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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12월호

윤동주 탄생 100주년 한국 문학사의 별이 되다
올해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관련 행사가 이어졌다. 윤동주 시인의 삶과 작품을 조명하는 다양한 공연과 행사가 국내외에서 개최되었고, 최근 한국조폐공사에서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 기념메달을 출시하기도 했으며 일러스트를 담은 윤동주 스페셜 에디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도 출간을 앞두고 있다. 오는 12월 30일은 윤동주 시인이 태어난 지 정확히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짧지만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다가 한국 문학사의 별이 된 윤동주 시인을 떠올리며 그의 작품을 더듬어본다.

윤동주의 시에서 ‘달’이란

윤동주의 작품 중 “갈대로 화살을 삼아 무사의 마음을 먹고 달을 쏘다”라는 마지막 문장이 백미인 산문 <달을 쏘다>를 빼놓을 수 없다. 이 글은 “나의 누추한 방” 연희전문 핀슨홀에서 시작한다. <달을 쏘다>를 읽으면 윤동주가 어떻게 시 한 편을 완성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정인섭 선생이 <달을 쏘다>라는 제목을 주고 글을 써오라는 숙제를 주었는데, 윤동주는 단순한 숙제가 아니라 하나의 에세이로 완성시켰다. 이후 윤동주는 이 글을 1938년 10월 <조선일보>에 투고했다.
윤동주는 정원으로 나가서 연못을 본다. “못 속에도 역시 가을이 있고 삼경(三更)이 있고 나무가 있고, 달이 있다. 그 찰나 가을이 원망(怨望)스럽고 달이 미워진다.” <달을 쏘다>에 나오는 위의 구절은 1년 뒤 시 <자화상>을 완성하는 기본 구상이 된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는 산문 <화원에 꽃이 핀다>에서 문장 한 행을 쓰는데 1년 이상 걸린다고 고백하고 있다. 1년 동안 온몸과 세포를 거쳐 익히고 익은 문장을 썼다는 것이다.

딴은 얼마의 단어를 모아 이 졸문을 지적거리는 데도 내 머리는 그렇게 명석한 것이 못 됩니다. 한 해 동안을 내 두뇌로써가 아니라 몸으로써 일일이 헤아려 세포 사이마다 간직해두어서야 겨우 몇 줄의 글이 이루어집니다. 그리하여 나에게 있어 글을 쓴다는 것이 그리 즐거운 일일 수는 없습니다. 봄바람의 고민에 짜들고 녹음의 권태에 시들고, 가을 하늘 감상에 울고, 노변(爐邊)의 사색에 졸다가 이 몇 줄의 글과 나의 화원과 함께 나의 1년은 이루어집니다.
- 윤동주 <화원에 꽃이 핀다>

윤동주는 <달을 쏘다>에서 “달이 있다”, “달이 미워진다”고 썼다. 왜 달이 미울까. 윤동주는 달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의 시에서 달이란 무엇일까. 달은 식민지 시대의 어두운 심상, 희망 없는 조선인의 우울을 상징한다.
<달을 쏘다>와 <자화상>에 나오는 달도 이러한 달이라면, “달을 쏘다”라는 행위는 저 어둠과 우울을 깨부수겠다는 표현으로 읽을 수 있겠다.
“그 찰나 가을이 원망(怨望)스럽고 달이 미워진다”는 표현에 주목해보자. 겨울로 다가가는 가을이 원망스럽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아우의 붉은 이마에 젖은 “싸늘한 달”처럼 어떤 외부적인 상황에 대한 원망일 수도 있다. <달을 쏘다> 마지막 구절을 보면 눈시울이 흔들린다. 정말 윤동주가 썼을까, 호전적인 표현이다.

이슈&토픽 관련 이미지1 윤동주문학관 외관.
2 윤동주 시인의 탄생 100주기를 기념하는 시낭송이 있었던 문학토크콘서트 <청년시인, 윤동주를 기억하다>.
3 윤동주 시인에 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는 윤동주문학관 전시실.
4 2017 윤동주문학제 시화전.

끝까지 희망을 걸다

더듬어 돌을 찾아 달을 향하여 죽어라고 팔매질을 하였다. 통쾌(痛快)! 달은 산산(散散)히 부서지고 말았다. 그러나 놀랐던 물결이 잦아들 때 오래잖아 달은 도로 살아난 것이 아니냐, 문득 하늘을 쳐다보니 얄미운 달은 머리 위에서 빈정대는 것을…….
나는 곳곳한(꼿꼿한) 나뭇가지를 골라 띠를 째서 줄을 매어 훌륭한 활을 만들었다. 그리고 좀 탄탄한 갈대로 화살을 삼아 무사(武士)의 마음을 먹고 달을 쏘다.


그가 물결 위의 달과 하늘의 달을 깨부수려 하는 것은 바로 내면의 달을 부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내면의 달은 고정관념일 수도 있고, 부끄러움일 수도 있고, 욕망일 수도 있다. “연정, 자홀, 시기”(<이적>)처럼 그의 내면에 있는 부정적인 욕망을 달로 표현했을 수도 있다. 이것들은 그도 알지 못했던 울증(鬱症)을 만들었겠다.
이 글을 겉으로 읽으면 대단히 감상적인 글로 읽힌다. 핀슨홀에서 지내는 상황과 내면이 상세하게 표현되어 있고, 친구와 이별하는 상황도 상세하게 나온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표면적 묘사 속에 숨어 있는 그의 성숙하고 강력한 내면이다.
뒷부분에서 글은 점점 강한 분위기를 보인다. “죽어라고 팔매질”, “통쾌”, “꼿꼿한”, “띠를 째서”, “탄탄한 갈대”는 이 산문의 앞부분에서 볼 수 없었던 강한 역동성(逆動性)을 보인다. 이 표현들이 갖고 있는 역동성은 “무사의 마음”이라는 단어에 모인다. 비관과 절망에서 느닷없이 “달을 쏘다”라고 마무리한다. 도대체 20대 초반의 젊은이가 달(헛것)을 쏜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처구니없지만 끝까지 공격하고, 무지막지하게 끝까지 희망을 걸어보려는 태도야말로 암담한 식민지 상황을 견딜 수 있었던 의미였다. 이 참혹한 기다림, 이 참혹한 절규야말로 일말의 희망이 없는, 거짓만 빛나는 세상에서도 살 만한 세상을 꿈꾸는 의지였다.
“달을 쏘다”라는 허망할 것 같은 다짐은 그래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희망의 다짐이다. 숲속에서 그는 허망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바람을 움직이는 나무”(<나무>)를 꿈꾸는 그가 쓴 마지막 구절이야말로 당찬 실존을 응축한 다짐이다.
“갈대로 화살을 삼아 무사의 마음을 먹고 달을 쏘다.”

글 김응교_ 시인, 숙명여대 교수
사진 제공 종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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