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서울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검색 창
  • 인스타그램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

문화+서울

  • 지난호 보기
  • 검색창 열기
  • 메뉴 열기

ARTS+

11월호

예술가의 진심 마지막까지 타오르는 불꽃처럼

예수정

배우 예수정이 서울문화재단 대학로센터 앞마당에 선 채 따스한 가을볕을 쬐고 있었다. 4년 전 만났을 때보다 다소 야윈 모습이었다. 무명천같이 순수하고 꾸밈없고 단정한 이미지. 화장기 하나 없는 민얼굴에 염색하지 않은 백발을 곱게 묶은 그는 자주 “수정아, 쌤통이다”라고 말했다. 설령 타인으로 인해 어떤 불운이 닥쳐도 그 일의 근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으며 크게 연연하지 않는 모습. 그게 그가 세상을 대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방식인 듯했다. 결이 고우면서도 단단한 삶의 태도다.

그가 오는 11월 14일부터 12월 6일까지 대학로극장 쿼드 무대에 오르는 이성열 연출 <화염>에서 어머니 ‘나왈’ 역을 맡았다. 이번 공연은 서울문화재단이 한국 연극의 미학적 진화를 이끌어온 거장 다섯(김아라·김광보·김우옥·이성열·한태숙)의 무대를 집약해 선보이는 ‘쿼드, 연극의 질문들: 진화하는 텍스트’ 시리즈의 일환이다. 대학로에서 예수정을 만나 그의 삶과 예술에 관해 묻고 들었다.

<화염> 출연 제안은 언제 받았나요.

작년 12월 초예요. 이성열 감독으로부터 희곡을 받고는 단숨에 읽었죠. 불이 나서 다 타버리고 재가 될 때 마지막으로 타닥타닥 타오르는 불꽃, 그게 화염이래요. 그렇게 재가 될 때까지 인간이 폐허가 됐는데, 그 속에서 또 어떻게 삶을 이어나가는지가 몹시 매력적으로 그려진 작품이에요. 이 감독에게 바로 전화해서 하겠다고 했죠. 짧게 등장하는데도 괜찮겠냐고 하셔서, 이런 작품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다고 말했어요.(웃음)

<화염>은 레바논 출신의 캐나다 극작가인 와즈디 무아와드Wajdi Mouawad의 희곡이다. 캐나다의 드니 빌뇌브Denis Villeneuve 감독이 연극을 보고 감동해 판권을 사고 희곡을 시나리오로 각색해 영화 <그을린 사랑Incendies>을 연출해 큰 호평을 받기도 했다. 레바논 내전의 상처를 배경으로 어머니의 유언을 따라 자신들의 뿌리를 찾아 나서는 쌍둥이 남매의 여정을 그린다. 오이디푸스 서사를 절묘하게 엮어 전쟁의 증오와 학살, 반복되는 고통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용서의 가능성을 장엄한 서사로 조명한다. 예수정은 중년 이후의 나왈을 연기한다.

나왈을 어떤 인물로 해석하나요.

화염과 닮았어요. 젊어서는 엄청 열정적이면서도 자연스러움에 승복할 줄 아는…. 그리고 성인이 돼 글자를 배우면서부터는 그동안 부정의에 굴복한 삶이었음을 깨닫고 그에 맞서 터벅터벅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며 발전하는 인물이에요. 나왈은 열정적이어서 증오의 화신이 될 수도 있지만, 자기를 불사르지는 않아요. 좀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초자아가 그녀를 그렇게 이끌죠. 할머니는 나왈에게 ‘글을 배워라! 그리고 쓰라!’고 했어요. 나왈은 감옥에서 겪은 끔찍한 성고문과 그것을 둘러싼 엄청난 비극적 진실을 기록하고 그 글을 자식들이 읽게 하죠.

이 작품의 메시지가 뭐라 생각합니까.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만 있으면, 인간이기에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믿음만 잃지 않으면, 저는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삶에는 그러한 아름다움이 오라aura처럼 있다고 믿거든요. <화염>은 특히 주옥같은 대사들을 통해 그러한 인식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에요.

가령 어떤 대사가 그런가요.

