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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11월호

한내 지혜의 숲 지역사회를 바꾸는 작은 건축
노원구 공릉동 중랑천변 작은 공원 입구의 ‘작은 건축’이 조용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바로 작은도서관과 지역아동센터, 주민 자치 카페가 결합한 복합커뮤니티센터 ‘한내 지혜의 숲’이다. 지난 3월 27일 개관한 한내 지혜의 숲은 올해 서울시 건축상 대상, 제12회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거리마당상(문체부장관상) 등 각종 건축상을 수상하며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공간, 공감 관련 이미지1 한내 지혜의 숲 외관. ⓒ윤준환
2, 3, 4 한내 지혜의 숲 내부. ⓒ윤준환

고장 난 분수대가 지혜의 숲으로

원래 이곳에는 고장 난 분수대가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주민들에게 버림받은 공간이었지만 이제는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지역주민들로 북적이기 시작했고, 멀리서 일부러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변화를 일으킨 장본인은 운생동(韻生同)건축사사무소의 장윤규, 신창훈 공동 대표다. 두 건축가는 2014년 9월 완공한 ‘초안산숲속작은도서관’부터 시작해 한내 지혜의 숲에 이어 월계동 노인정, 상계동 지역커뮤니티센터까지 노원구와 4개의 공공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신창훈 대표는 “노원구에서 먼저 제안을 해왔다”면서 현상설계 과정을 거치지 않고 숲같이 얘기하면서 좋은 건축을 만들어가자는 취지에 공감해 시작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공공 건축은 보통 예산이 빠듯하고 제약이 많지만, 노원구청장과 담당 공무원의 열린 생각과 건축가들의 의지가 있어 가능했다. “설계비와 관계없이 이건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건축가들이 사회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건축가가 참여하면 조금 다른 공공 건축을 만들 수 있어요. 그런 공간이 어린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작은 건축이 지역사회를 바꾸는 하나의 중심 역할을 할 수 있거든요.” 장윤규 대표의 설명이다.
누구보다 이 공간의 탄생을 반긴 사람들은 지역주민이다. 인근에 아파트 단지는 많았지만 주민과 아이들을 위한 문화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도서관과 작은 휴게실이 있으면 좋겠다는 정도에서 출발했는데 공청회를 하면서 도서관은 작아지고 카페와 지역아동센터는 커졌어요. 방과 후 아이들 돌봄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가 있었거든요. 주민들이 운영할 공간이기 때문에 거기에 맞춘 거죠.”(신창훈)

안팎으로 열려 있는 공간

한내 지혜의 숲은 전체 109평(359.37㎡)으로 크지 않은 공간 안에 3개 시설이 오밀조밀 배치되어 있다.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 공간 이곳저곳을 미로처럼 찾아다니는 재미가 있다. 유리창 밖으로는 나무가 보이고 중정에서 올려다보면 하늘이 보인다. 공원 밖에서도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동네에서 슬리퍼 끌고 나왔다가, 공원에서 운동하다가 쓱 들어오기에도 부담이 없다. 전체 운영을 맡고 있는 김혜숙 지역아동센터장은 “중랑천 자전거길을 지나가다가 잠시 들러서 커피 마시고 책을 보는 사람들도 많다”고 전했다. 건축가의 의도와도 맞아떨어진 셈이다. “여기가 공원의 일부이기도 하잖아요. 화장실에 가려고 들어왔다가 자연스럽게 이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공 기관에 들어가면 무슨 일로 왔는지부터 물어보는데, 여기는 운영하는 사람들도 왜 들어왔느냐는 표정을 짓지 않아요. 그런 게 좋은 것 같아요.”(장윤규)

공공이 짓고 주민이 운영

공공에서 지었지만 주민들이 직접 운영한다. 주민자치위원회인 ‘노원구 마을행복공동체’는 지역아동센터, 도서관, 커뮤니티·북카페의 3개 분과, 12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운영위원회는 두 달에 한 번 열린다. 자원봉사자만 해도 80명이 넘는다. 대부분 이 지역에 오랫동안 살면서 활동해온 주민들이다. 공원 건너편 월계3동 주민센터 2층에 있던 작은도서관이 이곳으로 이사 오면서 자원봉사자들도 같이 옮겨왔다. 월계고 등 인근 학교 학생들도 찾아와 지역아동센터 아동들에게 과학, 미술 등을 가르친다. 카페 운영은 바리스타 과정을 수료한 주민들이 일주일에 1번 4시간씩 돌아가면서 맡는다.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이나 카페 수익금으로 운영하는 뜨개질, 퀼트 등 커뮤니티 프로그램도 인기다. 강좌들도 주민들의 관심 분야를 반영해 개설했다. 지역아동센터는 보통 단독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지만 노원구는 사랑방 같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공공 도서관과 같은 공공시설 내에 지역아동센터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도서관 안에 있다 보니 아이들이 책을 보거나 밖으로 나가 공원에서 뛰어놀 수 있어 좋다.
두 건축가는 이곳을 짓고 난 후 주민들 스스로 공간을 운영하고 활성화해나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전했다. “이 공간이 시발점이 되어서 건물 내부와 외부 구분 없이 공원 전체가 커뮤니티센터 개념으로 발전하면 좋겠습니다. 공원에 야외 공연장이 생길 수도 있고 체육시설을 다른 방식으로 바꿔볼 수도 있을 거고요.”(장윤규) 마지막으로 서울을 위한 제안도 잊지 않았다. “서울의 공원은 천편일률적이에요. 여기에 커뮤니티가 결합되면 훨씬 좋을 것 같아요. 슬럼화된 공원들을 찾아서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넣으면 좀 더 재미있는 서울이 되지 않을까요.”(신창훈)

글 전민정_ 객원 편집위원
사진 제공 운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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