의 차이는 무엇인지, 다른 사업의 문제점을 어떻게 극복할지를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골목길 재생은 골목길에 접해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삶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김은희 센터장은 1996년 서울시에 도입한 ‘거주자 우선 주차제’로 골목길이 주차장화되었음을 언급하고 정책과 제도 변화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대인의 삶의 패턴을 고려하지 않은 직접적인 주민 참여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사업 대상인 4m 미만의 좁은 골목길은 대부분 열악하다. 주민의 삶과 연결해서 어떻게 사업을 진행할지 고민해야 한다. 주민 참여는 막연히 모여 직접 참여하는 게 아니라, 공공의 이해관계를 표현하는 형태여야 한다.”이어 누구를 위해 벽화를 그리는지를 묻고 “주민들에게 필요한 건 담이 제 기능을 하고 튼튼해지는 것이다. 굳이 꽃길과 화단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 주민들이 직접 해결할 수 없는 부분에 행정이 들어가야 한다”며 저층 주거지의 관광지화를 경계하고 앵커시설의 운영 관리 방식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골목을 끼고 있는 집에 산다는 김규원 기자는 “골목은 보행자 중심의 아늑한 공간이며, 아파트와 달리 사람들 간의 자연스런 접촉과 공동체 형성이 가능하다”고 전했다. 그는 자동차 통행과 주차를 위해 4m 도로를 확보하게 한 건축법 2조는 골목을 발전시키기는커녕 사실상 무너뜨리는 조항이라고 비판했다.“건축법 때문에 2~3m 골목은 살아남기 힘들다. 공간의 주인은 차가 되고 사람은 차를 피해 다니는 신세로 전락했다. 차에 대한 제한이 생기지 않으면 사람이 살 만한 곳이 되기 어렵다. 집 앞이 아닌 공공 주차장에 차를 대고 집까지 걸어가는 건강한 사고방식과 생활습관이 자리 잡으면 좋겠다.”
그는 저층 주거지의 건폐율을 높이고 처마를 대지 경계선까지 연장한 북촌이나 서촌의 한옥 규정을 반영할 것을 제안했다. “골목을 낀 동네에 완화된 조치를 적용하지 않으면 신축과 개축이 어려워지고 결국 주거공간이 낙후되어 젊은 사람이나 중산층은 살지 않게 된다.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을 지을 수 있도록 건축법을 개정했으면 한다”며 화재 등 안전 문제에 대해서는 “모든 골목에 소방차가 들어가야 한다면 골목은 존재할 수 없다. 소방차가 들어올 수 없는 골목에는 소화전, 소화기, 스프링클러 등을 설치하거나, 작은 소방차를 만들어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김기호 좌장은 “건축법은 1800년대 말에서 1900년대 초반의 근대 도시계획을 따른 것이다. 일조, 채광, 통풍, 주차 등 현재까지 유지된 제도를 바꾸고 건설적인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신승수 건축가는 “창신동 골목에 대한 인터뷰 자료에서 모순적인 부분을 발견했다. 창신동의 좋은 점을 물었더니 ‘놀기에 좋다’고하고, 아쉬운 점을 물었더니 ‘놀 곳이 없다’고 했다”며 골목길의 양면성을 언급했다. 그는 먼저 골목길을 보전하거나 끌어내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골목길 활성화는 사람들이 계속 찾고 소통하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다. 서울에 남아 있는 위험하고 열악한 골목은 대부분 세입자들이 사용하는 사유공간이다. 이들 공간이 일터이자, 삶터이 자, 놀이터로 변모하기 위해서는 공공의 개입과 지속적인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는 대규모 아파트 공급 중심인 우리나라에서 골목길 주택 설계 시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문제 해결을 위한 통합 심의제를 제안했다. 공공에서는 ‘선’이 아닌 ‘점’으로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며, 골목은 복합적이기 때문에 통합적으로 관리·운영할 수 있는 제도와 프로세스가 만들어지길 바란다는 이야기로 발언을 마무리했다.네 번째 토론자인 김충호 서울시립대 교수는 아주 작은 골목길에서 출발해 도시를 만들려는 시도는 상당히 의미 있다며 먼저 용어의 정의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골목길 재생의 방점이 골목길에 있는지, 재생에 있는지에 따라 접근 방법이 달라진다. 골목에 찍힌다면 골목 자체를 역사문화적 자산으로 바라보고 보전한다는 측면이 강하다. 재생에 찍힌다면 골목길을 통해 마을을 재생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골목길을 살릴 것인지, 마을 전체를 재생할 것인지 유형을 분류해야 한다.”
