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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호

“부모 세대와는 다른 기회가 있어요”
텀블벅 염재승 대표

텀블벅은 창작자와 후원자를 연결해주는 대표적인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흡수가 빠르고, 기성품보다는 창작품을 선호하고, 가성비를 중시하지만 가치 있다고 믿는 것에는 아낌없이 돈을 쓰는 밀레니얼 세대들이 주로 이용한다. 텀블벅을 만든 염재승 대표도 1988년생으로 밀레니얼 세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에 재학 중이던 2011년, 영화 제작비를 마련할 방법을 찾다 텀블벅을 창업했다.

원래는 영화를 하고 싶었던 거죠?
진로를 고민하던 중·고등학교 때가 한국영화가 잘나가기 시작한 시기였어요. <살인의 추억>이 나오고 박찬욱 감독이 <올드보이>로 상을 받는 걸 보고 영화가 미래라고 생각했죠. 어릴 때부터 <반지의 제왕>을 좋아했거든요. DVD를 보며 피터 잭슨 감독의 코멘터리를 듣는데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때부터 캠코더로 친구들과 영화를 찍었어요.

영화과 시절에는 어땠나요?
저는 현역으로 들어갔는데 5살에서 7살 나이 차가 나는 동기가 많았어요. 그전까지 영화는 필름으로 찍는 게 당연했어요. 개인이 만들 수 없었고 큰돈이 들어가는 일이었는데, 2007년에 3,000만 원짜리 레드카메라가 나온 거예요. 당시 필름 카메라는 3억 원이 넘었거든요. 2006년 10월에는 구글에서 유튜브를 인수했고요. 저렴하게 고화질의 영상을 만들 수 있는 기술과 지구 반대편 사람들에게 쉽게 보여줄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진 거죠. 당시 저는 엄청 어린 축에 속했지만 앞으로 제작과 소비의 방식이 바뀔 거라는 걸 느끼지 않을 수 없었어요.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상황이었죠. 그전까지 온라인 기반의 활동은 익명성이 있고 신뢰가 없었는데,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커뮤니티가 생기기도 했고요. 여기에 굉장히 큰 기회가 있고 훨씬 적은 비용과 인력으로 멋진 것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올 것 같았어요.

1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출간을 위한 텀블벅 프로젝트 화면 갈무리.
2 염재승 대표의 노트.

영화를 만들어본 경험이 텀블벅을 운영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되나요?
영화를 만드는 것과 서비스나 제품을 만드는 것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영화는 혼자 하는 예술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거거든요. 보는 사람의 반응을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고요. 특히 영화는 협업의 성격이 강하잖아요. 학교 다닐 때도 다들 예술가병에 걸렸다고 해도,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힘을 합쳐야 했어요. 그 안에서 갈등도 많았고요. 제가 예술학교 출신이라고 하면 예술가처럼 일할 거라는 선입견을 갖는 경우가 많은데요. 영화는 공동 작업이라 배우와 많은 스태프를 조율해서 원하는 그림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사업과 비슷합니다.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나요?
영화로 시작했지만 저처럼 다른 사업을 하는 친구도 있고 음악을 하는 친구도 있어요. 유튜브, 팟캐스트 같은 새로운 매체가 나오다 보니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해요. 영화계뿐만 아니라 제 주변의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친구들은 자기 것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제 세대는 다 그런 줄 알았는데 막상 보면 안 그런 사람들도 있고요.

매년 연말이나 연초에 공모를 통해 지원금을 나눠주는 공공의 지원 방식은 몇 년째 거의 그대로이다. 그에 비해 텀블벅은 모든 문화예술 분야 창작자들에게 상시로 열려 있는 크라우드펀딩 방식을 도입해 창작자를 지원한다. 많은 창작자들이 텀블벅을 통해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지지를 받으며 활동을 이어간다. 이에 염 대표는 지난 연말, 2017년부터 협업하고 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예술후원인대상 프런티어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문화예술계에서 텀블벅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한국에서 예술하는 사람들은 공공의 지원금을 받는 것을 당연한 루트로 생각해요. 저에게도 텀블벅을 하기 전에는 가장 중요한 자금원 중 하나였고요.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한정적인 것이 큰 문제라고 봤어요. 공공의 지원을 받지 못한 예술가들이 자금을 구해서 원하는 것을 만들기 힘든 구조예요. 기회를 확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고민하다가 텀블벅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텀블벅은 더 많은 창작자들이 공개된 곳에서 자금을 모을 수 있는 기회를 주니까요.

