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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OF SEOUL

10월호

올가을엔 브람스를 만나보세요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어떻게 답하겠는가? 사실 이 대사는 한 영화 속에선 ‘작업용 멘트’다. 좋아하는 여성에게 브람스의 교향곡이 연주되는 음악회에 같이 가자고 제안하는 상황에서 이 대사가 나온다. 아마도 이런 질문을 받은 여성은 그 제안을 한 남성이 마음에 든다면 브람스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그와 함께 음악회에 갈 것이다.

브람스의 슬픔과 고독을 느끼다

국내에서 <이수>(離愁)라는 제목으로 상영된 적 있는 오래된 영화 <굿바이 어게인>(1961)에서 브람스의 음악은 두 남녀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영화 속에서 39살의 중년여성 폴라(잉그리드 버그만)는 25살의 젊은 청년 시몬(안소니 퍼킨스)의 이러한 제안을 수락한다. 두 사람은 음악회에서 함께 브람스의 교향곡 제1번을 듣는다. 그러나 오케스트라가 4악장의 벅찬 환희의 선율을 연주할 때 폴라는 시몬이 아닌 다른 남자, 즉 연상의 남성 로제(이브 몽탕)와의 첫 만남을 떠올린다. 이처럼 첫 데이트부터 폴라와 시몬의 관계는 위태롭기 그지없다. 그러나 시몬의 시선은 오로지 폴라에게로 향하고 폴라의 반응이 미지근할수록 시몬의 집착은 더욱 강해진다. 결국 두 사람은 연인 사이로 발전하지만 폴라의 허전한 마음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주인공들의 공허한 심리 상태와 사랑의 줄다리기가 펼쳐질 때 그들의 복잡한 감정은 고독하면서도 열정적인 브람스의 음악을 통해 암시된다. 때문에 이 영화를 보는 동안 브람스의 음악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작곡가 브람스의 이야기도 암시하고 있어 더욱 흥미롭다.
젊은 청년 시몬이 14살 연상의 여인 폴라에게 매혹됐듯, 작곡가 브람스 또한 14년 연상의 피아니스트인 클라라 슈만을 평생 연모하며 독신으로 살았다. 브람스는 클라라를 평생 사랑했지만, 클라라는 스승이나 다름없는 로베르트 슈만의 부인이었으니 브람스로서는 그녀에게 가까이 접근하는 일이 쉽지 않았으리라. 로베르트 슈만이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해도 말이다. 그 때문인지 브람스의 음악에선 알 수 없는 슬픔과 고독감이 풍겨 나온다. 쓸쓸하고 깊이 있는 표현력 때문에 낙엽이 지는 가을에 들으면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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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의 교향곡에 다가가려면

영화 <굿바이 어게인>에서 폴라와 시몬이 음악회에서 감상한 브람스의 교향곡 제1번은 슈만의 <만프레드> 서곡에 감명을 받은 브람스가 무려 21년간의 노력 끝에 완성한 야심작이다.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브람스의 작품 가운데서도 뛰어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곡은 브람스 특유의 우수 어린 선율과 쓸쓸한 분위기를 담고 있다. 운명의 발자국 소리와 같은 1악장에서 벅찬 환희로 가득한 4악장으로 마무리되는 구성은 ‘운명 교향곡’이라 불리는 베토벤의 교향곡 5번과 매우 비슷하다. 브람스는 베토벤 이후 쇠퇴해간 독일 관현악의 자존심을 세운 독일 작곡가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브람스의 음악에 입문하기 위해 처음부터 교향곡 1번을 듣는다면 부담스러울 것이다. 선율의 아름다움보다 탄탄한 구성미를 추구한 브람스의 음악은 여러 차례 반복해서 들어야 귀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브람스의 음악을 좋아했던 클라라 슈만 역시 “완전한 멜로디를 듣고 싶다”고 말했다고 하니, 브람스의 교향곡은 그리 쉬운 곡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이 교향곡에 숨어 있는 브람스의 개인적인 비밀을 알고 나면 길고 복잡해 보이는 그의 교향곡이 친근하게 느껴질 것이다.
브람스의 교향곡 1번 4악장에는 브람스가 사랑했던 이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4악장 도입부의 힘겨운 음악이 지나가면 오케스트라의 호른 연주자가 가슴이 확 트이는 선율을 연주한다. 이 선율에 재미난 비밀이 있다. 브람스와 클라라는 언젠가 다툰 일이 있었는데, 브람스는 클라라와 화해하기 위해 그녀의 영명 축일에 맞추어 호른이 연주하는 선율을 엽서에 적어 보냈다. 그러고는 이런 글을 적었다. “산보다 높이, 골짜기보다 깊이, 나는 당신에게 천 번의 인사를 보냅니다.” 그때 브람스가 클라라에게 보낸 선율은 교향곡 4악장에서 갈등을 해소하고 평화를 불러오는 호른의 선율로 사용됐다. 브람스는 그의 평생 친구이자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인 요제프 요아힘의 좌우명도 이 교향곡 속에 넣었다. 평소 요아힘은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Frei aber einsam)라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았는데, 브람스는 이 말의 첫 글자 F-A-E를 A-E-F로 살짝 바꿔 이 알파벳이 나타내는 ‘라-미-파’라는 선율을 결정적인 순간에 사용했다.
물론 브람스의 교향곡을 처음 접하는 이라면 이러한 선율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브람스가 사랑하는 이들을 자신의 작품 속에 넣을 만큼 따뜻한 사람임을 생각하면서 그의 교향곡을 듣는다면, 그 풍요로운 사운드와 따스한 감성에 마음이 움직일 것이다. 가을이 끝나기 전 브람스의 선율에 빠져보자.

글 최은규 서울대 음악대학 및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부수석 및 기획홍보팀장을 역임했다. 월간 객석, 연합뉴스 등 여러 매체에서 음악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의전당, 부천필 등에서 클래식 음악을 강의하고 있다.
그림 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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