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 생활예술매개자(FA) 워크숍.
이웃의 재발견
문화예술의 영역에서 바라보았을 때 이웃의 재발견에 관한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벨기에 브뤼셀에 소재한 레 알 드 샤에벡(Les Halles de Schaerbeek)1)은 이웃을 프로그램의 기초이자 주요한 단위로 설정하여 운영하는 공간으로, 실질적인 유럽시민정신의 함양을 목표로 한다. 주요 프로그램 명칭에도 ‘이웃’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예를 들면 ‘이웃의 향연’(Banquet des Voisins)은 식사와 전시회, 춤, 서커스 등 각종 공연을 벌이는 대향연의 자리이다. ‘슈퍼 이웃’(Super Voisins)은 매년 6월 바캉스 전에 모든 프로그램이 종료되도록 하는 대형 축제로 나이와 성별, 인종을 불문하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공간 내에서뿐만 아니라 야외에서도 벌어지는 행사이다.2)
이때 이웃은 지역 주민이라는 주체만이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공간적 개념을 포함하는 의미로서 일종의 ‘동네’(quartier)를 지칭하는 말이며, 문화적 다양성과 혼성의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 이웃은 레 알(Les Halles)이 소재한 지역의 모든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하나가 되도록 한다는 목적에 따라, 지역 문제에 관심을 갖고 예술과 사회의 결합을 위한 모든 예술 활동을 지향한다. 모든 이웃과 관련한 사업은 문화 활동과 실천을 중심으로 시민의 참여에 따라, 그리고 예술적 방식으로 진행된다.3)
레 알의 프로그램에서 주목할 점은 이웃들이 문화 소비자가 아니라 스스로 문화를 만들어내는 생산자로 전환한다는 목표를 기반에 둔다는 것이다. 서커스나 문학, 시각예술, 무용, 음악, 연극 등 다양한 장르를 포괄하며 예술가들과 함께 진행된다. 모든 아틀리에는 이웃들이 교양이나 여가 개념으로 참여하기보다는, 예술 활동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사회의식을 스스로 갖게 되는 등의 사회문화적 효과를 중시한다. 그들이 수동적 감상자가 아닌 능동적 주체가 되도록 하는 것을 전제로 프로그램이 기획된다.4)
생활예술매개자(FA)란?
서울에도 레 알의 이웃 프로젝트 사례에서처럼 지역주민 스스로가 예술 활동을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과 주변의 삶에 개입하도록 또 다른 이웃이 되어 가치를 부여하고 촉진시키는 사람이 있다. 바로 ‘생활예술매개자’(Facilitating Artists: FA)다. 생활예술매개자(FA)는 서울이라는 거대도시 속에 감춰진 조그만 동네에 들어가 서로의 이웃을 찾아주고 이어주며, 새롭게 교류하고 소통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들은 이웃들을 작은 공동체로 묶고, 일상에서의 모임을 통해 스스로가 창조를 주도할 수 있는 주체가 되도록 도와준다. 서울문화재단 생활문화교류팀은 이러한 생활예술매개자(FA)들을 선발하고 양성하여 서울시 곳곳으로 내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생활예술매개자(FA)들 간 교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기획하여 매개 활동의 사례들을 공유하고 노하우를 교환할 수 있는 자리를 지속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올해 4월과 7월 두 차례 공모를 통해 총 100명의 생활예술매개자(FA)를 선발하였으며, 서울시 25개 자치구별 34명, 예술 장르별 31명이 이웃을 발굴하고 찾아가고 있다. 동아리 발굴·조사 및 네트워킹, 공동체 활동 현황 및 리더 발굴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인적자원FA, 서울권역형, 생활권형 공간 운영, 공간 매개사업 진행, 안정화 등을 주로 하는 공간자원FA, 그리고 프로그램 및 축제 등 진행 활성화, 생활예술 활동 기획, 홍보 등의 역할을 하는 기획·홍보FA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생활예술매개자(FA)가 모든 예술 장르를 포괄하여 활동하기가 쉽지 않기에, 단계별로 2년차, 3년차 등으로 예술 장르의 활동 범위를 확대할 예정이다. 2017년에는 오케스트라와 댄스(소셜댄스, 스포츠댄스, 커뮤니티댄스)에서 생활예술매개자(FA)들이 중점적으로 활동하며, 연극 및 시각, 밴드 등의 장르에서도 시민 예술 활동 관련 조사·발굴이 이루어지고 있다. 생활예술매개자(FA)들은 각 예술 장르의 특성에 따라 시민들의 주요 활동 거점 등을 중심으로 발굴을 진행하고, 관련 공간이나 활동 현황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한다. 이미 동아리 발굴이 완료되어 데이터가 축적된 경우에는 동아리 공동체들이 자치구별 축제 및 서울문화재단에서 여는 축제의 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고 있다.
