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풀이춤,
온전히 자신을
가다듬는
춤사위
바야흐로 살풀이춤의 계절이 왔다. ‘살풀이’에 한 해 살을 풀어 없앤다는 뜻이 담겨 있는 만큼, 설이 오기 전까지 묵은 살을 떨쳐내고 새로운 시기를 맞이하기에 적절한 의식이다. 그래서인지 12월 한 달간 <전통춤 류파전>에서 김숙자·이매방·한영숙류 살풀이춤을 공연하는 것에서부터 국립국악원 <토요명품>을 비롯해 각지에서 살풀이춤 공연이 열렸다.
살풀이춤의 기원이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굿에서 시작된 춤이 일제 강점기에 사라지면서 교방문화로 이어졌다가 무대화되었다는 설이 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문헌상의 기록은 1918년 『조선미인보감』을 시작으로 본다. 남부 지방 민간에서 추는 ‘남중속무’를 살풀이춤으로 보고 있어서다. ‘살풀이춤’이라는 명칭의 공식 기록은 당대 명창 사이에서 손꼽히던 명고수이자 근대 한국춤의 아버지로 불리는 한성준의 1938년 조선음악무용연구회 공연이다. 물론 신라 시대 도솔가가 도살풀이 또는 살풀이로 해석하고 있어, 살풀이와 살풀이춤이 이보다 더 오래전부터 민간에서 서민의 삶에 녹아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한마디로, 살풀이춤은 오랜 세월 우리의 애환을 풀어주는 춤으로 존재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재밌는 건, 오방색의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굿판에서 유래를 찾는 춤임에도 백색 혹은 옥색에 이렇다 할 장신구 하나 없이 단출한 옷을 입고 추는 춤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병에 걸린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하려고 흰옷을 입고 춤을 추었더니 아버지 병이 나았다’는 설화와 연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의상이나 장신구가 없어도 길거나 짧은 수건을 허공으로 던지듯이 풀었다 당겨 받고 어깨에 메거나 땅에 떨구는 등의 춤사위나, 한없이 화려한 발재간은 그 자체만으로 담백하면서도 깊이 있는 예술성을 보여준다. 그 아름다움을 두고 한 시인은 “금빛 실타래”, “흔들리는 꽃잎”, “춤추는 나비” 등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푸르스름한 빛으로 빛나는 세상
내 마음의 금빛 실타래
부드럽게 흔들리는 꽃잎
샛바람 불어오는 사이
푸른 생명의 꿈
춤추는 새하얀 나비처럼
뜨거운 욕망의 끝에서
젖어 드는 기쁨의 햇살
고요히 맑은 마음의 그림자
김월수, ‘살풀이’
살풀이춤에는 여러 이름이 있다. 손에 길고 짧은 수건을 들고 추기에 ‘수건춤’이라고도 불리고, 1980년대부터는 수건 없이 추는 ‘민살풀이춤’도 생겼다. 즉흥성이 두드러져 ‘허튼춤’, ‘산조춤’이라고도 불리고, 의례적 성격을 담아 ‘도살풀이춤’ 등으로 불리는데 모두 나쁜 기운을 풀어 없앤다는 점에서 의미가 같다. 살풀이춤은 즉흥성이 강하면서도 지역별 유파의 개성이 돋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살풀이춤을 좀 더 선명하게 해주는 말이 있는데, 조부의 춤을 이어받은 한영숙 명무의 말이다.
학춤을 출 때는
학이 되어야 하고,
태평무를 출 때는
궁중의 여인처럼 크고 화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고,
승무를 출 때는
법고 앞에 선 불제자로 마음을 가다듬어야 하지만,
살풀이를 출 때는
온전히 그 자신으로서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김영희, 『춤풍경』, 2016
조부의 춤을 이어받은 한영숙은 한영숙류 살풀이춤을 완성했고, 그 춤은 다시 이은주가 이었으며 2015년, 서울특별시 무형유산 살풀이춤 보유자로 지정됐다. 서울·경기권에 한성준의 춤을 이은 한영숙류 살풀이춤이 있듯이, 경기도에는 김인호의 춤을 이어 만든 이동안류가 있고, 대전에는 김숙자의 춤을 이은 김란류가 있다. 전라도에는 이대조의 춤을 이은 이매방류, 전북에는 추월의 춤을 전승한 최선류, 대구 박지홍의 춤을 이은 권명화류도 빼놓을 수 없다.
무형유산의 하나로 살풀이춤을 살펴보면 마치 오래된 역사의 한 페이지처럼 인식되기도 하지만, 담백하고 은은한 매력을 지닌 춤과 그 속에 담긴 정신이 우리의 삶에 생동하고 있음이 자명하게 드러나는 순간도 있다. 대표적 예가 BTS 지민의 살풀이춤이다.
세계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이 퍼포먼스에 관해 고려대학교 지영선 명예교수는 “한국 문화와 예술의 재발견”이며, “살풀이춤과 함께 최고의 문화와 최대 엔터테인먼트의 결합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이 퍼포먼스가 있기 전까지 살풀이춤을 상상하며 으레 ‘한’의 정서를 떠올린 사람도 있을 거다. 하지만 우리 정서엔 ‘한’만 있는 것이 아니라 ‘흥’도 있다. ‘한’을 그저 ‘한’으로만 받아들인다면 전통 장례나 굿판에서 벌어지는 연주와 춤사위의 의미는 퇴색하고 만다. 살풀이춤도 마찬가지다. 살풀이춤을 통해 풀어내는 살, 즉 액厄은 일상의 고단함일 수도, 시기에 따른 고난일 수도, 예기치 못한 병마일 수도 있지만, 결국엔 이것을 모두 털어내고 흥으로 승화해 일상의 기쁨을 찾는 것이 궁극적인 살풀이춤의 바람이다. 그래서 살풀이춤에는 ‘한’과 ‘흥’이 모두 담겨 있다. 1938년 6월 19일, 살풀이춤 공연에 관해 조선일보에 실린 공연 후기에도 이런 문구가 담겨 있다. “이 춤은 가장 통속적인 춤으로 처녀가 수건을 쓰고 흥에 겨워 추는 춤이다.” 필시 살을 풀어내고 난 춤꾼의 흥을 엿보았으리라. 이제 우리도 한 해 묵은 액을 털고 흥으로 새해를 맞아볼 때다.
글 김보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