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자 메이 올컷의 이야기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 | 코닐리아 메그스 지음 | 김소연 옮김 | 윌북
미국 작가 코닐리아 메그스의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는 《작은 아씨들》을 쓴 루이자 메이 올컷(1832~1888) 평전이다. 메그, 조, 베스, 에이미…. 최근 그레타 거윅 감독 영화로도 다시 만들어져 우리에게 친숙한 이 《작은 아씨들》 네 자매의 실제 모델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올컷은 자기 자매들을 바탕으로 이 이야기를 썼다. 작가를 꿈꾸는 말괄량이 둘째 조가 올컷의 분신이다.
이상주의자이자 사회운동가인 아버지, 여성인권과 노예해방을 위해 싸우던 어머니 사이에서 네 자매의 둘째로 태어난 루이자 메이 올컷은 ‘여자다운’ 성격의 언니 애나와는 달리 수줍음이 많았고, 또래보다 눈에 띄게 키가 큰 데다 지나치게 크고 투박한 손과 발을 부담스러워했다. “둥근 어깨와 긴 팔 다리를 주체하지 못하는 망아지 같은 소녀”인 ‘작은 아씨들’의 조는 올컷 자신을 투사한 것이다. 조는 남북전쟁에 종군 목사로 참전해 집을 비운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며, 자신이 사내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종종 아쉬워하는데 이 역시 올컷의 캐릭터를 그대로 반영한다.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는 책임감 강한 소녀가 가난을 원동력으로 밥벌이를 위해 글을 쓰고, 베스트셀러 작가로 우뚝 서는 과정을 그렸다. 책 전체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열한 살 올컷이 가족 모두의 소원을 이뤄주겠다고 결심하는 장면이다.
가족을 돌보겠다고 다짐한 루이자는 작은 방에서 인생 계획을 세우며 사랑하는 가족 모두의 소원을 이루어주겠다고 맹세했다. 아버지에게는 안정감, 어머니에게는 평화와 위안, 그리고 햇볕이 잘 드는 방이 필요했다. 애나에게는 기회, 엘리자베스에게는 보살핌, 메이에게는 교육이 필요했다. 루이자가 어떤 시련이 닥쳐도 쓰러지지 않고 자신과 한 약속을 확실하게 지킨 사실은 그 어떤 이야기보다 흥미롭다. (78쪽)
《작은 아씨들》에 등장하는 ‘옆집 소년’ 로리의 모델도 실재했다. 올컷은 병약한 소녀의 간병인으로 따라간 유럽 여행 중 스위스 도시 브베에서 12세 연하의 폴란드 청년을 만난다. 그에게 끌렸지만 자신보다는 막냇동생 메이와 더 잘 어울릴 거라 생각한다. 《작은 아씨들》 내용 중 유럽 여행 중이던 에이미가 브베에서 로리와 재회해 연인이 되는 것은 사실 이유 있는 설정이었던 것이다. 올컷 자신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메이가 딸을 낳고 세상을 뜨자 자신의 이름을 딴 그 딸을 맡아 키운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이야기 《하우스 오브 드림》 | 리즈 로젠버그 지음 | 이지민 옮김 | 아르테(arte)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와 달리, 《빨강머리 앤》을 쓴 루시 모드 몽고메리(1874~1942) 평전 《하우스 오브 드림》을 읽는 데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뉴욕 빙엄턴대 교수 리즈 로젠버그는 ‘앤’이 즐겨 쓰는 말인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희망의 아이콘’을 빚어낸 몽고메리의 역설적인 삶을 그린다.
“노부부가 고아원에서 남자아이를 입양하려 했는데, 착오가 생겨 한 여자아이가 온다.” 1904년 캐나다 에드워드섬, 30세 ‘병아리 소설가’ 몽고메리가 한 메모를 발견한다. 영감이 타올라 18개월간 집필에 몰두한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운” 앤 셜리는 그렇게 탄생한다. 여러 번 퇴짜맞다 1907년 한 출판사에서 출간돼 그해에만 2만 부 가까이 팔렸다. 마크 트웨인은 앤을 “불멸의 앨리스 이후로 소설 속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라 말했다.
몽고메리는 두 살 때 폐결핵으로 엄마를 잃었다. 엄격한 외조부모 밑에서 자랐다. 외로운 소녀는 찬장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친구 삼았다. 평생 계절성 우울증에 시달렸다. 글쓰기가 유일한 구원이었다. “글을 쓰지 않거나 작가가 되고 싶지 않았던 적은 없다”고 일기에 적었다. 16세 때, 재혼한 아버지 집에 살러 간다. 새어머니는 그를 하녀처럼 부렸다. 빠듯한 살림에도 손녀 교육엔 헌신적이었던 외할머니 덕에 대학에 진학해 교원 자격증을 딴다. 교사, 교열기자 등으로 일하며 글을 쓴다. 그의 결혼을 원치 않던 외할머니가 1911년 2월 세상을 뜬다. 7월, 목사 이완 맥도널드와 결혼한다. 37세였다.
남편은 조울증 환자였다. 신(神)에게 선택받지 못했다는 망상에 빠져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도 저주받은 운명이라 확신했다. 아내의 인기를 시샘했다. 몽고메리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두 번의 출산과 한 번의 사산(死産), 두 차례 세계대전 와중에도 계속 썼다. 남편의 신경쇠약, 큰아들의 가정불화, 출판사와의 소송, 비평가들의 조롱…. 고난으로 얼룩진 말년을 다작하며 보냈다. 1937년 봄 8권짜리 앤 시리즈의 마지막 《잉글사이드의 앤》을 완성한다. 1942년 4월 24일 침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너무나 끔찍한 상황인데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여러 실수에도 불구하고 늘 최선을 다하려고 했던 생을 이렇게 마감하게 되다니.”
전 세계에 긍정 바이러스를 퍼뜨린 작가가 지독한 고통 속에서 생을 마쳤다는 건 아이러니다. 하지만 몽고메리는 말했다. “내 작품에 내 삶의 그늘이 들어가지 않아 정말 다행이다. 나는 다른 어떤 삶도 어둡게 만들고 싶지 않다. 긍정과 밝음의 전도사가 되고 싶다.”
- 글 곽아람_《조선일보》 기자, 《바람과 함께, 스칼렛》 저자
사진 제공 윌북, 아르테(ar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