인상 깊었던 프로젝트가 있나요?
2019년에 했던 프로젝트 중에는 김예림의 EP 앨범 발매 프로젝트 ‘LIM KIM EP 릴리즈’(www.tumblbug.com/supportlimkim)가 기억에 남아요. 원래 <슈퍼스타K>로 알려졌고 메이저에 가까운 영역에서 작업했는데, 독립을 선택하면서 텀블벅을 활용해 후원을 받고 팬덤도 확보하면서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이전에는 인디, 마이너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프로젝트가 많았는데,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가 흐려지는 신호탄 같았어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텀블벅에서 독립출판물로 나왔지만(www.tumblbug.com/lightshadow) 메이저 대형서점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경계가 허물어진 거잖아요. 초기 독립출판물에 이어 새로운 버전으로 정식 출간할 때도 텀블벅에서 펀드레이징을 진행했어요.(www.tumblbug.com/theblues)

후원자들의 반응이 좋은 프로젝트는요?
패션 분야에 ‘낫아워스’(Not ours)라는 비건 패션 브랜드가 있고요. 무대미술을 전공한 두 명이 하는 ‘참새잡화’는 연극적인 소품이나 영화,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상징적인 의상을 일상에서 쓰기 좋게 재창조하는 작업을 해요. 이처럼 일반적이지 않은 매력이 있거나 가치를 진정성 있게 대변하는 프로젝트가 반응이 좋고 성공하는 것 같아요. 환경뿐 아니라 ‘카드캡터 체리’처럼 1990년대생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소재도 공감도가 높고요. 스토리텔링을 잘하면 일차적으로 반응이 오고, 리워드가 괜찮으면 더 많이 밀어주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참여해 일상에서 접하는 환경을 바꿔가는 프로젝트로는 ‘언제 어디서든 신선한 필름, ‘전국 필름 자판기 설치’’(www.tumblbug.com/filmlog)가 있었다. 펀딩 목표액을 달성할 때마다 일회용 필름 카메라 자판기 한 대를 설치하는 프로젝트인데, 693명이 참여해 2,000여만 원이 모이면서 전국에 네 대가 설치되었다. ‘일회용’이라 불리는 카메라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한 필름 현상소에서는 필름을 교체해 재활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젊은 세대들은 크라우드펀딩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 같아요.
창작자 입장에서 펀딩을 받는 것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허용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온라인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알리고 필요한 자금을 모을 수 있는 툴이 생겼어요. 후원자 입장에서는 직접 제작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내가 좋아하고 지지하는 가치에 쉽게 돈을 낼 수 있는 환경입니다. 취향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기술과 쉽게 돈을 지불하는 기술이 맞물려서, 지금 세대는 좋아하는 것을 경제적으로 지지하고 참여하기가 예전보다 쉬워졌습니다.

텀블벅 회원이나 직원들도 대부분 밀레니얼 세대인가요?
창작자와 후원자들은 20~30대가 많고 6:4 정도로 여성이 많아요. 회원은 150만 명을 바라보고 있고요. 직원들의 평균 연령은 31세인데요. 40대 이상도 있고 분포는 다양한 편이에요. 나이는 생물학적인 구분에 불과하고요. 나이보다는 어떤 문화의 수혜를 받고 자랐는지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50대여도 또래로 느껴지고, 같은 세대여도 자라온 문화가 다르면 너무 다르고요.

밀레니얼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밀레니얼 세대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저희 세대가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예전만큼 기회가 많지 않고 밥 벌어 먹고살기 쉽지 않은 건 사실이에요. 부모 세대들은 일자리를 잡거나 집을 사는 게 저희 세대보다 쉬운 편이었고요. 저는 그렇게 바라보게 만드는 사회에 책임이 있다고 봐요. 젊은 세대들이 예전의 프레임으로 보게 하고 부모 세대의 방식으로 사는 게 정상이라고 얘기해요. 저희는 기술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빠르고 삶을 개선할 수 있는 것을 직접 만들면서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세대예요. 저희 세대를 다른 관점으로 봐준다면 덜 좌절하지 않을까요. 기성세대의 목소리가 커서 그런 것 같아요. 자꾸 얘기하니까 세뇌되는 거죠. 사실은 그들이 못 보는 다른 기회가 있어요.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기성세대와 똑같은 길을 따라갈 필요가 없어요. 이제는 기성세대와 같은 방식을 강요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밀레니얼 세대가 기성세대와 가장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기술의 발달에 따른 제작기술의 대중화는 영화뿐 아니라 출판, 게임, 제품디자인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주었어요. 수동적인 소비자로 남는 게 아니라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직접 무언가를 만들고 팬덤을 형성하고 데이터를 활용해 성장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 거죠. 그런 사고방식의 차이가 이전 세대와 굉장히 다른 것 같아요. 이전 세대는 안정적이고 체계가 잡혀 있는 직장에 들어가 어느 단계까지 직급이 올라가는 루트였다면, 저희 세대는 기술과 환경의 변화에서 오는 기회가 많다는 걸 느꼈어요.

밀레니얼 세대와 창작자를 대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세요.
예술을 한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불쌍하게 보거나 앞가림을 못할 거라 생각하는 것을 바꾸는 일이 개인적인 화두예요. 제가 영화를 한다고 할 때도 그런 관점이었거든요. 텀블벅을 하는 이유는 문화예술을 좋아하고 문화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성공하고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서이기도 해요. 문화예술은 돈이 안 된다는 것도 낡은 관점이라고 생각해요. 예술하는 사람들이 대우를 받을 수 있고,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한다고 할 때 존중받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시대 변화를 감지해도 한발 앞서 움직이기는 쉽지 않지만 염 대표는 달랐다. 밀레니얼 세대는 자기 일을 가지고 창업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지 않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없어진 시대에 기성세대의 기준에 따라 청년들은 공무원 시험과 대기업 취업에 매달린다. 예술을 하면 가난할 거라는 고정관념도 마찬가지다. 시대가 변한 만큼 젊은 세대와 예술가를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글 전민정_객원 편집위원
사진 오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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