레바논 시골의 양치기 노인이 마흔다섯 중년의 나왈에게 이렇게 말해요. ‘당신이 산 것도 기적이고, 감옥에서 낳아 사실은 버려져야 했을 당신의 쌍둥이 아이들이 살아난 것도 기적이다. 그러면 기적 셋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거다. 살아봐. 앞으로 또 어떤 기적이 기다리고 있을지.’ 다른 배우의 대사임에도 읽는 순간, 별이 제 머리 위로 막 쏟아졌어요. 전범재판에서 나왈이 자신을 성고문한 아부 타렉을 지목하며 ‘우리 모두를 피해 간 정의를 당신은 피할 수 없을 겁니다’라고 말하는 대사도 놀라워요.

작품을 설명하는 동안 그의 표정에는 눈에 띄게 희로애락이 수시로 교차했다. 삶의 기적을 언급할 때는 두 눈이 경이와 환희의 감정을 담아 반짝였고, 전범재판에 끔찍한 성고문 피해 증인으로 선 나왈을 표현할 때는 두 주먹을 꼭 쥔 채 금세 얼굴이 일그러지고, 눈가는 붉게 물들었다. 목소리 또한 격앙됐다. 잠시 숨을 고른 그는 “<화염>은 굉장히 문학적인 작품”이라며 “제가 문학도였기 때문에 글자가 저를 난도질하면 그냥 당하고 만다” 말하곤 웃어 보였다.

지금도 지구촌에선 이란과 미국·이스라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 중이에요. 어린이를 포함해 매일 무고한 수많은 시민이 학살당하고 있죠. 어떤 생각이 드나요.

내 옆을 지나가는 어린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침 흘리면 닦아주고 꽃을 보면 고마워할 수 있는, 이 소중한 일상에 감사하죠.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을 한 점이라도 좀 털고 가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해요. 그것 외에는 이 난장판 세상이 엄두가 안 나니까… 이런 세상에서 제 오장육부 속 이야기를 대신 해주는 <화염> 같은 작품에 참여할 수 있어 감사해요.

문학에 심취하기 시작한 시기는 언제인가요.

숭의여자고등학교에 재학 중일 때였어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릴케의 시에 푹 빠졌죠. 저는 어떤 작품과 사랑에 빠지면 편집증처럼 읽고 또 읽으며 잘 헤어 나오지 못해요.(웃음)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선택한 것도 그래서예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제가 독서회도 만들었어요. 열세 명이 방과 후 물리실에 남아 책을 읽었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사회 과목 선생님을 모셔다 질문하곤 했어요. 그런데 겨울방학 직전에 학교에서 나와 집에 갔더니 엄마가 쓰러져 계셨어요. 제가 학교에서 퇴학 처분됐다는 거예요.

퇴학이라고요? 이유가 뭔가요.

교장실에 끌려갔더니, 독서회를 이끈 게 사상적으로 어떤 지시를 받은 게 아니냐고 오해하더라고요. (예수정은 고교 시절 학생회 부회장도 맡았다.) 다행히 어느 선생님이 ‘수정이네는 정치와는 관계없는 배우 집안이니 내가 보증하겠다’고 나서주셔서 개학과 함께 학교에 다시 갈 수 있었어요. 그런데 퇴학 처분이 났을 때 엄마가 ‘너는 한국에선 안 되겠으니 미국에 가라’고 하셔서 한동안 서울시청 인근 영어학원에 다녔어요. 영어 강사 이름이 지금도 잊히지 않아요. (손목에 찬 시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왓치’였거든요.(웃음) 어쨌든 세상을 이해할 수 없었던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대학에 입학하기까지

6개월간은 입을 다물고 살았어요. 엄마가 ‘너 그러다 입에 곰팡이 생긴다’고 했을 정도예요.

예수정의 어머니는 MBC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김 회장(최불암 분) 어머니로 잘 알려진 배우 고故 정애란이다. 언니는 탤런트 김수옥, 형부는 1970~80년대 안방극장 최고의 스타인 한진희다. 밑으로는 남동생 하나가 있다. 그는 “극장 분장실에서 어머니 젖을 먹고 컸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만 네 살 때부터는 이모와 객석에 나란히 앉아 어머니 공연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고 말했다.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은 언제 처음 했나요.