신승수
디자인그룹오즈 건축사사무소장
김규원
한겨레 기자
그는 시애틀 다운타운 골목길 활성화 프로젝트를 예로 들며 “시애틀은 서울과 달리 측량에 따라 길과 건물이 만들어진 도시다.시애틀에는 6,000평 이상의 골목길이 있고, 공원은 1만 3,500평이다. 골목길만 제대로 가꾸어도 오픈 스페이스가 절반 이상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시애틀은 건물의 밀도, 주변 용도 등에 따라 골목길을 유형화했고 물리적인 접근 계획도 포장을 바꿀지, 조명을 쓸지, 캐노피를 설치할지 등으로 다양하게 도출했다. 그는 “서울의 골목길은 유기적이고 복잡하다. 공도와 사도의 구분이 불분명하고 토지대장과 맞지 않는 건물이 많으며, 주로 세입자들이 산다. 개별필지 단위가 아닌 마을이라는 집합 단위로 접근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골목을 낭만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낙후된 주거 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소 주거 기준 이하의 마을에 접근할 때는 어떻게 집수리를 하면서 골목을 변화시킬지, 주거 복지와 자산의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기호 좌장은 “오늘날 골목에 면하고 있는 집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가 중요하다. 골목을 집 안에서의 활동이 대문을 통해 밖으로 나와 확산되는 공간으로 생각할 수 있다”며 “골목길의 면적은 상당히 의미 있는 숫자이다. 골목길의 새로운 잠재력을 어떻게 쓸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건축, 도시 분야에 이어 소방안전에 대한 의견도 더해졌다. 이창식 서울소방재난본부 대응전략팀장은 “골목길 재생방안에서 국민들의 안전을 도외시하면 안 된다. 2015년 경기도 의정부시 대봉그린아파트 화재, 얼마 전 종로 서울장여관 화재는 좁은 골목과 주정차 문제로 인해 대형 화재로 번졌다. 골목길 안전에 대한 과제를 치안에서 소방안전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서울소방재난본부에서는 ‘소방활동 장애지역’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좁은 골목길, 쪽방촌 등의 소방안전대책을 수립하고 있다.계단, 급경사, 급커브 등이 있는 진입 불가 지역과 진입 곤란 지역으로 구분해, 골목길에 비상소화장치함, 소화전을 설치하고 ‘보이는 소화기’를 비치한다. 그는 “골목길 정책은 소방본부 혼자 할 수 없다. 도시공간개선단과 협업을 통해 가시성을 확보하기 위한 소화전과 비상소화장치함 디자인 개선에 들어갔다”며 골목길 재생사업 진행 시 비상소화장치함과 소화기 설치 장소를 우선적으로 확보해줄 것을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장남종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골목길이 차량보다사람을 위한 공간이라고 전제한다면 주차와 차량 진입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일본은 차고지 증명제로 주차 문제를 풀었다. 공공이 주차공간을 확보해줄 것이 아니라 차량을 소유한 개인의 의무도 같이 고민하면서 가야 한다”며 서울은 저층 주거지의 30% 정도가 4m 미만 골목을 접하고 있는데 어느 지역이 문제이고 어떤 양상인지, 천태만상인 골목길을 유형화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충호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장남종
서울연구원 연구위원
“공공은 재생에 접근할 때 조심스러워야 한다. 재생은 지속성을 갖고 대응해야 하는 문제이기에 단기적인 지역 현안부터 장기적인 동네 사업까지 연계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골목길은 생각보다 느리게 변한다. 갑작스런 물리적 환경 변화를 초래하는 사업을 할 때 골목을 접하고 있는 사람을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골목길 재생사업 진행에 대해서는 “주민 참여 시 이해 당사자인 세입자와 집주인을 충분히 고려해 접근하고, 사업 진행과정에서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개별적인 사업도 중요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상호보완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여러 사업들이 다양성을 갖고 일괄적으로 진행되는 구조라면 사업의 효율성도 담보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기호 좌장은 “독일 프라이부르크 주거단지는 차 없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배려한다. 우리나라에도 차 없는 사람을 우대하는 아파트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라고 묻고 “어린 시절부터 걷기에 대한 추억과 습관을 만들면 어른이 되어서도 걷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정 토론에 이어 플로어에서도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의견을 개진했다. 최근까지 뉴타운 예정지에 거주했다는 이태희 수원시정연구원 연구원은 골목길 낭만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개인적인 경험상 골목에 공동체는 없었고, 안전하지 않았으며 4m 미만임에도 자동차 중심이었다. 일부 골목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낭만적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도시 정책은 보통사람을 위한 정책이어야 한다”면서 매슬로우(Maslow)의 욕구 이론을 적용해 “골목길은 첫째, 안전해야 하고 둘째, 이동이 편해야 하고 차가 필요한 사람은 주차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이후 낭만과 공동체가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며 현실적인 이야기를 덧붙였다.
