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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9월호

커스텀 크루저 바이시클 디자이너 홍장근 아름다운 자전거, 삶의 속도를 늦추다
일상의 많은 기준은 ‘효능’에 맞춰져 있다. 사람들은 의식주를 비롯한 사회·경제활동, 인간관계에서조차 빠르고 효율적인 가치, 즉 가성비(價性比)를 추구한다. 사람들은 이처럼 분주하게 어디로 달려가는 걸까? 홍장근 제스티크랭크 대표라면 그 답을 들려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커스텀 크루저 바이시클’(이하 커스텀자전거)을 통해 삶의 속도를 늦춰주는 이색 디자이너다. 단단하고 유려한 곡선, 강렬하지만 산뜻한 색감으로 시선을 끄는 그의 제품들은 ‘앞’보다 ‘옆’, ‘미래’보다는 ‘현재’를 살펴보게 하는 느슨한 휴식을 허락한다.

예술가의 밥그릇 관련 이미지1 커스텀자전거를 제작·판매하는 ‘제스티크랭크'의 홍장근 대표.
2 작업실을 겸한 신사동 카페 앞에 세워진 제스티크랭크 자전거.
3, 4 제스티크랭크 자전거.

추억 속 자전거, 오래된 낭만을 찾다

미국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한 영화 <이티>(1982)에는 자전거를 탄 엘리엇과 이티가 거대한 달을 배경으로 날아오르는 순간이 낭만적으로 그려져 있다. 단순하고 투박한 자전거에 나란히 탄 소년과 이티의 우정이 애틋하게 전해지는 명장면이다. 홍장근 대표의 얼굴에는 영화의 감성을 떠올리게 하는 순수한 열정과 아날로그 디자인에 대한 향수가 지문처럼 묻어난다. 중학생 아들과 자전거 타는 게 취미인 그는 새로운 가치 확산에 몰두하는 디자이너이자 프렌디(친구 같은 아버지)로서 일과 삶의 조화를 꿈꾼다. 남은 반생은 보다 느린 움직임으로 세상과 소통하길 원하는 낭만가이기도 하다.
홍 대표는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으며 20여 년간 공공디자인업계에서 일했다. 2013년부터 수제자전거 제작을 배운 뒤 2014년 초 커스텀자전거를 제작·판매하는 ‘제스티크랭크’(ZESTY CRANK, http://zestycrank.com)를 설립했다. 제스티크랭크는 영단어 ‘zesty’(강한 풍미의)와 ‘crank’(회전용 기계장치)를 더한 말이다. 강한 풍미의 기계장치라니, 이름부터 육감적이다.
제스티크랭크의 자전거들은 디자인부터 제조 공정까지 100% 홍 대표의 손을 거쳐 탄생한다. 각 모델마다 모터사이클 ‘할리 데이비슨’처럼 높은 핸들바와 육중한 바디가 특징이다. 독특한 외관도 시선을 끌지만 무게중심이 낮아 주행 안정감이 있다. 그는 취미였던 모터사이클과 자전거를 접목해 세상에 하나뿐인 ‘탈것’을 만들겠다는 꿈을 이루었다.
지난해 7월에는 서울 신사동에 작업실과 전시장을 겸한 카페를 열었다. 8~10인용 테이블 2개와 2~3인용 테이블 2개가 사이좋게 놓인 이곳은 시민들에겐 동네 다방으로, 작가들에겐 편안한 교류의 공간으로 활용된다. 카페 입구에는 각자의 개성을 자랑하는 자전거들이 전시돼 있고 카페 내부의 주방 한편에 홍 대표의 작업공간이 마련돼 있다. 책상 크기만 한 작업대와 선반, 캐비닛, 자전거 부품과 공구 등이 오밀조밀 채워져 요술공장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매장 방문 시 완제품 구경은 물론 자전거 제작 상담 및 체험도 가능하다.

