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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호

예술인 아카이브 임솔아

임솔아
b.1987
문학/시·소설
2026 일본 K-BOOK 페스티벌 참가
2025 예술활동지원
2020 창작활동지원
2015 문학창작집발간지원사업

시와 소설을 쓰는 임솔아입니다. 2024년부터는 시 낭독 퍼포먼스 팀 ‘메아리조각’의 멤버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문학주간2026 메아리조각 낭독 퍼포먼스 <목소리 잇기> ⓒ황아림

청소년 시절, 시험 기간이면 벼락치기를 하기 위해 독서실을 끊었는데요. 열심히 공부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보상이 필요했습니다. 그때 선택한 보상이 노트 한 권이었어요. 계획한 만큼 공부를 하고 나면 보상으로 노트에 편지를 썼습니다. 교환일기나 편지쓰기가 유행하던 때였어요. 좋아하는 친구에게 편지를 쓸 생각을 하다보면 정말 공부가 잘됐습니다. 편지의 양이 너무 많아지다보니 일기로 바꾸게 됐어요. 모두가 잠든 새벽, 책상 스탠드만 켜두고 글 쓰는 기쁨을 알게 된 거예요. 그리곤 어느 날부터인가 쓰는 일이 너무 재미있어져서 시험 기간이 아닌 때에도 뭘 쓸까만 궁리하게 됐습니다. 그림도 그리고 사탕 껍질도 붙이고 노래 가사도 적었습니다. 일기가 시나 소설로 옮겨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그게 제 창작 활동의 시작인 듯해요.

예술인패스를 내고 미술관에 무료로 입장했을 때 감탄한 기억은 있지만,(웃음) ‘예술가’라는 단어보다는 ‘시인’이나 ‘소설가’라는 단어가 저에게는 더 친숙합니다. 작가가 돼야겠다고 결심한 건 고등학교를 중퇴할 때였는데요. 부모님의 반대가 심하기도 했고 주변에 제 선택을 지지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저 자신을 지탱해줄 무엇인가가 필요한 상황이었어요. 막상 제도 바깥에서 생활해보니 불안도도 높아지고, 잠깐만 방심하면 일상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될 수밖에 없었는데요. 작가가 되겠다는 각오가 그런 저에게는 보호막 역할을 해줬어요. 정신적으로도 그랬지만, 매일매일 책을 가까이 두고 무엇인가를 써내려간다는 것이 일종의 루틴이 돼 현실적으로 제 하루를 붙잡아주었습니다.

최근 『우리가 보고 있지 않았던 장면들』이라는 소설집을 출간했습니다. 소설 3편과 에세이 1편이 실려 있습니다. 엄마에 대한 소설들이라고 보셔도 좋고, 떠남과 돌아옴에 대한 소설들이라고 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11월에는 도쿄에서 열리는 K-BOOK 페스티벌에 시 낭독 퍼포먼스 팀인 ‘메아리조각’의 팀원으로 참여할 예정입니다. 시를 읽는 동안 저는 관객석에 끼어들기도 하고, 무대 위를 뛰어다니기도 합니다. 팀원들과 서로의 시에 즉흥적으로 끼어들어 시를 주고받거나 돌림노래처럼 시를 이어 가기도 하죠.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관객들에게 이 낭독 퍼포먼스가 어떻게 전달될지 무척 기대하고 있습니다.

올해 낸 소설집 『우리가 보고 있지 않았던 장면들』

그리고 내년에는 새로운 소설집을 출간할 예정입니다. 그 소설집에는 ‘지윤’이라는 인물이 반복적으로 나오는데요. ‘지윤’의 일대기를 여러 단편 소설에 나눠 담고 있다고 보셔도 될 듯합니다. 어느 소설에서 지윤은 우파 여성에게만 사랑을 느끼는 좌파 레즈비언으로 등장합니다. 어느 소설에서는 반려견의 유골함을 묻기 위해 선산의 가족묘를 가족 몰래 파헤치기도 합니다. 또 어느 소설에서는 사랑이라는 것이 사라진 미래에 귀신과 둘이 함께 살고 있기도 합니다. 각각 다른 소설이지만 모든 소설을 읽을 때 지윤이라는 인물을 통해 제가 그리는 세계가 더욱 또렷하게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쓰고 있습니다.

저는 직장에 다니지 않고 집에서만 일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식사 또한 집에서 합니다. 바쁠 때는 배달 음식을 시켜 먹기도 하지만 웬만하면 직접 만들어 먹으려고 하죠. 저는 같은 음식을 연속으로 먹는 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오늘은 뭘 만들어 먹을까 고민하곤 해요.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 생각해보고, 필요한 게 있으면 사러 나가기도 하고요. 다른 사람의 레시피도 찾아봐요. 글 쓰는 것도 비슷한 것 같아요. 영감은 제게 순간적으로 찾아오는 어떤 번뜩이는 기운 같은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적인 경험의 축적이고 노동이에요.

인터뷰 원고를 쓰는 오늘 아침 6시쯤 그레이스 M. 조의 『전쟁 같은 맛』의 마지막 장을 덮었습니다. 졸음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멈추질 못해서 다 읽고 잤네요. 당장 해야 할 일들이 있어서 책은 조금씩 나눠 읽을 예정이었는데,(웃음) 다른 일들을 내팽개친 채 이 책만 읽었어요. 책을 안 읽고 밥을 먹는 순간이나 강아지와 산책하던 순간에도 계속 이 책을 생각했습니다. 오늘 아침까지 다 읽지 못했더라면 이 인터뷰에도 집중을 못 하지 않았을까 싶은 정도예요. 책은 김지승 작가님이 운영하는 독서 모임을 통해 읽게 되었는데요. 기지촌에서 일하다가 미국으로 이민 간 후 조현병을 앓게 된 어머니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누구라도 이 어머니를 이해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어머니의 병증도 포함해서요), 독자를 그 이해에 도달시키기 위해, 혹은 자신이 그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 작가가 평생 해온 노력이 문장 하나하나를 통해 절절히 전해졌습니다.

작업에만 너무 몰두하며 살다보면 생활 반경도 좁아지고 새로운 경험도 줄어들어 오히려 작업이 파리해지기도 합니다. 발로 이곳저곳 둘러보면서, 충분히 파고들 수 있을 만큼 시간을 확보하며 작업하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일을 좀 줄여야겠죠. 일단 내년까지는 쓰고 있는 소설집과 시집을 완성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장편 소설을 시작하려고요.

정리 나혜린 서울문화재단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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