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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8월호

현실의 동반자로서 노동을 기록하다 노동연극의 발달 과정

최근 노동문제를 소재로 한 ‘노동연극’이 잇따라 무대에 오르고 있다.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 전태일의 삶을 다룬 음악극 <태일>과
연극 <어쩔 수 없는 막, 다른 길에서>를 시작으로 노동의 의미와 노동자들이 당면한 문제들을 다룬
극단 고래의 <굴뚝을 기다리며>, 극단 파수꾼의 <7분>, 국립극단의 <SWEAT(스웨트): 땀, 힘겨운 노동>,
극단 현의 <트리거> 등이 관객과 잇따라 만났다. 연극만이 아니라 <1976 할란카운티>와
<제7의 인간>처럼 뮤지컬과 무용 장르에서도 노동을 다뤘다.

시대를 따라가는 노동연극

‘노동’이 주제인 작품은 다양하지만 실화를 모티프로 한 만큼 노동문제에 대한 당시 쟁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예를 들어 1970년대 광산 파업을 소재로 한 <1976 할란카운티>는 부당한 노동조건을 바꾸려는 노동자들의 투쟁과 사측의 노조 탄압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위력을 발휘하는 21세기 배경의 <SWEAT>와 <7분>은 자본의 힘 앞에서 노동의 가치가 사라지고 노동자들이 반목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그런데 올해만이 아니라 국내 연극계에서 노동연극은 이제 낯선 분야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연말에 발표되는 각종 작품상 수상작으로 노동연극이 심심치 않게 뽑히고 있다. 오랫동안 제도권 밖으로 여겨진 노동연극이 어느새 연극계 중심부로 들어온 것이다.
1970년대 대학 문화패 출신들이 공장에서 노동자와 함께 만들며 등장한 노동연극은 2000년대까지만 해도 주류 연극계에서 크게 다뤄지지 않았다. 주로 공장에서 상연됐을 뿐만 아니라 완성도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는 지식인 주도로 이뤄지다 보니 현장과 괴리된 관념적 한계가 있었고, 1980년대는 현장을 바탕으로 하되 노조 결성의 당위성과 연대 투쟁을 호소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이어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은 노동연극이 양적· 질적으로 가장 발전한 시기로 극단 한강, 극단 현장 등 민족극(마당 극) 계열의 전문 창작 집단이 잇따라 설립됐다. 1994년 극단 현장이 대학로 문예회관에서 대표작 <노동의 새벽>을 올린 것은 노동연극이 대중적으로도 인정받은 사례다.
2000년대 들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노동운동이 위축되면서 노동연극도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당시 구조조정 등 노동조건의 악화로 작품의 현장 순회가 대폭 줄었다. 대신 극단 걸판처럼 민족극 계열에 속하지 않으면서 노동현장과 제도권을 잇는 신세대 극단이 등장 했다. 극단 걸판의 <그와 그녀의 옷장>은 과거 경직된 투쟁극과 달리 가족 구성원을 통해 정리해고·비정규직 전환 등의 문제를 재기발랄 하게 표현해 호평받았다.

연극 <어쩔 수 없는 막, 다른 길에서>(전태일기념관, 2021. 3. 19~25)

연극인도 노동자라는 자각

2010년대는 주류 연극계가 앞다퉈 노동문제를 다루게 된다는 점에서 노동연극의 전환기라고 할 수 있다. 대학로 연극인들이 노동문제에 직접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2013년 2월 재능교육 해고노동자를 위한 단막극 페스티벌 ‘아름다운 동행’이다. (지금은 국내 연극계의 중추가 된) 김수희·김은성·부새롬·오세혁·윤한솔·이양구 등 당시 젊은 연극인 50여 명이 참여해 재능교육 사태를 공부하고 해고노동자들과 교류하며 만든 작품을 선보였다.
노동문제에 눈을 뜬 젊은 연극인들은 이듬해 ‘노란 봉투 캠페인’에도 참여했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파업 이후 손해배상 가압류 징계를 받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캠페인을 벌이던 시민 모임 ‘손잡고’가 연출가 동인 집단 혜화동1번지에 연극 제작을 제안한 것이다. 당시 만들어진 이양구 극작, 전인철 연출의 <노란 봉투>는 2015년 한국 연극 베스트7에 선정되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아름다운 동행’과 ‘노란 봉투 캠페인’ 이후 연극인들의 관심은 점차 비정규직·청소년·여성·이주민 노동문제 등으로 세분됐다. 노동문제 가 심화된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연극인 스스로 노동자라는 자각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2010년대 연극계에서 현실 참여적인 정치극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노동문제를 다룬 작품도 많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2017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당시 연극인들이 광화문광장에 세운 ‘광장극장-블랙텐트’는 연극인과 노동자의 연대를 크게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 극단 고래의 이해성을 비롯해 젊은 연극인들이 검열에 항의하기 위해 블랙텐트를 세웠을 때 파인텍과 유성기업 등의 많은 해고 노동자가 참여하면서 서로 밀접하게 교류했다. 연극인 역시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점에서 해고 노동자들과 공감대를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노동연극이 활발하게 만들어지게 됐는데, 연간 10편 안팎에 이른다. 2019년엔 소극장 연우무대의 ‘연우무대 프로파간다’와 국립극단 ‘연출의 판-작업준비 중’이 노동문제에 포커스를 맞춘 작품을 쏟아냈다. 여기에 같은 해 전태일재단이 개관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기념관’은 노동문제를 다룬 작품을 초청하거나 제작하면서 노동연극이 더욱 활성화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목된다.

장지영 《국민일보》 기자, 공연 칼럼니스트 | 사진 제공 전태일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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