도시·자연환경과 어우러지는 ‘탈것’

홍 대표는 지난 3년간 “왜?”라는 질문을 수없이 들었다. 제작과 판매가 까다로운 커스텀자전거 사업에 왜 뛰어들었냐는 것이다. 그의 대답은 언뜻 간단하게 들렸지만 그 의미는 진지했다. 그는 “손으로 직접 작업하면서 표현하고 즐거움을 찾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라고 했다. 나아가 자전거가 이동수단이라는 단순한 도구로서의 기능에서 벗어나 본래의 아름다움(심미성)을 찾게 한다는 비전을 품고 있다. 홍 대표는 “자전거를 통해 자신의 삶과 환경을 돌아보는 가치관을 공유해나가는 데 보람을 느끼고 있다”면서 “제스티크랭크는 나만의 인생철학이 담긴 브랜드”라고 설명했다.
그는 광고디자인 영역에서 활동할 때부터 ‘세상을 변화시키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이런 생각은 2007~2012년 서울 중구청 도시디자인과에서 일하는 동안 더 깊어졌다. 공공디자인 업무를 맡다 보니 도시와 디자인을 넘어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홍 대표는 “사람은 지형과 도시, 건물의 영향을 받고 살아간다”면서 “우리가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어떤 환경이 돼야 할까. 과연 우리가 사는 지금의 환경은 정상적인가”라는 고민을 계속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세상에 일부분이라도 기여하는 디자인을 하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이미 포화상태인 국내 자전거시장에서 제스티크랭크가 설 자리가 있을까?’ 하는 고민과 주위의 우려도 물론 있었다. 홍 대표는 “수익을 떠나 한 사람의 디자이너로서 특별한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일이 많은 사람들에게 재미있고 매력적인 경험이 되길 바랐다. “커스텀자전거로 바람을 느끼며 달리다 보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자연과 주위환경이 눈에 보인다”면서 “내가 지금 어떤 공간을 어떻게 달려가고 있는지 그 안에 있는 내 모습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제스티크랭크의 자전거에 앉으면 보통의 자전거를 탈 때보다 시야의 높이는 내려가고 반경은 넓어진다. 또한 손잡이가 높다 보니 등과 하체가 펴지면서 몸가짐이 여유 있게 바뀐다.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리는 게 아니라 천천히 주행하며 주위를 둘러보기에 좋다. 바로 여기에 홍 대표가 말하는 ‘조화’의 매력이 숨어 있다.

예술가의 밥그릇 관련 이미지1 제스티크랭크 로고가 새겨진 부품 장식.
2 카페 내에 마련된 홍장근 대표의 작업공간. 프레임과 안장 등 벽에 장식된 자전거 부품이 방문객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3 곡선 프레임 용접 모습.

