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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6월호

영화 <원더스트럭>과 <트립 투 스페인>영화가 우리를 데려다주리라
영화는 우리를 낯선 곳으로 인도하고, 잘 안다고 생각했던 곳도 새롭게 보게 만든다. 휴가철에 비싼 비행기 표를 끊지 않아도 여행의 재미를 만끽하게 해줄 두 편의 영화를 소개한다. 토드 헤인즈 감독의 <원더스트럭>은 1927년과 1977년의 뉴욕으로 우리를 소환한다.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트립 투 스페인>은 두 남자의 기상천외한 로드 무비다.

뉴욕 다시 보기토드 헤인즈 감독의 <원더스트럭>

<원더스트럭>은 각자의 이유로 뉴욕에 가야만 했던 두 어린이의 이야기다. 1927년의 로즈(밀리센트 시먼스)는 선천적인 청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집에 거의 갇혀 지낸다. 이혼 후 뉴욕에서 배우 생활을 하고 있는 엄마 릴리안 메이휴(줄리안 무어)를 만날 수 없어 그에 관한 신문 기사를 모으고 있다. 1977년의 벤(오크스 페글리)은 이제 막 사고로 청각을 잃었다. 엄마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났고, 아빠는 얼굴도 모른다. 벤은 엄마가 남긴 <원더스트럭>이라는 책에서 발견한 뉴욕 서점의 책갈피가 아버지의 행방을 알려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로즈와 벤은 각각 배와 버스를 타고 홀로 뉴욕으로 향하고, 두 사람 모두 미국 자연사박물관에 도착한다.
<원더스트럭>이 거의 무성영화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은 필연적이다. 먼저 1927년 로즈의 이야기는 아예 무성영화 형식을 취하면서, 청각장애인인 그가 느낄 감각을 관객에게도 전이시킨다. 1977년의 벤은 제이미(제이든 마이클)를 만나기 전까지는 타인과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아 거의 무성영화에 가깝게 느껴진다. <원더스트럭>의 원작자 브라이언 셀즈닉은 “유성영화는 기술의 승리이자, 모든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청각장애인 문화와 역사의 관점에서 볼 때, 유성영화는 청각장애인이 즐길 수 없는 문화였으며 이는 비극이나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또한 제작진은 청각장애인의 입장을 보다 잘 반영하기 위해, 실제 청각장애인이 로즈를 연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밀리센트 시먼스는 제작진이 북미의 한 농아학교 연극부에서 발견한 신예다.
청각장애인이 건청인처럼 영화를 즐길 수 있었던 시절로 돌아가 시각 언어에 집중한 <원더스트럭>은 우리가 알던 풍경을 다르게 만든다. 시각 정보에 집중해 작품을 감상하게 하고, 뉴욕의 풍경 하나하나에 더 집중하게 한다. 1927년의 뉴욕은 청각장애인을 위한 교육 시스템이 미비한 대신 도시 전체의 분위기는 낭만적이고, 1977년의 뉴욕은 시스템이 확립된 대신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토드 헤인즈 감독은 “1920년대는 청각장애인의 교육에 비관적인 시기였다. 1970년대에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훨씬 진보적인 법과 기회가 존재하는 대신 경제적으로 더 고통받는다”고 설명했다. 또한 <원더스트럭>의 뉴욕은 다양한 소통 방법을 찾아나갈 수 있는 공간이다. 로즈와 벤은 물론 주변 사람들 역시 서로 소통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시행착오를 거친다. 영화 속에서 수없이 묘사됐던 뉴욕이 <원더스트럭>에서는 새삼 달라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원더스트럭 트립투 스페인 이미지

1, 2 영화 <원더스트럭>.
3 영화 <트립 투 스페인>.

여행지에서도 삶은 계속된다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트립 투 스페인>

<트립 투 잉글랜드>, <트립 투 이탈리아>에 이은,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여행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은 ‘옵저버’와 ‘뉴욕 타임즈’의 지원으로 레스토랑 리뷰 시리즈를 이어간다. 스티브 쿠건은 21살에 떠난 스페인 여행을 에세이로 펴낸 영국 작가 로리 리처럼 이번 여행을 기록하고자 한다. 자식 둘을 키우느라 진 빠지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롭 브라이든은 조금의 고민도 없이 여행에 합류한다.
전작이 그랬듯 문화적 맥락을 알수록 더 즐거운 두 남자의 수다가 가득하다. 그들의 대화는 데이비드 보위부터 피카소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가리지 않는다. 가령 영화 초반 롭 브라이든이 “믹 재거처럼 되지 않으려면”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롤링스톤스의 보컬 믹 재거가 72살의 나이에 43살의 여자친구와 8번째 아이를 출산했다는 배경 지식이 있어야 즐길 수 있는 코미디다. 스티브 쿠건이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도 오른 영화 <필로미나의 기적>의 각본가였다는 사전 지식이 있어야 웃을 수 있는 대목도 있다. 또한 마이클 케인의 성대모사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했던 <트립 투 잉글랜드>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두 남자는 말론 브란도, 로버트 드 니로, 우디 앨런을 비롯한 유명인의 성대모사를 하며 상황극에 열을 올린다. 이런 코미디들 때문에 한창 수다를 떨다 조용히 풍경을 바라보는 사색의 순간이 더 빛을 발하기도 한다.
결국 두 사람이 여행지에서 하는 일은, 타지에 놔두고 온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아무리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다채로운 곳에 있어도 관계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특히 쿠건의 상황이 보다 복잡하다. 20살이 된 쿠건의 아들은 여자친구가 임신을 하는 바람에 쿠건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미샤(마고 스틸리)는 쿠건이 아닌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진다. 영화의 다소 당황스러운 마무리는 우리의 고질적인 질문에 그럴싸한 해답은 없다는 은유일지 모른다.

글 임수연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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