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52. 근린생활시설 5층 132.84m2 및 6층 143.64m2.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을 법적으로 표현하는 문구다. 현재 이 건물의 주인은 2012년 세계를 뒤흔들었던 히트곡 ‘강남스타일’의 주인공 싸이 부부다. 싸이 측을 법적으로 대리하는 변호사는 임차인인 테이크아웃드로잉이 건물을 불법 점유하고 있다는 소송을 제기했다. 3월 13일에는 새 임차인을 자처하는 용역과 카페 직원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다.‘문화대통령’ 싸이가 건물주가 돼 임차인과 분쟁을 겪는다는 사실만으로 이 사건은 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받았지만, ‘테이크아웃드로잉’이 어떤 공간인지 조명하는 기사는 많지 않은 편이었다. 대부분의 눈은 싸이가 이 ‘오점’을 어떻게 덜어낼지에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양측의 대결 구도는 4월 22일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사장의 중재로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5개월이 지난 지금도 법적 분쟁은 이어지고 있다. 싸이 측 변호사가 충돌 당시 폭행 혐의에 대한 형사고소를 취하하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리적 충돌이 있었을 때 전시장 입주작가였던 신제현 작가와 테이크아웃드로잉을 지지하는 글을 온라인에 게재한 ‘일상의 실천’ 권준호 디자이너가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당했다. 8월 13일 서울서부지방법원의 건물인도 청구소송 판결에 따르면 세 명의 카페 운영자 중 최소연?최지안 두 명에 대한 청구는 각하됐는데, 나머지 한 명인 송현애에 대한 청구는 인용됐다. 싸이 측 변호인은 “사실상의 승소” 라 주장했고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인용 부분에 대한 항소 의사를 밝혔다.
공공의 지원 없이 실질적 독립 이룬 문화예술 공간
테이크아웃드로잉은 2006년 미술전시기획자 최소연이 삼성동에 연 카페다. ‘접는 미술관’ 프로젝트의 일원이던 그는 전통적인 미술관의 권위에서 벗어나 생활 공간에 가까이 있는 새로운 형태의 미술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그와 공동 운영자 최지안, 송현애는 ‘카페 레지던시’라는 공간을 고안했다. ‘레지던시’는 작가들이 머물면서 작업하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테이크아웃드로잉의 경우에는 카페 전체가 레지던시가 되는 것이다. 작가들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보통 두 달이다. 작가들이 작품을 만들고 전시하는 과정까지 전부 카페 손님들에게 ‘전시’된다. 입주작가들이 제안한 음식과 음료를 판매하는 ‘드로잉 메뉴’는 카페와 미술 전시
공간이라는 이질적인 조합 사이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
카페는 보통 ‘고급스러운 취향’을 만족시키는, 자본의 논리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인식된다. 이 때문에 테이크아웃드로잉이 “현대 예술의 탈을 쓰고 사업을 한다”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작가들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신제현 작가는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정부의 지원금을 받지 않고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카페 수익으로 미술 전시를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대안적 미술 전시 공간’이 공공기금으로 유지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실질적인 독립을 이룩한 성공 사례라 할 수 있다.
2014년 한국에 거주하는 난민의 존재를 환기시키는 전시 ‘난센여권’으로 테이크아웃드로잉과 인연을 맺은 권준호 디자이너는 테이크아웃드로잉이 “시각디자인이 가진 태생적인 한계를 넘어 난민들의 일자리를 알아봐주거나, 한국의 제도에 익숙하지 않은 난민이 겪는 어려움을 함께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였다”고 적었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카페의 손님들과 미술 전시, 미술 전시와 사회문제의 최전선을 연결하는 공간으로 작동하면서 문화예술운동의 거점 역할을 했던 것이다.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진 두 주체의 충돌
1, 2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정부의 지원금을 받지 않고 카페 수익으로 미술 전시를 지원해왔다.
사진은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진행된 전시 <답변서 프로젝트>(사진 1)와 <치읒> 책전시(사진 2). ©인현우
3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두 차례 열린 건축기획자 박성태의 ‘한남포럼’ 장면. ©인현우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이제 그 자체로 ‘사회문제의 최전선’이 됐다. 건물주로서의 권리 행사, 즉 “법적으로 문제없는 일”(권준호 디자이너가 인용한 싸이측 변호사의 발언)을 하려는 이들에게 맞선 테이크아웃드로잉의 동료로는
건물주의 ‘갑질’에 대항해 입주 상가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사회운동과 입법운동을 벌이는 권익단체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이 있다. 또 문화예술계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도 테이크아웃드로잉에 힘을 싣고 있다. 건축기획자 박성태는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한남포럼’을 두 차례에 걸쳐 열었고, 정림건축문화재단이 발행하는 <건축신문> 14호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홍대 앞 두리반을 지키기 위해 조직됐던 ‘자립음
악생산조합’과 ‘더북소사이어티’ ‘햇빛서점’ 등 22개 독립서점도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싸이 측은 법적으로 주어진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려 하지만, 그 법은 예술인들이 ‘공간’에 기여한 바를 고려하지 않는 법률이다. 법의 논리에 대항한 테이크아웃드로잉의 무기는 예술이다. 홍대 앞 두리반에서 열린 ‘파티51’이 법률의 무기인 강제집행을 무력화하고 두리반 투쟁을 승리로 이끈 것을 모델로 삼아, 테이크아웃드로잉을 지키기 위해 나선 작가들도 ‘문화의힘’을 무기로 쓰려 한다. 전혀 다른 세계관을 지닌 두 주체가 충돌하고 있기에 대화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앞으로도 고통스러운 싸움을 이어나가야 한다. 물론 테이크아웃드로잉이 당장 한남동을 포기하고 새 둥지에서 출발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일까? 예술가들은 언제까지고 또 다른 ‘미래에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날 미개발된 구역’을 찾아 나서기만 해야 할까?
- 글 인현우
- 한국일보 문화부 미술 담당 기자
- 사진 제공 테이크아웃드로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