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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호

예술인 아카이브 임주아

임주아
b.1988
문학/시
2021·2026 연희문학창작촌 입주작가
2026 일본 K-BOOK 페스티벌 참가

시를 쓰고 서점을 운영하며 북페어를 만드는 임주아입니다. 전주에서 서점 ‘물결서사’를 운영하고, 북페어 ‘전주책쾌’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올해 봄에는 서울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연희문학창작촌에 세 달간 머물렀습니다. 분주하고 소란한 일상 속에서 연희문학창작촌은 차분하게 시를 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소가 돼주었어요.

고등학생 때 빈 공간이 많은 수학 모의고사 시험지에 짧은 일기나 좋아하는 문장을 생각나는 대로 적곤 했어요. 어느 날 선생님에게 들켰는데, ‘네가 글쓰기를 아주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지요.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꿈을 찾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집에서 세 시간 넘게 떨어진 대학의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했고, 학교 도서관에서 시집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러다 학보사 생활에 푹 빠져 취재하고 기사를 쓰며 대학 시절을 보내기도 했고요. 그때부터 사람과 사회를 오래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네요.

2015년부터 작품 활동을 했지만, 한동안은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2018년에 동료들과 전주의 성매매 집결지 선미촌에 서점을 열고, 소셜미디어와 메일링을 통해 매주 시를 연재했습니다. 그 무렵부터 비로소 저도 스스로를 시 쓰는 한 사람이라는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선입견과 편견으로 설명되던 동네를 직접 오래 보고 싶었습니다. 이미 정해진 판단에 기대기보다 그곳에 머물며 사람과 동네를 살피던 그 시간은 시를 쓰는 태도뿐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당시 쓴 시들을 모으고 고쳐 첫 시집 『죽은 사람과 사랑하는 겨울』을 냈고, 시집에는 선미촌에서 만난 이웃들의 이야기도 담겨 있습니다.

올해 여름 출간한 앤솔러지 시집 『햇생강이 나오면』에 수록된 최근작 「습설」과 「시옷이 사라졌다」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습설」은 겨울 뉴스의 헤드라인에서 처음 보고 언젠가 꼭 제목으로 써보고 싶었던 말인데요. 가볍지만 물기를 머금으면 무거워지는 젖은 눈을 생각하며 아버지와의 세 가지 기억을 썼습니다. 교도소와 고사장 앞 여관 등이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길지 않은 시인데, 제 생에서 어쩌면 가장 습설 같던 이야기입니다. 「시옷이 사라졌다」는 제가 좋아하는 두 창작자가 만든 연극 작품에서 제목을 빌려왔습니다. 시옷을 소재로 여러 장면이 이어지는 시입니다. 『햇생강이 나오면』에는 시마다 기획위원이 쓴 짧은 글이 함께 실렸는데, 제 시에 대해서는 “슬픈 이야기를 안 슬프게 하는 사람은 슬프다. 장황하게도 할 수 있었을 이야기를 천천히 조금만 하는 일은 곡진하다”고 써주셨습니다. 읽어주셔서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올해 11월 일본에서 열리는 K-BOOK 페스티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출판사 쿠온과 도쿄 진보초의 한국어 책방 ‘책거리’를 운영하는 김승복 대표님 등이 오랫동안 한국 문학을 일본에 소개해온 행사로, 올해는 고선경·유선혜·송희지 시인과 저까지 한국 시인 4명이 초청됐다고 들었습니다. 감사하고 얼떨떨한 마음입니다. 「습설」과 「망뭉망」 두 편을 일본어로 번역해 소개하고, 일본 시인 이시다 료와 함께 토크와 낭독을 진행합니다. 진보초 산책과 번역 워크숍 등 일본의 창작자와 독자를 만나는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예정입니다. 시를 번역해 다른 언어의 독자와 만나는 경험은 처음이라 무척 설렙니다.

올해 초 출간한 앤솔러지 시집 『햇생강이 나오면』과 첫 시집 『죽은 사람과 사랑하는 겨울』

처음 보는 단어나 어느 날 새삼 생경하게 느껴지는 말에서 힌트를 얻는 편입니다. 단어를 소리 내 말해보고 한자를 찾아보는 일도 좋아합니다. 지역문화에 관심이 많아 낯선 도시에 가면 서점이나 시장을 찾아가고, 그곳의 오래된 공간과 사람들을 유심히 보는 편입니다. 책의 현장에서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나는데, 그들이 무심코 하는 말이나 낯선 이야기가 시의 시작이 되기도 합니다.

최근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작품 제작 과정과 인터뷰를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인공지능이 영상을 쉽게 만들어내는 시대에 전편을 아이맥스 필름 카메라로 촬영했다는 점, 그리고 스마트폰과 이메일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삶의 방식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또 얼마 전에는 사람들이 여름휴가를 떠난 인쇄소가 잠시 도서관이 된 ‘인타임 도서관’에도 다녀왔습니다. 지난 15년간 인타임을 거쳐 만든 2,400여 권의 책이 작업장으로 돌아와 서가를 채웠고, 책을 만드는 아날로그 공정과 그 일을 해온 직원들의 인터뷰도 함께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옛 지금’을 좋아합니다. 옛것의 고유함과 아름다움에 동시대의 감각이 겹치는 순간. 아이맥스 필름 카메라로 영화를 찍고,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책 한 권을 만드는 일이 지금도 신비롭고 흥미롭습니다. 책은 오래된 유물이면서 여전히 신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도 그 안에 있다고 생각하고요.

첫 시집을 낼 때는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쓰고 싶은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한 권의 책을 내고 나니 다음에는 어떤 시를 쓰고 싶은지가 조금 더 분명해졌고요. 다음 시집에는 조금 더 맹랑하고 솔직한 인간의 시를 쓰고 싶습니다. 우울과 명랑 사이를 오가면서도 나 하나에 머물지 않고, 세계 속의 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면서 시를 쓰고 싶습니다.

정리 나혜린 서울문화재단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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