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수의 소리는 흐르는 물처럼,
때로는 파도처럼
지난달, 김준수는 여든 살의 노인이 되어 물이 차오른 <리어> 무대에 올랐다. 물과 같이 낮은 곳으로 흘러가려는 리어의 마음을 가득 담아, 그는 다시 한번 이렇게 노래했다. “상선上善은 약수若水일러니, 만물을 이로이 하되 다투지 아니하고 모두가 저어하난 낮은 곳에 처處하노라.” 리어의 세계에서 물은 깊어졌다가 땅을 뒤덮었다가 다시 얕아지기를 반복하며 계속 흘렀다. 몇 개월마다 계속 다른 인물이 되어온 김준수의 가장 최근의 삶은 ‘리어’였고, 그 세계에서 천천히 걸어 나온 지금, 그는 물처럼 계속 흐르며 살아갈 수 있을지 생각한다.
<리어>의 재공연을 막 끝냈습니다. 강렬한 서사였고, 몰입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만큼 빠져나오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공연을 마친 소감이 어떠세요?
꿈과 현실을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제까지만 해도 <리어>의 세계에 있었는데, 마지막 공연 끝나고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니 마음이 허하기도, 이제야 긴장이 풀리기도 했어요. ‘아, 이제 정말 공연이 끝났구나’ 싶었고요. 그 하루 사이의 온도 차가 진짜 크다는 걸 실감했고 그게 제가 연습과 공연 기간에 쏟아부은 에너지에 비례한다고 생각해요.
서른 즈음에 ‘리어’라는 인물을 깊게 만났습니다. 리어가 지금의 김준수에게 알려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살면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있고, 그 선택에 대해 깊게 고민할 때가 많잖아요. 어떤 선택을 하든 고심해서 내린 결정이 후회로 남지 않게, 또 미련도 남지 않게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하게 됐어요. 물론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지만요. 리어도 긴 인생을 살아온 노인이지만 그 또한 여전히 잘못된 선택을 해요. 그저 한 인간이니까요. 처음 <리어>를 만났을 땐 내가 이 인물을 어떻게 바라볼지 고심했는데, 재공연을 마친 지금은 오히려 제게 여러 생각을 건네주는, 귀한 작품으로 느껴져요.
극의 잔상이 워낙 강해서인지 그 이야기를 곱씹으며 흐르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생각하게 됩니다. “물이여, 리어여” 하고 노래하는 대목도 뇌리에 계속 맴돌고요.
<리어>에서 물은 서사를 관통하며 흐르는 중요한 요소예요. 물은 흐르기도, 고여 있기도, 무대 위 움직임에 따라 요동치기도 하고, 다시 잔잔하게 그 자리에 머무르기도 하죠. <리어>와 물을 연결한 배삼식 작가님의 생각에 정말 탄복했어요. 그리고 저도 물처럼 잘 흘러가고 싶다고 생각했고요. 물은 거침없이, 어디에도 걸리지 않고 순탄하게 흐르기도 하지만 또 언젠가는 거센 파도를 만나 그 파도와 하나가 되죠. 물의 흐름은 어찌 보면 인생과 많이 닮은 것 같아요.
근 반년간 다양한 인물이 되어 무대에 올랐습니다. 3월의 ‘리어’에 앞서 2월에는 남성 창극 <살로메>에서 ‘살로메’를, 지난해 11월에는 국립창극단 <패왕별희> 재공연에서 다시 ‘우희’를 맡았죠. 매번 다른 역할을 맡는 건 공연하는 사람의 숙명이겠지만, 맡은 인물의 변화 폭이 상당히
큰 편으로 보이네요.
움직임, 대사의 톤, 연기 등 연출가의 디렉션과 작품에 따라 계속 변화해야 한다는 점이 배우로서 귀한 경험인 것 같아요. 어떤 작품이든 쉽진 않고, <패왕별희> 역시 그랬어요. 특히 우희를 연기할 때는 굉장히 정제된 움직임 속에서 절제된 표현을 해야 했는데, 내 감정을 많이 드러내지 않고 어떤 틀 안에서의 가장 슬픈 것, 복합적인 감정을 압축한 무언가를 표현해야 했거든요. 소리로 들려주는 것뿐만 아니라 우희가 쥔 검의 움직임에 모든 슬픔이 담기는 것처럼 움직여야 했고요. 그런 복합적인 표현이 가장 어려웠어요.
김준수는 올해 초 <리어>의 주인공으로 분해 인간사의 분노와 회한을 그려냈고, 지난해 <패왕별희> 무대에서는 우희 역을 맡아 소리는 물론 춤까지 소화했다 ⓒ국립극장
우희가 절제하는 인물이라면, 살로메와 리어는 발산해야 하는 인물이었어요.
