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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4월호

제8회 현대일본희곡 낭독공연 한·일 양국 현대희곡 교류의 교두보
16년 역사의 <현대일본희곡 낭독공연>은 한일연극교류협의회(회장 구자흥)와 일한연극교류센터(센터장 오자사 요시오)가 한·일 격년으로 주최하는 행사이다. 남산예술센터는 2016년 제7회 행사와 2018년 제8회 행사를 공동주최했다. 올해는 3월 9일부터 11일까지 3일간 펼쳐졌다

매회 양국의 현대희곡 세 편을 꾸준히 소개하고, 양국 작가 간 교류를 진행하는 등 <현대일본희곡 낭독공연>이 한국 연극계에 미친 영향은 적지 않다.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위대한 생활의 모험> 등 이 행사에서 선보인 낭독공연이 연극으로 제작되어 사랑을 받기도 했다. 연극 관객들이 동시대 일본 작품을 낯설어하지 않고 접할 수 있는 것도 이런 교류 프로그램이 저변에 있어 가능한 일이다.
올해 <현대일본희곡 낭독공연>에서는 최근4~5년간 일본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있는 극작가들의 세대적 특징을 보여줬다. 퍼포먼스 중심의 현대연극 경향 속에서 새로운흐름을 희곡에 반영한 작품들이다. 내년에는일본에서 한국 극작가 3명이 일본어로 낭독공연을 올릴 예정이다

관련이미지1.<인사이더-해지2>공연 모습.
2.<+51 아비아시온. 산보르하>공연모습

자본주의 사회 속 끝없는 욕망 <인사이더-헤지2>

공연 첫날 관객과 만난 작품은 면밀한 취재를 거쳐 사회문제를 다루는 시모리 로바(詩森ろば) 작가의 <인사이더?헤지2>(INSIDER-Hedge2, 번역 이시카와 쥬리(石川樹里), 연출최진아)였다. 일본 금융계에서 주목받는 펀드운영사의 내부자 거래 의혹을 그린 이 작품은 2016년 기노쿠니야 연극상 개인상을 수상했으며, 쓰루야 난보쿠 희곡상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120분이라는 짧지 않은 러닝 타임 동안 관객은 금리, 펀드, 증권 거래 감시, 선물 거래, 내부자 거래 등 신문의 경제면에서 만날 법한 내용을 마주했다. 일상에서 자주 접하지 못한 소재이다 보니 공연은 관객들에게 요약·설명하는 친절함과 위트를 잃지 않았다. 물론 요약된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이 극을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극은 내부자 거래의 범인이 누구인지를 쫓는 구조를 취하지만, 중반 이후 범인이 밝혀지면서 왜 그가 내부자 거래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한다. 펀드회사의 내부자 거래는 극의 소재일 뿐 작가는 이 사건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 속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경고한다.
공연은 내부자 거래의 범인이 경찰 조사를 받는 당일 자살하며 끝나는데, 다소 무책임해 보이기도 하는 이 결말은 실제 일본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공연 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그 죽음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작가는 어떤 의도를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지 않았으며 실제 있었던 사건인 만큼 관객들이 각자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바라보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상대적인 것들의 유영 <+51 아비아시온, 산보르하>

번째 작품은 가미사토 유다이(神里雄大) 작가의 <+51 아비아시온, 산보르하>(+51 Aviaci n,San Borja, 번역 고주영, 연출 김정)였다. 가미사토 유다이는 페루 리마에서 태어나 10대 시절을 파라과이, 미국 등에서 지내다 와세다대 재학 중 연극 활동을 시작했다. 작가는 자신과 가족의 경험을 바탕으로 주로 이민자와 노동자 문제, 개인과 국민성의 관계, 동시대를 살아가는 타자와 소통하는 문제 등을 다룬다. 일본인이지만 일본인 같지 않은 정서 와 극작 스타일이 일본 연극계에서 주목받고있다.
극은 어느 젊은 연출가가 도쿄에서 출발해 오키나와를 거쳐 할머니가 살고 있는 페루의 +51 아비아시온, 산보르하(산보르하시(市) 아비아시온길 51번지)로 여행을 떠나며 시작된다. 여행 중 젊은 연출가는 노년의 연출가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멕시코 연극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노 세키’의 환영이다. 그 역시 도쿄 출신이지만 베를린, 모스크바, 미국을 떠돌다 멕시코에 정착한 인물이다. 일본에서 페루로 여러 도시와 공간들을 이동하며, 다른 두 세대의 대화를 통해 국가와 민족의 문제, 세대 간의 차이 등을 드러낸다.
이 작품의 낭독공연 연출을 맡은 김정은 빠른대사 처리로 형식미를 전달했다. 덩어리째 들어오는 배우의 대사는 ‘서로 다름’을 드러내는데 효과적이었지만 어느 부분은 내용 전달이 여의치 않기도 했다. 공연 이후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에서 작가는 한국어를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공연을 보며 대본의 구조적 문제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작가는 한국어로 내뱉어지는 공연의 질감과 배우들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또 김정 연출은 젊은 세대의 어쩔 수 없는 불안감, 상실감 등을 속도감을 통해 드러내고 싶었다고 했다.

