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넓혀나가는 이야기
어떤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가? 믿을 수
있는 사람, 아름다운 사람, 적극적인 사람,
젊고 활기찬 사람,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을 떠올리기 쉬울 것이다. 실제로
많은 창작물의 주인공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늘어선 영화 포스터를
보면서 어딘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비장애인, 백인, 남성, 청장년의
세계. 현실의 ‘일부’만을 확장 반영하는
느낌을 벗을 수 없는 서사의 나열.
그런데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를 접해보면 삶 형태의 다양성 그
자체가 이야기의 중요한 축이 되는 작품이
예상외로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사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문학상의
수상작은 거의 그렇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팔라시오R . J. Palacio가 쓴
소설 『원더Wonder』는 어린이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작품임에도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118주간 올라 있었고,
스티븐 크보스키Stephen Chbosky 감독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이 작품의 속편
『화이트 버드White Bird: A Wonder Story』 역시
영화화해 한국에서 개봉했다. 이 두 작품을
통해 ‘주인공의 자격’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원더>2017의
주인공은 ‘어기Auggie’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어거스트 풀먼(제이콥 트렘블레이
분)이다. “나는 평범한 꼬마가 아니다”라는
어기의 선언 같은 독백은 넘치는
자신감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다. 유전자
문제로 27번의 성형수술을 거친 어기의
꿈은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잦은
수술로 학교에 다니지 못했던 어기가
마침내 등교하게 되면서 어기의 가족은
어기를 위한 걱정에 젖어든다. 어기의
어머니 이사벨(줄리아 로버츠 분)과 아버지
네이트(오언 윌슨 분)는 어기가 열 살이
되던 해, 드디어 어기를 학교에 보내기로
결심한다.
<원더>의 동명 원작 소설은 한국에 처음
출간되던 당시 『아름다운 아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사람들이 흔히
겉모습이 아름답지 않다고 하지만 내면은
아름다운’이라는 복잡한 함의를 품고
있는 듯한 이 제목은 영화 개봉 이후
영어 원제 ‘Wonder’를 그대로 읽은
『원더』라는 제목으로 개정 출간된다.
소설은 주인공 어거스트를 포함해
비아· 서머· 잭· 저스틴· 미란다 등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모든
이야기에서 어거스트는 화제의 중심에
있는데, 장애가 있는 동생을, 새 학급
친구를, 친구의 동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여러 청소년의 입장을
두루 보여주는 이야기로 구성된다.
작가이자 그래픽 디자이너인 팔라시오는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영화 속 어기와
비슷한 외모의 소녀를 만난 일을 바탕으로
『원더』를 썼다.
영화 <원더>는 주요 인물의 시점을 살리는
동시에 앙상블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남다른 외모를 가진 어기의 학교 적응기를
중심에 두는 영화는 어기를 수동적인
약자로 축소시키지 않는다. 어기는
<스타워즈> 시리즈를 사랑하고 과학에
능한 데다, 크리스마스보다는 핼러윈을
좋아하는 선명한 취향의 소유자다.
빼어난 유머 감각의 소유자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어기의 성격이나 마음을 알기
전에 겉모습을 본다.
그런데 어기 주변 사람들에게도 할 말은
있다. 어기와 함께 어울리라는 어른의
권유를 받은 잭 윌은 부담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가정형편이 넉넉지
못한 잭은 ‘눈치껏 행동해야 한다’는
분위기에 따라 움직이지만, 어기의 곁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그와 진짜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 한편, 어기의 누나 비아는
어려서부터 어기를 위해 양보하고
희생하는 가족의 일부가 돼 눈에 띄지 않게
지내왔다. 사랑받고 싶은 어린이라는 건
매한가지지만 수시로 응급상황에 처하는
동생에게 달려가는 부모에 익숙해져 있다.
이런 상황에 서운함을 드러내는 일이
가족에 대한 배신처럼 느껴져 가족 속에
고립된다.
영화는 장애가 있는 주인공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진행하는 데 있어 단순한 선악
구도로 인물을 배치하지 않는다. 누구나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며
그 자리에서 삶은 한없이 나약한 감정들의
총합이라는 사실을 배워갈 뿐이다. 그렇게
모든 사람은―심지어 이미 성인인 어기와
비아의 부모도―<원더>의 이야기를
통과하며 변화하고 성장한다. 어기의
등교와 관련한 걱정과 근심은 예상한
난관에 부딪히지만, 그 난관을 뛰어넘을
지혜와 힘 또한 어기에게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잭은 어기와 가깝게 지내라는
어른들의 말에 저항감을 느끼지만, 자신이
품은 편견을 직시하고 어기와 진정한
친구가 되고자 손을 내민다. 비아는
자신이 부모의 애정을 갈구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동생을 적대시하는 게
아님을 받아들인다. 모든 인물은 다른
인물의 배경으로, 중요한 삶의 관계자로
등장한다. 한 사람이 이야기를 독점하는 게
아니라.
한편 <원더>에서 어기를 괴롭히는
줄리안은 새로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됐다.
팔라시오가 그리고 쓴 그래픽 노블 『화이트
버드』를 영화화한 동명의 작품에서다.
영화 <원더>에서 줄리안을 연기한
브라이스 게이사르가 그대로 줄리안을
연기하는 것은 물론이다. 어기를 괴롭혀
학교를 옮긴 줄리안은 뒤늦게나마 자신의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급우들의 말 한마디도 예사롭게 흘려넘길
수 없는 줄리안은 어느 날 뉴욕을 방문한
할머니 사라(헬렌 미렌 분)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사라의 이야기는 <화이트
버드>에서 액자 속 이야기로 역할하며
사실상 영화를 이끌어간다. 1942년
나치는 프랑스를 점령하고, 유대인인
사라(아리엘라 글레이저 분)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진다. 한쪽 다리를 쓸 수 없어
급우들 사이에서 늘 놀림의 대상이던 소년
줄리안(올랜도 슈웨르트 분)은 사라가 숨어
지낼 수 있도록 헛간을 내준다. 『안네의
일기』를 연상시키는 흐름의 <화이트
버드>는 <원더>에서 어기를 차별하고
따돌리고 괴롭힌 줄리안이 차별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자신의 행동을 돌아볼
기회를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얻게 한다.
이야기를 통해 변화하고 성장할 것. 그리고
‘우리’의 범주를 넓힐 것. <원더>와 <화이트
버드>가 알려주는 주인공의 조건이다
글 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