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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S+

5월호

예술인 아카이브

이승진

시각예술/설치
@leesngjin
www.leesngjin.com
2026 신당창작아케이드 입주작가

서울과 암스테르담에서 ‘놀이’ 혹은 ‘놀이터playground’ 요소를 바탕으로 한 참여형 설치와 오브제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작업은 단순히 공간을 구성하는 설치를 넘어, 관객이 개입하고 경험하면서 완성됩니다. 오브제 단위로 존재하면서도, 그것이 모여 하나의 환경을 이루고 그 안에서 관객의 행위가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저는 작업에 ‘놀이’라는 형식을 빌리지만, 그 안에 담기는 내용은 비교적 가볍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관객이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시작하지만, 경험 이후에 남는 감각이나 질문은 좀 더 오래 머무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비교적 늦은 시기인 스물일곱에 창작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전에는 외국계 광고 회사에서 광고기획자AE로 일하며, 클라이언트의 메시지를 기반으로 광고 전략과 브랜딩 캠페인을 기획하는 일을 했습니다. 브랜드의 방향에 맞게 논리를 세우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이었죠. 광고업계가 흔히 창의적인 분야로 여겨지지만, 제게는 오히려 ‘설득을 위한 논리, 논리를 위한 논리’가 반복되는 구조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저는 그 사이에 있는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습니다. 어느 한쪽으로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는, 애매하게 남아 있는 이야기들이요. 우리 삶의 고민은 대부분 명확한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상태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으면 제 덕이고, 별로면 제 탓인 상태에서, 그 어떤 기준이나 누구의 개입 없이,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던져보고 싶었습니다. 꼭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논란이 생기더라도 사람들이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지점을 남기는 작업이요. 누군가의 요구에 맞춘 결과물이 아니라, 자신의 질문에서 출발하는 작업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 그것이 지금의 활동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저를 완전한 의미의 예술가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직업인으로서의 예술가로 자리잡기 위해 계속해서 시도하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다만 계속해서 창작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느낀 것은 분명합니다. 한없이 가벼운 제가 입 밖으로 내뱉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고민은 종종 술자리의 헛소리로 치부되고는 합니다. 늘 우스운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은 제가 갑자기 진지한 얘기를 꺼내는 순간, 분위기가 조금 어색해지기도 하지요. 일상에서 그렇게 가볍게 소비되던 제 말과 생각이 작업을 통해 다시 다뤄질 때, 그것이 단순한 사담이 아니라 하나의 사유 대상으로 전환되고는 합니다. 제게 있어 예술은 어떤 메시지를 나누고 공유하는 개념을 넘어 ‘내면의 나와 외면의 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작업을 통해 나의 균형을 맞춰가는 것이, 제가 계속해서 예술을 이어가고 싶은 이유가 됩니다.

‘Anyone’s Anything’은 지금의 작업 방향을 잡는 데 큰 전환점이 된 프로젝트입니다. 사회적 금기에 대한 시선을 ‘놀이’의 방식으로 풀어낸 설치 작업으로, 성인의 세계에 속한다고 여겨지는 오브제를 놀이기구처럼 확장해 당연한 시각을 낯설게 다시 경험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움이나 거부감이 생기기도 하지만, 전시 공간이 점차 하나의 ‘놀이터’처럼 작동하면서 관객들은 심리적인 경계를 내려놓고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참여하게 됩니다. 이 작업은 독일 및 네덜란드 현지 매체와 더치 디자인위크 등 플랫폼을 통해 소개되며, 놀이적인 접근이 사회적 담론으로 확장할 가능성을 체감하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Anyone’s Anything’ 프로젝트

그 이후로도 ‘놀이’와 ‘시리어스 펀Serious Fun’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관객이 웃음을 통해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메시지에 접근하게 되는 구조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 작업 이전에는 작가 소개에 “유머러스하게 작업을 풀어나간다”는 문장을 적어두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게 마치 ‘저 재미있는 작업하는 사람이에요’라고 스스로 말해버리는 것 같아서, 오히려 강요하는 느낌이 들어 괜히 민망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마치 ‘저 웃기죠?’ ‘웃기잖아요’라고 먼저 말해버리는 코미디언 같은 기분이랄까요.

지난 프로젝트를 통해 놀이의 형식으로 접근했을 때 오히려 더 자연스럽고 직관적으로 웃음과 함께 메시지가 전달되고 공유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후로는 스스로를 굳이 그렇게 정의하거나 설명하지 않아도, 작업 안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풀어가고 있습니다.

제 작업의 영감은 형태 없이 떠다니는 생각들에서 비롯됩니다. 가만히 앉아 과거를 떠올리거나, 최근에 겪은 상황들, 혹은 일상에서 마주한 사소한 장면을 계속 곱씹으면서 작업의 단서가 만들어집니다. 예를 들어, 책상 위 달력 속 날짜들이나 어제 만난 사람과의 사소한 언쟁, 때로는 막연한 상상에서 시작되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들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편입니다. 특히 하나의 상황을 단정적으로 해석하기보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어떻게 보면 과장된 상상일 수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하기보다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는 상태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작업 역시 그러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방향으로 이어집니다. 제 작업이 하나의 방향으로 정의되기보다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상태로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넷플릭스에서 <보 번햄: 못 나가서 만든 쇼Bo Burnham: Inside>를 여러 번 주기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밝고 유쾌한 형식으로 전개되지만, 그 안에는 냉소·불안·고립감 같은 감정이 계속해서 존재합니다. 웃기지만 마냥 웃기지만은 않은 상태, 그 이중적인 감각이 계속해서 이 작품을 보게 되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가볍게 보이지만 어딘가 불편하고, 모순적인 감각이 동시에 존재하는 제 작업 역시 블랙코미디와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소에도 대중문화 작품을 많이 접하는 편입니다. 그 안에는 결국 다들 한 번쯤 겪어본 감정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지점이 제 작업을 확장하는 데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줍니다. 제가 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감정이나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최근에는 놀이 기반의 설치 작업을 ‘가구화’하는 시도를 해 보고 있습니다. 전시실에만 머무르는 작업이 아니라, 일상에서 계속해서 함께할 수 있는 오브제의 형태로 풀어내는 것이 요즘 가장 큰 관심사입니다. 특히 ‘놀이’와 ‘시리어스 펀’이라는 개념을 홈 스케일의 오브제로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지 집중하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작동하면서도, 여전히 어떤 질문이나 감각을 남길 수 있을지 고민 중입니다.

나혜린 서울문화재단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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