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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9월호

임옥상 개인전 <바람 일다>와 송창 개인전 <꽃그늘> 오늘 현재의 민중미술
‘민중미술=걸개그림’이라고 생각했다면, 이제 등호(=)를 부분집합(⊂)으로 바꿀 차례다. 민중미술이라고 다 같지 않다. 사회참여적 성격이 강하다는 이유로 비슷하다고 여기지만 작가들마다 집중하는 주제도, 매체도, 방식도 하나로 묶을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다.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는 공통점이 있을 뿐이다. 때마침 서울 메이저 갤러리에선 1979년 ‘현실과 발언’ 창립 동인으로 활동한 임옥상과 1982년 ‘임술년’을 창립한 송창의 전시가 열린다. 결이 다른 민중미술 작가를 동시에 만나볼 수 있다. 또 단색화 이후 한국을 대표할 미술 사조로 주목되는 민중미술의 가능성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광장의 언어가 스며들다

임옥상 개인전 <바람 일다> 가나아트갤러리, 8. 23~9. 17

‘민중미술 1세대’라 불리며 한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작업을 해온 작가 임옥상이 6년 만에 개인전을 개최한다. ‘바람 일다’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에는 지난 겨울 광화문광장의 기억이 닮긴 흙 작업과 유화 40여 점이 나온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 대해 “지난해 말 토요일마다 시위 현장에서 문화 퍼포먼스를 했는데 그때 거리에서 느끼고 생각했던 여러 가지를 전시장으로 들여놨다”며 “광장의 언어가 자연스럽게 스민 작품들”이라고 설명했다. 변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광화문에 하나둘 모여든 촛불이 거대한 파도로 변하는 것을 보면서 작가는 ‘시대가 바뀐다’고 직감했을지 모르겠다. <바람 일다> 전엔 ‘일순간 불다가 마는 바람이 아니라 그 바람을 내가 일으키는, 내 바람이고 우리의 바람’임을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담겼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작품들은 1980년대 민중미술의 어법을 따르면서도, 과거의 자신이나 기존의 민중미술과 차별화를 꾀한다. 백남기 농민을 죽음으로 내몬 물대포 사건을 그린 <상선약수>(2016)는 정치 비판과 표현양식에서 1980년대 민중미술의 핵심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작품을 만나는 순간 통렬한 비판에 가슴 한편이 서늘하다. 그런가 하면 흙 작업에선 2017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작가 임옥상의 고민이 도드라진다. 과거 흙을 매체로 한 다양한 작품을 선보여온 작가지만, 이번엔 재료로서의 흙에 대한 성찰이 눈에 띈다. 김홍희 전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임옥상은 이전에도 땅을 주제로 흙을 매체로 하는 작품을 제작해왔지만, 이번 작업은 흙을 물질적 재료 이상의 개념적 매체로 파악한다”며 “작가의 인식론적 태도에 변화가 보인다”고 평했다.
임옥상은 군사 독재의 서슬이 퍼렇던 1979년 오윤, 김용태, 김정헌, 민정기 등의 작가들과 함께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활동했다. 이후 대표적 민중미술가로 꼽히며 문명 비판적, 정치 고발적, 사회 참여적 작품을 제작했다. 정통 유화를 비롯해 회화, 조각, 설치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사회적 이슈를 다루고 예술의 공공성을 확립한 종합예술가로 평가받는다.

공간, 공감 관련 이미지1 임옥상 <여기, 흰꽃>(Here, White Flowers), 2017, 캔버스에 혼합 재료, 259×776cm.

공간, 공감 관련 이미지2 송창 <그곳의 봄>(The Spring of That Place), 2014, 캔버스에 유채, 조화, 194×379cm.
3 송창 <굴절된 시간>(Refracted Time), 1996, 캔버스에 유채, 나무껍질, 181.8×454.6cm.

절망과 열망 사이

송창 개인전 <꽃그늘> 학고재갤러리, 8. 16~9. 24

나란히 놓인 2개의 캔버스를 길게 가로지르며 이어주는 건 커다란 소나무다. 소나무 껍질을 사용해 조형한 이 작품은 ‘분단을 그리는 작가’ 송창의 <굴절된 시간>(1996)이다. 작품 중앙 하단부엔 생선을 토막 낼 때 사용할 법한 사각형의 식도가 꽂혀 있다. 세차게 뻗은 소나무 줄기를 칼로 가차없이 두 동강 낸 듯한 모습이다.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국제정치의 역학에 의해 분단된 한반도가 떠오른다.
학고재갤러리는 민중미술계열 작가 송창의 개인전 <꽃그늘>을 개최한다. 학고재갤러리 전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작가의 지난 30여 년 작업을 총망라했다. 본관엔 2010년 이후 신작을 위주로, 꽃을 사용한 작품이 자리 잡았고 신관에는 분단을 다룬 2010년 이전의 작품과 함께 <매립지> 시리즈 등 초기 작품도 전시됐다.
송창은 1982년 박흥순, 이명복, 이종구, 전준엽, 천광호, 황재형 등과 민중미술 단체 ‘임술년’을 창립한 멤버다. 창립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작가는 특히 분단 국가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풍경에 집중했다. 어릴 적 날마다 지나다녔던 울창한 소나무숲이 엄혹했던 시절 동네사람들이 불려나가 고초를 겪고 살해당했던 현장임을 나중에 알게 되어 그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듯, 분단은 전쟁에 긴 세월 동안 상처받고 망가진 국민 개개인의 내면적 풍경으로 남아 있음을 짚어낸다.
도시화의 그늘을 담은 그의 초기작도 인상적이다. 1978년 서울의 쓰레기 매립장으로 지정된 난지도는 불과 15년 만에 100여m의 쓰레기산이 돼버렸다. 난초(蘭草)와 지초(芝草)가 흐드러진 아름다운 섬이라는 난지도(蘭芝島)는 ‘어지러울 난(亂)을 쓰는 난지도’라는 오명을 입었다. 송창의 <난지도-매립지>(1984)는 이러한 난지도의 풍경을 용광로처럼 들끓는 붉은 쓰레기더미와 함께 그곳에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으로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했다. 깔끔하고 세련된 도시를 받치고 있는 붉은 쓰레기산과 죽음을 통해서만 전쟁에서 구조될 수 있었던 이들을 그리며 전쟁을 비판하는 송창의 작품은 일견 침울하고 날카로워 보인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묵직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건 비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회’에 대한 열망을 잃지 않는 작가의 열정이 읽히기 때문인지 모른다.

글 이한빛_ 헤럴드경제 기자
사진 제공 가나아트갤러리, 학고재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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