또한 서울 이웃들의 일상 속 생활예술을 영상으로 제작하여 기록하는 매개자로 생활예술MCN(Multi Channel Network) 크리에이터 35명이 존재한다. 생활예술MCN 크리에이터가 담은 영상은 서울문화재단 공식 유튜브 ‘아무나PD’를 통해 소개된다. 35인의 크리에이터가 한 달에 각각 4편의 생활예술 영상물을 제작하면 총 140편의 생활예술 영상콘텐츠가 생성되므로, 이웃들의 소소한 일상을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다.
생활예술매개자(FA) 교육 모습.
생활예술매개자(FA)의 역할과 필요성
생활예술매개자(FA)의 매개 활동 기반은 시민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동네, 마을, 나아가 지역의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발상에서 시작하며,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방식을 지지한다. 이것을 ‘문화민주주의’(cultural democracy)와 연결 지어보고자 한다. 문화민주주의는 창의성의 표현, 삶의 질과 관련된 문제에서의 자기 결정권과 지속적인 교육, 지역사회 개발, 범사회적 의사결정에서 서로 의견을 나누고 참여할 수 있는 능력 등을 위한 제반 여건을 개선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일컬어진다. 문화민주주의가 제안하는 문화 개념은 문화의 민주화와 달리 고급문화로서의 예술만이 아니라, 대중예술과 커뮤니티 아트, 민속예술, 아마추어 예술까지 모두 포괄하는 진보적 입장을 견지한다.5)
이러한 문화민주주의를 위해 생활예술매개자(FA)는 서울시민들에게 고급문화로서의 예술을 이해하도록 돕는 차원이 아니라, 시민 스스로가 자기 창조를 주도할 수 있도록 하는 문화행동을 선행해야 한다. 또 그것을 이웃들에게 전해야 하는 임무가 있다. 이렇게 함께 모임으로 인해 자신으로부터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며, 사회적 동등성을 느끼고 과정을 공유함으로써 함께 나아가는 이웃으로 존재할 것이다. 생활예술매개자(FA)도 서울시민을 수동적 관람객으로 한정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가 움직이는 주체(actor)가 되게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관계를 창조해낼 것이다.6)
이러한 활동을 수행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조건이 있다. 생활예술매개자(FA)가 활동하는 지역에서, 혹은 그 예술 장르 영역에서 생활예술매개자(FA)의 역할에 대한 필요성을 인지하고 그로부터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직까지 서울 내 지역이나 시민 예술 활동 현장을 가보면 생활예술매개자(FA)에 관한 이해도가 낮고 그 역할이나 필요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생활예술매개자(FA)들이 거절당하고 돌아오는 사례가 있는 것도 현실이다. 생활예술매개자(FA)가 열심히 활동하는 것만으로는 무의미하다. 우리 삶의 현장에서 혹은 생활예술의 영역에서, 각자의 예술적 활동을 이어주고 재발견해주는 생활예술매개자(FA)의 역할을 인정할 때, 진정한 문화민주주의를 이루어낼 수 있으며 삶으로서의 예술도 가능할 것이다.
1) 레 알 드 샤에벡(Les Halles de Schaerbeek)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www.halles.be) 참조.
2) 박신의, <문화예술공간, 지역 사회, 이웃: 벨기에 브뤼셀의 ‘레 알 드 샤에벡’(Les Halles de Schaerbeek)>, 문화예술경영학연구, vol.4 No.1, 2011, pp. 44~45.
3) 위의 논문, p. 41, 44.
4) 위의 논문, p. 46.
5) 위의 논문, p. 49.
6) 위의 논문, p. 51.
- 글 조예인_ 서울문화재단 생활문화지원단 생활문화교류팀 팀장
- 사진 서울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