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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3월호

광장극장 ‘블랙텐트’ 극장장 이해성 극장이 돌아왔다
지난 1월 7일,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광화문광장의 한가운데에 검은색 천막이 들어섰다. 이름하여 광장극장 ‘블랙텐트’. 블랙리스트 작성과 예술 검열로 빼앗긴 공공의 극장을 시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문화예술인들이 함께 세운, 시민이 주인이 되는 극장이다. 블랙텐트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극장장이자 극단 고래 대표인 이해성 연출가를 만났다.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

“빼앗긴 극장, 여기 다시 세우다”라는 문구가 쓰인 현수막이 인상적이다. 블랙텐트의 의미와 취지에 대해 설명해주었으면 한다.

언제부터인가 정부가 운영하는 공공극장에서 동시대 고통받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됐다. 위안부,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 해고 노동자 등을 공공극장에서 이야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동시대 공동체의 삶에 대한 사유와 성찰이 불가능한 이런 현실이 바로 극장을 빼앗긴 것과 다름없게 느껴졌다. 블랙텐트에는 문화예술인의 힘으로 시민들과 함께 극장을 세우고, 극장의 공공성을 되찾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정부가 배제했던,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담은 공연들을 지난 1월부터 매주 한 작품씩 올리고 있다.

광장에 극장을 세우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문화예술인들의 캠핑촌에 지난해 12월 입소했다.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인들이 현 시국을 비판하며 자신의 영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지만, 연극은 장르의 특성상 특별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러던 중 캠핑촌에서 만난 송경동 시인에게 천막 극장이라도 있으면 연극인들도 무언가를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말을 들은 송경동 시인이 직접 지방에서 검은색의 커다란 천막을 구해 왔다. 다음날 바로 극장을 세우기 시작했고, 운영위원회를 꾸려 시즌 1 공연에 돌입했다.

블랙텐트의 첫 작품으로 본인이 쓰고 연출한 극단 고래의 <빨간시>를 올렸다. 광장 한복판에서 연극을 직접 연출해 본 느낌이 어땠나?

연극은 기본적으로 컴컴하고 조용한 블랙박스 안에서 이루어지는 콘텐츠다. 한데 블랙텐트라는 공간은 벽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고, 소음으로부터도 자유롭지 않다. 출구도 열려 있고, 빛도 들어온다. 광장 한가운데에서의 공연은 처음이라 초기에는 이러한 환경이 제약으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점차 벽이 없는 공간에서 나오는 묘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배우들은 환경을 극복하고자 더욱 집중해서 에너지를 쏟아 연기하고, 관객들도 더욱 연극에 몰입하려고 노력한다. 배우와 관객이 만나는 접점이 가까워졌다고 할까. 기존 극장의 온도보다 더욱 뜨거워진 느낌이다.

블랙텐트 무대에 오르는 작품들을 선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10인의 운영위원회가 회의를 거쳐 프로그래밍한다. 정치적, 사회적 소재로 규정하거나 고집하는 건 아니고 작품의 완성도를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광장이라는 공간의 의미를 더하게 하는 작품이라면 더할 나위 없고. 공공성이라는 블랙텐트의 취지를 생각한다면 공모를 실시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한데 1~2주 안에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작품을 찾다 보니 기존 공연작에서 찾게 되는 한계가 있다. 개관 기념작으로 내 작품을 올린 것도 그런 이유가 컸다.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1 극단 드림플레이 테제21의 <검열언어의 정치학: 두 개의 국민>(김재엽 연출).
2 연희단거리패의 <씻금>(이윤택 연출).
3 마임이스트들의 <마임> 공연.

현재 시즌 2 공연이 진행 중이다. 블랙텐트 무대에 선보인 대표작들을 소개해 달라.

시즌 1 때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성 상납 피해자 연예인을 소재로 한 <빨간시>에 이어 세월호 가족들이 직접 무대에 선 <그와 그녀의 옷장>이 무대에 올랐다. 시민들로부터 위로를 받은 세월호 가족들이 역으로 시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준비한 무대였다. 2월에 시작된 시즌 2의 첫 작품은 이윤택 연출의 <씻금>이었는데, 씻김굿을 중심으로 한 진도 민중들의 개인사를 한국의 근현대사로 수용하면서 남도의 소리로 녹여낸 작품이다.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장소가 진도이다 보니 블랙텐트라는 무대가 더욱 특별했던 것 같다. 본 공연 전에 세월호 분향소를 거치는 길닦이 행사를 하며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공연의 의미를 가미했다.

블랙텐트를 운영하는 데 있어 아무래도 운영비가 가장 큰 걸림돌일 것 같다. 어떻게 충당하고 있나?

