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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OF SEOUL

3월호

이미 온 것을 아직 기다리는 마음
─ 봄마음

봄이다. 봄이 왔다. 어김없이 봄이 돌아왔다.

봄철이 오면 여기저기서 반기는 목소리가 들린다. 누구를 기다린 것일까. 무엇을 보고 싶었던 것일까. 왔다고 환호하고 돌아왔다고 흥분하게 만드는 요소는 대체 무엇일까. 봄이 가진 무수한 속성 중 어느 것이 사람들을 들뜨게 만드는 것일까. 어쩌면 봄이라는 낱말 속에 이미 ‘보고 있다’라는 사실이 담겨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보게 만드는 힘은 밝음에서 싹트는 것일까, 따뜻함에서 피어나는 것일까. 이제야 겨우 마음의 여유를 챙기게 되어서는 아닐까. 새해 결심은 으레 봄철에 다시 한 번 단단해지곤 하니 말이다.

봄에 대한 각별함 때문일까. 다른 계절에 비해 봄과 관련된 낱말의 개수는 월등히 많다. 예컨대 ‘봄기운’은 있지만 ‘여름기운’은 없다. 한 단어가 아니므로 사용하기를 원한다면 여름 기운, 가을 기운, 겨울 기운처럼 띄어 써야 한다. “봄을 느끼게 해주는 기운. 또는 그 느낌”이라는 뜻을 보면 더욱 이상할 노릇이다. 여름을 느끼게 해주는 기운도 마땅히 있을 것이고 여름의 끄트머리에서 우리는 종종 ‘가을 느낌’을 받곤 하니 말이다. 봄기운이 완연하다, 봄기운이 가득하다, 봄기운이 넘쳐흐르다…… 봄기운과 함께 쓰이는 용언들은 하나같이 풍요로움을 선사한다. 말만 들어도 사방이 봄것으로 빽빽해지는 것 같다.

‘봄단장’이라는 낱말도 마찬가지다. 여름 단장, 가을 단장, 겨울 단장과 달리, 봄단장의 뜻은 자그마치 세 개나 된다. “봄철에 알맞은 몸단장”이라는 첫 번째 뜻을 마주하고 나처럼 샐쭉하게 여름철 반소매나 겨울철 스웨터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연이어 등장하는 두 가지 뜻인 “거리나 건물 따위를 봄철에 알맞게 알뜰히 거두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과 “봄철에 아름답게 변한 자연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은 봄이라는 계절이 ‘비유적으로’ 설명하기 좋은 계절임을 느끼게 한다. 실제로 ‘인생의 봄날’이나 ‘봄나들이하기 좋은 날’, ‘춘삼월 호시절’ 같은 표현은 속수무책으로 봄바람이 들게 만든다.

이 모든 것이 다 ‘봄마음’ 때문이다. 마음은 늘 품고 사는 것이지만, 꽁꽁 싸매둘 수도 있는 것이다. 안색이나 말투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굳게 마음먹으면 아예 숨기기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봄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연둣빛 새순이 돋아나고 노랗고 빨갛고 하얀 꽃들이 길 위에서 인사할 때면 그 손짓을 외면하기 쉽지 않다. 뭔가가 시작되었다는 생각에 공연히 심장 박동이 빨라지기도 한다. 우울했던 마음에 한 줄기 빛살이 내리쬐는 기분이 들어 기지개를 켜보기도 한다. 입춘을 기점으로 띠가 바뀌었을 뿐인데, 이제 진짜 새해라는 생각에 봄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봄을 보는 일은 두 번 보는 일인 셈이다. 봄이라는 계절을 보는 일, 봄을 맞이하고 달라진 나를 보는 일.

봄마음은 “봄철에 느끼는 심회心懷”를 가리키는 낱말이다. 꽝꽝 얼었던 것이 녹는 계절, 녹은 것이 속절없이 흐르기 시작하는 계절, 겨울과 봄 사이 생겨난 감정의 낙차를 떠올리는 계절, 봄마음은 시도 때도 없이 동한다. 동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듯, 전심全心을 일으켜 바삐 움직인다. 그러므로 봄을 타는 사람은 봄의 리듬에 화합하는 동시에 불화하는 사람이다. 봄철의 영향을 쉽게 받는 마음 덕분에 화합하는 것이고 봄철과 달리 쭈뼛쭈뼛한 몸 때문에 불화하는 것이다. ‘덕분’과 ‘때문’ 사이에서 봄볕은 따사롭고 봄추위는 혹독하다. 봄마음은 웅크릴 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머무를 새도 없이 뻗어나간다.

어쩌면 봄마음은 이미 온 것을 아직 기다리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좋지 않은 기억을 봄비에 씻어낸 뒤, 물기를 한껏 머금은 흙 속에 씨앗 하나를 심는 마음. 무엇이 피어날지 알지 못해도, 아니 알지 못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는 마음. 미뤘던 일들을 눈앞으로 끌어당기는 마음. 할 수 있을지 알지 못해도, 아니 알지 못해서 짐짓 헛기침해보는 마음. 새해 안부를 늦게나마 전하는 마음. 새해 복 아래 봄마음을 꾹꾹 눌러 담는 마음. 가닿을지 알지 못해도, 아니 알지 못해서 더욱 간절해지는 마음. 여전히 희망이 남아 있다고 믿는 마음, 봄기운과 더불어 봄단장을 하는 마음.

봄꽃, 봄뜻, 봄꿈, 봄나물, 봄맛, 봄씨앗, 봄노래, 봄놀이, 봄옷…… 위에 열거한 것 중 마음을 동하게 하는 게 있다면, 봄마음이 발견된 것이다. 보고 느끼고 꾸고 캐고 맛보고 뿌리고 부르고 가고 입고…… a봄과 함께 움직이다 보면 곳곳에서 봄마음을 만날 수 있다. 계절에 몸을 깃들게 하는 일은 살아 있다는 감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춘곤증에 몸을 맡기면 봄꿈을 꿀 수 있을 것이고 봄철의 왕성한 식욕에 반응하면 선선히 봄맛에 사로잡힐 수 있을 것이다.

‘겨우내’를 ‘봄내’로 바꾸는 일, 돋아나고 피어나고 자라나는 일, 봄마음으로, 아니 봄마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글 시인 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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