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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9월호

도심 속의 쉼 ‘당신의 자리’ 휴식이 필요할 때
‘복잡한 도시와 바쁜 일상을 벗어나 편히 쉬고 싶다. 집을 떠나 낯선 어딘가로 떠나고 싶지만 북적이는 여행지는 싫다. 태어나서부터 줄곧 아파트에만 살아서 주택에서 며칠간 지내보고 싶다….’ 당신이 찾던, 당신을 기다리는 공간이 가까운 서울에 있다. 정원 가득 녹색식물이 자라고, 시가 있는 방이 있고, 옥상에는 이야기와 음악이 흐르는 ‘당신의 자리’이다.

공간, 공감 관련 이미지1 ‘당신의 자리’ 1층 입구.
2~4 친근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당신의 자리’ 정원과 거실, 방.

쉼표가 있는 자리

차와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는 합정역 사거리를 지나 골목에 들어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한 주택가가 나온다. 다시 좁고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당신의 자리’가 보인다. 공간의 이름 ‘당신의 자리’는 유희경 시인의 시 제목이다. 짐작했겠지만 ‘당신의 자리’를 만든 이 중 한 명도 시인(오은)이다. 아담한 2층 주택을 빌려 1층은 사무실, 2층은 게스트하우스, 옥상은 휴식공간이자 문화예술공간으로 꾸몄다. 2층에는 크고 작은 방 2개, 주방과 거실, 화장실이 있다. 입구에 적혀 있는 ‘지금부터 여기가 당신의, 자리입니다’라는 인사말과 곳곳에 소품처럼 비치해둔 <당신의 자리-나무로 자라는 방법>(아침달, 2017) 시집이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의외로 서울에 사는 여자 분들이 많이 오시고요. 외국에서도 문의가 온 적은 있었는데 아직까지 방문한 적은 없어요. 평일보다는 주말에 친한 친구 3~4명이 와서 소소한 파티를 해요. 2층 전체를 한 팀에게만 빌려주거든요.” 오은 시인의 설명이다. 2층 테라스와 1층 정원에서 직접 기르고 있는 호박, 상추, 블루베리 등은 마음대로 따 먹어도 된단다.
3층 옥상에는 ‘당신의 높은음자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건물 밖으로 나 있는 철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옥상이 나온다. 살짝만 뛰어도 넘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웃집과 바짝 붙어 있다. 나지막한 주택들 사이로 우뚝 솟아 있는 인근 당인리 화력발전소 굴뚝도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다. 평소에는 그늘막 아래 캠핑 의자에 앉아 쉬거나 해먹에 누워 낮잠을 청해도 좋다.
옥상에서는 매달 한두 번 정도 아기자기한 행사가 열린다. 조명을 켜고 간이의자들을 펼쳐놓으면 멋진 야외행사장으로 변신한다. 소규모 행사에 적합하지만 조용한 주택가라 모든 행사는 10시 이전에 끝내야 한단다. ‘당신의 높은음자리’에서 열리는 행사 이름은 ‘예술이 있어 기쁜 밤’, 줄여서 ‘예쁜 밤’이다. 시인이 주인장이다 보니 문학행사로 시작했다. 지난 7월 31일 열린 첫 번째 행사의 주인공은 첫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난다, 2017)을 낸 박준 시인이었다. “정원이 30명이었는데 신청을 시작한 지 하루도 안 돼서 마감되었다”고 한다. 8월의 ‘예쁜 밤’은 에세이집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놀, 2017)의 김신회 작가와 함께했다. 9월에는 글쓰는 의사인 <만약은 없다>(문학동네, 2016)의 저자 남궁인을 초대하고, 오은 시인과 박준우 셰프의 ‘냉동고를 부탁해’ 대결도 벌어질 예정이다. 날이 좀 더 선선해지면 파스텔 뮤직과 함께 옥상 공연도 열 계획이다.

공간, 공감 관련 이미지5 아기자기한 행사가 열리는 옥상.
6 ‘당신의 높은음자리’ 행사 모습.

예술이 있는 자리

1층은 응컴퍼니의 사무실이다. 응컴퍼니는 올해 초부터 TF로 일을 해오다 6월 정식으로 창업한 신생 회사다. 2층 게스트하우스를 관리하고 3층 옥상에서 열리는 문화행사도 모두 자체적으로 기획하고 진행한다. ‘아니’의 반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긍정의 ‘응’이란다. 공동대표 3명의 이름에 모두 2개의 ‘ㅇ’이 들어 있기도 하다. 오은 시인과 파스텔 뮤직 이응민 대표, 스튜디오360플랜 신종은 대표까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뭉쳤다. 오은 시인은 “작년 10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카페 파스텔’에 드나들다 이응민 대표와 가까워졌고, 공간디자인을 하는 신종은 대표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문화기획, 브랜드 마케팅 일을 주로 하다 보니, 공공의 문화 관련 프로젝트에도 많이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디자인재단이 공모한 ‘2017년 공유도시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 시가 담긴 파빌리온 ‘시.zip’을 설치할 예정이다. ‘시.zip’은 함께 시를 듣고, 읽고, 짓는 행위를 통해 시민들 스스로 문화를 생산하는 공공미술 공간이다.
‘자리’를 사전에서 찾으면 ‘일정한 사람이 모인 곳’이라는 뜻이 있다. ‘당신의 자리’에는 3명의 공동대표와 친분이 있는 각계각층의 예술가들이 드나든다.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거나 문화행사에 신청해서 갔다가 이곳에 놀러 온 시인, 음악가, 예술가들과 마주칠지도 모를 일이다. 이들과 잠시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다가 주인처럼 머물다 떠나도 괜찮다. 여긴 당신을 위해 비워둔 자리니까.

글 전민정_ 객원 편집위원
사진 제공 당신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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