시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회 <저편의 영원>

마지막 작품은 지난해 남산예술센터 <서치라이트> 프로그램에서 <소에츠-한반도의 하얀태양>으로 한국 관객과 만난 바 있는 오사다이쿠에(長田育 ) 작가의 <저편의 영원>(번역이홍이, 연출 강량원)이었다. 소련이 러시아로 바뀌는 혼돈 속, 이념과 국가에 의해 흔들리는 개인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2016년 초연으로 요미우리 연극대상 상반기 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냉전이 끝나면서 소련은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자유의 물결이 흘러넘치는 러시아는 새로운 혼돈을 맞이한다. 그곳에 살고 있는 번역가 엘레나에게 어느 날 편지 한 통이 배달된다. 오래전 가족을 두고 망명을 선택한 아버지 안드레이의 편지다. 그는 유대계라는 이유로, 또 시인이라는 이유로 사실상 고국에서 추방되었다. 아버지는 장성한 딸의 모습을 알지 못하고 딸은 늙은 아버지의 모습을 알지 못한다. 아버지의 오래된 편지로 인해 둘은 만나게 되지만, 결코 만날 수 없다. 이념과 국가의 허상 속에 희생된 개인의 이야기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작가는 일본이 아닌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이유를 지금 일본의 모습이 아주 오래전의 러시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제국주의적인 모습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일본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강량원 연출은 낭독공연이 처음이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몰랐다고 밝혔지만, 배우들의 열연은 130분이라는 긴 시간이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스케일이 크면서도 심리 묘사가 뛰어난 대본, 그리고 한국 공연팀의 집요한 해석과 열연은 이 작품의 무대 공연을 기대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한자리에 모인 극작가들, 심포지엄 ‘사실과 드라마’

두 번째 낭독공연이 끝난 3월 10일, ‘사실과 드라마’라는 주제로 한일 양국의 대표적인 극작가들이 함께하는 심포지엄이 열렸다. 올해 <현대일본희곡 낭독공연>에 참여한 극작가들의 공통점은 현장 취재가 강하다는 점이다. 이번심포지엄은 한·일 양국의 연극이 취재, 조사등을 통해 어떻게 창작으로 넘어가는지에 대한 과정과 사유를 나누는 자리였다.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사가테 요지는 “연극은 느린 속도의 저널리즘”이라고 설명했다. 모두에게 동일한 정보가 공유되지 못하는 현실을 어떻게 타계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사회운동의 한 방법으로서 연극을 하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건의 당사자로서, 창작자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연극을 만든다고 했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시모리 로바는 취재에 기반해 글을 쓸때 현실과의 거리감을 어느 정도 두어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다. 연극이 저널리즘의 속성을 띠고는 있지만 저널리즘은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작가의 상상력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했다.
극작가 고연옥은 주로 강력사건을 바탕으로 신화와 결합한 글쓰기를 하는 자신의 극작을 공유하며, 강력사건은 현재의 문제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가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본성을 말한다고 했다. 이때 현재를 어떻게 의미화하는지가 중요하다고도 덧붙였다.
마지막 발제를 맡은 극작가 겸 연출가 김재엽은 연극이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하려면 언론의 통찰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했다. 최근 한국정치사회의 변화와 함께 그 방법을 찾는 중이라고 말하며,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연극은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인문사회과학 계간·무가지 연극’이라고 소개했다.
최근 10여 년간 한·일 양국 모두 급속히 경직되어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인간과 사회를 성찰하고 읽어내는 예술의 속성을 뜨겁게 발휘하고 있다. 양국의 극작가 모두 창작자이자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연극을 통해 사회를 비추고자 하는 고민과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

관련이미지1.<저편의 영원>공연 모습.
2.‘사실과 드라마’라는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왼쪽부터 김소연, 사가테요지, 고주영, 시모리 로바,고연옥, 이시카와 쥬리,김재엽.

김지우 남산예술센터
사진 제공 한일연극교류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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