문화 분야의 윤현옥 aec비빗펌 대표는 골목마다 인문사회학적 기능과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관점에서 골목의 문제를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골목은 공공 영역인 광장과 사적인 영역인 개인 주택 사이의 공간이다. 서울의 골목에는 다양한 층위가 있지만 근대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골목길에서 이웃 간의 따뜻한 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구경꾼의 입장에서 골목길을 바라보고 있는 것 아닌가.”골목길 주차의 대안으로는 수유동 도시재생사업 사례를 제시했다. 주택을 리모델링하면서 1층에 주차장을 넣고 나니 골목에 주차한 차가 한 대도 없었다는 것이다. 김기호 좌장은 “주차라는 쓰임새를 걷어내고 예쁘게 만들면 사람들이 골목에 나올 거라고 담보할 수는 없다. 골목이 공동체를 만드는 매개체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더했다.
관광 분야에서는 고령인구가 많은 지역을 대상으로 할 경우 노인들의 참여와 역할은 한정적이라는 점과 골목 대상지를 인위적으로 관광지화하는 정책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관광이 지역으로 들어가면 긍정적인 효과도 발생하지만 부정적인 효과를 동반할 수 있고, 혜택을 받는 사람과 받지 못한 주민의 관계가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기대 이상훈 박사는 “주민 참여라고 하지만 사실 극소수만 참여한다. 부산 감천문화마을 주민협의회에서는 전체의 1~2%밖에 안 되는 사람들이 모든 마을 계획에 관여한다. 대다수의 주민은 내용을 모르고 있다. 주민 참여는 의견을 한 번 들어보는 수준이 아니라, 주민들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반영할 수 있게 계획의 한 과정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민현석 연구위원은 “골목길을 감상적으로 보전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해외 사례에서 보듯 천편일률적인 접근이 아니라 골목길의 정체성에 맞춰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 호젠지요코초는 문화적인 감성에 시민들이 공감했고 공공성이 확보되었기 때문에 100% 동의를 얻을 수 있었다. 미국은 골목길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위해 청소부터 시작했고 그 과정을 통해 커뮤니티를 되찾았다. 단순한 골목길 환경 개선이 아닌 네트워크 활성화의 가치가 있는 곳을 시범사업을 통해 찾아냈다”고 부연하며 골목길 특성에 맞춘 접근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강희은 과장도 가장 중요한 사람과 그 사람의 안전, 공공적인 가치 관점에서 사업을 진행할 것을 약속했다. 김기호 좌장은 “낭만적인 생각으로 단순하게 골목길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 그런 골목길은 그림이나 사진 속에만 존재한다. 골목길의 기능, 사회적 활동, 의미에 구체적으로 접근하면 새로운 골목길 문화와 로맨티시즘이 나타날 것”이라는 말로 토론을 마무리했다.
대다수의 참가자들은 서울시에서 골목길을 대상으로 정책을 만들고 사업을 한다는 자체가 역사적이고 반가운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왔지만 그동안 정책이 주목하지 못한 일상적인 공간에 눈을 뜬 것에 고무된 분위기였다. 서울의 골목길 재생사업이 시민들과의 충분한 소통과 시민 참여를 통해 진행되고, 서울의 골목길이 안전하고 매력적인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김은희
도시연대 정책연구센터장
이창식
서울소방재난본부 대응전략팀장
- 글 전민정 객원 편집위원
- ·사진 백종헌
- ※심포지엄 풀영상 https://youtu.be/tRIL1KIkMd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