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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12월호

SeMA 벙커 굳게 닫힌 비밀의 문이 열리다
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찬 서울 여의도 지하에 꼭꼭 숨어 있던 벙커가 문화공간 ‘SeMA 벙커’로 다시 태어났다. 과거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방치돼 있던 지하공간을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서울시 유휴 지하공간 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에서다. 어쩌면 지하보다 더 갑갑하게 느껴지는 도시에 살고 있는 서울시민들에게 피난처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공간, 공감 관련 이미지1 개관 기획전 <여의도 모더니티>.
2 SeMA 벙커 주 출입구.
3 벙커 관련 사진과 자료를 상설 전시하는 역사갤러리. 특별전으로 윤지원 작가의 <나. 박정희, 벙커>가 상영되었다.

아무도 모르게 숨어 있던 공간

여의도 지하벙커는 2005년 4월 중순, 여의도 버스환승센터 공사 중에 우연히 발견됐다. 기록을 뒤져보았지만 도면은 물론 소관부처와 관련 자료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청와대 경호실에서 관리하던 대통령 대피시설로 1976년 말에서 1977년 초 극비리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발견 직후 서울시에서 휴게실, 편의시설 등으로 활용하는 것을 검토했다가 수익성 문제로 다시 폐쇄하면서 시민들의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갔다.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2013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고, 2015년 10월 발견 당시 모습으로 복원되어 시민들에게 처음 공개되었다. 사전 예약제로 한 달간 임시 개방한 이후 시민의 의견을 수렴해 전시문화공간을 조성하기로 결정했다. 임시 개장 때 처음 이곳에 들어와봤다는 박승연 서울시립미술관 코디네이터는 “당시 석면 제거 등 기본적인 청소는 되어 있는 상태였지만 정말 습했다. A4 용지 한 장을 들고 들어오면 5분 안에 종이가 축축해질 정도였다”고 전했다. 지하라는 특성상 기본적으로 습기가 많아 전시를 열기에는 제약이 많았다. 만들어진 지 40년, 발견 이후로도 10년간 방치되었기 때문에 손볼 것 투성이었다. 전시를 위해 가벽이 세워지고 소방시설, 냉·난방시설, 환기시설, 전시공간에 필수적인 항온항습시설까지 갖추면서 전시장으로 거듭났다. 1년여의 리모델링 기간을 거쳐 지난 10월 19일 ‘SeMA(Seoul Museum of Art의 약칭) 벙커’라는 정식 명칭을 걸고 개관했다.

역사적인 장소 그대로 보존

SeMA 벙커로 들어갈 수 있는 출입구는 3개이다. 주 출입구는 IFC몰 앞 보도에 있다. 여의도 버스환승센터 2번 승강장에서 바로 이이지는 출입구는 시민들의 안전을 고려해 닫아놓았다. 대신 승강장에는 발아래 벙커가 있다는 안내판을 세웠다. 나머지 신한금융투자 건물 쪽 출입구는 엘리베이터로 연결된다. 지상에서 불과 몇 계단 아래 이렇게 넓은 공간(연면적 871㎡)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창문 하나 없이 꽉 막힌 실내와 낮은 천장, 음습한 공기가 벙커에 들어왔음을 실감하게 한다. 최초 발견 당시 언론에 공개된 사진과 비교해보면 원래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작은 타일이 깔린 바닥과 하얀 타일로 마감한 벽은 원래 상태 그대로이고 천장은 노출 형태로 마감해놓았다.
소파, 샤워실, 화장실이 발견되어 VIP실로 추정되었던 공간(66㎡)은 역사갤러리로 꾸몄다. 역사적 공간의 원형 보존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발견 당시와 최대한 가깝게 복원했다. 당시에는 최고급품이었을 호피무늬 소파는 무릎까지 차오른 물에 잠겨 천이 삭아 있었다고 한다. 2015년 임시 개방 때 비슷한 느낌의 천으로 교체하고 프레임은 그대로 두었다. 시민들이 직접 앉아볼 수 있도록 해 인기가 좋다. 화장실 변기와 세면대도 그 자리에 남아 전시품이 되었다. 샤워실이 있던 자리에는 벙커 곳곳에 진입할 수 있는 열쇠 보관함과 벙커의 두께를 가늠해볼 수 있는 50cm 두께의 콘크리트 조각을 전시해놓았다. 외부로부터의 어떤 강한 폭격도 막아낼 수 있도록 치밀하게 설계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역사갤러리는 벙커 관련 사진과 자료를 상설 전시하고,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기획해 영상을 상영한다. 단순히 벙커에 대한 기록을 보관하는 박물관에 머물지 않기 위해 기획 전시가 바뀔 때 영상을 함께 바꿔 변화를 준다. 역사갤러리 특별전으로 상영된 윤지원 작가의 <나, 박정희, 벙커>에는 <제4공화국>을 비롯한 드라마에서 박정희 대통령 역할을 도맡아 했던 이창환 배우가 직접 출연했다. 12월부터는 권혜원 작가가 벙커를 주제로 한 신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시민들로 가득 찬 벙커

SeMA 벙커 운영은 서울시립미술관이 맡았다. 공간의 특성을 감안해 미디어 특화공간으로 활용된다. 상대적으로 문화예술 인프라가 부족한 여의도에서 특화된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30여 분 내외의 짧은 독립영화를 점심시간에 상영하는 등 직장인 맞춤형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 개관 기획전 <여의도 모더니티>에 이어 12월 7일부터는 김현진 큐레이터의 기획으로 다수의 미디어아트 작품을 소장한 부부의 컬렉션 전을 1월 말까지 연다.
벙커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커서인지 개관 초기에는 평균 1,000명 정도 방문했고 이후에도 일 평균 500명이 방문하고 있다. 위치가 여의도다 보니 아무래도 정장을 입은 남녀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많이 찾는데, 퇴근 후에도 방문할 수 있도록 현재 오후 6시까지인 운영시간을 조정할 계획도 있다고 한다. 역사갤러리 내의 소파와 화장실이 방송에 소개되고 나서 직장인뿐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어르신들도 많이 찾아오고 있다. 들어오자마자 소파가 어디에 있는지부터 물으신다고. 버스환승센터 아래에 있어 대중교통 접근성도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아무런 기록도 남길 수 없었던 벙커의 역사는 이제 다시 시작이다. 단 한 사람만을 위해 만들어져 40년 넘게 텅 비어 있던 공간은 이제 수많은 시민들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글 전민정_ 객원 편집위원
사진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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