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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0월호

몸에서 몸으로 전해진 기억의 잔향

오늘날 탄생하는 춤은 동시대에 어울리는 미감을 지니거나 현대인의 취향을 반영하기를 으레 요구받는다. 예술은 고고한 박물관의 소장품이 아니라 사람,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가는 사회와 생동할 때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위적이고 추상적인 예술만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춤을 추는 사람, 무용수의 몸짓에 깊은 곳에 내재해 있는 기억을 불러올 때 예술의 가치는 새로이 발견된다. 몸에서 몸으로 전해지는 춤, 그 이면의 몸짓은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까지 전부 담고 있는 기록 그 자체다.

전통춤은 단순한 과거의 예술 양식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공동체의 의례와 삶의 방식이 새겨진 몸의 기록이다. 한국무용·발레·현대무용 삼분법에 따른 한국춤이 아니라 시대를 거듭하며 이른바 ‘전통’으로 불리게 된 몸짓을 통해 선대의 기억을 불러 모은다. 오늘날 예술가들이 무대 위로 소환한 전통춤의 요소는 단순한 차용이 아니다. 오히려 태곳적부터 내재해온, ‘기본’이라 불리는 본질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Fan Xi/Tao Dance Theater

춤, 몸짓은 기억의 잔향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익숙한 기치처럼, 예술가 개인과 그 문화권의 전통이 동시대의 춤에서 발견될 때 강한 소구성을 드러낸다. 한국과 중국·일본·홍콩·대만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권의 문화와 전통은 개별의 고유성을 지니는 동시에 구성원 모두에게 익숙한 보편성을 띤다. 그래서일까, 오늘날 예술가에 의해 마주하는 춤에서 아시아의 색채를 발견하는 일이 반갑고 즐겁다. 그러한 춤에서 장르 구분을 떠나 통용되는 요소들은 자연스레 무대 위 몸의 서사로 이어진다.

한국의 무용가들이 자연의 이치에서 영감을 받거나 ‘정중동’으로 대표되는 한국춤의 기운에서 모티프를 얻듯, 중화권 무용가들은 동양 사상에 천착한 작품을 자주 발표한다. 명상, 호흡, 무술, 그리고 현대적인 움직임을 접목해 동양의 색채가 뚜렷한 작품을 다수 발표하며 세계의 주목을 받은 린화이민Lin Hwai-min의 클라우드 게이트 댄스 시어터가 대표적이다.

중국 태생으로 23세 나이에 자신의 이름을 딴 단체를 창립하며 꾸준히 자신만의 작업을 선보이고 있는 안무가 타오 예Tao Ye는 움직임을 반복하고 제한하는 자신만의 방식을 통해 미니멀리즘 양식의 작품을 만들어간다. 2, 4, 5, 6, 7, 8… 현재 17까지 이어진 숫자 시리즈가 대표적이며, 과도한 움직임과 의도된 동작을 지양하고 신체 구조에서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리듬에 충실할 것을 지시한다.

그의 작품 가운데 2024년 초연한 <16>은 제목처럼 열여섯 명의 무용수가 한 줄로 등장해 물 흐르듯 유동하고, 원을 그리며, 행진하는 움직임을 수행한다. 춘절이면 악귀를 쫓고 복을 기원하기 위해 중국 각지에서 펼치던 용춤의 움직임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우리 전통춤에도 동물을 흉내 내는 데서 착안한 춤이 여럿 존재한다. 궁중에서 공연된 학연화대합설무와 박접무가 있고, 민간에서 전승된 동래학춤과 사자춤도 전해진다. 그것이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보존되고 있다면, 타오 예가 안무한 춤은 전통의 모티프만을 간직한 채 완전히 새로운 착상을 보여준다.

막대기에 매달린 용 모양 인형이 사람들의 움직임에 의해 춤추듯 보이는 것처럼, 무용수는 자신의 몸이 누군가에 의해서만 춤을 행할 수 있는 것처럼 움직인다. 두 팔을 고정한 몸은 자유의지를 빼앗긴 듯하지만, 그로 하여금 오히려 신체성이 지닌 흐름과 굴곡은 강조되는 식이다. 차례로 이마·코·귀·정수리로 중심점을 이동시키며 신체 분절을 360도로 회전하며 만드는 움직임이 흥미롭다. 장식이라곤 없는 간결하고 반복적인 리듬에 절도 있게 진행되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묘하게 흡인력을 일으킨다. 상상의 동물이지만 초자연적인 힘을 지닌 존재로 여겨지는 용을 상정하고 상징성을 부여한 것이 한국 관객에게도 꽤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중국 전통춤을 토대로 현대적인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홍콩무용단의 대표 레퍼토리인 <24절기>는 자연과의 영원한 교감을 주제로 한 대무용시Grand Dance Poem로, 2023년 초연했다.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동양에서 공유하는 계절 구분법인 24절기는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강조하는 우리의 태도와도 닮았다. 독특하게도 이 작품은 한국 예술가와의 협업으로 제작됐는데, 작곡가 김철환, 의상 디자이너 민천홍, 조명 디자이너 류백희가 참여했다. 무대에 펼쳐진 시청각적 풍경은 서사를 담고 있어서인지 익숙하면서도 한국춤과는 다른 기운을 내뿜는 춤사위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사계절은 세계의 수많은 예술가에 의해 자주 활용되는 모티프지만, 이를 세분화한 24절기는 아시아권에서 활용할 수 있는 독특한 소재 아닐까. 서양의 발레 형식을 차용한 것은 같지만, 이들의 대무용시와 신무용 시기에 등장한 우리의 무용극이 어떻게 같고 또 다른지 견주어 보는 것도 흥미롭다. 국적과 인종, 언어를 불문하고 모두에게 통용되면서도 나만의 색깔을 띠는 것, 예술가가 자신의 뿌리를 기억하면서도 현시대와 공명하는 전략이 될 것이다.

김태희 무용평론가

아시아권 무용의 현재가 궁금하다면
타오 댄스 시어터 <16&17>
10월 16일과 17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홍콩댄스컴퍼니 <24절기>
10월 18일과 19일 국립국악원 예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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