대학 1학년 때예요. 극장에서 영화 <대부>를 봤는데 말런 브랜도Marlon Brando의 연기에 충격을 받았어요. 강렬한 감흥이 일었죠. 곧장 극장 위에 있던 독일문화원으로 달려갔어요. ‘나, 배우 좀 해 보면 안 돼요?’ 했어요. 이후 주한독일문화원 소속 극회 ‘프라이에뷔네’와 고대극회에서 연기를 시작했고,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만났어요. 브레히트의 ‘극장은 시민을 계몽하는 공간’이라는 말에 가슴이 뜨거워졌어요. 제게는 연극이 곧 구원이었죠. 침묵을 깨고 말문이 튼 것도 그때부터였어요.

73학번 예수정이 학교에 다닐 적은 엄혹한 박정희 군부독재 시기다. 그는 ‘사회 계몽에 참여하는 것이 내 인생이다’ 푯대를 꽂고 연극을 통해 사회 변혁에 참여하겠다고 결심했다. 짱돌 한 번 던지지 않았지만 서슬 퍼런 중앙정보부 요주의 인물로 찍혔다. 그 사실을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고려대 운동권 친구들을 통해 들었다. 친구들은 그에게 ‘고대 독문과 블랙리스트 1번으로 올라 있으니 학교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했다.

처음 무대에 선 작품은 무엇이었습니까.

1974년 고금석 선생님이 연출하신 블랙코미디 <깨어진 항아리>였어요. 1975년에는 명동예술극장에서 막스 프리슈Max Rudolf Frisch의 작품 <만리장성>(연출 김승수)에 출연했고요. 제가 올란 역으로 무대에 선 <만리장성>은 대단히 혁명적인 작품으로, 긴급조치에 의한 사전검열로 공연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어요. 빨간 줄이 그어진 대사들을 고친 대본을 만들어 검열 당국에 보냈죠. 하지만 실제 공연에선 원래 대본대로 했어요. 잡혀 들어가면 성치 않은 몸으로 나오는 무서운 시대였지만, 그래도 우리는 기개가 있었어요.(웃음)

어머니는 딸이 자신과 같은 길을 걷는 것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셨나요.

대학을 졸업하고 1979년에 한태숙 연출 <고독이란 이름의 여인>에 출연했는데, 그걸 보신 유덕형 선생님(연출가·전 서울예대 이사장)이 최인훈 선생의 희곡을 연출한 <봄이 오면 산에 들에>에 저를 캐스팅하셨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엄마에게 연극한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반대할 것을 알았으니까요. 그걸 유 선생님이 눈치채셨어요. ‘그러면 안 된다’며 당신이 직접 집으로 찾아가 엄마께 말씀해주셨죠. 엄마는 유 선생께 ‘출연료는 제대로 주면서 하시게’라고 말씀하셨다고 해요.(웃음)

예수정은 <봄이 오면 산에 들에>를 마치고 1980년 결혼했다. 1982년 딸(연출가 김예나)을 낳고 1984년 남편과 함께 독일 뮌헨대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1986년 아들이 태어났다. 독일에 머물며 남편은 연극이론 박사 학위를 받았고, 예 씨는 연극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1991년 귀국했다.

유학 생활 8년간 무대에 서지 않았지만, 1974년에 데뷔했으니 벌써 50년 넘게 배우의 길을 걸어왔네요. 배우로 산다는 것은 어떤 건가요.

극장에서 일하는 사람이죠. 브레히트가 말한 극장의 ‘시민’ 속에는 저도 포함돼요. 그래서 나와 또 나의 동시대인이 함께 인생을 바라보며 조금씩 개혁하고 발전해나가는 공간인 극장에서 살아가는 게 너무 행복해요.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요.

