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공연 플랫폼의 변화영화관에서 공연을 보는 시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공연계에 다시 영상이 화두가 됐다. 다만 상반기에는 온라인 무료 공연을 통해 관객과 관계를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하반기에는 생존에 무게가 실렸다. 바로 유료 온라인 공연이다. 일부에서는 동시에 플랫폼에 집중하고 있다. 자체 온라인 콘텐츠를 가지고 있더라도, 이를 송출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갖고 있지 않으면 여러모로 불편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플랫폼의 오프라인 확장도 시도하고 있다.
1 지난 8월 개봉한 <늙은 부부이야기: 스테이지 무비>
영화관, 공연장의 시공간적 한계를 뛰어넘다
‘거리 두기’가 중요한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그간 공연장 객석 띄어 앉기는 국공립 공연장에만 한정됐다. 그런데 이번에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민간 공연장에도 띄어 앉기가 의무가 됐다. 대극장의 경우 객석 점유율 70%를 기록해야 수익분기점을 겨우 넘길 수 있다. 띄어 앉기를 하면 객석의 절반밖에 채우지 못한다. 공연을 올리면 올릴수록 손해가 나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공연 영상물의 영화관 상영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영화는 스크린만 확보된다면 좌석을 한없이 늘릴 수 있다. 한 시각에 한 장소에서 한 번밖에 못 하는 공연의 시공간적 한계도 극복할 수 있다. 티켓 값도 2만 원 안팎으로 책정할 수 있으니, VIP석이 10만 원이 훌쩍 넘는 대극장 뮤지컬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스마트폰 또는 노트북, 좀 더 상황이 나으면 IPTV로 보는 온라인 공연보다 훨씬 더 큰 화면으로 몰입감도 상당하다. 지난 8월 개봉한 예술의전당 <늙은 부부이야기: 스테이지 무비>가 공연 영상물의 영화관 상영에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흥행에서는 재미를 보지 못했지만, 연극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서정적 쾌감을 안겼다. 예술의전당이 작년 9~10월 자유소극장에서 대학로의 덕우기획과 손잡고 올린 <늙은 부부이야기> 연극 버전을 영상화한 작품. 2003년 초연 이후 ‘황혼 로맨스’ 또는 ‘황혼 노(老)맨스’의 정석이라 불리는 이 작품은 노년의 정신적 사랑, 성(性)에 대해 남세스럽지 않게 다루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첫사랑보다 더 설레게 하는 봄을 시작으로 뜨거운 여름, 과실이 무르익는 가을을 지나 삶의 시소가 확실히 죽음으로 기우는 겨울로 종종걸음을 치는 계절감을 한 공연장에 갇힌 연극의 특성상 표현하기 힘들었는데 ‘스테이지 무비’는 이를 극복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외부에서 촬영한 자연환경 장면을 ‘인서트 컷’으로 넣었다. 한국 영화 ‘프로듀서 1세대’로 통하는 영화 기획·제작자 출신인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이 관객에게 어떻게 하면 공연 영상을 더 생동감 있게 전달할지 고민한 결과물이다. 예술의전당이 2013년 지역 문예회관과 영화관에서 상영할 수 있도록 공연예술을 영상화해 온 ‘싹 온 스크린(SAC On Screen)’의 변주이기도 하다. 코로나 시대를 맞아 ‘싹 온 스크린’은 올해 상반기에 처음 온라인 스트리밍을 진행했는데, 한발 더 나아가 ‘스테이지 무비’는 공연 영상 플랫폼의 다양성을 확보했다. 웰메이드 공연 영상의 존재 가치는 관객이 공연장에서 경험하지 못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컨대 영국 국립극장의 공연 영상화 브랜드인 ‘NT라이브’는 연극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영상에서 공연장 객석에서는 볼 수 없는 무대 바닥을 ‘버드 아이 뷰 숏’으로 보여준다. 이미 2015년 6월 영화사 숨이 연극 공연과 영화의 협업을 표방한 ‘DnC 라이브(Live)’를 론칭, 연극 <혜경궁 홍씨>를 스크린으로 옮겨내는 등 한국에서도 공연 영상물의 영화관 상영이 시도됐다. 그때는 가능성을
실험하는 선택 단계였다면 코로나 시대인 현재는 필수가 됐다. 멀티플렉스 CGV가 지난 7월부터 매달 2편의 해외 뮤지컬 실황 영상을 상영하는 ‘월간 뮤지컬’도 그런 노력의 하나다.
2 뮤지컬 <광염소나타>의 한 장면
비대면 일상 속 공연 플랫폼은 진화 중
메가박스 등의 극장은 유럽과 미국의 주요 오페라, 대형 오케스트라 공연 등을 일찌감치 영화관에서 상영해 왔다. 비용 문제 등으로 보기 힘든 해외 유명 오페라·클래식 공연을 저렴하게 볼 수 있어 마니아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번 연극, 뮤지컬 영화관 상영은 특정 마니아보다 더 다양한 관객층을 겨냥한다는 점에서 코로나 시대에 연극·뮤지컬의 플랫폼을 확장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예술의전당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해 침체된 공연과 영화 콘텐츠 시장에 국내 창작 연극의 영상화로 플랫폼을 변동·확장하는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9월 9일 발표한 공공 예술기관의 온라인 강화 계획을 담은 ‘코로나 일상 속 비대면 예술 지원 방안’에서 예술의전당이 실감형 기술을 결합한 공연 영상을 제작할 수 있도록 15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예술의전당 내 공연 영상화 종합 스튜디오 설립을 위해 32억 원도 지원한다. 예술의전당 같은 국공립극장 외에 민간 뮤지컬 제작사도 공연 중계 플랫폼 사업에 뛰어들었다. 한국 뮤지컬 콘텐츠를 개발·제작·수출하는 글로벌 콘텐츠 제작사 (주)신스웨이브의 이야기다. 9월 18일부터 온라인으로 뮤지컬 <광염소나타>의 세계 송출을 결정했는데, 역시 공연을 선보일 수 있는 플랫폼을 다양화했다. 일본에서는 아사히TV 계열사인 ‘데레 아사 동화(テレ朝動)’의 특집 섹션을 통해 일본 전역에 상영한다. 특히 9월 26일 공연은 라이브 뷰잉을 결정, 한국 CGV와 홍콩 전역의 영화관에서 동시 상영한다. ‘슈퍼주니어’ 려욱, ‘펜타곤’의 후이 등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출연해 가능했다. 동방신기 등 일본을 중심으로 한류스타 아이돌 콘서트의 극장 상영은 일반화돼 있다. 지난해 방탄소년단 일본 콘서트는 추첨제로 관객을 뽑았는데, 영화관 상영도 관람 신청자가 너무 많아 이 역시 추첨제로 관객을 선별했다. 코로나 시대에 갇힌 공간의 한정된 좌석에서 돌파구를 모색해야 하는 공연장에 영화관은 선택지를 늘려줄 수 있다.
- 글 이재훈_《뉴시스》 기자
사진 제공 예술의전당, 신스웨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