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가상세계로 모험을 떠나자
<2001/2023: 스페이스 오딧세이> VR 예술교육
가상세계 예술을 경험하고 싶은 14세부터 19세 청소년들이 서울예술교육센터에 모였다. <2001/2023: 스페이스 오딧세이>는 예술가와 청소년이 함께 가상세계를 탐험하는 워크숍이다. 청소년들은 VR 기기를 손에 들고 자기표현의 도구로 사용해 가상공간을 활용한 예술 창작을 경험한다. 4월 10일 토요일에 어색하게 만난 그들의 첫 번째 현장을 전한다.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보자
“가상이라는 무한의 공간 속 현실 세계의 확장을 넘어 새로운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보자! 내가 만든 예술 가상공간에서 나의 아바타와 친구들의 아바타가 만난다는 것. 그 만남은 어떤 모습일까?”
처음 만난 예술가와 청소년들이 한 책상에 둘러앉아 <2001/2023: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 무엇을 할지 대화를 나누며 워크숍이 시작됐다. 예술가 임지영이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기를 표현하는 공간을 만들고, 그곳을 탐험하는 거야.” 예술가가 강조한 부분은 가장 먼저 말한 ‘자기를 표현하는’이다. 그래서 첫 번째 워크숍에는 아이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다섯 가지를 종이에 적어보는 시간이 있었다.
예술가가 종이와 연필을 아이들에게 나눠준다. “종이에 자기를 표현하는 다섯 가지를 적어보는 거야. 조금 어려우려나. 이름이나 별명도 좋고. 좋아하는 거, 싫어하는 거, 갖고 싶은 거 뭐든 괜찮아.” 아이들과 함께 예술가도 참여한다. 자신을 ‘림지’로 소개한 임지영은 ‘함께 사는 고양이 세 마리’ ‘각종 공포증’ ‘회색 맨투맨과 청바지’ 등을 적었다. 아이들도 고심하더니 어느새 다섯 가지를 채워 넣는다. 종이비행기 오래 날리기 대회에서 1등한 아이도 있고, 옷에 조그만 자수를 놓는 아이, 요리를 직접 만들어 집에 친구를 초대하는 아이까지 개성이 다양하다. 한 아이는 수학이 그냥 싫고 국어가 그냥 좋다고 말한다. 예술가가 아이의 말을 되받으며 “국어를 좋아하는구나. 또 뭐가 좋아?” 물어보니 “각종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라고 대답한다. 예술가는 다섯 가지 목록을 말하며 조목조목 적은 이유를 말했지만,아이들은 쑥스러운지 자신 있게 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예술가는 이유를 일일이 묻지 않는다. 아이들이 자기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종이에 적는 과정을 경험했다면 충분하다는 듯 자기표현 시간은 끝났다.
“방금 너희들이 적은 목록은 가상현실에 조금 더 익숙해지고 나면 자기 공간을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어. 가상공간에서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또, 우리가 서로에 대해 아는 시간이었어.” 예술가는 이렇게 말하며 다음 과정으로 아이들을 안내했다.
청소년들이 VR 기기를 통한 가상현실에서예술 창작 과정을 경험하고 있다.
VR 세계에 너와 나의 공간이 연결된다
이제 가상현실에 익숙해질 시간이다. 예술가가 간략하게 VR 기기 작동법을 보여주니 아이들은 금방 따라 했다. 헤드셋을 착용하면 가상현실 세계가 열려 고래가 공중에서 헤엄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현실에서 움직이는 대로 가상현실의 ‘나’도 따라 움직이고, ‘OpenBrush’ ‘SculptrVR’ 등의 프로그램을 실행하면 가상현실의 손에서 다양한 기능을 꺼내 사용할 수 있다. 스마트폰 앱을 고르듯, 왼손 위에 나타나는 다양한 메뉴 중 팔레트를 꺼내 색을 칠하거나 네모난 박스를 꺼내 바닥을 만들 수도 있고, 로켓을 가져와 여태껏 만든 작품을 폭파시킬 수도 있다. 물론 종이 위가 아니라 3차원 가상공간이기에 위에서 아래로 앞에서 뒤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마음껏 꾸밀 수 있다.
가상현실을 맛본 아이들에게 예술가가 말한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뭐든지 그려 보자~” 아이들은 이미 가상현실에 빠졌는지 대답 없이 자기만의 공간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놀이를 즐기고 있다.
아이들은 무엇을 만들었을까? 아이들이 만드는 세상이 각자 자리에 설치된 모니터에 실시간으로 나타났다. 자기표현 시간에 동물 그리기를 좋아한다고 말한 아이는 불을 내뿜는 용을 구체적으로 그렸다. 분명 사람 그리기는 복잡해서 싫다고 말했는데, 더 복잡한 용의 투박한 이빨·꼬리의 갈기까지 생생하다. 게임이 좋다고 말한 아이는 깃발 든 기사를 그렸다. 예술가가 3차원으로도 그릴 수 있다고 말하는데도 꿋꿋하게 2차원 납작한 기사를 완성했다. 갑옷 구석구석 적절한 색이 채워진 상태로 말이다. 상상하는 만큼 가상공간 자체를 마음대로 꾸밀 수도 있다. 이야기가 좋다고 말한 아이는 가상공간을 우주로 만들어 사방에 별을 그리고, 그 우주에 눈이 내리는 풍경을 표현했다. 자기가 만든 ‘우주눈’ 속에서 아이는 어떤 이야기를 상상했을까.
가상공간에서 예술 창작을 시도해 보는 첫날, 아이들은 완성된 가상공간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개인의 개성을 녹인 자기만의 가상공간을 구성하는 경험을 했다. 누구도 평가하지 않는 자유로운 가상공간에서 아이들은 생각나는 대로 텅 빈 곳에 무언가를 채워 넣었다. 흰 종이에 자기를 표현하는 다섯 가지를 적듯이 조금씩, 무한한 가상공간에 ‘나’를 옮겨 그렸다.
예술가는 교육 마지막에 “그곳을 탐험하는 거야”라고 말했다. 다음 수업에서 아이들은 각자가 만든 가상공간을 탐험한다. 자기만의 공간뿐만 아니라 친구의 공간으로 떠나며 서로의 가상공간과 만난다. 아이들은 친구의 공간을 경험하며 이전에는 떠올리지 못한 다른 세상에 적응하고, 자기만의 공간에 ‘무엇을’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할 것이다. 그렇게 자아는 넓어지고 자기만의 공간도 풍요로워진다. 총 8회 교육이 끝나더라도 아이들이 본바탕 그대로의 자신을 가상공간에 고스란히 담기는 어렵겠지만 새로운 자기, 새로운 세상을 끊임없이 탐험하는 힘을 얻기를 기대한다.
<2001/2023: 스페이스 오딧세이>
장소 서울예술교육센터 아츠포틴즈 스튜디오 5층
참여 올리버 그림, 임지영
일정 4월 10일(토)~5월 29일(토), 매주 토요일 오후 2시~5시
문의 02-3785-3199
인스타그램 @artsforteens
글 장영수 객원기자 | 사진 서울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