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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호

도서정가제 ‘현행 유지’가 남긴 과제도서정가제 지금부터다
2020년 11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도서정가제를 큰 틀에서 종전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도서정가제 ‘전면 재검토’ 발표가 있은 후 제도 유지와 폐지를 놓고 찬반 논의가 뜨거웠는데 결국 출판계의 의견을 반영한 결정으로 볼 수 있다.
논란은 잦아들었지만 과제는 남는다. 출판 생태계가 ‘현상 유지’를 넘어 발전하기 위해서는 도서정가제 유지 이상의 노력이 요구되며, 웹툰·웹소설 등 다변화된 시장에 제도를 어떻게 적용할지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

돌고 돌아 제자리. 2020년 7월 말 불거져 11월 초까지 꼬박 3개월 넘게 문화예술계 공론장을 달군 도서정가제(이하 도정제) 논란 과정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부가 도입하겠다고 밝혀 논란에 불붙인 도정제 관련 4개 항목 가운데 3개 항목을 추진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오래된 책의 할인 허용 △전자출판물 할인 확대 △연재 중인 웹툰·웹소설 도정제 적용 유예, 이렇게다. 나머지 하나인 도서전 할인도 문화체육관광부가 11월 3일 밝힌 도정제 개정 방향에 따르면 “재정가제도를 활용해 출판업계와 함께 ‘재정가 페스티벌’ 같은 정기 인하 행사를 개최”하는 방식으로 하겠다고 했다. 출판계의 의견을 반영해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2019년 말 도정제 폐지 국민청원이 20만 명을 넘겨 어떤 식으로든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야 했던 정부로서는 섣불리 출판계를 건드렸다가 소득 없이 돌아선 모양새가 됐다. 문체부 장관이 출판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도정제 샅바 싸움에서 승리한 셈이지만 출판계라고 마냥 기뻐할 일은 아니다. 책과사회연구소 백원근 대표는 한 언론 기고에서 “디지털 패러다임 속에서 출판산업은 변곡점을 맞아 확실히 진화가 필요한 상황인데도 어정쩡한 제자리걸음을 했으니 상당한 퇴화라 봐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제자리여서 본전인 게 아니라 발전하지 못했으니 오히려 손해라는 얘기다. 출판문화산업 진흥법에 따르면 도정제는 3년마다 재검토하게 돼 있다. 출판계의 의견을 반영해 도종환 국회의원이 대표 발의한 출판문화산업진흥법 개정안에 지금까지와는 달리 도정제를 강화할 수 있다는 대목이 추가돼 있지만 ‘3년마다 검토’ 조항이 바뀌지는 않았다. 3년마다, 당장 3년 후 비슷한 분란이 재연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얘기다.
책의 공공성에 기반한 도서정가제의 순기능
도정제는 기본적으로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다. 수요·공급에 따라 상품 가격이 시장에서 정해지는 자본주의경제의 가장 기본적 원리에 제한을 두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정제 폐지 청원 목소리 안에는 이런 점에 대한 불만이 섞여 있었다. 이런 반시장적 법안이 우리나라는 물론 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 유럽 중심의 출판 선진국에 폭넓게 존재하는 이유는 책이 단순 상품이 아니라 ‘공공재’라는 점에 있다. 여러 시간 집중해야 독서라는 소비 행위가 비로소 완성되고, 공공도서관이 대규모로 구입해 무료 대여하는 점도 책의 공공성을 입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도정제 이전인 1977년 출판·서점 간 협약 형태로 정찰제를 도입해 책 판매 가격 등락을 제한해 왔다. 2003년 도정제 도입 이후 법 개정을 거치며 내용이 강화돼 책 정가의 15% 이내에서만 할인을 허용하는 현재에 이르렀다. 정가의 10% 이내에서 할인이 가능하고, 경품이나 적립 포인트를 정가의 5%까지 지급할 수 있으니 사실상 15% 할인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런 틀의 도정제는 확실히 효과를 내는 것 같다. 팩트(사실)가 말해준다.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하 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도정제 이후 단행본 출간 종수가 적지 않게 늘었고, 출판산업 전체 매출액도 소폭이지만 상승했다. 피부로 느껴지는, 동네 서점을 포함한 오프라인 서점 수의 감소세 역시 소폭이지만 증가세로 돌아섰다. 도정제 도입 당시 약속했던 건강한 출판 생태계, 또 출판 다양성, 이런 것들이 눈에 보이게 된 것이다.
책 시장이 다변화된 환경에서 해결할 과제
하지만 개선의 소지 역시 안고 있다. 현상 유지는 이득이 아니라 퇴보라는 지적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먼저 할인율. 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도정제를 실시하는 15개국 가운데 학생이나 도서관 등에 대한 예외적 할인이 아닌 모든 소비자에게 전면 할인을 허용하는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절반쯤 된다. 나머지 절반가량은 할인이 없는 완전 정가제라는 얘기다. 완전 정가제를 실시하면 약육강식, 기울어진 운동장의 약자에 해당하는 작은 출판사, 작은 서점의 수익성이 그만큼 좋아진다. 우리도 완전 정가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완전 정가제를 할 경우 반대로 이른바 소비자 후생은 감소한다. 지금보다 책을 비싸게 주고 사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15% 할인율 체제에서 최적의 경영 성과를 내는 것처럼 보이는 거대 온라인 서점의 반발을 무릅쓰는 것도 문제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완전 정가제 전환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결국 지금 체제의 어디를 손봐 어떤 효과를 얻을 것이냐, 또 여기에 우리 사회가 어떤 합의를 하느냐의 문제다.
도정제 폐지 청원의 실질적 숨은 힘이었던 웹툰·웹소설 등 전자책을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도정제를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것 같다. 문외한인 기자가 보기에도 책의 형태, 과금 체계가 종이책과 천양지차인, 그러면서 미래 먹거리 성장산업인 전자책에 도정제라는 단일 원칙을 고지식하게 적용하는 실익이 무엇인지 불분명해 보인다. 오랜 시간 논의를 거쳐야 하는 쉽지 않은 문제다.
글 신준봉_《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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