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단비 감독의 <남매의 여름밤>
시절의 기억, 그 시간의 그리움
어떤 것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나의 덩어리로 기억되는,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쓴 상자 속 인형처럼 시절은 기억이라는 상자에 담겨
어딘가에 살아 있다. 쫓기듯 떠나온 집과 눈치 보며 살아야 했던 어린 시절의 쓰린 아픔도
기억이라는 상자에 담기면 폴짝 뛰어들고 싶어질 만큼 폭신폭신하고 몽글몽글한 감각으로 남는다.
그곳, 그곳의 삶, 그리고 뭉툭하게 끊어낸 그 시절 속 사람들이 어쩐지 정겹다.
아무 말 없이 소파에 앉아 납작하게 웃던 할아버지도, 염치 때문에 괜찮지 않았던 시간도,
좋아하는 마음보다 더 큰 창피함에 달아났던 언덕에서 몰아쉬던 가쁜 숨도
그리움으로 쓱 뭉개버릴 수 있는 것이 마법 같은 단어, ‘시절’이다.
하나의 덩어리로 기억되는,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쓴 상자 속 인형처럼 시절은 기억이라는 상자에 담겨
어딘가에 살아 있다. 쫓기듯 떠나온 집과 눈치 보며 살아야 했던 어린 시절의 쓰린 아픔도
기억이라는 상자에 담기면 폴짝 뛰어들고 싶어질 만큼 폭신폭신하고 몽글몽글한 감각으로 남는다.
그곳, 그곳의 삶, 그리고 뭉툭하게 끊어낸 그 시절 속 사람들이 어쩐지 정겹다.
아무 말 없이 소파에 앉아 납작하게 웃던 할아버지도, 염치 때문에 괜찮지 않았던 시간도,
좋아하는 마음보다 더 큰 창피함에 달아났던 언덕에서 몰아쉬던 가쁜 숨도
그리움으로 쓱 뭉개버릴 수 있는 것이 마법 같은 단어, ‘시절’이다.
그 시절의 기억을 그리워하다
옥주(최정운)는 남동생 동주(박승준), 이혼한 아빠(양흥주)와 함께 여름방학을 할아버지 집에서 지내게 된다. 짝퉁 브랜드 신발을 파는 아빠의 돈벌이가 신통치 않아서인 것 같지만 낡고 작은 집을 떠나 이층 양옥집에서 사는 것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 건강이 나빠진 할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고모(박현영)까지 집으로 들어오면서 그 여름의 그 시절이 시작된다.
윤단비 감독의 <남매의 여름밤>은 제목처럼 남매가 겪는 여름 한 철을 무덤덤하게 담아내는 영화다. 영화에는 두 남매가 나온다. 아빠와 고모, 그리고 옥주와 동주 남매다. 할아버지 집에 모인 어린 남매와 이혼을 겪었거나 앞둔 남매는 가끔 토닥거리지만 다시 서로를 위한 든든한 가족이 된다. 윤단비 감독은 문득 그리워지는 시간, 별것도 없는데 아련해지고야 마는 우리의 어떤 시절을 상자 안에 가득 담아 관객 앞에 툭 던진다.
그 속에는 아주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작은 텃밭에서 따 올린 고추의 질감, 입안에서 톡 터지던 방울토마토의 식감, 둥그렇게 등 돌리고 앉았던 어깨, 머리카락 위로 피어오르던 담배 연기, 어려서 어리석게 저지른 실수들이 마치 내 이야기처럼 스며든다. 답답하고 싫지만 미워하진 않았던 가족과 언제나 많이 부족해 보이는 나 자신이 그 속에 있다. 어쩌면 우리 자신은 그 시절을 피해 달아난 것 같지만, 그곳에 동그마니 남은 것 역시 우리 자신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윤단비 감독의 <남매의 여름밤>은 제목처럼 남매가 겪는 여름 한 철을 무덤덤하게 담아내는 영화다. 영화에는 두 남매가 나온다. 아빠와 고모, 그리고 옥주와 동주 남매다. 할아버지 집에 모인 어린 남매와 이혼을 겪었거나 앞둔 남매는 가끔 토닥거리지만 다시 서로를 위한 든든한 가족이 된다. 윤단비 감독은 문득 그리워지는 시간, 별것도 없는데 아련해지고야 마는 우리의 어떤 시절을 상자 안에 가득 담아 관객 앞에 툭 던진다.
