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극 <잊혀진 땅>. (예술경영지원센터 제공)
현재진행형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잊혀진 땅> 10. 18~10. 20,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에 있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당시보다 100배가 넘는 방사능을 배출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원자력 사고였다. 사고로 인한 피폭자는 22만 명에서 많게는 83만 명에 이른다. 체르노빌은 33년이 흐른 지금도 생명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땅’이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가던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최근 미국 HBO에서 방영한 5부작 드라마 <체르노빌>을 계기로 다시금 관심의 도마 위에 올랐다. 사고 당시 상황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재현한 이 드라마는 8년 전 일본에서 일어난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환기시키며 방사능의 공포를 체감케 했다.
‘제19회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소개하는 벨기에 예술단체 포인트제로의 <잊혀진 땅>의 소재 또한 체르노빌 원전 사고다. 연출가 장 미쉘 드우프를 비롯한 창작진이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사고 당시 체르노빌에 거주했던 지역주민들을 만나 이들의 증언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
작품은 관객을 ‘자연방사능보호구역’이라는 이상한 이름이 붙여진 불가사의한 지역으로 초대하며 시작한다. 스라소니, 늑대, 들소, 야생마, 집을 찾아 돌아온 노인 몇 명, 그리고 버려진 도시 프리퍄티가 무대 위에 펼쳐진다. 인형극의 형식을 빌려 방사능의 공포를 표현한 것이 특징. 잊혀가는 역사와 여전히 피해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을 조명함으로써 우리가 묵과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의식을 되새긴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연극 프로그래머를 맡고 있는 연출가 이병훈은 “<잊혀진 땅>은 인형극이기에 가능한 독특한 표현을 통해 방사능이 얼마나 위험한지, 우리의 삶을 어떻게 흔들어놓는지를 잘 보여준다”며 “이번 축제는 방사능과 전쟁 등 우리에게 굉장히 절박한 문제들을 통해 불안을 사유하고 시대를 조명할 수 있는 작품들로 꾸렸다”고 말했다.
2 무용 <하늘>. (서울세계무용축제 제공)
몸짓으로 승화한 ‘아사마 산장 사건’<하늘> 10. 11, CKL스테이지
일본의 신좌파 테러 조직인 연합적군은 1972년 2월 19일부터 28일까지 일본 나가노 현에 위치한 아사마 산장에서 인질극을 벌였다. 경찰의 돌입작전으로 인질들은 다행히 무사히 풀려났다. 그러나 충격적인 진실은 사건 종료 후 드러났다. 연합적군이 사상 단결을 이유로 29명의 대원 중 12명을 구타 등의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한 사실이 산장 조사 과정에서 밝혀진 것이다. 그동안 과격한 행동을 일삼던 일본 좌익들의 활동은 ‘아사마 산장 사건’의 여파로 끝나고 만다.
그동안 영화나 소설 등으로 만날 수 있었던 ‘아사마 산장 사건’이 이번에는 무용으로 국내 관객과 만난다. ‘제22회 서울세계무용축제’에 초청된 일본 무용단 케다고로의 <하늘>이다. 폭력을 테마로 한 ‘포커스 바이올런스’ 부문의 선정작이다.
‘아사마 산장 사건’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잘못된 신념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하늘>의 방점 또한 바로 극단적 이데올로기에 감춰진 폭력성에 있다. ‘자아비판’이라는 명목으로 동지들을 린치하고 살해한 비극적인 사건을 저돌적인 몸짓과 거친 음악, 독백으로 풀어낸다. 기저귀를 연상시키는 의상처럼 다소 코믹한 연출도 눈에 띈다. 그러나 작품 안에 담긴 메시지는 무겁고 아프다.
케다고로는 2018년 요코하마 댄스 컬렉션에서 주목받으며 급부상한 젊은 무용단이다. 안무가 시모지마 레이사가 키고로 아카네와 함께 2013년 설립했다. 우리가 태어난 이 세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무용으로 탐구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 중이다.
시모지마 레이사는 “이 불행한 사태를 낭만적인 무용예술로 만드는 작업이 과연 의미 있는지 고민했지만 그래도 안무가로서의 소임을 다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늘>은 2019년 제12회 후쿠오카 댄스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처음 선보였으며 한국 외에 홍콩, 싱가포르에도 초청받았다.
- 글 장병호_이데일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