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서울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문화+서울

문화+서울

  • 지난호 보기
  • 검색창 열기
  • 메뉴 열기

사람과 사람

10월호

작가의 방
'작가의 방'에서는 문화예술계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를 선정해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본 게시글은 한겨레신문의 <서울&>에 소개되는 '사람in예술'에 동시 게재됩니다.
권병준 작가소통 도구가 된 헤드폰

“자유로운 개인들도 조화로운 공동체를 꿈꿀 수 있을까?”

지난 9월 11일까지 금천예술공장에서 열린 기술과 예술의 융합축제 ‘다빈치 크리에이티브’에 참여한 권병준 작가의 <자명리 공명마을>은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했다. 한때 인디밴드 삐삐롱스타킹의 메인 보컬로 활동한 그는 활동 영역을 바꾼 이유가 ‘서양음악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자신만의 악기로 자기 음악을 만드는 창작자가 되고 싶어 유학을 결심했다. 이때부터 소리의 원리를 연구한 권 작가는 자연스럽게 전기, 전자, 영상 등 미디어 분야의 예술가로 영역을 넓혔다. 권 작가는 평소의 궁금증을 해결할 오브제로 개인화의 상징인 ‘헤드폰’을 선택했다. “그동안 고민해온 ‘자명’, ‘공명’, ‘공감’을 본격적으로 구체화했어요. 스스로 울리는(자명), 고립된 성질의 헤드폰을 쓴 사람들이 서로 가까이 가서 인사하면 상대방의 소리와 섞이도록(공명) 했습니다. 마주친 그들에게 목례하면서 공동체를 함께 느끼게(공감) 될 거예요.”
그동안 ‘공동체’에 관해 고민했던 그는 전작 <오묘한 진리의 숲>에서도 헤드폰을 썼다. 하지만 그는 “헤드폰이라는 소재는 같지만 성격은 정반대”라고 잘라 말했다. “전작에서는 특정 장소에서 특정 소리를 들려주는 헤드폰을 스스로 선택해 소리를 감상할 수 있어 개인성이 강했습니다. 이번엔 위치와 상관없이 서로에게 다가간 사람들의 소리가 섞이게 됩니다.”
전화와 문자 외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이용하지 않는다는 작가는 전시에 헤드폰을 쓰고 참가한 이들에게 그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고립된 개인들이 SNS만으로 소통인 척하는 외로운 손가락질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서로에게 막말하지 않고 예의를 갖춰 인사하면서 반갑게 다가가 공감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자명리 공명마을>.

권병준은 1990년대 초반 싱어송라이터로 시작해 얼터너티브 록에서 미니멀 하우스를 포괄하는 6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2005년부터 네덜란드에서 음향학과 전자음악을 공부했으며, 스팀(STEIM)에서 하드웨어 엔지니어로 일했다. 2011년 귀국 후 뉴미디어 퍼포먼스를 기획·연출했으며, 사운드를 근간으로 하는 미디어아티스트로 활동한다.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인터랙션 사운드랩 펠로로, 서강대 영상대학원 예술공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허성진 작가 그림의 한계 넘은 만남

