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서울문화재단

문화+서울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검색 창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

문화+서울

  • 지난호 보기
  • 검색창 열기
  • 메뉴 열기

ASSOCIATED

4월호

김재엽의 연극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

올 초 연극계 최고의 흥행작은 <세일즈맨의 죽음>이다. 두 달간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객석을 꽉꽉 채우며 공연한 뒤 전국 15개 도시에서 순회 공연을 펼치고 있다. 현대 연극의 고전답게 종종 무대에 오르는 이 작품이 이번에 인기를 끈 데는 배우들의 연기를 꼽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연기 경력 60년을 넘긴 박근형·손숙과 50년 차를 바라보는 예수정·손병호가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몰락하는 늙은 부부의 모습을 잘 보여줬다.

그런데, 연극 팬이라면 이 작품의 연출가 이름을 보고 조금은 뜻밖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사회성 짙은 다큐멘터리 연극으로 잘 알려진 극작가 겸 연출가 김재엽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끄는 연극 집단 ‘드림플레이 테제21’은 다큐멘터리성, 동시대성, 테제(정치·사회적 운동의 기본 방침이 되는 강령)가 선행하는 작품을 추구하기로 유명하다. 게다가 중견 연출가인 그가 2023년 이미 공연된 프로덕션의 업그레이드 작업을 맡는 것도 다소 낯설 수 있다. 하지만 그 자신에겐 민간 제작사의 연극 프로덕션을 처음 경험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던 모양이다.

“무엇보다 민간 제작사의 프로덕션 작업을 해 본 적이 없어서 궁금했어요.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은 평소 좋아하는 작품인 데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수업 시간에 많이 다뤄서 해석이나 관점은 이미 준비돼 있었죠. 우선 말맛을 살려 번역을 다시 한 뒤 바뀐 극장에 맞춰 예전 무대 세트를 일부 활용하고 동선을 바꾸는 등 ‘경제적으로’ 손봤습니다. 대신 음악은 완전히 새롭게 써서 차별성을 뒀습니다.”

대학로극장 쿼드 제작 <베를리너> 낭독공연 ⓒ대학로극장 쿼드·이강물

민간 제작사와의 첫 작업인 <세일즈맨의 죽음>은 그에게 좋은 흥행 성적을 안겨준 동시에 유익한 경험이 됐다. 극단이나 공공극장과 다른 제작 환경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극단 작업은 출연 배우가 대체로 일정한 데다 연극에 대한 동일한 관점을 토대로 합니다. 반면 <세일즈맨의 죽음>만 보더라도 (민간 제작사의 연극은) 원로 선생님들부터 젊은 친구들까지 다양한 세대의 배우가 각기 다른 연기 스타일을 가지고 있죠. 이번엔 연극에 관해 각각 다른 관점을 가진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눈 게 재밌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제가) 연출을 겸하는 작가이다보니 극단 작업에선 대본을 계속 손봐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엔 좋은 대본이 이미 주어진 만큼 연습에 더 신경 쓸 수 있었죠”라면서, “극단에선 (제가) 제작자 입장을 겸하다보니 예산 고민으로 작업에 집중하기 어려울 때가 있는데, 이번엔 제작사에 기획팀이나 프로덕션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서 연출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세일즈맨의 죽음> 연출은 2002년 프로 무대에 연출가로 데뷔한 후 연극의 소재와 창작 방식 등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온 김재엽이 새롭게 변화를 모색하는 신호로 보인다. 무엇보다 지난 10년간 국내 공연계에서 다큐멘터리 연극을 주도한 그가 요즘 다시 내러티브 연극으로 돌아올 채비를 하고 있어서 주목된다.

우리의 극장, 21세기의 테제를 연구하고 소통하는

김재엽은 1998년 ‘아홉 개의 모래시계’로 한국연극협회 창작극 공모에 입선하고 2002년 ‘페르소나’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극작가로 출발했다. 배우 겸 연출가인 고 박광정의 극단 파크 창단 멤버로 합류한 그는 2002년 창단 작품인 블랙코미디 <개그맨과 수상>에 이어 두 번째 작품으로 부조리극 작가 이오네스코의 ‘왕은 죽어가다’를 재창작한 <체크메이트>의 대본을 썼다. <체크메이트>2002는 그의 연출 데뷔작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시 대학로의 극단 시스템에 답답함을 느꼈던 그는 2003년, 학생 시절부터 친숙한 신촌·홍대로 돌아가 인디퍼포머 그룹 ‘드림플레이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같은 해 여름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서 선보인 <아홉 개의 모래시계>를 시작으로 <샹그릴라의 시계공>2003, <서바이벌 캘린더>2004, <유령을 기다리며>2005 등 판타지 넘치는 재기 발랄한 작품을 잇달아 선보였다. 그러다가 <햄릿>과 <고도를 기다리며>를 절묘하게 결합한 <유령을 기다리며>가 2005년 거창국제연극제에서 대상과 연출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극단 드림플레이가 정식 창단됐다.