<살로메>를 할 때는 너무 폭발하지 않도록, 담백하게 하라는 연출님과 작가님의 디렉션이 있었어요. 보통 소리꾼들은 노래 하나에 모든 감정을 싣고 에너지를 뿜어내거든요. 그래서 살로메를 연기하면서 담백하게 뱉어내는 게 정말 어려운 부분 중 하나였어요. 살로메는 감정 기복이 정말 심한 인물이거든요. 특히 마지막 아리아에서는 정말 미친 사람처럼 해야 했어요. 하다보면 저도 막 머리가 하얘지고, 무대에서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죠. 리어도 처음에는 맨정신이지만 딸들의 배신과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점점 미쳐가요. 그 감정선을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엔 완전히 미쳐서 무대 위에서 혼자 긴 독백을 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어요. 그래서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한 고민이 정말 컸고요. 집에 가면 자기 전에 연습 녹음본을 켜서 베개 옆에 두고 모니터링하는데, 그러면 도저히 잠들지 못하겠더라고요.(웃음) 내일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하다 보면 잠이 안 오는 거예요.
그럴 땐 작품과 무관한 ‘한국의 근현대사’ 같은 유튜브 영상을 일부러 켜놓고 어떻게든 잠을 자려고 했어요.
어떻게든 공연에 대한 생각을 쉬어보려고 애쓰셨군요. 워낙 캐릭터가 강렬한 데다 익숙하지 않은 인물들이라 고민이 끝없이 이어졌을 것 같아요.
맞아요. 나름대로 비우는 시간을 가졌어요. 결국에는 제가 만난 모든 작품, 모든 역할 중에 쉬운 건 없었다고 생각해요. 만약 ‘춘향가’의 이몽룡처럼, 많이들 익숙하고 소리꾼이 잘 표현할 수 있는 인물이라면 참고할 것도 많고 제 나이대에 좀 더 수월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있겠지만 리어·살로메·우희 같은 캐릭터는 조금 다르죠. 소리꾼으로서, 그리고 제 나이에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참고할 예를 찾기도 어렵고요. 그래서 무엇보다 함께 공연을 만들고 있는 연출님, 작가님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고, 저도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인물을 만나려고 했어요. 내가 편안하게 리어를 만나자, 이 할아버지를 만나자… 이렇게 생각했어요.
지금의 김준수는 여러 종류의 ‘고전’을 폭넓게 다루는 소리꾼이 돼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고전으로 불리는 작품에선 완성도 높은 이야기와 더불어 강렬하고도 입체적인 인물들을 만나게 되는데, 지금 그런 인물들을 밀도 높게 체화하는 과정인 것 같고요. 고전과 그 안의 인물을 만나며 소리꾼 김준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요?
제가 소리를 하면서, 그리고 창극이라는 장르를 하면서 이런 작품들을 만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그렇지만 만나게 되니, 다양한 생각을 하게 돼요. 판소리 다섯 바탕처럼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비롯한 여러 고전도 서사적으로 탄탄하고 높은 완성도를 갖추고 있잖아요. 기본적으로 단단하게 뿌리내린 작품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작품 자체가 새롭게 탈바꿈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또 배우들도 그 안에서 계속해서 변화를 시도할 수 있고요. 판소리도 그런 것 같아요. 몇백 년 전부터 이어온 우리 소리의 뿌리가 단단하고 깊기 때문에 여러 작품과 만나 흔들리지 않고 다양한 매력을 발산할 수 있고요. 그래서 판소리와 서양의 극이 만날 때, 관객들도 이걸 우리 이야기처럼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판소리가 지닌 힘이 정말 크다고 생각해요.
소리꾼의 힘 역시 크다고 생각해요.
창극에서 소리꾼이 뿜어내는 에너지와 다양한 매력이 하나로 뭉칠 때 더 큰 시너지가 나는 것 같아요. 관객들도 그걸 강력한 에너지로 받아들이는 것 같고요. 판소리가 가진 절절함도 있고 한도 있지만, 또 흥도 있잖아요. 즉흥적인 부분도 크고요. 그런 힘을 바탕으로 소리꾼들이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는 거죠. 소리를 시작할 때는, 판소리란 다섯 바탕으로 이루어진 장르라고 생각했어요. 소리꾼이 점점 나이를 먹어가며 그 안에 자기 드라마를 담아내는 예술이라고 여긴 거죠. 그런데 창극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해 보니 우리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야기는 무엇일지, 소리꾼 입장에서도 그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기대하게 돼요. 지금의 관객과 소통하며 새로운 작품을 계속 시도하는 중에도 뿌리는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고 굳건히 믿기 때문에, 이제는 어떤 시도를 하든 관객분들이 열린 마음으로 작품을 바라봐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소리꾼이 북 하나 놓고 기나긴 서사를 끌어가는 것도 너무나 좋지만, 창극에서는 혼자 만들어낼 수 없는 어떤 것을 우리가 함께 만들고 있으니까요.
2013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해 10년 넘게 수많은 무대에 섰습니다. 중요한 변화의 기점이 된 순간이 있나요?
