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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10월호

영화 <체실 비치에서>와 <나비잠>독서를 부르는 영화
어느덧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는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각기 다른 이유에서 독서를 부르는 두 편의 영화를 소개한다. <체실 비치에서>는 <속죄> 등으로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은 이언 매큐언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이언 맥큐언이 직접 영화 시나리오를 맡아 소설과 영화의 거리를 한결 가깝게 만들었다. 일본 영화 <러브레터>의 나카야마 미호와 한국 배우 김재욱이 주연을 맡은 <나비잠>은 기억을 잃어가는 소설가의 이야기다. 팔레트 같은 서재의 이미지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활자와 책의 의미를 되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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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체실 비치에서>.

사랑의 의미를 묻다도미닉 쿡 감독의 <체실 비치에서>

여기, 이제 막 부부가 된 두 사람이 있다. 아마추어 사중주단의 리더 플로렌스(시얼샤 로넌)와 역사학과 대학원생 에드워드(빌리 하울)는 결혼식을 올리고 ‘체실 비치’로 신혼여행을 왔다. 이 커플은 시작부터 평범하지 않았다. 너무 고지식한 취향에, 나무나 꽃 이름을 잘 아는 상대의 모습에 끌렸다고 고백하며 다소 촌스러운 스타일링도 사랑스러움의 근거가 된다. 동시에 두 사람은 모든 것이 처음이다. 연인이 첫눈에 서로에게 끌리고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이어지는 매 단계가 일견 서툴게 보이지만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한다. 하지만 주인공들이 섹스 경험이 전혀 없다는 사실은 연인과 성에 대해 세상이 요구하는 어떤 틀에 자신을 비집어 넣는 과정에서 가치관의 충돌을 야기한다.
영화의 주된 배경이 핵실험 금지 조약을 논의하던 1962년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본격적인 성적 해방이 시작되지 않았던 시대, 플로렌스는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 꽉 막힌 상류층 가정에서 자랐고, 에드워드는 뇌손상 사고를 당한 어머니를 두고 있다. 두 사람의 성장 배경은 어설픈 첫 섹스가 왜 그런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게 하는 퍼즐 조각이다. 영화는 1962년 결혼 당일을 기준으로 과거를 오가며 단서를 준다. 영화를 연출한 도미닉 쿡은 영국의 저명한 연극 연출가로, 결혼 당일 호텔에서 벌어지는 일을 기준점으로 삼아 이야기를 전개하는 구성을 잘 살렸다. 그렇게 <체실 비치에서>는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던 두 사람의 연대기를 통해 사랑과 섹스의 의미를 색다르게 묻는다. 또한 섬세한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는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그 원전이 된 소설의 텍스트를 궁금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영화 <어톤먼트> 제작 당시에는 각본에 참여하지 않았던 이언 매큐언이 <체실 비치에서>에서는 2010년부터 시나리오 작업에 합류하며 제작 프로듀서에까지 이름을 올렸으니 소설과 영화 사이의 거리도 태생적으로 가깝다. 평생을 좌우하는 특정한 어떤 날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언 매큐언의 <속죄>를 떠올리게 하며 작가의 색깔을 곱씹게 만든다.

관련 이미지

영화 <나비잠>.

삶과 기억을 바라보는 방식정재은 감독의 <나비잠>

료코(나카야마 미호)는 유전으로 인한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소설가다. 유치한 통속 소설로 유명해진 그는 학생들에게도 무시당하는, 예술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작가였지만, 병을 계기로 오히려 달라진 모습을 보이려고 한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 원치 않던 그가 낭독회를 열고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며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다. 한편 료코는 일본 소설에 빠져 일본으로 건너온 한국인 유학생 찬해(김재욱)가 자신의 만년필을 찾아준 것을 계기로 그와 가까워진다. 찬해는 료코의 반려동물을 대신 산책시켜주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그의 일상으로 들어온다. 연도별, 작가별로 딱딱하게 정리했던 료코의 서재를 채도와 명도에 따라 재정리하는 일을 돕고, 료코의 유작을 글이 아닌 말로 만들어가는 작업을 돕는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지만, 료코의 알츠하이머 증상은 점점 심각해진다.
<나비잠>의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는 마치 팔레트 같은 서재의 풍경이다. 료코가 아이디어를 내고 찬해가 실행에 옮겨 완성한 이 아름다운 그림은 <나비잠>이 삶과 기억을 바라보는 방식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책은 인간의 기억을 담고, 인간은 문장을 통해 기억을 정리할 수 있다. 때문에 잃어가는 기억을 안타까워하기보다는 남은 기억을 아름답게 정돈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 과정도 하나의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가치관은 료코의 서재를 통해 시각화된다. 우연적으로 손에 잡히는 책을 읽게 되는 그의 서재처럼, 삶에서 맞이할 우연적인 인연이 중요하다는 의미도 자연스레 녹아든다. 또한 찬해의 일본어가 서툴다는 설정은 일본어 문장의 작은 뉘앙스 하나까지 섬세하게 짚어나갈 수 있게 만드는 재미있는 장치다. 결과적으로 <나비잠>은 영화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친(親)문학적인 가치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단순하게는 우리 각자의 서재를 어떻게 재구성해야 할지, 더 나아가 문장과 책이 가진 힘을 생각하게 만든다.

글 이주현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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