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는 지금
노르웨이의
헨리크 입센
가꾸기
노르웨이는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이 10만 달러에 육박하는 부국이지만 아픈 역사가 있다. 바이킹의 후예로서 노르웨이 왕국은 크게 번성했지만 14세기경부터 600년간 덴마크·스웨덴과 동군同君 동맹을 맺으며 속국이 됐다. 현재의 노르웨이는 1905년 스웨덴에서 독립했다. 헨리크 입센Henrik Johan Ibsen은 엄밀히 말하면 노르웨이-스웨덴의 시엔Skien에서 1828년에 태어났다. 부유한 가정의 아들이었지만 이내 부친의 사업 실패로 입센 가는 풍비박산했다. 그런 가정환경의 영향도 있겠지만, 입센은 춥고 어두우며 음습한 노르웨이를 싫어했다. 노르웨이적인 연극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극작을 비롯해 연극의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경제·정신적 고통을 겪으며 입센은 무엇보다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구습에 싸여 사는 노르웨이의 국민성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이런 인식이 그가 나중에 사회문제극을 쓰는 밑거름이 됐다.
입센은 작가로서의 탈출구를 고국 노르웨이가 아니라 타국에서 찾았다. 그는 1864년 자의적으로 망명해 27년간 이탈리아와 독일에 머물렀다. 그의 대표작은 거의 이 망명기에 쓰였다. 특히 사상가적 면모까지를 보이는 질문을 담고 있는 입센의 작품에 독일인은 열광했다. 그렇게 독일을 거점으로 입센은 ‘브란’1866, ‘페르 귄트’1867로 스칸디나비아에서 유명해졌고, ‘인형의 집’1879으로 세계적인 문명을 얻으며 당시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공연권 수익을 올려 부와 명예를 거머쥔 작가로 부상했다. 입센은 드디어 노르웨이의 지방성provincialism을 극복했고 1891년 금의환향했다. 입센은 노르웨이인으로 시작하여 스칸디나비아인으로 발전했으며 튜턴Teuton(독일) 정신에 도달했던 작가, 아니 명실상부한 연극인이고 예술가였다. 극장 운영, 연출, 무대미술, 의상디자인까지 종횡무진 활약한 희곡 작가이자 시인·화가이기도 했으니까.
입센은 북유럽의 존재 없던 나라였던 노르웨이를 예술적 측면에서 세계적으로 알린 첫 인물이었다. 노르웨이는 그런 입센을 어떻게 대접해왔을까? 입센을 기리는 노르웨이의 가장 크고 세계적인 프로젝트는 2008년 ‘국제입센상International Ibsen Award’을 제정한 것으로, 세계의 연극상 중 상금이 가장 많은 상이다. 처음엔 한화 약 5억 원이었으며 요즘은 3억 원 수준으로 낮아졌다고 한다. 이 상의 가장 큰 미덕은 세계 연극계 제1인자에게 수상한다는 점이다. 1회2008 수상자는 영국의 연출가 피터 브룩Peter Brook, 2회2009 수상자는 프랑스의 테아트르 뒤 솔레유Theatre du Soleil(태양극단)의 대표이자 연출가인 아리안느 므누슈킨Ariane Mnouchkine이었다. 두 사람 모두 입센의 작품을 연출한 적이 없으나 그야말로 세계의 톱 클래스 연출가들이다. 2023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욘 포세Jon Fosse는 이 상의 3회2010 수상자였다.
또한 1990년부터 비엔날레로 짝수 해에 ‘입센 페스티벌Ibsen Festival’도 열린다. 오슬로 국립극장을 주축으로 여러 극장에서 해외 출품작과 노르웨이 자체 입센 프로덕션이 약 2주에 걸쳐 관객과 만난다. 또한 입센 작품에서 모티프를 얻은 젊은 예술인의 혁신적인 작품을 지원하는 입센 스코프 페스티벌Ibsen Scope Festival도 열린다. 2028년에는 입센 탄생 200주년을 맞이해 훌륭한 작품들이 노르웨이를 찾는 세계 예술가 및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노르웨이 조각가를 기린 명소 비겔란 조각공원 ⓒVisit Norway
오슬로는 입센의 도시다. 왕궁에서 큰길을 건너면 입센박물관Ibsenmuseet이 있다. 그 길의 바닥에는 입센 작품의 명대사가 동판 위에서 여전히 빛을 발한다. 그가 만년을 보낸 집이 박물관으로 재탄생했고,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입센의 혼이 담긴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다. 그런데 2025년에 또다시 오슬로를 방문한 필자는 입센 가꾸기가 뭉크 가꾸기에 뒤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뭉크박물관Munchmuseet은 사람들 말에 의하면 “돈을 바른” 오슬로 오페라하우스 옆에 새로 오픈했고, 방문객이 정말 많았다. 한데 입센박물관 앞에 서 있던 지팡이를 들고 실크해트를 쓴 입센의 동상이 철거되고 없었다. 물론 입센박물관 자체는 새 단장을 해놓았지만. 아마도 보행자에게 방해가 되어서 그런 것으로 생각하면서도 필자로서는 몹시 섭섭했다.
물론 노르웨이에서 입센 가꾸기는 여전하다. 입센박물관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국립 도서관 뒤쪽으로 오슬로 대학 부설 기관인 입센연구소(1993년 개소)가 있다. 이곳에서는 전 세계 문명국에서 출판된 입센 관련 서적과 출판물을 수집하고 있다. 2007년 이곳을 처음 방문한 필자는 한국어로 된 어떤 자료도 볼 수 없어 충격을 받았고 그 충격이 입센 평전을 쓰게 했다. 그리고 노르웨이어를 공부해 입센 희곡 전작을 번역하고 10권으로 출간하게 된 시발점이 됐다. 이제 그곳에선 한국어로 된 책을 볼 수 있다. 우리도 문명국이니까.
지난 3월 유럽에서 활동하는 연출가이자 작곡가·비디오 아티스트 구자하Jaha Koo가 2026년 국제입센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공부하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예술대학에서 연극을 공부했으며,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하리보 김치>, <롤링 앤 롤링>, <쿠쿠>, <한국의 역사> 등이 있다. “과장되고 요란한 것이 종종 최고로 여겨지고 찬사받는 세계에서 구자하는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방식을 제시한다. 요란하고 과장된 것 대신 친밀하고 섬세하며 작은 것들을 택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는 실내악단의 우아한 연주와 같지만, 동시에 날카로운 사회·정치적 비판과 정체성, 이주, 민주주의의 침식에 관한 확장된 성찰을 담아낸다”고 심사위원단은 선정 이유를 붙였다. 상금은 250만 노르웨이 크로네(한화 약 3억 9천만 원)이며, 9월 26일 시상식 후 27일 노르웨이 국립극장에서 <쿠쿠>를 공연한다.
글 김미혜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