극단을 만들면서 그는 연출가 동인 집단 ‘혜화동1번지’ 4기 동인으로 대학로에 돌아왔다. 그리고 2006년 혜화동 1번지 4기 동인의 첫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오늘의 책은 어디로 갔을까>로 평단과 대중의 지지를 고루 받았다. 그는 연세대학교 앞 사회과학서점을 모티프로 91학번의 후일담을 그린 이 작품에서부터 자신이 고민하는 현실의 이야기를 다루기 시작했다. 이후 연출가로 <조선형사 홍윤식>2007, <꿈의 연극>2009, <마호로바>2011, <풍찬노숙>2012 등을 선보이는 한편, 극작과 연출을 겸한 <누가 대한민국 20대를 구원할 것인가>2008, <타인의 고통>2010, <여기 사람이 있다>2011 등도 무대에 올렸다. 그가 직접 쓴 작품의 경우 한국 사회에서 20대의 분노를 담거나 2009년 발생한 용산참사와 같은 사회적 문제를 다뤘다. 이때 동시대 이슈를 다루는 과정에서 내러티브 중심의 기존 글쓰기에서 한계를 느낀 그는 새로운 형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2년간의 고민 끝에 나온 작품이 2013년 국립극단에서 선보인 뒤 그에게 수많은 상을 안겨준 다큐멘터리 연극 <알리바이 연대기>다. 이 작품은 자신의 가족사와 맞물린 한국 현대사의 순간들을 조명함으로써 국가 권력이 소시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준다. 이와 함께 그는 극단 드림플레이에서 ‘극단’을 빼고 ‘테제21’을 추가한 ‘드림플레이 테제21’로 이름을 변경한다. ‘연극이 아니어도 좋은 연극’은 드림플레이 테제21의 모토다. 이와 관련해 그는 “우리의 극장은 21세기를 살아가는 동시대의 테제를 연구하고 소통하는 커뮤니티의 현장입니다. 연극은 연극으로 남아 있기를 고집할 게 아니라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동시대에 증명해내야 할 입장에 처해 있죠. 어쩌면 이제 연극은 스스로 연극에서 벗어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릅니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는 <알리바이 연대기>를 시작으로 2014년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2017년 <생각은 자유>, <병동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등까지 극 중 인물로 ‘재엽’이 등장하는 자기 서사 다큐멘터리 연극을 잇달아 선보였다. 재엽 역은 그동안 배우 정원조가 맡았다. 김재엽은 2015년 독일 베를린예술대학 방문교수 시절 현지 극장에서 연극이 화두가 되고, 극장이 토론장이 되는 모습을 확인한 후 한국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는 다큐멘터리 연극을 한층 다양하게 시도했다. 세월호와 그 이후를 이야기한 <국가 없는 나라: 사라진 기억들>2016, 블랙리스트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검열언어의 정치학: 두 개의 국민>2016과 <검열언어의 정치학 시즌 2: 김똘똘의 비망록>2017, 단원들이 겪은 노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포스트 자본주의에 대해 다룬 <자본 1: We Are The 99%!>2018와 <자본 2: 어디에나 어디에도>2021, 그리고 <자본 3: 플랫폼과 데이터>2024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작품의 경우 김재엽과 함께 창작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단원들의 기여를 빼놓을 수 없다.

최근작인 ‘자본’ 시리즈에서 드림플레이 테제21의 배우들은 극 중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정치적인 내용 말고, 좀 연극다운 연극도 하고 싶다’, ‘드라마틱한 연극을 해 봤으면 좋겠다’ 등의 대사를 거침없이 말했다. 김재엽의 탈드라마적인 연극에 친숙한 관객에게 웃음을 자아낸 그 장면은, 돌이켜보면 연극 형식의 변화를 바라는 단원들의 속내였다. 드림플레이 테제21은 2021년부터 매년 단원들이 창작 워크숍을 통해 완성한 연극을 선보이는 ‘두드림 페스티벌’을 열고 있다. 연극 공동체의 꿈을 지켜가며 다양한 연극을 소개하는 플랫폼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김재엽도 지난해 극단 창단 20주년을 기념해 조선 의용군 최후의 분대장이자 중국 조선족 문단의 거목인 고 故 김학철의 삶을 그린 <최후의 분대장-제1부 조선의용군>에서 다큐멘터리적이지만 내러티브가 강한 역사극을 보여줌으로써 단원들과 함께 변화에 나선 모습이다.

“다큐멘터리 연극을 통해 기득권 기성세대에 대해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작품을 많이 선보였는데요. 나이를 먹고 주류에 포함된 제가 이전처럼 작업하면 ‘비판적인 약자’ 행세를 한다고 욕먹을 거 같아요. 이제 완성도 있는 보편적 이야기를 모색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이번에 연출한 <세일즈맨의 죽음>이 1949년 초연한 이래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공연되는 것은 현대인이라면 공감할 문제를 다뤄 보편성을 얻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연극의 경우 직접적이고 강렬하지만 수용 범위가 넓지 않은 데 비해, 소위 ‘고전’처럼 내러티브가 강하고 인간의 보편적 본성을 담은 연극은 수용 범위가 넓다.