어느 한순간보다는, 다양한 연출가를 만나면서 계속해서 변화할 수 있던 게 저에게는 가장 큰 복이었던 것 같아요. 한 연출가와 계속 기나긴 작업을 해온 게 아니라 작품마다 새로운 예술가를 만났으니까요. 그러면서 다양한 시각에서 작품을 바라보게 되고, 상상력을 키우게 되고,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그런 영감을 준 연출님들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이에요.
국립창극단의 작품뿐 아니라 <풍류대장> 같은 TV 프로그램과 뮤지컬 등 다채로운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소리를 시작했을 때 이렇게까지 다양한 활동을 하리라고 상상했나요.
제 꿈이긴 했어요. 판소리가 좋았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소리만큼은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제 주변 친구들은 저를 신기한 음악, 예스러운 음악 하는 사람으로 보더라고요. 공감해주는 친구들이 많이 없다는 점에서 분명 외로움도 있었어요. 그러다보니 이 소리를 좀 더 다양하게 풀어낼 수 있는, 저만의 여러 도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대중미디어 출연도 그런 차원이었고요. 앞선 선생님들, 선배님들이 걸어온 길을 보면서도 용기를 얻었어요. 무대 위에서 한복을 입지 않는 것도 누군가에겐 작은 것이겠지만 저에겐 큰 도전이었거든요. 소리꾼이 가진 이미지와 고정관념,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과감해졌죠.
소리꾼으로서,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다양한 무대에서 활약하는 것과 더불어, 또 도전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소리꾼으로서 제 작품을 올리는 게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겠죠. 모노극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또 다양한 매체에서 배우로든 소리꾼으로든 계속 활동하고 싶고, 드라마와 영화도 해 보고 싶어요. 도전하고 싶은 영역이 정말 많아요. 그렇지만 가장 놓지 않고 싶은 것은 근본적인 제 뿌리예요. 창극을 10년 넘게 하고 있지만, 전통 판소리에서의 소리와 창극에서의 소리는 엄연히 달라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무엇이 되고 싶냐고 했을 때, 제 답은 소리꾼이에요. 욕심 있는 일은 많지만 제가 놓지 않고 해야 할 일은 소리니까요.
나의 원형인 나의 소리. 그걸 늘 마음에 새기고 되뇌고 있어요.
올해 ‘춘향가’ 완창을 준비한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연말에 ‘춘향가’를 하는 게 목표예요. 최대한 즐기는 마음으로 준비해보려 해요. 전통 소리 무대는 제가 가장 어려운 마음으로 임하는 무대예요. 그 어떤 무대보다도 저를 가장 수련하게 만들고, 가장 겸손하게 만드는 무대이지 않을까 싶어요. 완벽한 무대라는 건 애초에 없겠지만, 특히 전통 소리를 하는 무대에서 아쉬운 점이 남으면 자책을 심하게 하더라고요. 판소리란 세월이 흘러가면서 제 안에서 계속 쌓여가는 것일 텐데 왜 이것만큼은 스스로 좀 더 즐기지 못하는 건지 싶기도 한데요. 그만큼 가볍게 대할 수 없는 것이 판소리여서 그렇겠죠. 무겁고, 중요하고, 그래서 더 잘하고 싶은 무대예요.
여러 무대를 준비하는 가운데, 늘 마음에 품고 있는 한 구절이 있나요?
단가 ‘사철가’라는 소리가 있어요. ‘사철가’는 사계절을 인생에 빗대어 무상함을 노래하는 곡인데, 제가 어릴 때 연습하거나 목을 풀 때 항상 부르는 노래예요. 아무 생각 없이 부를 때도 많았고요. 그런데 요즘은 그 가사가 조금 남다르게 다가오더라고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사계절에 여러 가사가 담겨 있는데, 마지막에 “한 잔 더 먹소, 그만 먹게 하면서 거드렁거리고 놀아보세”라는 구절이 있어요. 살면서 겪는 여러 일은 다 잠시 잊고 곁에 있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놀아보자는 거죠. 이게 요즘의 저에게 정말 필요한 것 같아요. 어떤 역할을 맡았을 때 막중한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일해야 하지만, 때로는 즐기지 못하는 마음이 힘들게 하기도 하거든요. 어떤 일이든 내가 선택한 일이니, 조금 더 길게 무대에 설 수 있는 소리꾼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사철가’를 다시 생각하게 돼요. 물론 <리어>에서도 “상선은 약수일러니”를 비롯해 여러 와닿는 구절이 너무 많지만요.(웃음)
마지막으로, 여든의 나이가 된 소리꾼 김준수를 떠올려본다면요.
우선 그때까지 건강하게 소리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어요. 내일 일도 장담 못 하지만 희망 사항 같은 거죠. 그때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여전히 무대 위에서 소리 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게 되네요.
글 음악평론가 신예슬
사진 Studio Ke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