그 속에는 아주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작은 텃밭에서 따 올린 고추의 질감, 입안에서 톡 터지던 방울토마토의 식감, 둥그렇게 등 돌리고 앉았던 어깨, 머리카락 위로 피어오르던 담배 연기, 어려서 어리석게 저지른 실수들이 마치 내 이야기처럼 스며든다. 답답하고 싫지만 미워하진 않았던 가족과 언제나 많이 부족해 보이는 나 자신이 그 속에 있다. 어쩌면 우리 자신은 그 시절을 피해 달아난 것 같지만, 그곳에 동그마니 남은 것 역시 우리 자신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 시간의 그리움을 기억하다
가족이라는 화두에는 어쩔 수 없이 오래 묵은 군내가 난다. 그래서 미간을 찡그리게 되지만 다시 찾게 되는 묘한 맛의 발효 음식 같다. 지긋지긋하지만 기억이라는 덩어리 속에는 묘하게 그리움이 담긴다. 달아난 것 같은데 어느새 다시 돌아와 있는 그 덩어리는, 멀리 던져버렸다 생각했는데 언젠가 내 손에 쥐여진 부메랑 같다. 그리고 가족이라는 기억에는 보들보들 정서적 위안이 되는 복숭아 껍질 같은 촉감이 남아 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알레르기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남매의 여름밤>은 삶과 죽음, 염치와 현실 사이의 이치를 알아가는 어린 남매의 성장영화이면서 제 삶 하나 제대로 어쩌지 못하는 늙은 남매가 그럼에도 살아보는 이야기다. 아빠와 고모 남매를 보고 있으면 옥주와 동주 남매의 미래처럼 보인다. 감독은 결핍 있는 평범한 두 남매 사이에 가족의 ‘죽음’을 덤덤하게 녹여낸다. 사실 누구나 이번 생은 처음이라 어른이 된다고 더 나아지거나 더 좋아지지 않는다. 삶은, 그리고 갑자기 맞아야 하는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서툴고 어색하다.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하지 않은 듯한 연출, 하지 않은 듯한 연기 그 자체다. 윤단비 감독이 그려내는 인물들은 특별하지 않다. 딱 바로 내 가족, 내 이웃처럼 보이는 배우들은, 기본적으로 선량하지만 딱 그만큼 이기적이고, 또 그만큼 어리석은 우리의 모습을 그려낸다. 그래서 그들의 여름은 맑지도 어둡지도 않은 색감처럼 특별한 기승전결 없이 흘러가는 단편의 덩이다. 무덤덤한 일상 속에 가끔 사랑의 설렘과 가족의 죽음이 끼어들지만 삶은 휘청대는 법 없이 무덤덤하게 흘러간다.
철없는 삶과 덧없는 죽음 사이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그리움인지, 그리움에 대한 기억인지 영화는 묻는다. 결국 되돌아와 의지하게 되는 할아버지의 집처럼, 우리의 과거는 단단하고 낡은 집처럼 아늑하고도 아득하게 우리의 마음에 벽을 친다. 영화의 도입부 낡은 집을 떠나 할아버지 집으로 이동하는 승합차를 카메라가 훨씬 앞서 달린다. 주인공들은 카메라를 쫓아가지 못하고 뒤처진다. 어쩌면 허덕대며 뒤쫓거나, 헐떡대며 달아나려 했지만 시간보다 한 발짝 늦었던 그 시절의 나처럼 보인다.
<남매의 여름밤>은 삶과 죽음, 염치와 현실 사이의 이치를 알아가는 어린 남매의 성장영화이면서 제 삶 하나 제대로 어쩌지 못하는 늙은 남매가 그럼에도 살아보는 이야기다. 아빠와 고모 남매를 보고 있으면 옥주와 동주 남매의 미래처럼 보인다. 감독은 결핍 있는 평범한 두 남매 사이에 가족의 ‘죽음’을 덤덤하게 녹여낸다. 사실 누구나 이번 생은 처음이라 어른이 된다고 더 나아지거나 더 좋아지지 않는다. 삶은, 그리고 갑자기 맞아야 하는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서툴고 어색하다.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하지 않은 듯한 연출, 하지 않은 듯한 연기 그 자체다. 윤단비 감독이 그려내는 인물들은 특별하지 않다. 딱 바로 내 가족, 내 이웃처럼 보이는 배우들은, 기본적으로 선량하지만 딱 그만큼 이기적이고, 또 그만큼 어리석은 우리의 모습을 그려낸다. 그래서 그들의 여름은 맑지도 어둡지도 않은 색감처럼 특별한 기승전결 없이 흘러가는 단편의 덩이다. 무덤덤한 일상 속에 가끔 사랑의 설렘과 가족의 죽음이 끼어들지만 삶은 휘청대는 법 없이 무덤덤하게 흘러간다.
철없는 삶과 덧없는 죽음 사이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그리움인지, 그리움에 대한 기억인지 영화는 묻는다. 결국 되돌아와 의지하게 되는 할아버지의 집처럼, 우리의 과거는 단단하고 낡은 집처럼 아늑하고도 아득하게 우리의 마음에 벽을 친다. 영화의 도입부 낡은 집을 떠나 할아버지 집으로 이동하는 승합차를 카메라가 훨씬 앞서 달린다. 주인공들은 카메라를 쫓아가지 못하고 뒤처진다. 어쩌면 허덕대며 뒤쫓거나, 헐떡대며 달아나려 했지만 시간보다 한 발짝 늦었던 그 시절의 나처럼 보인다.
- 글 최재훈_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 <남매의 여름밤>(2020)
- 감독 윤단비
- 출연 최정운(옥주 역), 양흥주(아빠 역), 박현영(고모 역), 박승준(동주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