커스텀자전거, 낯설고도 신선한 탄생

초퍼바이크(Chopper Bike)라고도 불리는 커스텀자전거는 국내에서는 생소하지만 미국과 유럽에서는 마니아층을 형성할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미국 남부 해안 지방을 중심으로 서핑 등 해양스포츠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해안에서 라이딩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게 시초이다. 폭이 넓은 타이어와 낮은 포지션 등 투박한 외관은 커스텀자전거의 공통점이다. 자전거와 모터사이클이 취미였던 홍 대표는 “커스텀자전거는 편안한 안정감과 놀라운 가속도로 라이딩의 즐거움을 높여줬다”면서 “한국 이용자들에게도 이런 장점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커스텀자전거는 지금도 그렇지만 3년 전에는 더욱 국내 소비자들에게 생소했다. 정보나 기술 노하우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홍 대표는 프레임 제작, 용접 등 모든 공정을 하나하나 배워나가며 시행착오를 겪었다. 2014년 5월 바이크아카데미에서 첫 시제품을 만들었고 이를 보완해 그해 10월 정식 모델을 선보였다.
커스텀자전거의 제작을 결심한 뒤 그는 가장 먼저 프레임 디자인에 착수했다. 천편일률적인 직선 프레임 대신 곡선을 도입했다. 달리는 말의 형상을 수없이 반복해 그려가면서 군더더기 없이 매끈한 프레임 디자인을 완성했다. 홍 대표는 “한강변이나 도심에서 보는 자전거들은 대부분 기능성과 실용성에 중점을 둔 제품들”이라면서 “커스텀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더 멋지고 아름답게 보일 수 있는 자전거 디자인에 대해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말의 도안과 상상 속 말의 형상을 오가며 가장 아름다운 형태의 곡선을 찾아냈다. 기술과 아름다움, 멋과 개성이 조화를 이룬, 제스티크랭크만의 프레임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홍 대표는 “자전거가 효율적인 직선 형태를 띠면서 기능 위주로만 진화하다 보니 심미성은 떨어진 것 같다”며 “아름다운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곡선 형태의 클래식 자전거에서 디자인의 영감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디자인 후에는 프레임과 바퀴 축을 이어 붙이는 섬세한 작업이 이어진다. 제스티크랭크의 프레임은 알루미늄을 소재로 TIG웰딩 용접 방식으로 제작된다. 완제품의 평균무게는 20kg, 크기는 가로 2.1m, 세로 1~1.2m다. 사용자의 신체사이즈 등 세부 사항에 따라 디자인이 조금씩 달라지며 한 대를 만드는 데 평균 3주가 걸린다. 가격은 커스텀 항목에 따라 200만~250만 원 정도이다.

커스텀자전거의 미래, 슬로 라이프(Slow Life)

커스텀자전거는 달리는 즐거움에 초점을 맞춘 제품인 만큼 순간적으로 빠르게 속도를 내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대신 탈것의 멋스러움과 삶이라는 현재를 선물로 받는다. 홍 대표는 “과거 사람들이 말을 타고 달릴 때 보이는 실루엣을 떠올리면 멋있게 달린다는 말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면서 “오토바이도 마찬가지인데 그 감흥을 자전거에 담았다고 보면 된다. 도심과 교외 어디서든 안전하게 페달을 밟아 달리는 모습이 주변과 어우러지는 데서 고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바퀴가 달린 모든 이동수단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조화, 균형, 변화 등의 요소를 갖춘 자전거를 만든 것이다. 물론 커스텀자전거가 보급·경주형 자전거들에 비해 보관과 이동이 어렵고 실용성과 기능성이 덜한 것도 사실이다. 소형차나 엘리베이터에 싣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보행자와 맞춰 움직이다 보니 자연스레 서행하게 되는 단점도 있다. 그러나 그런 융통성 없음조차 아날로그적인 향수를 일으킨다. 효율성을 따지기보다 각자의 개성과 취향, 여유 있는 정서를 위한 ‘세컨드 카’로 추천하는 이유다.
홍 대표는 대중성에 대한 고민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지난 3년간 기업 대표부터 연예인, 공무원 등 다양한 직업의 고객들이 제품을 구매했지만 소득이 높은 전문직 종사자가 단연 많았다. 그는 “구매하지 않더라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커스텀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도록 강원도 양양이나 제주도 등에서 전기 커스텀자전거를 빌려주는 사업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내년 3월 시행되는 전기자전거법이 대여사업에 큰 발판이 돼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기자전거법은 ‘사람이 페달을 밟아야 전동기가 작동하는 페달보조방식(PAS), 시속 25km 속도 제한, 만 13세 이상, 중량 30kg 미만 전기자전거’라는 요건을 담고 있다. 홍 대표는 “전동기 모델로 수요를 늘린다면 오리지널 모델을 비롯한 커스텀자전거의 대중화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글 장인서_ 고려대에서 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아시아경제신문 기자로 재직 중이다. 공연·도서·디자인 등 문화예술 분야의 콘텐츠를 취재해 글을 쓰고 있다.
사진 제공 제스티크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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