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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OF SEOUL

11월호

미스터 빅(MR. BIG)과의 시간을 추억하다 그래, 우리 함께
1989년, 그러니까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나는 록 음악에 푹 빠져 있었다. 틈나는 대로 동네 음반가게에 들러 뭐가 새로 나왔나 살피는 게 중요한 일과였다. 평소처럼 음반가게에 갔는데 한 앨범 재킷이 눈에 확 들어왔다. 낡아빠진 구두 위에 마술사들이나 쓸 법한 ‘톱 햇’(top hat) 모자, 그리고 역시 마술사들이나 휘두를 법한 스틱이 놓여 있었다. 오른쪽 귀퉁이에 커다랗게 적힌 글자는 미스터 빅(MR. BIG).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밴드 이름이었다.

서정민의 썰 관련 이미지1, 2 지난 10월 8일 무대 위에서 열정적인 공연을 펼친 미스터 빅.

왜 그랬는지 나는 이 앨범을 평소 즐겨 사던 카세트테이프가 아닌 LP로 샀다. 이름처럼 커다란 실체를 가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집에 와서 들어보니 신나는 하드록이었다. 알고 보니 이전부터 왕성하게 활동하던 실력자들이 모인 밴드였다. 에릭 마틴(보컬)의 쇳소리 같은 음색은 매력적이었으며, 폴 길버트(기타)와 빌리 시언(베이스)의 연주는 정상급이었다. 팻 토피(드럼)의 연주 또한 힘이 넘쳤다. 좋은 밴드 하나 알게 됐다며 기뻐했다. 하지만 밴드는 생각만큼 크게 뜨지는 못했다.
아쉬움은 꼭 2년 뒤 완벽하게 해소됐다. 미스터 빅이 1991년 발표한 2집 <Lean Into It>이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이다. 앨범을 사서 첫 곡 <Daddy, Brother, Lover, Little Boy>부터 마지막 곡 <To Be With You>까지 통째로 외우다시피 할 정도로 듣고 또 들었다. 빌보드 싱글 차트 1위까지 올라간 이들의 대표곡 <To Be With You>는 각별하다. 재수생 시절, 쉬는 시간에 이 노래를 부르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한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내가 이어폰을 끼고 메인 보컬을 소화하면 옆에서 이어폰을 나눠 낀 친구가 코러스를 넣었다. 같은 반친구들은 “제법인데” 하며 박수를 쳐주었다. 그런 소소한 즐거움 덕에 팍팍할 수 있는 재수생 시절을 잘 버텼다.
그러고는 미스터 빅을 잊었다. 새 앨범을 내도 더 이상 사지 않았다. 내한공연도 했지만 관심 밖이었다. 그러는 사이 밴드는 2002년 해체를 했고, 이후 팬들의 요청으로 2009년 재결성했다. 오랜만에 미스터 빅의 이름을 머릿속에 가득 채운 건 2014년이었다. 내한공연을 앞두고 있었는데, 드러머 팻 토피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럼에도 그는 공연에 참여한다고 했다. 무조건 공연을 보러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가지 못하고 말았다. 두고두고 아쉬웠다.

서정민의 썰 관련 이미지3 지난 10월 8일 무대 위에서 열정적인 공연을 펼친 미스터 빅.

미스터 빅이 선사한 마법 같은 시간

그 아쉬움을 달랠 기회가 3년 만에 왔다. 미스터 빅이 지난 10월 8일 서울 광장동 예스24 라이브홀에서 내한공연을 펼친 것이다. 파킨슨병으로 몸이 불편한 팻 토피가 이번에도 동참한다는 얘기를 듣고 만사 제치고 공연장으로 달려갔다. 1996년 이후 벌써 5번째 내한인 데다 추석 황금연휴 도중이어서 관객이 얼마나 올까 걱정했는데, 거의 만석이었다. 이번이 아니면 팻 토피를 언제 또 보겠나 하는 생각을 나만 한 건 아니었으리라.
외모에서 세월의 흔적을 지울 수 없었지만, 연주 실력만은 건재했다. 무대를 여는 첫 곡 <Daddy, Brother, Lover, Little Boy>부터 관객들은 ‘떼창’을 하며 공연장을 달궜다. 나 또한 무의식적으로 따라 불렀다. 드러머 자리에는 생소한 얼굴이 앉아 있었다. 객원 멤버로 참여한 맷 스타다. 몇 곡을 마친 뒤 팻 토피가 등장했다.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로 환영했다. 메인 드럼 옆에 마련된 작은 드럼 세트 앞에 선 그는 탬버린을 치며 코러스를 했다. 간혹 스틱으로 드럼을 두드리기도 했다. 힘겨운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큰 울림을 자아내는 듯했다. 그러던 팻 토피가 갑자기 메인 드러머 자리로 올라갔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밴드가 연주를 시작한 곡은 <Just Take My Heart>. 2집에 수록된 아름다운 발라드다. 팻 토피는 느리지만 간결하고 정확하게 드럼을 쳤다. 관객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떼창을 했다. 노래를 따라 부르던 나는 괜히 코끝이 찡해지고 목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연주를 마친 팻 토피는 일어서서 손을 번쩍 들었다. 사람들의 뜨거운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다시 아래의 작은 드럼 세트 앞으로 내려왔다. 그러고는 공연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했다.
마침내 고대하던 <To Be With You>의 시간. 노래를 따라 부르며 나는 25년 전 재수생 시절 그 교실로 돌아갔다. 공연장에 있던 모든 관객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각자의 과거로 돌아간 듯한 표정이었다. 반세기 넘는 세월이 훌쩍 지났어도 원년 멤버 그대로 찾아와 우리들에게 마법 같은 시간을 선사해준 미스터 빅. 그들과 함께 나이 먹어감에 감사했다.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공연의 여운을 느끼려고 스마트폰으로 미스터 빅 2집 앨범을 플레이했다. 하지만 내가 이용하는 음원 서비스에서 해당 앨범은 스트리밍을 허용하지 않았다. 아날로그 시대의 밴드다웠다. ‘그렇지. 이런 앨범은 CD로 들어야지.’ 집에 가서 CD장을 뒤적여봐야겠다고 생각하다 문득 25년 전 옆에서 코러스를 넣던 그 친구 생각이 났다. ‘잘살고 있으려나?’ 올해가 가기 전 그 친구 얼굴을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글 서정민_ 씨네플레이 대표
사진 제공 파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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