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외부와 내부 전경.
열망과 절망이 함께하는 박물관과 미술관
문화체육관광부는 2023년까지 박물관·미술관 186곳을 추가 건립하겠다는 박물관·미술관 진흥 중장기계획(2019~2023)을 발표했다. 2019년 6월 기준 전국 1,124개인 박물관·미술관을 1,310개로 늘려 이용률을 31%까지 올리겠다는 목표다. 한편 이런 정부 계획과는 반대로 지자체 박물관이 ‘세금 먹는 하마’로 적자 운영을 면치 못한다는 기사들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무언가를 전시하고 보여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에 우리나라에는 박물관·미술관 건립을 둘러싼 열망과 절망이 공존한다.
서울도 서울시 산하의 박물관·미술관을 건립하여 ‘수도 서울의 문화적 위상’을 높이고자 했다. 서울올림픽에 맞춰 박물관과 미술관 기능을 합친 ‘서울시 미술박물관’을 개관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건립 부지를 둘러싼 복잡한 논의 끝에 박물관과 미술관을 분리하여 경희궁 내 옛 서울고등학교 건물을 개조, 1988년 서울시립미술관을 개관했다. 이후 서울시립미술관은 옛 대법원 건물로 옮겨와 현재의 서소문 본관에서 2002년 재개관했다.
이제 개관 30주년을 넘은 서울시립미술관은 규모나 콘텐츠 면에서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 18세기부터 시작된 서구 박물관·미술관의 오랜 역사에 비하면 매우 급격한 확장세다. 박물관과 미술관을 크게 구분 짓지 않고 뮤지엄(museum)으로 부르는 서구 제도 기관의 역사는 18세기 엘리트 중심, 19세기 부르주아 중심에서 20세기에 대중 중심으로 이동한다. 관람객으로 명명된 대중의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뮤지엄의 정책 변수로 작용한다. 역사학자 도미니크 풀로(Dominique Poulot)는 그의 저서 <박물관의 탄생>에서 “지식과 즐거움을 별개의 것으로 볼 수 있느냐의 문제가 이제는 박물관의 주요한 과제로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한다. 근대적 의미의 뮤지엄은 오늘날 아시아 도시를 포함한 여러 장소에서 복합적인 이해관계의 충돌을 겪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이 ‘네트워크형 미술관’과 같은 슬로건을 내세우고 곳곳에 분관을 계획하는 것은 이러한 지식과 즐거움을 다층적으로 펼치면서 미술관이라는 공공장소를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수용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3 어린이갤러리 전경.
대중과 도시 미술관의 미래
서소문 본관으로 자리를 옮긴 서울시립미술관은 2004년 남서울미술관에 이어 2013년 북서울미술관을 분관으로 개관한다. 이 밖에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SeMA창고, 백남준기념관, SeMA벙커 등 총 7개 분관을 가진 서울시립미술관은 평창동 미술문화복합공간(2021년 예정), 서울사진미술관(2023년 예정), 서서울미술관(2023년 예정) 등을 추가 개관할 예정으로 명실상부 미술관 복합체(complex)로 거듭나는 중이다. 현재 규모나 운영 면에서 분관의 맏이 격인 노원구 북서울미술관은 지역 기반의 복합문화시설로 설계되었다. 전통적인 의미의 ‘미술관’ 기능만큼 지역주민의 여러 문화적 요구사항들을 고려해야만 했던 북서울미술관은 초기의 우려와는 달리 5~6년 사이에 방문객이 약 두 배 증가(2019년 기준 약 77만 명)하는 성과를 냈을 뿐만 아니라 지리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현대미술 애호가들도 자주 찾는 기관이 되었다. 북서울미술관은 대단위 아파트 단지 사이에 놓인 근린공원 부지에 자리한다. 수락산과 불암산 등 인근 산세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은 건축 디자인은 겉으로는 역동적인 모양새를 보이나 내부 구성은 단순하다.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가 설계한 북서울미술관은 2013년 서울시 건축상 대상을 수상하는 등 건축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전시와 교육을 비롯한 공간의 운영 방식과 프로그램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현대미술관이라는 본분을 잊지 않으면서도 어린이갤러리와 같은 특별 공간을 조성하고, 근린공원 내 조각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세심한 프로그램들을 구상했다. 특히 어린이 전시의 새로운 형식들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기존의 어린이 체험 공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참여 프로그램을 지양하고 현대미술 작가들이 큐레이터들과 협업하여 시각예술의 조형 요소들을 차근차근 풀어낸 흥미로운 결과물을 선보이고 있다.
양적으로 확장하는 미술관의 수만큼 미술관의 위기론도 동반되는 것이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도미니크 풀로의 말을 빌리면 “문화산업과 정체성 정책과 복잡하게 얽혀 있는 대중문화와 대결해야만 하는” 미술관은 앞으로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대중이 바라는 미술관의 모습과 권위 있는 시각예술 전문 기관으로서 미술관이 보여줘야 하는 역할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갈등의 순간을 서울의 미술관들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아직까지 북서울미술관은 그만의 방식으로 이러한 과제들을 풀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도시의 미술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아 빛을 발해야만 하는, 소리 없는 전쟁터 속에서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 글 정다영_건축과 도시계획을 공부하고 <공간> 기자를 거쳐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일하고 있다. 전시 기획과 시각문화 연구를 진행하며, 건국대 산업디자인학과 겸임교수로 출강 중이다.
- 사진 제공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