동시대성과 현대성을 목도하며

그는 “젊었을 때는 나 자신이 직접 이야기를 만들고 연출하는 창작극이 더 재밌었죠. 고전 희곡의 경우 나만의 색깔로 연출하기엔 삶의 경험이 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했다. 시간이 흘러 이제 중견이 된 그는 “‘세일즈맨의 죽음’ 같은 작품은 작가의 글이 가진 힘을 제대로 전달하는 게 중요합니다. 해외 고전 희곡을 무대에 올릴 때 번역극 느낌이 나면 안 되기 때문에 언어에 천착하게” 된다면서, “물론 (현대 희곡과 달리) 셰익스피어 같은 작품은 연출적으로 재해석하거나 변주할 수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게다가 지금 무대에 올리는 것 자체가 ‘왜 지금 공연하지?’ 하는 생각이 깔려 있다는 점에서 이미 현대성을 갖는 것 같아요. 최근 국내 무대에서 <맥베스>와 <햄릿>을 많이 공연하는 것도 사람들이 운명과 권력 앞에서 헤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올가을부터 1년간 안식년을 얻어 셰익스피어를 비롯해 수많은 극작가를 배출한 영국 런던에 머무른다. 런던은 세계 연극의 중심지답게 완성도 높은 연극이 가장 많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10년 전 그가 독일에서 1년간 체류하며 다큐멘터리 연극 방법론을 심화했다면, 이번엔 영국에서 웰메이드 연극을 만드는 비밀을 가지고 올 것 같다. 그는 향후 계획으로 “고향인 대구를 배경으로 염상섭의 ‘삼대’처럼 3대에 걸친 가족사를 다룬 희곡을 쓰고 싶습니다. 과거의 진보적이던 도시 대구가 지금은 왜 그렇게 (보수적으로) 바뀌었는지 그 내력을 드라마로 담아내려고 합니다”라고 밝혔다.

그가 영국으로 떠나기 전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연출하는 연극은 4월 10일부터 20일까지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막을 올리는 이실론 작 <베를리너>다. 극작가 이실론은 희곡을 쓴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인으로, 2023년 4월 1인극으로 공연된 <마하>를 발표한 바 있다. 2023년 서울문화재단이 신설한 서울희곡상 제1회 수상작인 ‘베를리너’는 내전으로 인해 봉쇄된 공항 안에서 캐리어를 기다리는 우희와 태조, 그리고 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출하는 난민 잉그리드와 클라우스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진행된다.

대학로극장 쿼드 제작 <베를리너> 낭독회 ⓒ대학로극장 쿼드·이강물

개관 3년 차인 대학로극장 쿼드는 올해 서울희곡상 제1·2회 수상작을 무대화할 예정이다. 그리고 그 첫 작품인 <베를리너>가 독일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주는 다채로운 감각과 함께 우리가 수많은 전쟁과 분쟁, 테러를 목도하는 시대를 살아간다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김재엽에게 연출을 의뢰했다. 독일 거주 경험에, 난민과 이주민에 대한 작품을 선보인 적 있는 그가 ‘베를리너’를 쿼드 무대에 구현할 적임자라고 봤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김재엽은 대본을 받고 나서 극작가 이실론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이실론 씨는 우리 극단의 공연을 자주 보러 오는 관객이기도 한데요. 언젠가 자신의 희곡을 한번 읽어달라는 메일을 보냈는데, 마침 학기 말이라 바빠서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답장한 기억이 납니다. 얼마 되지 않아 이실론 씨의 서울희곡상 당선 소식을 듣게 됐죠. 당선작이 바로 제게 메일로 이야기했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제가 그 작품의 연출을 맡게 됐다는 점에서 인연이었던 것 같습니다.”

‘베를리너’는 수상작 발표 당시 심사평에서 경계에 대한 다각적 탐색을 정교하게 세팅한 작가의 노력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았다. 다만 작가의 무대화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구성이나 짜임새가 연극 대본보다 영화 시나리오 같다는 아쉬움도 있었다. 이에 김재엽은 드라마터그로 참여한 극작가 김은성과 함께 이실론의 작품을 무대화하기 위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연극 대본으로서 짜임새와 완성도를 높였다. 그는 “서울희곡상 심사위원들이 이 작품의 낭독공연에도 참여하며 모니터를 진행했습니다. 출연 배우들 역시 작품에 관한 토론에 참여해 의견을 개진하는 등 제작 과정에 적극적으로 동참했고요. ‘베를리너’를 시작으로 앞으로 동시대적 주제와 담론을 담은 참신한 희곡이 쿼드의 창작극 제작 시스템을 통해 관객에게 계속 다가가길 바랍니다”라고 기대했다.

연극 <베를리너>

4월 10일부터 20일까지 대학로극장 쿼드

글 장지영 국민일보 선임기자

사진 Studio Kenn

위로 가기

문화+서울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