“똑같이 훈련된 방식으로 따라 그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지난 9월 5일까지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글과 그림으로 의미를 형상화한 이색 전시 <ㅇㅁㅇㅇㅁㅈ>을 연 허성진 작가는 평소 고민했던 점을 이렇게 밝혔다. 대학에서 배운 전통적인 그림에 한계를 느껴 한때는 붓을 내려놓고 집필에 몰두해 소설을 습작하기도 했다. ‘의미의 이미지’에서 초성만 따 제목으로 삼은 이번 전시는 글과 그림을 통해 의미가 드러나는 순간과 전달되는 방식에 주목했다. “눈에 보이는 사물을 단순히 똑같이 그리는 행위에 회의감이 들었어요. 그대로 그려도 결국 사물이 될 수 없는데 말이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죠.”
허 작가의 다짐은 ‘화가가 그림을 그리기 전에 시를 염두에 두고 작업한다’는 조선 시대의 ‘시의도’(詩意圖, 시의 뜻을 주제로 한 그림) 사상을 떠오르게 한다. 이는 문학과 시각예술이 다른 존재가 아니라 서로 맞닿아 있음을 보여주는 예술 형식으로, ‘글과 그림의 의미 전달이 유사하다’는 뜻이다.
허 작가는 글과 그림 중 어느 한쪽만으론 의미를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에 공감한 이미선 화가와 손을 잡았다. 일상의 의사소통에서 느끼는 낯섦과 먹먹함을 추상회화(그림물감이나 페인트를 떨어뜨리거나 뿌려서 화면을 구성한 그림)로 표현한 이 작가의 작품 9점을 벽면에 설치하고, 그 앞에 글로 메운 허 작가의 커튼 작품 5점을 가로막듯 걸었다. 관람객은 두 종류의 작품 속에서 작가의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관람 방법을 동원해야 했다. 그림의 아쉬움을 극복한 작가와 글의 한계를 헤쳐나간 작가가 협업으로 전시를 완성했다. 이렇게 색다른 전시로 이미지를 이해하는 방식을 제시한 이유를 허 작가는 이렇게 밝혔다. “그림만이 그동안 알고 있던 이미지 전달 방식의 전부가 아니에요. 그것 말고도 글과 작가가 삼위일체로 소통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어느 일방적인 방법으로만 이해하지 않고 글과 그림의 경계, 그 틈에서 새어 나오는 새로운 의미를 발견했으면 좋겠어요.”

모형 사진.

허성진은 중앙대 서양회화과를 거쳐 영국왕립예술학교(RCA)에서 회화로 석사 졸업했다. 주요 전시로는 <간접화법>(2017, 아트스페이스오), <이야기된 기호>(2018, 에무갤러리) 등이 있다. 2017년에는 아트스페이스오에서 레지던시 작가로 선정됐으며, 2019년에는 서교예술실험센터의 ‘소액다컴’에 선정됐다.

석혜미 ‘뮤랑극단’ 리더뮤지컬로 가는 길잡이

“아직 뮤지컬을 만나지 못한 분들을 위해 전도사가 되고 싶어요.”

서울 곳곳에서 뮤지컬 갈라쇼를 선보이는 ‘뮤랑극단’의 리더 석혜미는 9월 8일 열린 남산 팔각정에서의 공연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뮤랑극단은 서울시가 지난 3월 공개오디션으로 선발한 버스커 ‘서울거리공연단’의 200개 팀 중 하나다. 지난 4년간 열심히 활동한 경력을 인정받아 이제는 공연단 중 대표 공연단으로 선정돼 마음껏 공연할 수 있다고 고백했다.
뮤랑극단은 원래 10명으로 구성된 아마추어 팀으로 출발했는데, 동호회보단 진짜 뮤지컬을 해보고 싶어 배우 지망생인 최태환과 함께 이 단체를 결성했단다. “예전엔 초등학교에서 영어도 가르쳤고, 대기업에도 다녔는데, 뮤지컬이라는 꿈을 버리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는 춤을 추다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중상을 입었다. 이후 회복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이제는 한국예술종합학교와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작가 교육을 받고 있다.
그가 공연한 30분은 뮤지컬 갈라쇼와 옷을 갈아입는 코스튬 체인지쇼로, 총 5번의 변신이 이어졌다. 잘 알려진 곡을 따라 부를 때보다 자작곡을 부를 때가 행복하다며,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노래를 대중에게 들려줬다. “사실은 당당한 아빠이고 싶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어/ 태생부터 올빼미인 내가 새벽 기상에 만원 버스 지옥/ 가장의 이름으로 이 악물고 버텼지”. 외환위기(IMF) 때 권고사직당했던 아버지의 속마음을 상상하며 만든 <찌질이 블루스>를 부르는데, 손에 막걸리 한 병 든 아저씨가 두 번 접힌 지폐를 주고 가 눈시울이 뜨거워졌단다.
뮤지컬의 새로운 세계를 도전하는 그는 인생의 목표를 이렇게 공개했다. “아직도 가지 못한 곳으로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돼 있어요. 언젠가 제가 만든 곡이 더 큰 무대에서 불릴 때까지 열심히 활동할 테니 지나가다 보면 많이 응원해주세요.”

