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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월호

한을 품고 시작하기
—한발과 한걸음

을 말하는 게 아니다. 새해 벽두부터 서리를 내릴 생각은 없다. “그 수량이 하나임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고 “어떤”이나 “같은”, 혹은 “대략”을 의미하는 관형사 ‘한’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바야흐로 ‘한’을 품어야 하나부터 출발할 수 있으니까, 1월 1일부터 한 발 또 한 발 내디딜 수 있으니까. ‘한편’, 한과 발을 붙어 ‘한발’이라고 쓰면 “어떤 동작이나 행동이 다른 동작이나 행동보다 시간·위치상으로 약간의 간격을 두고 일어남을 나타내는 말”이 된다. 한발 늦을 수도 있고 한발 앞서거나 뒤처질 수도 있다. 갈등의 골이 깊어질 때면 한발 양보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해가 밝기 전에 2025년 다이어리를 사고 새해에 해야 할 일을 정리하는 이는 한발 빠르게 한 해를 맞이하는 사람이다.

한 해의 끄트머리에서 이 글을 쓴다. 아쉬움과 기대감을 저글링 하는 마음으로 쓴다. 끄트머리는 “끝이 되는 부분”을 뜻한다. 한 해의 첫날을 1월 1일로, 마지막 날을 12월 31일로 정하지 않았다면 시간은 일방적으로 흘러가기만 했을 것이다. 계절이나 날씨의 변화에 따라 시간의 경과를 겨우 짐작했을 것이다. 자신이 몇 살인지, 태어나고 얼마큼 시간이 흘렀는지, 몸이 자라기를 왜 멈추었는지 결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아예 궁금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일은 언제 오는지, 내년에 무엇을 할지, 10년 뒤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 따위는 염두에 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 살 더 먹는 일이 어릴 적만큼 기쁘지는 않지만, 한 해가 있어 끄트머리에서 돌아볼 수 있다는 사실만큼은 실로 다행이다.

끄트머리의 두 번째 뜻은 “일의 실마리”다. 잘 알다시피 실마리는 “감겨 있거나 헝클어진 실의 첫머리”를 가리킨다. 실타래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실을 바늘귀에 넣고 마침내 바느질을 시작할 수 있다. 실마리는 또한 “일이나 사건을 풀어 나갈 수 있는 첫머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해결의 실마리, 대화의 실마리, 화해의 실마리…… 삶을 지속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실마리인 셈이다. 실은 겉으로 보기에 한없이 약해 보이지만 그것을 잇고 꿰면 튼튼한 옷감이 만들어진다. 삶에 위기가 찾아왔을 때도 마찬가지다. 실마리를 찾거나 실마리가 풀리면, 그것은 열매를 뜻하는 실實로 연결될 수 있다. 매듭을 푸는 사람 이전에 매듭을 지은 사람이 있었듯, 실마리를 푸는 사람 이전에도 실타래를 지은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한’이라는 글자를 머릿속 한가운데에 적어두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한차례’다. 이상하지, 자주 쓰는 단어가 아닌데 나에게 ‘한’의 바탕에는 아무래도 ‘한바탕’이 있는 모양이다. ‘한차례’는 다름 아닌 “어떤 일이 한바탕 일어남을 나타내는 말”이기 때문이다. 한차례의 폭우, 한차례의 폭설, 한차례의 소란, 한차례의 고성, 한차례의 몸살감기…… 한차례 다음에 나오는 것들은 크게든 작게든 삶을 뒤흔든다. 개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한차례의 폭소”다. 폭소로 인해 긴장감은 해소되고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느슨해지기 때문이다. 두 차례까지도 필요 없는 꼭 한차례의 폭소, 단상이나 무대에 올라 이야기해야 할 때 가장 간절해지는 것도 이것이다. 한바탕 웃고 나면 가까워질 수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웃음을 나누었다는 이유로 ‘한편’이 되는 작은 기적이다.

‘한곳’이라는 단어는 “일정한 곳” 또는 “같은 곳”을 뜻한다. 한곳에 오래 머무는 사람은 터줏대감이 되고 동네 곳곳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된다. 한곳이 직장을 가리킬 때면, 그는 전문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사람’은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데, 한 사람과 다른 한 사람이 실은 한사람이었음을 발견할 때면 얼굴 전체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나무 한 그루와는 달리, ‘한그루’는 “한 해에 그 땅에서 농사를 한 번 짓는 일”이나 “한 농경지에 한 종류의 농작물만을 심어 가꾸는 일”을 가리킨다. ‘한 번’이 횟수가 중요하다면 ‘한번’은 어느 때에 찾아올 기회를 품고 있는 단어다. ‘한해살이’ 농작물을 볼 때면 가슴이 아프다가도, ‘한봄’과 ‘한여름’에 그 자리에 다시 고개를 들 농작물을 떠올릴 때면 ‘한곳’이 품고 있는 가능성에 탄복하게 된다.

삶은 뜻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으므로, 우리는 종종 “어떤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거나 어려울 때”를 뜻하는 ‘한고비’를 넘겨야 한다. 한고비를 넘기 위해서는 나와 ‘한뜻’을 품고 ‘한목소리’를 내주는 ‘한통속’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한뜻을 품은 이상 “한 사람으로서 맡은 역할을 충분히 하다”를 뜻하는 ‘한몫하다’와도 적극적으로 친해져야 한다. ‘한날한시’에 태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한마음’으로 뭉치기란 가히 어려운 일이다. ‘한쪽’의 맨 끝을 뜻하는 ‘한끝’ 사이를 오가며 근소한 차이를 뜻하는 ‘한 끗’을 끊임없이 헤아려야 한다. ‘한밑천’을 잡고 싶은 욕심이 들거나 나도 모르게 기고만장해질 때면 “기껏해야 대단한 것 없이 다만”을 의미하는 부사 ‘한개’를 떠올리면 된다. ‘고작’이나 ‘기껏’ 등으로 바꿔 쓸 수 있는 이 단어는 나를 ‘일개’로, 그러니까 보잘것없는 ‘한낱’으로 만들어준다.

‘한발’로 글을 시작했으니, 발의 움직임을 담은 ‘한걸음’으로 끝에 도착해야겠다. ‘한걸음’은 ‘한 걸음’과 다르다. ‘한 걸음’이 걸음 하나를 가리킨다면, ‘한걸음’은 “쉬지 아니하고 내처 걷는 걸음이나 움직임”을 뜻한다. 달리는 행동을 담은 ‘한달음’보다는 한결 차분하지만, 내친김에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추진력이 느껴지는 단어다. 한걸음에 이동해서 도착한 곳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희망일까, 가능성일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일까. 그것이 어떤 것이든, 움직이지 않는 이에게 기회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한발’과 ‘한걸음’은 결심한 사람에게만 깃드는 단어일지도 모른다. 한발 앞섰기에 볼 수 있었던 풍경, 한걸음에 내달렸기에 마주할 수 있었던 기적 등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순간 앞에서 우리는 절호의 타이밍에 또 한 번 ‘한껏’ 환호할 것이다. ‘한판’ 승부가 또다시 시작된 것이다.

글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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