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세운 프로젝트
‘세운상가’라고 하면 종묘와 마주 보고 있는 세운상가 건물 하나만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종로에서 시작해 퇴계로까지 약 1km에 이르는 주상복합건물단지를 말한다. 세운상가를 설계한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은 1967년 건립 당시 세운·청계·대림·삼풍·풍전·신성·진양 등 7개 상가를 연결하는 보행데크를 건물 3층에 설치해 도심 한가운데를 관통시키고자 했으나 꿈을 실현하지 못했다. 이후 50년이 지나 ‘다시·세운 프로젝트’의 1단계 구간인 세운·청계·대림상가 재정비를 통해 총 500m에 달하는 3층 높이의 보행데크가 설치되었다. 세운 메이커스 큐브(이하 큐브)는 설계자의 원래 의도대로 이어진 보행데크 공간을 활용해 조성했다. 보행데크 2층과 3층, 동쪽과 서쪽에 29개의 컨테이너가 줄지어 들어섰다. 큐브에는 세운상가 수리장인들이 만든 수리수리협동조합을 비롯해 전자의수를 만드는 ‘만드로’, 대화형 반려로봇을 제작하는 ‘서큘러스’ 등 16개의 스타트업과 예술가 그룹이 입주했다. 계단과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를 통해 지상에서 바로 올라갈 수 있는 보행데크는 바깥세상과 세운상가를 연결해 준다. 큐브를 마주 보고 있는 기존 상가도 공방, 카페, 음식점 등이 하나둘 들어서고 젊은이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활기를 띠고 있다.
반세기 기술사 조명, 세운전자박물관
세운전자박물관(세운 메이커스 큐브 세운-서301)은 세운상가 서쪽 데크 3층에 자리한다. 개관 기념 기획 전시로 우리나라 기술문화 발전의 기틀을 닦은 세운상가와 청계천 일대의 역사와 기술자들을 재조명하는 <청계천 메이커 三代記>가 올해 말까지 열린다. 전시는 세운상가의 시작부터 현재까지를 1~3세대로 구분해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1세대는 1950~60년대로 한국전쟁 전후 자생한 청계천 전자상가 소리미디어 시대, 2세대는 세운상가가 들어선 후 전자제품이 활발하게 거래되고 자체 개발된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멀티미디어 시대, 3세대는 3D 프린팅 등 새로운 기술과 콘셉트의 기술자원이 유입된 200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네트워크 미디어 시대이다. 기술자들의 작업공간을 재현해놓아 주요 전자제품과 개발품을 세대별로 살펴볼 수 있다. 진공관 라디오, 오픈릴 테이프 레코더, 트랜지스터 텔레비전 등 희귀 전시품들은 세운상가 일대 기술자들이 제공했다.
3세대 공간은 큐브 입주업체들의 제작품을 중심으로 전시한다. 임플란트, 연골 등을 만드는 의학용 3D 프린터, 근육의 움직임을 인식해 센서가 작동되는 전자의수, 물고기 배설물로 식물을 키울 수 있는 아쿠아팜 등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개관 이후 반응을 묻자 오아영 홍보매니저는 “아직 일반 시민보다 학생이나 관계자들의 방문이 많다. 건축 전공 대학생들이 답사를 많이 오고, 지방의 도시재생 담당자, 스타트업 관계자 등 정말 다양하다”면서 홍콩, 싱가포르, 마카오 등 해외에서도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11월까지는 매주 화요일 초등학생 단체를 대상으로 ‘세운 영메이커 교육’을 진행한다. 큐브에 입주한 ‘만드로’와 로봇의수 만들기 체험을 하고, 세운전자박물관, 세운테크북라운지 등을 둘러보는 과정이다.
1 세운전자박물관 내부.
2 큐브 입주업체들의 제작품을 중심으로 전시한 3세대 공간.
3 세운전자박물관 전시품.
4 세운상가 상인과 제작자들의 협업을 위한 세운워크룸.
5 세운테크북라운지
영감을 주는 쉼터, 세운테크북라운지
박물관에서 데크를 따라 청계천을 건너 대림상가로 넘어가면 세운테크북라운지(세운 메이커스 큐브 대림-서304)가 나온다. 테크북라운지에서는 최신 과학기술 서적과 메이커 문화 관련 서적 등을 열람할 수 있다. 오아영 홍보매니저는 “최신 기술 트렌드를 접할 수 있는 단행본과 정기간행물 등 총 800여 권을 비치했으며 매월 신간도 들어온다”고 했다. 큐브 입주자와 세운상가 상인은 물론 세운상가를 찾은 메이커와 주변 직장인, 일반 시민 모두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세운인라운지는 큐브가 아닌 세운상가 2층 내부에 있다. 제품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슈팅스튜디오’(마열 205호), 휴게공간이자 아카이브 룸인 ‘주민사랑방’(마열 211호), 세운상가 상인과 제작자들의 협업을 위한 ‘세운워크룸’(바열 203호) 등 3곳이 기존 상가 사이사이에 들어섰다.
이외에도 세운파트너라운지, 세운561메이커스교육장 등 세운상가와 큐브 입주자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회의 등에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곳곳에 생겼다. 다양한 공간들을 활용해 큐브 입주업체들이 워크숍을 여는가 하면 상가 기술자가 신제품 발표를 하기도 한다. 젊은 창작자들은 세운상가 상인들과 교류하며 아이디어를 실현해나가고 기술 장인들은 청년 창업가들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세운상가에 새로 생긴 공간들과 외부 기업과의 교류도 활발하다. 세운상가 4층의 ‘명사서책방’(가열 427호)은 테크북라운지에서 북 콘서트를 개최했고, 5회를 맞은 넥슨 게임 유저들의 축제 ‘네코제’는 5월 말 세운상가 일대에서 열렸다. 끊임없이 신제품이 출시되는 전자제품처럼 세운상가는 새로운 버전으로 업데이트 중이다.
- 글 전민정 객원 편집위원
- 사진 제공 메타기획컨설팅, m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