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 아카이브
김주희
연극/희곡
@1insill
kimjoohee.kr
2026 서울문화재단 문학 첫 책 발간지원
2025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
2022 서울문화재단 유망예술지원
2021 연희문학창작촌 입주작가
희곡을 씁니다. ‘이상한 존재들의 울음’을 써요. 불가능한 세계가 가능해지거나, 가능한 세계가 불가능해지는 작품을 쓰고 싶어요. 삶이 주는 허무와 희망을 더듬거리며 마술적 리얼리즘 세계관 및 신화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작품을 창작하곤 해요. 바닥에 달라붙은 몸과 방바닥 아래 지하 세계를, 아기들을 업은 거대한 아기의 등과 추락을 꿈꾸는 여자들이 집결한 모래사막을, 반인반수半人半獸의 몸을, 식도를 타고 들어간 연인의 몸속을 희곡으로 그렸어요.
보통은 리서치 자료와 트리트먼트가 어느 정도 갖춰지면 숙소로 들어가요. 영양제·베개·책이 담긴 가방을 들고 나서요. 길면 5박 6일 정도를 그곳에서 숙식하며 쓰는 일에 매진해요. 숙소에 도착해 문을 걸어 잠갔을 때의 단절감이 좋아요. 오직 제가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기 위해 다른 일들을 차단한 순간이어서요. 그래도 목표치를 쓰고 퇴실하기 전 잠을 몰아 잘 때가 제일 행복하긴 해요.
2015년 서울연극센터 웹진 [연극in] ‘10분희곡릴레이’로 창작 활동을 시작했어요. 데뷔 이래 희곡 22편을 쓰고 발표했는데, 이 모든 작품의 시작점이 돼주었죠. 또 쓰지 않으면 버틸 수 없던 날들이 많았던 것도 계기이자 동력이 돼준 것 같아요. 지금도 그렇고요.
무대에 오른 작품을 객석에서 바라볼 때, 침침한 이야기 속으로 관객들이 환하게 걸어 들어오는 걸 느낄 때, 그래서 극장의 유령 같던 제가 초대받은 사람으로 여겨질 때 스스로 예술가임을 자각하게 돼요. 그리고 의심과 불안이 가득한 원고를 들고 연습실에서 동료들을 만났을 때, 그게 배우·연출·스태프들의 무엇과 접촉될 때도 그렇고요. 또 한번은 한강 수난구조대원의 이야기를 쓰려고 이들을 취재하고 한강에서 다이빙을 체험해본 적이 있어요. 수영을 전혀 할 줄 모르고 물을 무서워하는데도 눈을 질끈 감고 뛰어내린 일이, 제가 작가로 살고 싶어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이 끈질기다는 걸 확인할 수 있던 순간이기도 해요.
대표작이라 할 작품에 아픈 손가락이 있어요. <낙원>인데요. 2019년에 장막으로 발표했는데 관객의 호불호도 명확하고, 지원사업에서도 매번 탈락해요. 하지만 제가 운영하는 창작단체 ‘프로젝트1인실’의 첫 작품이고, 너무나 소중한 사람들과 아쉬움 없이 무대에 올린 작품이라 무척 소중해요. 그 작품으로 저를 기억해주는 동료·관객들도 생겼고요. 몸속에서 소화되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이야기하는 작품이에요. ‘우리는 기실 누군가를 삼킨 채 살아가는 것일지 모른다’, ‘관계 혹은 타자는 그 정도의 고통과 무게일지 모른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고요. 햇수로 7년이 지났는데, 꼭 다시 공연하고 싶어요.
오는 9월에 연극 <역행기>를 발표해요. 바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만이 그 바닥에 써 내려갈 수 있는 서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쓴 희곡이에요. 수메르 여신 인안나(이슈타르) 신화로부터 출발했고, 비인간 동물 및 식물과 연합한 몸으로 살아가는 지하세계 여성들이 등장해요. 데뷔 9년 차인 2024년 과분하게도 국립극단 창작희곡공모에서 대상을 받아 발표할 수 있게 됐어요. 극으로 올리기 전에 제목이 먼저 알려지고, 만나는 동료마다 이 작품에 관해 물어보는 일이 무척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쓴 희곡 중 가장 따뜻하고 희망적이라 스스로 좀 낯설어요. 이 작품이 제게 어떤 의미인지 정의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또 ‘로미오와 줄리엣’을 핵시설이 들어선 베로나 도시의 사랑 이야기로 재창작한 <줄리엣>도 재연이 예정돼 있고요. 연말에는 <마지막 미노타우로스>라는 연극을 발표해요. 테세우스 신화 속 반인반수 미노타우로스를 대멸종 이후의 시대로 불러오는 작업이 될 것 같아요. 그 밖에도 서울문화재단 문학 첫 책 발간지원사업을 통해 희곡집을 준비하고 있어요. 희곡집 출간은 막연한 꿈이자 어쩌면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일이었거든요. ‘어느 날 문을 열고’, ‘마지막 미노타우로스’, ‘모래바람’, ‘식탁’을 실을 예정입니다.
연극 <낙원>(2019)의 한 장면 ⓒ김기성
저는 기괴한 꿈을 많이 꿔요. 그저 꿈인데, 세상 하나를 경험하고 나온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같이 있던 사람들을 그곳에 두고 온 것 같기도 하고요.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거나 식은땀에 목덜미가 젖어 있을 때도 있어요. 깨보니 눈물이 맺혀 있을 때도 많고요. 주로 공포 장르지만, 판타지 및 모험 장르의 꿈도 많고요. 그런 생활이 수면 중에 반복되니 깨어 있는 순간에도 그런 식의 사고가 지속되는 것 같아요. 그것이 창작의 원천이 되는 것 같고요.
대사를 쓰다보니 말에 영향받아요. 가족·동료·관객의 한마디가 다음 작업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곤 해요. 살아가는 이야기든 현장에서 나누는 대화든 제게 중요한 분들의 말이라서 흘려들을 수가 없어요. 그분들 삶으로 제 실핏줄이 뻗어 있는 것 같달까요. 특히 <어느 날 문을 열고>를 함께한 동료들이 그래요. 일상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이름 모를 사람들의 말도 여전히 마음에 남아 있어요. 정류장에 내렸을 때 쏟아지던 장대비 속에서 막막해하고 있으니 같이 쓰고 가자며 우산을 내어준 주민들, 고단함에 고속버스에서 잠에 빠졌을 때 기대서 자라며 어깨를 빌려주신 식당 조리원, 인바운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전화를 걸어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셨던 어르신이 그렇습니다. 그런 마음은 무엇으로부터 자라는 걸까, 어떻게 가능한 걸까, 그렇다면 나는 어떤 대답을 돌려주어야 하나 싶어요. 그런 경험 덕분에 아직 희곡 작가로 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글 나혜린 서울문화재단 커뮤니케이션팀