무료로 진행되는 공연이라 입장료 수익은 전혀 없고, 시민들의 자율적인 기부로 운영된다. 공연이 끝난 후 관람객들로부터 모금을 받고, 후원 계좌도 개설되어 있다. 공공극장이라는 취지를 살려 운영 자금도 시민과 함께 마련하고 있는 셈이다. 많은 시민들이 블랙텐트의 주인이 되어 달라는 우리의 취지를 이해하고 크고 작은 도움을 주고 있다.

정부가 만든 블랙리스트에 대해 많은 연극인들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연극으로 맞서고 있다. 블랙리스트 이전과 이후, 연극계의 변화가 느껴지는지 궁금하다.

중도 성향의 연극인들을 진보적인 성향으로 만든 것 같다. (웃음) 연극계 내부에서 검열과 예술의 공공성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가 과연 공적 지원금을 받을 만한 예술 작품을 생산해내고 있었던 것인가’ 하는 고민도 생겼다. 검열과 전체주의 등 사회의 민감한 문제들을 다룬 연극 작품들을 더욱 많이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문화예술은 아무래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문화예술과 정치의 바람직한 관계를 정의한다면?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라는 것이 전 세계 문화예술계에서 통용되는 슬로건이다. 딱 이 문장대로만 되면 좋겠다. 문화예술은 상업적 가치를 따지지 않는 장르이기에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는 선진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연극은 특히나 인풋(input)에 비해 아웃풋(output)이 현저히 적다. 때문에 국가적인 지원이 무조건 필요하다. 지원은 하되, 검열을 비롯한 그 어떠한 간섭도 하지 말아야 한다. 예술 행위를 평가하는 주체는 국민이라고 생각한다. 정부에게는 논쟁을 예단할 자격이 없다. 국민의 세금으로 예술을 지원했으면 국민에게 예술을 향유할 자유와 권리를 주는 게 맞다.

연극인으로서 다음 정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정부에게 잘 먹고 잘살 수 있게 해달라고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실 제작비라도 고민하지 않고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면 좋겠다. 무엇보다 개인의 탐욕이 아닌, 국민을 위해 일하는 정부가 되었으면 한다.

현 정권이 퇴진할 때까지 블랙텐트에서의 공연은 계속된다고 들었다. 3월에 시작될 시즌 3는 어떻게 계획되고 있나?

현재로서는 시즌 3는 생각하고 있지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웃음) 탄핵이 결정되어 블랙텐트가 문을 닫을 경우 공연을 준비한 단체에게 너무 미안할 것 같다. 분명한 것은 블랙텐트에서의 공연은 대통령 퇴진 때까지 계속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그 점만은 확실하다.

현 정권의 퇴진 이후 블랙텐트가 문을 닫더라도, 블랙텐트와 같은 움직임이 문화예술계에서 계속 이어질 거라고 보나?

요즘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다. 내부에서는 원래 계획대로 블랙텐트를 철거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광화문광장에서 사라지더라도 어딘가에서 다시 열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블랙텐트의 미래를 위해, 그러한 담론을 활성화해 사회적인 목소리를 들어볼 생각이다. 블랙텐트의 정신은 연극계를 넘어 우리 문화예술계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본다. 때문에 현재의 모습 그대로는 아니더라도, 어떤 방법으로든 블랙텐트의 정신을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블랙텐트에서의 공연을 보러 오는 관람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한마디 부탁한다.

블랙텐트의 공연을 통해 사회가 예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봤으면 한다. 광장에 극장이 들어선 이유를 생각해보고, 연극인들이 주장하는 목소리에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검열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얼마나 큰 범죄인지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공연 자체를 재미있게 관람하고 가는 것만으로도 극장장으로서 충분히 만족스럽다.

블랙텐트 이후, 극단 고래의 대표로서 선보일 작품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줬으면 한다.

광화문광장 캠핑촌에서 두 달 넘게 생활하면서, 이 사회에 가해지는 고통을 더욱 깊이 사유하게 됐다. 그로 인한 소재도 알게 모르게 얻게 됐고. 그러한 이야기들이 어떤 모습으로든 앞으로의 작품에 드러날 것 같다. 극단 고래는 1년에 두 편의 정기공연을 올리고 있는데 올해의 첫 번째 작품은 <불량청년>이라는 재공연 작품이 될 것이고, 두 번째 작품은 우리 사회에서 제도적인 장치로 인해 일어나는 폭력에 관한 신작이 될 것 같다. 추운 날씨에 광화문 광장에서 생활하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묘한 만족감까지 느끼고 있다. 그동안 일관되게 작업해왔던 것처럼 소외된 상처와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갈 것이다.

글 윤현영
사진 최성열
사진 제공 백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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