엄마와 자식들이죠. 가끔 제 행동에 혼자 웃어요. 엄마는 무척 ‘쿨’하고 대답이 분명하셨어요. 가령 ‘엄마 나 피아노 배우고 싶어’ 하면 그날 바로 피아노를 사 와요. ‘나 배워야지’ 하면 레슨비 한 달 치를 주죠. 그런데 한 달 후 다시 레슨비를 요구하면 ‘또 배워야 해?’ 하고 끝이에요. 안 줘요. 그런 엄마 밑에서 자라 제가 누구에게든 조를 줄 몰라요. 엄마와 똑같은 저로 인해 제 아이들도 상처를 많이 받았을 거예요. 또 제가 워낙 근본을 따지는 사람이라 우리 애들은 매사 근본을 따지는 제 질문에 대한 답을 준비하느라 좀 늦어요. 하지만 이런 아이들이 정작 이 사회에서는 상처를 많이 받는다고 느껴 가시처럼 저를 찌르죠.

그렇다면 연기 인생에 가장 영향을 끼친 인물은 누구입니까.

배우로는 대학 선배인 장두이 선배, 연출가로는 유덕형 선생님이요. 장 선배는 책도 여러 권 주면서 연극은 존재의 모든 집중력으로 대해야 하는 장르라는 걸 알려줬어요. 운 좋게 섬세한 감성을 타고나도 연구 과정이 없어 작품의 바닥을 보지 못하면 오히려 썩은 감성만 진동하는 연기가 될 거라고 일깨워줬죠. 그런 와중에 유덕형 선생님의

<봄이 오면 산에 들에>를 만나면서 제 안의 뭔가가 찢겨 나가는 느낌을 받았어요. 김영동 선생이 음악을, 국수호 선생이 안무를 맡는 등 당대 최정상 예술가들이 총출동한 작품에 저는 조약돌 하나 얹은 것에 불과했는데, 우주탐사선에라도 탄 듯 막 소름이 끼쳤어요. 그래서 독일 가서 연극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한 거예요.

귀국 후 그는 <과부들>(연출 이성열), <하나코>(연출 한태숙) 등 숱한 연극 무대에 올랐다. 김동훈연극상2004·히서연극상2005·동아연극상 여자연기상2005·서울연극제 연기상2005·이해랑연극상2017 등 연극계 권위 있는 상을 여럿 거머쥐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도둑들>, <부산행>, <신과 함께-죄와 벌> 등 천만 관객이 본 작품을 비롯한 영화·TV 드라마로도 활동 영역을 넓혔다. 2018년 <행복의 나라>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여우주연상, 2020년에는 <69세>로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을 받았다.

작품 활동을 쉼 없이 하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작품을 하면 편해요. 페이지가 주어지거든요. 꾸준히 생각할 거리를 주니까요. 예수정의 좁은 실제의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다 날아가고, 예수정 위에 있는 초예수정이 들여다볼 수 있는 어느 인생이나 존재에 대해 꾸준히 생각할 거리가 생기는 게 행복해요. 작품마다 열쇠를 받아 삶 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작은 문들까지 하나하나 여는 기쁨, 그게 제가 쉼 없이 일하는 이유예요.

4년 전 “나이 듦이,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의 시간 속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하다”고 말했어요. 죽음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새로운 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 내게 붙어 있기를 원하나 붙어 있지 않고 자꾸 바깥으로 떠돌아다니는 나의 초자아를 드디어 만나러 가는 길, 저는 죽음을 그렇게 받아들여요.

전날 늦은 밤까지 촬영이 이어진 날을 제외하면, 예수정 씨의 아침은 항상 오전 4시 50분에 시작된다. 저 멀리서 해가 떠오르는 기운을 느끼며 깨어나는 시간이다. 그에게 클래식 음악과 미술은 삶의 활력을 채워주는 공기와 같다. 잠들기 전 틀어놓는 음악에서 어머니 자궁 속 같은 안온함을 느끼고, 쉬는 날이면 찾는 미술 전시회에서는 또 다른 각성에 눈을 뜬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그에게 바람이 뭐냐고 물었다. 그는 “너무 크고 잦은 온갖 소음으로 뒤엉킨 세상이 평온해지고 고요해지면 좋겠다”고 답했다.

글 박주연 경향신문 선임기자  |  사진 Studio Kenn

위로 가기

문화+서울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