‘뮤랑극단’ 공연 모습. (서울특별시 문화본부 제공)

석혜미는 연세대 영문과와 한국문학번역원(영어권)(2017)을 졸업했으며, 아르코-한예종 뮤지컬창작아카데미(2018)를 수료했다. 북성초등학교 영어 강사였고(2011), 아모레퍼시픽에서 근무했으며(2011~2013), 2015년부터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서 <액트 빅, 씽크 스몰>, <슈퍼 파워 암기법>, <지속가능한 교육을 꿈꾸다> 등을 번역했다. 2018년에는 뮤지컬 <티>(T)의 각본을 썼다.

전유안 기자 ‘닫힌 방’에 손 내밀기

“서울의 쪽방, 반지하 등 가난한 이들의 방에 사람들의 관심이 가닿길 바랐어요.”

9월 27일까지 영등포구 당산동 서울하우징랩에서 열린 주거실험실 기획전 <플라이미투더#룸>(Fly Me To The #Room)을 기획한 <서울&> 전유안 객원기자는 기획 의도를 이렇게 밝혔다. 그는 지난 3년 6개월간 서울의 다양한 문화공간을 취재해왔지만, 무엇보다 “방에 꽂혔다”고 한다. 방은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며, 그래서 “사회로부터 밀폐된 공간”이기도 하다. 특히 1인 가구가 560만에 이른 오늘날, 방은 “고립된 이들이 각자 살아남아야 한다는 ‘은근한 공포’에 휘둘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방은 또 인권을 지키는 최소한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해 41.8℃의 기록적인 폭염을 견디던 노숙인 출신의 한 여성과 인터뷰를 하며 이를 깊이 느꼈다고 한다. “서울에 내 방 하나 없다는 것, 그건 외계인처럼 우주를 떠도는 기분일 거예요.”
서울도시주택공사(SH) 공모전으로 진행된 이번 전시는 그가 취재하며 느꼈던 이런 문제의식을 담기에 적절했다. 서울하우징랩 전시공간에 있는 책장을 그대로 활용해 책장의 작은 칸들을 자신이 취재한 30여 명의 개별적 방으로 꾸몄다.
그는 왜 취재 경험을 기사에 담는 데 그치지 않고 전시장까지 가져온 것일까. “더 많은 사람이 타인의 방에 손 내미는 경험을 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서로의 방에 관심을 가진다면 사회안전망을 넓히고, 타인과 신뢰를 쌓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요?” 그 사례로 지난해 취재했던 여성 노숙인을 들었다. “제가 취재한 이후 그분이 서울시의 시민기자단에 지원해 뽑혔다며 저를 취재하러 오셨어요. 오래도록 고립됐던 자신의 방에 누군가를 들인 경험이 자신이 방 밖으로 나가는 계기가 됐대요.” 그는 자신의 실험적 전시공간에서 관람객들이 이런 ‘손잡음의 체험’을 했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냈다.

서울하우징랩에서 열린 <플라이미투더#룸> 전시 전경.

전유안은 2016년부터 <서울&>에서 서울의 문화·여행·역사 소식을 취재하는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3대 사진가의 서울’(2018), ‘우리동네 3·1운동’(2019), ‘주거 취약자들의 서울살이’(2019) 등을 취재했다.

글 이규승_서울문화재단 홍보팀장
위로 가기

문화+서울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