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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2월호

예술인 고용보험 시행 첫발 뗐지만, 갈 길 험난한 예술인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던 문화예술인들의 생활 안정을 돕고, 창작에 전념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가 담겼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12월 10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오늘부터 ‘예술인 고용보험제도’가 시행된다”고 알렸다. 그러면서 “정부는 예술 현장의 목소리를 더욱 세심히 경청하며 문화예술인들의 노력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고용안전망 확대를 위한 예술인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예술인 고용보험제는 정부가 2025년까지 추진하는 전 국민 고용보험 가입을 위한 로드맵의 첫 단계다. 예술인을 시작으로 특수형태근로종사자는 물론 플랫폼 노동자와 자영업자까지 고용보험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예술인 고용보험 적용 대상인 ‘예술인’은 예술인복지법에 따라 미술·음악·무용·연극·영화·연예 등 11개 분야에서 종사하며, 고용인과 용역 계약을 체결하고 노무를 제공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월평균 소득이 50만 원 이상이어야 고용보험 대상이 되며, 24개월 중 9개월 이상 보험료를 내야 한다. 보험료는 예술인 보수에 실업급여 보험료율(1.6%)을 곱한 금액인데, 예술인과 사업주가 절반씩 부담한다. 이 조건을 충족하면, 90일 동안 출산전후휴가급여를 비롯해 실직한 예술인이라면 짧게는 120일, 길게는 270일 동안 구직급여를 받는다. 다만, 자발적 이직 등과 같은 수급자격 제한 사유가 있다.
2021년 구직급여 예산에 반영된 예술인 지원분은 64억 원 수준으로, 고용보험기금으로 지급하는 구직급여를 받는 첫 예술인이 나오는 건 올해 하반기쯤으로 예상된다.
예술인 고용보험 제도는 프랑스 ‘앙테르미탕’ 제도와 비교되곤 한다. 앙테르미탕은 ‘불규칙적’ ‘비정규적’이라는 뜻인데, 공연예술 분야 비정규직 예술가와 기술직 종사자를 대상으로 프랑스가 1969년 본격적으로 시행한 고용보험제도다. 프랑스보다 50년 이상 늦었지만, 문화예술계에서는 첫발을 내디뎠다는 사실 자체로 환영 의사를 밝혔다. 그러면서도 여러 문제를 지적한다.
예술인 생활 안정의 길 험난하여라
앞서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제도 시행 이틀 전인 2020년 12월 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출판 외주노동자와 방송작가 전체가 고용보험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용보험 시행령에서 출판 분야를 제외하면서 출판 산업 외주 편집자·디자이너·일러스트레이터는 대상에서 빠졌다. 방송작가의 경우 드라마와 예능·교양 프로그램 작가는 포함됐지만, 보도 부문 방송작가는 제외됐다.
시행일이던 10일에는 사단법인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와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이 “제도 도입은 환영하지만 보완할 필요가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보탰다. 취지는 좋으나 현장과 다소 괴리가 있다는 뜻이다. 정경모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본부장은 “24개월 가운데 9개월 이상 보험료를 낸 이들이 대상인데, 이 조건을 채울 수 있는 예술인이 실제론 그리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공연은 보통 두세 달씩 연습하더라도, 실제 공연하는 날은 아주 짧다. 연습 기간은 근로 기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정 본부장은 “장기 공연을 하는 연극이나 뮤지컬 외에 대부분 예술 분야는 단기 계약이 주를 이룬다”고 덧붙였다.
계약 시 문서 등을 거의 남기지 않는 예술계 관행도 걸림돌이다. 2018년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예술활동 관련 계약 체결 경험률은 42.1%에 불과했다. 고용인이 계약을 꺼린다 해도 피고용인인 예술인이 이를 따지거나 고발하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은 본부와 서울 지역본부에 전담팀을 신설하고, 오는 3월 10일까지 3개월 동안 ‘고용보험 적용 및 피보험 자격 집중 신고 기간’으로 정했다. 피보험자격 유무가 불분명한 경우 계약 내용을 검토해 고용보험 적용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되긴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소득으로 대상을 정하다 보니, 저소득 예술인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남는 것도 문제로 거론된다. 문체부 관계자는 월평균 소득 50만 원 기준에 관해 “노측·사측·정부위원으로 구성한 고용보험위원회가 이 기준과 월평균 소득 70만 원 기준을 두고 경합을 벌였는데, 70만 원으로 정하면 자칫 구직급여 수급액이 더 커지는 문제가 발생해 50만 원을 기준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업(業)이 아닌 취미 예술인에게 고용보험을 적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덧붙였다. 그야말로 ‘최소 기준’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예술계는 이 기준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예술인이 많다고 반박한다.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예술인 연간 수입은 평균 1,281만 원이었다. 그러나 ‘연소득이 500만 원 미만’이라고 한 사람이 27.4%나 됐다. ‘소득이 아예 없다’고 답한 사람도 28.8%에 이르렀다. 고용부는 국내 예술인 약 17만 명 가운데 7만 명 정도가 고용보험 대상이 될 것으로 추산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더 적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지금처럼 코로나19로 예술계가 얼어붙은 상황에서는 시작 초기부터 적용 대상이 크게 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예술인 고용보험이 대통령 약속대로 “사각지대에 있던 문화예술인들의 생활 안정을 돕고, 창작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 첫발은 뗐지만, 걸어야 할 길은 무척이나 험난하다.
글 김기중_《서울신문》 기자
사진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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