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 3 국내 국공립 박물관들. 사진 순서대로 문화역서울284, 한국만화박물관, 서대문자연사박물관.(사진은 내용과 무관)
지자체 박물관 미등록에 대한 문제들
미등록 박물관에 관한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해마다 국정감사 때가 되거나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에서 발행하는 ‘전국 문화기반시설 총람’이 발간되는 시기가 되면 언론의 보도에도 자주 등장했다. 국공립이라고 묶어 말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립 박물관의 경우를 말한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대두되었는데 현재 공립 박물관의 약 25%가 미등록 관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11월 29일을 기점으로 법적 지위를 상실하여 위법 상태에 놓이게 된다는 지적이었다. 최근 문체부는 미등록 현황 및 그 사유를 서면으로 조사했고, 지난 11월 7일에는 지자체 담당자들을 불러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견 수렴의 시간을 가졌다. 아직까지 어떠한 대응책이 마련되었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필자가 경험했던 지자체 박물관의 미등록에 대한 문제는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전문 인력 채용에 대한 문제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제16조에 의해 박물관을 등록하고자 할 경우에는 학예사를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자체마다 그 규모와 살림살이가 다르긴 하지만, 행정 수요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 속에서 학예직 인력의 원활한 수급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총액인건비제라는 제한된 틀 안에서 인력 수급을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학예연구직 공무원을 순환 배치할 경우 학예사 자격증의 유무 때문에 박물관이 등록 요건을 갖추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 다만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은 새 정부 일자리 창출 정책의 일환으로 현장 중심의 공무원 충원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는 점이다. 날로 커져가는 국민들의 문화향유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다시 한 번 박물관 정책에 대한 거시적 관심을 제고해야 할 것이다. 박물관은 문화현장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둘째, 전용공간의 문제다. 박물관은 일정 크기의 전시실과 수장고 등을 갖추고 자료를 보존하기 위한 설비시설을 구비해야 등록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자체의 예산이 녹록하지 않다. 지금은 지자체가 박물관을 설립하고자 할 때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의하여 그 설립 타당성을 문체부로부터 사전에 평가받도록 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나눠 먹기식 국책사업이나 지자체장의 선심성 공약으로 박물관 설립이 최소한의 규제도 없이 난립되는 경우가 있었다. 사실, 현재의 미등록 관은 그 결과물에 다름 아니다. 박물관의 보편적인 목적처럼 문화·예술·학문의 발전과 일반 공중의 문화향유 및 평생교육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해 설립된 것이 아니라 특정 주제나 인물의 기념사업을 위해 추진된 경우가 있었다. 따라서 그 설립의 준거를 박물관에 두지 않고 추진되다 보니 애초부터 박물관 등록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따라서 전용공간의 구비라는 부분에서 구조적인 문제점을 안고 출발한 곳이 많다.
문화시설을 보호·육성할 수 있는 정책 필요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의 적용을 받는 문화시설은 자료관, 사료관, 유물관, 전시장, 전시관, 향토관, 교육관, 문서관, 기념관, 보존소, 민속관, 민속촌, 문화관, 예술관, 문화의 집, 야외 전시공원을 비롯하여 이와 유사한 기능과 명칭을 사용하는 곳들이다. 문체부에서는 2003년부터 ‘전국 문화기반시설 총람’을 발간하고 있다. 도서관, 박물관 등을 대상으로 운영 현황을 수집하여 각종 정보를 제공하는 데 쓰인다. 미등록 박물관의 통계 역시 이 총람을 근거로 하고 있다. 문화시설은 법적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고 육성되어야 한다. 이 기회에 미등록 박물관에 대한 실질적인 조사를 통해 등록 여부에 대한 해답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박물관 정책은 양적 팽창을 주도하던 때가 있었고, 운영이 어려운 사립 박물관과 미술관의 육성에 크게 관심을 쏟던 시절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공립 박물관은 박물관 정책의 사각지대에 존재했는지도 모른다. 국립 박물관의 이상적인 운영을 따라가는 길은 요원했고, 사립 박물관의 아우성 앞에서는 숨죽일 수밖에 없었다. 인적·물적 여력이 없는 지자체의 박물관은 애물단지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이번에 개정된 법률에 의해 시행되는 박물관 평가인증제도 마찬가지다. 실무자들의 입에서는 고사 직전의 나무에 뜨거운 물을 붓는 겪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금은 당근이 필요하다. 재갈과 채찍은 이르다.
- 글 안태현_ 공군사관학교 공군박물관장
- 사진 제공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